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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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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괜찮은 인간이 되는 걸까

남해에 정착한 지 2년, 지역민 모두가 쓸 서점을 짓고 있는 귀촌인
등록 2020-01-01 13:39 수정 2020-05-03 04:29
최창혁씨는 경남 남해에서 짝꿍 신지영씨와 아들 최정빈(왼쪽)과 살고 있다. 마파람사진관 제공

최창혁씨는 경남 남해에서 짝꿍 신지영씨와 아들 최정빈(왼쪽)과 살고 있다. 마파람사진관 제공

홍성의 박푸른들씨, 진안의 배이슬씨, 화천의 임달래씨, 합천의 김예슬씨, 순천의 신건희씨, 전주의 임주아씨, 강릉의 김지우씨, 남해의 최창혁씨….
지역에 청년이 있습니다. ‘지역 소멸’을 말하는 시대에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청년들입니다. 삭막한 자본주의에서 탈출해 지역으로 간 이들, 나고 자란 지역을 지키는 청년들. 농사를 짓고 문화공간을 만들고 마을을 기록하고 창업을 합니다. 서울에서도 지역 변화를 모색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성장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때론 흔들리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힘들 때마다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합니다. 자연과 사람의 연결을 귀하게 여기며 ‘같이’의 가치를 만듭니다. 신년호에서 그 지역의 청년 한명 한명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온전히 지역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2020년 ‘지역에서 변화를 꿈꾸는 청년들’ 연중기획은 이어집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서울을 떠난 지 2년이 흘렀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서울’이란 단어가 곧 맞이해야 하는 2020년만큼 낯설다. 서울살이를 싫어했던 것 같은데…. 마냥 싫었다면 어떻게 20년 세월을 서울에서 살았을까 싶은 터라,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 왜 돌아섰는지 가물가물하다. 떠날 때는 ‘왜 떠나야 하는가?’ 답을 찾으려 애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뭐 떠날 만하니까 떠났겠지’라며 심드렁한 일이 되었다.

서울보다 150배 여유로운 걸음

내가 사는 남해는 행정구역상 경상남도지만 위치상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낀 섬이다. 친구들에게 남해로 이사 갔다고 하면 남해안 어디에 사느냐고 재차 물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있어 차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기차역은 없다. 교통이 불편해 사람 손을 덜 탄 곳이다. 전에 내가 살던 서울 마포구보다 땅은 15배 정도 크고 인구는 10분의 1 수준이니까 단순 계산하면 난 서울에서보다 150배 여유롭게 뒷짐 지고 걷는 중이다.

열심히 팔랑거리며 남해를 즐겼다. 주변이 산과 바다니 공기가 참 좋다. 고층 건물도 없다. 교통량이 적으니 도로도 아담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면 감탄만 나온다. 몽돌해변을 걸으며 몽돌 빛깔을 감상하고 자각자각 파도 소리를 듣는 호사도 누린다. 눈앞에서 부서지듯 바다로 흩뿌려지는 낙조는 이곳 남해에 와서 처음 봤다. 사진으로는 감당되지 않는 금산의 절경, 옥색 바닷물에 윤슬,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서 보지 못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남해살이 1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다른 것도 많이 보인다.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서울 공기는 정말 최악이다.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았나 싶게) 미세먼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 뿌연 날씨에 속상한 날이 더러 있었다. 최근 읍에 고층 건물을 짓는 타워크레인이 설치됐다. 적어도 3년 이상(내가 남해에 처음 왔을 때도 계속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느라고 아침과 저녁으로 차량 주행 방향이 바뀐다. 해안도로에 드문드문 없는 게 더 좋겠다 싶은 전망대를 만들고 있다. 그럴 돈 있으면 바닷가 쓰레기를 치우지. 바닷가 주변으로 알록달록 원색 펜션들이 눈에 거슬릴 때가 많다. 내 시야에 손가락을 살짝 집어넣어 펜션 무리를 가려본다. 풍경이 완성되는 순간을 즐기고 싶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해 토박이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퉁명스럽다. 심지어 가게 하시는 분들조차 그렇다.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화난 건가 싶을 정도로 거센 말투다. 우리가 머물 집을 구하려고 할 때, 자신이 남해 토박이라며 잘해주겠다는 A부동산은 B부동산에서 봤던 똑같은 집을 4천만원 비싸게 거래하려고 했다. 아직 토박이 텃세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퍽 난처하다.

최창혁씨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은 서점을 짓고 있다. 마파람사진관 제공

최창혁씨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은 서점을 짓고 있다. 마파람사진관 제공

남해와 서울의 대차대조표

서울을 떠날 때와 달리, 서울과 남해는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비슷하게 공존한다는 점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오히려 서울 안, 깨끗한 자연환경을 지닌 지역이라면 남해보다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좋은 서점과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 친구들, 가식일지언정 친절한 사람들, 안락한 익명성, 내가 그간 쌓아온 경력 등이 모두 서울에 있다. 서울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다시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갈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남해에서 얻은 몇 가지는 남해와 서울의 대차대조표를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다.

정신적 여유를 얻었다. 여유가 생길 상황은 아니었다. 서울이나 남해나 육아, 집안일, 경제활동 등 할 일은 비슷하게 있었다. 오히려 더 늘었다.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고 먹고살 것을 걱정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남해에선 주변이 조용해지고 관계가 단순해지면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일이 줄었다. 별도 뜨지 않는 깜깜한 길 대신 노을 진 하늘과 바다가 함께 보이는 길이 귀갓길이라는 점, 흉물스러운 전망대가 버티고 서 있더라도 마음 넓은 산과 바다는 어디 가지 않는데도 여유를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생각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늘었다. 이러다 어제보다 더 괜찮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잠깐 설레는 시간도 함께 늘었다.

함께 산다는 것, 홀로 선다는 의미를 생각한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워도 아직 이곳에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자기 것을 기꺼이 나누는 남해 사람들이 있다. 우리 가족의 끼니를 걱정해주는 앞집 할머니가 계시고, 괜찮은 일거리가 있으면 번거롭더라도 꼭 나에게 일을 맡기려는 읍내 광고기획사 식구들이 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도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타 먹인다. 이 세계에서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사람은 누구도 없다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받는 건 그 자체로 서로의 자리와 역할을 챙겨주는 과정일 수 있다. 함께 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상대방이 진정 홀로 서도록 돕는 방법인 셈이다.

취향보다 선함, 세련됨보다 끈끈함

남해읍에 작은 서점을 하나 열 생각이다. 지역의 어떤 가게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역민 모두가 쓴다는 점에서 공유물 성격이 짙다. 모두 쓸 서점이니까 단단하게 지어야지 다짐한다. 동네 아이들도 놀러 오고 어르신도 놀러 오는 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잠깐 쉬면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어떤 기준으로 살면 좋을지 고민하는 서점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고 살다보면 뭔가를 도모할 수도 있겠지. 취향보다는 선함으로, 세련됨보다는 끈끈함으로 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뭘 도모할지는 지역에서 함께 기대어 사는 친구들과 즐겁게 고민해야지. 서점에 오신다면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할 테니 많이 찾아주시길.

최창혁 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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