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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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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곁에서 꿈틀거려도

특성화고 10년, 장애인 노동권, 채식 학생들, 보호종료 청년 #긴세월을꿋꿋하게
등록 2019-12-24 12:54 수정 2020-05-15 20:2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2월1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중증장애인)씨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2월1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설요한(중증장애인)씨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름씨(명사). 삶에 이름 붙이는 일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한겨레21>은 2019년에도 끝내 숱한 삶을 몇 단어로 이르고 말았다. 주저하고 있을 때, 먼저 자기를 ‘암 경험자’로, ‘사고 목격 트라우마 피해자’로, ‘장애인 노동자’로 불러달라고 말해준 이들이 있었다. 거대한 것들의 목록 안에서 이름 없이 존재마저 감춰질까 두려워, 이름에 갇히는 두려움을 놓기로 한 사람들. 드러내준 이름 안고 같이 고민하면 그 이름이, 아무렇지 않은 그저 이름일 뿐인 세상도 언젠가 오지 않을까.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실적 따지는 정책이 장애인을 삼켰다
제1280호 표지이야기 ‘중증장애인이 할인하는 물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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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장애인 고용정책 역사와 정부 정책 방향을 짚어보면 노동능력과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장애인 고용 문제를 바라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장애인들의 요구로 올해부터 새로 시행되는 공공일자리인 동료지원가(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 중증장애인 발굴·상담·취업 지원) 사업도 중증장애인이 1년 48명의 장애인에게 각 5회 이상씩 상담해야 수당을 받는 방식인데, 장애인·장애인부모단체들은 중증장애인 노동의 ‘내용’보다 ‘실적’을 우선시하는 구조에 걱정한다.”(제1280호 ‘중증장애인이 할인하는 물건인가요’ 중)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것도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동료지원가 일을 하며 과도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던 중증 뇌병변장애인 설요한(24)씨가 12월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애인단체들은 ‘일할 권리’가 아닌 ‘실적 중심’의 장애인 일자리 정책이 설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반발한다. “장애인도 노동자다”라는 외침은 ‘느려도 할 수 있다’가 아닌, ‘느리면 할 수 없다’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묵살됐다.

우려하던 일이 최악으로 나타나

전남 여수에서 4월부터 동료지원가로 활동한 설씨는 12월5일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출근했다가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나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14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사망 동기는 알 수 없다. 그가 죽기 전 자립생활센터 몇몇 동료에게 보낸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만 남았다. 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단체는 설씨가 12월10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장애인공단의 동료지원가 사업 점검을 앞두고 야근하며 주변에 “과도한 업무로 힘들다”고 털어놨던 것에 주목하고 있다.

2016년 2월 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설씨는, 2018년 4월 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성실하게 일했지만 하루 8시간 근무에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낀 그는 올해 4월부터 시행된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 활동을 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그는 노동시간이 줄어 급여가 감소하더라도 지역 장애인들을 만나며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대희 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요한이 계속 공부해서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곤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동료지원가는 장애인단체들의 공공일자리 1만 개 요구에 따라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논의한 끝에 올해부터 실시된 시범사업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수행기관(주로 장애인 복지관·자립센터)에 위탁해 진행하는 사업으로 올해 200명을 모집했고, 내년에는 5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장애인 동료지원가가 비슷한 처지인 중증장애인들의 자립과 취업을 도우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사업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료지원가가 ‘실적’을 채워야 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수당이 삭감될 수도 있는 사업구조에 사업 초기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동료지원가는 매달 지역 중증장애인 4명을 모집해 한 명당 다섯 번(한 달 총 20회·최소 60시간) 상담하고 상담일지를 써야 월 80만원의 수당(한 명당 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4대 보험료와 퇴직적립금 등을 빼고 설씨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최대 65만9650원이다. 이마저도 애초 계획과 달리 중증장애인 참여자가 적거나 상담 횟수가 부족하면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고용노동부와 지자체가 사업비를 수행기관에 선지급하되 연말에 정산한 뒤 동료지원가 활동 실적이 애초 계획에 못 미칠 경우 돈을 회수하도록 사업 시행 지침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비를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지만, 동시에 수행기관과 동료지원가를 옥죄는 지침이기도 하다. 중증장애인인 동료지원가가 매달 65만9650원을 받기 위해 무리할 수밖에 없고, 연말이 다가올수록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다.

박대희 소장은 “월급제가 아니라 수당을 받는 방식이다보니 동료지원가들이 과도한 압박을 받는다. 자신이 발굴한 중증장애인들이 중간에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실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 그들을 꾸준히 챙기는 것도 부담이다”라고 설명했다.

“오늘도 가서 싸우며 발버등칩니다”

휠체어를 타지는 않지만 다리와 팔이 부자연스러운 설씨는 혼자 지역을 돌아다니며 중증장애인들을 만나고, 자조모임 등을 진행했다고 한다. 박 소장은 “요한이 성실하게 일했지만 최근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설씨는 목숨을 끊기 전까지 중증장애인 40여 명과 관련된 상담일지 등 수많은 서류 작업에 매달렸다.

설씨의 유가족은 자립생활센터에 “다시는 이런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동청에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2월11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설요한 동료지원가 장례식’을 열고 동료지원가 급여체계 월급제 전환,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제도 개선을 위한 예산 확대 등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동료지원가 1인당 연간 담당 인원을 2019년 48명에서 2020년 20명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월급제 전환에 대해선 예산 확보 어려움을 이유로 들며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장애인 복지·노동 정책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해 비장애인과 어우러져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 정책의 큰 방향이다. 그러나 설씨의 비극에서 드러나듯 ‘실적’과 ‘속도·효율’이라는 잣대로 장애인 노동을 계속 재단한다면 ‘장애인 지역사회 정착’이라는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느려도 난 할 수 있는데’(제1280호) 기사에 나온 정하송(29·뇌병변장애)씨는 여전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엔 답답함이 묻어났다. “취업… 못했어요. 갈 데가 별로 없어요.” 그가 시를 써서 올려놓는 블로그에 다시 들어가봤다. 가장 최근(10월)에 올린 시의 제목은 ‘발버등’(발버둥)이었다. “아무리 외쳐도/ 아무리 소리쳐도/ 그들은 외면합니다/ 내가 살 수 있는 세상/ 아닌 우리 모두에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오늘도 가서 싸우며/ 발버등칩니다/ 우리의 발버등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면/ 끝까지 외칠 것입니다…”

D공고에서 학생들이 용접 실습 중이다. 10년 뒤 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갈까. 류우종 기자

D공고에서 학생들이 용접 실습 중이다. 10년 뒤 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갈까. 류우종 기자

담임한테 연락 한번 주세요
제1279호 표지이야기 ‘특성화고 D공고 8년 추적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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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별일 없어요.”

석 달 만의 통화였다. 12월18일 전화기 너머에서 봉주(가명)는 숨을 몰아쉬었다. 난방 펌프가 문제였다. 안전설비업 특성상 평소 한가하다가도 고장 등 상황이 생기면 숨 돌릴 틈이 없다. 특히 겨울철 난방 고장은 분초를 다툰다. 입주민들이 설비 노동자의 고단함을 봐줄 리 없다. 석 달 전에도 그는 24시간 맞교대의 피로에 절어 있었다. 주 중반인데 이번주 일한 시간만 벌써 30시간이 넘었고, 한 주 동안 70시간을 넘길 기세다. 52시간은 남의 일이다. 별일 없이 사는 건 봉주만이 아니다. 제1279호 ‘우리들의 2010년대-특성화고 D공고 2011년 졸업생 20명 8년 추적보도’로 만난 20명 가운데 직종을 바꾸는 등 삶의 행로가 달라진 사람은 없다. 석 달 전 연락이 닿지 않은 12명은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무 명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고 나니 나머지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담임교사 ㄱ씨는 얼굴 하나하나가 또렷해서 더 아쉽다. 자동차과 32명을 3년 동안 가르쳤으니. 특히 “쌤, 이상한 일 하는 건 아니에요”라며 전화를 끊은 한 녀석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드러나지 않은 이들을 “그늘”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늘을 벗어나 찾아올 날을 기다린다. 그러다 불쑥 나타나면 다행인데, 드문 일이다.

몇몇 기준만 보면 졸업 뒤 8년의 성적표가 나쁘지만은 않다. <한겨레21> 취재에 응한 20명 중 정규직이 11명이다. 한 명을 빼고 모두 취업 중이다. 청년층(15~29살) 확장실업률(실업자와 취업준비생 같은 잠재적 구직자를 더한 수치, 2018년 기준)이 22.8%에 이르는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취업률이다.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라

숫자가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만은 아니다. 이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절반에 가깝다. 앞으로가 더 어렵다. ㄱ교사는 “8년 전만 해도 미달 걱정은 없었는데, 요즘 특성화고의 미달률이 심상치 않다”며 “이대로라면 15%(전체 학생 중 특성화고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대가 무너질 것 같다”고 했다. 수도권 특성화고만 봐도 방송, 게임, 요리 등 몇몇 부문만 빼면 대부분 간신히 정원을 맞추거나 미달된 곳이 많다.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 비율이 40% 넘는 북유럽이나 독일, 대만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다.

ㄱ교사는 “이번 (<한겨레21>) 보도에서도 드러났지만 지금 공부가 10년 뒤 내 모습으로 그려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직업교육을 받으려는 학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는 개인의 기회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라고 했다. ㄱ교사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강조하는 기계, 자동차 등 제조업 전공은 없어질 판”이라며 “정부가 직업교육을 선택하도록 제도를 만들어놨으니 이들의 경력을 관리하고 전망을 내는 과정에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ㄱ교사는 언론도 야속하다. 그가 보기에 ‘공무원 시험 합격 ○○명’을 들어 특성화고가 대박이라도 난 듯 떠든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졸업 뒤 학생들이 각자도생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걸 사회가 점점 더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쩌죠.”

지난 11월 부산의 한 채식 빵집에서 채식하는 학생들이 ‘채식’ 글자 아래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고 있다. 장수경 기자

지난 11월 부산의 한 채식 빵집에서 채식하는 학생들이 ‘채식’ 글자 아래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고 있다. 장수경 기자

온전한 식사권은 실현될까
제1290호 표지이야기 ‘채식급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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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채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냐며 레시피를 물어보고, 남는 반찬을 싸가기도 하더라고요.”

지난 12월14일 울산광역시교육청에서 주최한 교직원 연수에서 색다른 점심 식사가 나왔다. 고기와 생선 대신 현미밥, 콩불고기, 미역국, 톳두부무침, 오징어무침 맛이 나는 버섯초무침이 식당 한쪽에 놓였다.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갓김치도 있었다. ‘기후위기 대안교육을 생각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채식 식단이었다. 식사 준비는 채식을 알리는 단체인 채식평화연대가 맡았다. 강지현 채식평화연대 간사는 “자유학기제를 하는 울산의 한 중학교에서 채식평화연대에 채식 수업을 부탁해 2020년엔 수업도 하기로 했다. 사회가 조금씩 달라져 초등학생인 아들이 군대에 가기 전엔 채식선택권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식평화연대는 현재 울산교육청과 채식급식을 도입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제1290호 ‘채식급식 해주세요’는 학교 급식을 먹는 채식 학생들의 식사권을 다뤘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채식 학생들은 꽤 많이 배고팠고, ‘까탈스러운 아이’라는 시선에 꽤 많이 노출됐다. 인터뷰에 응했던 김가희(17)는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 기사에 악플이 4천 개 넘게 달렸다. ‘배가 불렀다’는 글도 있었고, 짧은 커트인 내 머리를 보곤 한 페미니스트 혐오 유튜버는 내 사진을 끌어다 영상에 넣기도 했더라.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비채식인 학생처럼, 학교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해달라는 외침은 ‘소수’라는 이유로 묵살되고, 의지를 폄하당할 뿐 아니라 공격까지 받는다.

2012년 인권위 채식 ‘양심의 자유’로 판단했지만

제1290호에선 학교 급식만 다뤘지만, ‘채식급식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건 비단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채식선택권은 채식인들에게 생존권·행복추구권·평등권 문제이지만 군대, 병원, 교도소 같은 공공급식에서도 육류를 먹지 않는 이들은 소외되고 배제된다. 2020년 군입대를 앞두고 정태현씨는 ‘군대 내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며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군대에선 생존을 위해 억지로 고기를 먹어야 하고, 이 때문에 입대한 채식주의자들이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생존권과 건강권을 위해 군대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받기 위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권위가 국방부에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하더라도 국방부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인권위의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인권위는 채식 요구를 헌법상 양심의 자유라고 판단한 바 있지만 이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복역했던 비건(완전 채식인) 강아무개씨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수용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달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은 채식주의에 관한 개인의 신념이 확고한 수용자에 한해 합리적 식단의 배려 등 적절한 처우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녹색당은 채식선택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채식선택권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제기할 계획이다. 김보라 녹색당 조직팀장은 “뜻이 맞는 채식인들과 함께 내년 초 모든 공공급식에서 채식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을 담은 헌법소원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식인들은 머잖은 미래에 공공급식에서 온전한 식사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신선 프로젝트’ 캠페이너인 신선씨가 인터뷰어인 자신과 인터뷰이들이 표지 모델로 나온 <한겨레21> 제1286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신선 프로젝트’ 캠페이너인 신선씨가 인터뷰어인 자신과 인터뷰이들이 표지 모델로 나온 <한겨레21> 제1286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그의 슬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
제1286호 표지이야기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바로가기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제1286호 표지이야기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가 보도된 뒤 많은 이가 ‘그’의 슬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하나로 진행된 ‘신선 프로젝트’의 당사자 캠페이너 신선(26)씨와 아동양육시설 보호종료아동의 이야기다. 신씨가 자신들의 작은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자, 사회복지에서도 소수자 문제로 여겨졌던 ‘열여덟 살 어른들’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이어지고 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4개 프로젝트

신씨는 12월17일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쏟아지는 언론 섭외 요청을 다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진 근황을 전했다. 지상파 방송 3사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했고, 직접 응하지 못한 섭외 요청은 다른 보호종료아동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저변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전에는 언론에서 우리 문제를 다루지 않았는데, 지금은 방송 3사뿐 아니라 많은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다”며 “보호종료아동 주거지원통합서비스 등 정부 지원 사업도 전에 없이 활발해져 요즘 복지 분야에서 보호종료아동이 ‘화두’인 걸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과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신씨에게 “보호종료아동을 돕고 싶다”고 직접 문의하는 등 한국 사회에서 보호종료아동의 존재감이 생기는 현상을 체감하고 있다.

신씨는 총 12명의 보호종료아동을 인터뷰할 계획이었다. <한겨레21>에는 9명의 인터뷰가 실렸고, 그 뒤로 1명을 더 인터뷰했다. 내년 초 인터뷰를 진행할 나머지 인터뷰이 2명 중 1명은 신선 자신이 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와 신씨의 에세이를 엮은 책도 나온다. 신씨는 “아직 정식 출판 계약은 하지 않았는데 초판 3천 부가 예정돼 있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보호종료아동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몇몇 사회복지 관련 단체나 회사에서 신씨와 함께 일해보고 싶다며 취업준비생인 신씨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했다. 신씨는 “올해 아동양육시설 보호아동과 보호종료아동 문제를 수면 위로 꺼내올렸다면, 내년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해 실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은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보호종료 당사자들이 직접 캠페이너로 나선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취지였다. 신선 프로젝트 외에, 김군자할머니기금 장학생 김준형씨가 ‘김군자 블렌딩’ 원두를 제작한 ‘김준형 프로젝트’, 연극배우 박도령씨가 ‘열여덟 어른’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제작한 ‘박도령 프로젝트’, 디자이너 전안수씨가 (보육)원을 모티프로 한 배지와 에코백을 디자인한 ‘전안수 프로젝트’가 있다. 네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수익금 전액은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쓰인다.

이 가운데 연극 <열여덟 어른>이 12월28일과 29일 이틀간 서울 신촌 얘기아트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만 18살이 되어 보육원 퇴소를 앞둔 어느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성진의 기일, 그와 함께 보육원에서 자란 윤호·민철이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죽은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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