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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일요일 학원 가는 걸 말려요~

학원 일요휴무제 운동가인 아버지 김진우와 딸 김평화의 대화
등록 2019-10-01 03:03 수정 2020-05-03 04:29
휴일 오후 서울 대치동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중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들이 공부하느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휴일 오후 서울 대치동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중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들이 공부하느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국에서 15살 미만 어린이가 ‘노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보호자와 사업주는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을 테지만, 원래부터 ‘아동 노동 금지’가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1841년 프랑스에서 8살 미만 아동의 노동을 금지하는 입법을 하기 전까지는 어린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다. 어린이의 건강보다 돈 몇 푼이 더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어린 식모·여공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아동 노동’은 상식과 법률로 용인되지 않는다.
21세기에 접어들고도 강산이 두 번 바뀐 현재, 지구촌에서 어린이·청소년의 건강보다 성적 몇 점을 더 중시하는 나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오죽하면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의 극심한 경쟁 교육, 사교육에 의한 학생들의 권리침해를 지적하면서 우리나라 어린이의 여가 문화와 오락 활동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라고 권고했을까.
같은 맥락에서 교육계에 회자하는 김용 전 세계은행(WB) 총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일화가 있다. 김 전 총재 “한국 학생들은 8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합니다.” 라가르드 총재 (놀라며) “그렇게 조금 공부하고도 어떻게 성적이 높지요?” 김 전 총재 “11시가 오전이 아니라 밤 11시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라가르드 총재는 더욱 놀랐다고 한다. 만일 한국 학생들이 일요일마저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기절했을 노릇이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를 희생시키는 경쟁적 교육정책에도 ‘대각성’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우리 아이들이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하에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학원 일요휴무제’였다. 그때 캠페인에 동참한 어른들은 지금 세대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자녀들과 이런 대화를 하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옛날에는 일요일에도 학원을 다녔단다.” “정말요? 상상이 안 돼요.” “그래, 심야에도 일요일에도 학원을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지.”(‘쉼이 있는 교육 범국민 캠페인’ 출범식 성명서 중)
불과 5년6개월 전 세월호 때의 그 절절한 각성과 미래에 대한 장밋빛 상상이 무색하게도 학원 일요휴무제를 비롯한 교육정책은 어느 하나 나아진 게 없다. 입시 경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정책적 개입도 소용없다는 뿌리 깊은 회의론, 사교육 업계의 거센 반발, 이를 의식한 교육 당국과 국회의 눈치 보기 속에서 많은 아이가 변함없이 월화수목금금금 ‘학원 쳇바퀴’를 돌고 있다.
지난 9월19일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감이 ‘학원 일요휴무제’ 도입을 위해 ‘숙의민주주의 공론화’를 본격 시작한다고 공식화하면서 지지부진하던 논의에 어렵사리 다시 불을 댕겼다. 서울시교육청은 9월20일부터 시작한 온라인·전화 사전 여론조사와 함께 ‘열린 토론회’, 시민참여단 200여 명이 진행하는 토론을 통해 11월까지 ‘학원 일요휴무제 공론화’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학원 일요휴무제를 가능케 할 서울시교육청의 관련 조례 제정도, 국회의 학원법(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개정도 순탄할 리는 없다. 그러나 주 5일 근무제가 ‘노동권 침해’가 아니라 ‘노동자의 쉴 권리 보호’로 정착한 전례를 기억하며, 학원 일요휴무제 역시 ‘학습권 침해’가 아닌 ‘학생의 쉴 권리 보호’로 자리잡길 기대해본다.
*, 김진우, 성공회대 NGO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9 참조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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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운동과 삶, 특히 운동가로서 말과 부모로서 행동이 달라 지지자의 실망을 넘어 사회적 논란이 초래되는 시대다. 교육운동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특권 학교 폐지를 주장해온 인사의 자녀가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에 다니고, 선행학습 부작용을 설파해온 인사의 자녀가 선행 학원에 다닌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오르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때마다 논란의 당사자들은 겸연쩍게 ‘자녀의 학습 선택권’을 언급하며 ‘이상과 다른 현실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김진우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대표(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는 2014년부터 ‘학원 일요휴무제’ 캠페인을 시작하고 이끌어온 상징적 인물이다. 김 대표는 학생들이 ‘월화수목금금금’ 학원에 다니는 작금의 현실을 ‘모두가 극장에서 일어서서 영화를 보는 상황’에 빗댄다. “만약 극장에서 앞사람이 잘 안 보인다고 일어서면 뒷사람도 따라서 일어서야 한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모두가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앉아야 한다.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는 학원도 일요일에 쉬었는데, 일부 학원이 일요일에도 영업하면서 전체적으로 퍼져왔다. 무제한의 경쟁이 과열 경쟁을 불러오고 모두가 피곤한 상황이 되었다. 학원 일요휴무제로 무한경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김 대표는 대학교 2학년 딸과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이기도 하다. ‘학원 일요휴무제 운동가 김진우’의 말과 ‘아버지 김진우’의 삶은 일관성이 있는지, 이번에는 왠지 꼭 확인해야 할 것만 같았다. “딸, 아들은 휴일에 학원 안 보내셨나요?”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혹은 웃으며 물었을 법한 질문을 정색하고 던져봤다. 김진우(50) 대표와 그의 대학생 딸 김평화(20)씨는 기자의 이 돌직구 질문에 답하려고 지난 8월26일 저녁, 서울 관악구 신림동 좋은교사운동 회의실 탁자 앞에 마주 앉았다.

일요일 오라고 전화한 학원

김진우(이하 김) 저희 딸·아들은 일요일에 학원을 전혀 안 보냈지요. 아이들은 불안하니까 휴일에도 공부하려 하고 저는 말리는 입장이었어요. 혹자는 학원 일요휴무제를 ‘손해(학업 손실)를 감수하면서 쉬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저는 ‘일요일에 쉰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에요.

김평화(이하 딸) 고2~고3 때 일요일에 교회 다녀온 뒤 남는 시간에 공부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못하게 하셨어요. 고2~고3 때는 일요일이라고 공부를 안 할 이유가 없고, 공부 안 할 때는 휴대전화 들여다보고 텔레비전을 보니까 ‘쉰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들었어요. 그러느니 차라리 공부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굳이’ 안 된다고…. 결국 일요일엔 학원에 못 갔고 공부 대신 책을 읽었어요. 시험이 있을 때 정도만 일요일에도 공부할 수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딸이 당시에는 격렬하게 저항했던 것 같아요. 딸이 “난 공부하는 것도 쉬는 거다, 왜 아빠 마음대로 쉬라고 하느냐”고 해서 많이 토론했던 거로 기억해요.

아빠랑 자주 싸우고 자주 화해했어요. 그래도 사이는 좋았어요. (웃음) 제가 중학교를 홈스쿨링과 검정고시로 마쳐서 수학 기본기가 좀 부족했거든요. 부모님도 평일이나 토요일에 수학 학원에 다니는 것까지는 찬성하셨고, 부모님과 함께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어요. 근데 아빠가 일요일은 안 된다고 하셨어요.

학원에서 일요일에도 공부시킨다고 하길래 분명히 “우리 애는 안 된다”고 해놨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딸이 일요일에도 학원을 가더라고요. 학원에서 딸한테 전화해 오라고 한 거예요. 딸한테 “일요일에 쉬어야지 공부하면 되겠냐”고 했고, 학원에도 단호하게 얘기해서 안 보냈어요. 일요일에 학원에 안 가는 대신 혼자 공부하는 문제로 가족회의를 몇 번 해서 밀고 당기고 했어요. 결국 시험이 있는 주에만 일요일에 공부하는 거로 ‘타협’했어요.

아빠 나름의 논리가 있고 말씀을 잘하시니까… 저와 동생은 주로 설득되는 편이에요. (웃음)

김 대표가 이토록 고집스럽게 자신의 자녀와 한국의 모든 아이에게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쉴 권리를 ‘강제’하려는 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이유’ 때문이다. 성인들의 과로사 기준보다 훨씬 많은 학생의 ‘학습 과로’와 ‘과당경쟁’ 말이다. 누구나 아는 한국 학생들의 심각한 과잉학습 실태에 견줘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습 실태를 조사한 신뢰할 만한 최근 데이터는 거의 없다. 다만 2007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청소년패널조사를 보면 한국의 중학생은 주당 평균 57.4시간, 일반고 학생은 70.1시간을 공부한다. 특목고 학생의 주당 학습 시간은 무려 89.8시간에 이른다. 성인 과로사 기준 시간인 주당 60시간(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초과)과 비교해보면 학습 과로가 단지 수사가 아님을 알 수 있고, 2007년보다 2019년 현재 학생들의 학습 시간이 줄었다고 추정할 만한 유의미한 사회적 변화는 없었다.

2017년 11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의 학원휴일(일요)휴무제 국민청원운동 퍼포먼스가 열렸다.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제공

2017년 11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의 학원휴일(일요)휴무제 국민청원운동 퍼포먼스가 열렸다.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제공

“과로와 우울증 연관관계 입증”

어른들은 주 5일 근무제 정착으로 탈(脫)과로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학생들은 주 5일 수업으로 오히려 평일 수업 시간과 주말 학원 시간이 동시에 늘어나는 초(超)과로 사회를 살고 있다. 종종 신문 사회면에 ‘성적 비관 자살’ 기사가 나오지만, 김 대표는 “과로와 우울증·우울감은 명백한 인과관계가 이미 입증됐다”며 “우리가 성적 비관 자살이라고 하는 사건이 ‘학습 과로로 인한 재해성 사망’이 아닌가 조사해봐야 한다”고 여긴다. 김 대표는 “무한경쟁의 극단에 내몰려 학습과 쉼의 균형이 무너진 한국 학생들에게 최소한 심야 시간과 일요일 휴식을 보장할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에 옮기고 있을 뿐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원 일요휴무제 공론화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9월20일~10월15일 2만3500명을 설문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5년 전 수치이기는 하나, 2014년 10월 서울교육청이 관내 25개 자치구에서 중·고교 각 1곳씩 총 50개교 150학급 4213명을 조사한 결과에서 현재 상황을 대략 가늠해볼 수는 있다. 전체 중학생 중 일요일에 학원에 ‘매주 다닌다’고 응답한 비율은 8%, ‘필요시 다닌다’고 응답한 비율은 25%였다. 일반고 학생은 ‘매주’ 20%·‘필요시’ 16%였고, 특목고·자사고 학생은 ‘매주’ 37%·‘필요시’ 14%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는 개인 과외 교습은 포함되지 않아, 실제 일요일 사교육 참여율은 이 수치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요일에 학원 수강을 하는 중학생 중 20.3%, 일반고 학생 중 19.9%, 특목고·자사고 학생 중 32.8%가 일요일에 6시간 이상 학원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다른 친구들이 일요일에도 학원 가고 공부할 때 ‘본의 아니게’ 쉬셨는데… 입시 결과는 어땠나요? 만족하시나요?
아빠가 일요일엔 쉬라고 했지만 쉬었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집에서 종일 뒹굴뒹굴해야 쉬는 건데, 아침 일찍 교회 갔다가 집에 오면 오후 6시 정도 됐거든요.

저는 아이가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쉰 게 아니군요. (웃음) 저희가 평신도 가정 교회를 다녀요. 일요일에 어른들이 ‘나눔’을 할 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아요. 딸이 참고서 같은 거 챙겨가서 공부하려고 하면 제가 “참고서는 집에 두고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라”고 했어요. 그러면 딸은 거기 오는 유치원, 초등학생 동생들이랑 잘 놀아줬어요. 아이들 봐주는 것도 힘들었겠네요….

그건 아니에요. 아이들이랑 놀면서 ‘내가 유아교육과랑 잘 맞겠구나’ 싶었어요.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내내 목표 대학은 없었고 전공만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었어요. 지금은 서울 소재 한 대학 유아교육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아버지가 일요일에 공부 못하게 한 것에는 불만이 없어요. 우리 고등학교가 공부를 안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주변 친구 중에 제가 스스로를 비교해서 불안해할 만큼 공부 많이 하는 친구도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내내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고,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요. 1학년 때는 시험 기간에 수업이 일찍 끝나면 다음날 시험인데도 친구들이랑 집에 와서 신나게 놀고 그랬어요.

2009년 7월31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이 금지되고 한 달째를 맞은 이날, 교습 시간 종료와 함께 거리로 쏟아져나온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의 차량으로 교통 체증이 심하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2009년 7월31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교습이 금지되고 한 달째를 맞은 이날, 교습 시간 종료와 함께 거리로 쏟아져나온 자녀를 데리러 온 학부모의 차량으로 교통 체증이 심하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최상위권 빼면 수학은 다 비슷

딸이 다닌 고등학교 바로 옆에 집이 있어, 맨날 집에 친구들 데려와서 떡볶이 먹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딸이 스포츠클럽, 동아리 활동은 정말 열심히 했어요. 3년 내내 아침 7시에 등교해서 운동하고, 유기견 봉사 동아리 활동도 꾸준히 하고. 저 학교 다닐 때보다 훨씬 다양하게 동아리 활동을 하고 프로젝트형 수업도 많이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운동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구기대회를 준비하면서 배드민턴·핸드볼·농구를 엄청 많이 했어요. 친구들 모아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아침에 와서 운동하고 일지를 쓰면 생기부(생활기록부)에 그대로 올려주셨어요. 유아교육에 대해 알아보고 토론하는 자율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어요. 수시는 자소서(자기소개서)가 중요해서, 이런 활동이 입시에 큰 도움이 됐어요. 성적도 아주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올라서 자소서 쓸 때 유리했고요.

사실 딸이 딱 중학교 검정고시 볼 정도로만 수학을 공부했어요. ‘고등학교 가면 따라가겠지…’ 했는데, 막상 가서 수학을 워낙 못 따라가긴 했어요. 근데 저희 딸처럼 중학교 3년 동안 (홈스쿨링 한다고) 수학 안 한 애나, 학교·학원 다니면서 수학 한 애나 최상위권을 빼고는 수학을 못하는 건 다들 비슷하더라고요. (웃음)

최상위권 애들은 다 중학교 때 선행하고 온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딸은 수학을 안 해도 될걸 그랬어요. 딸이 다니는 대학은 수시 때 수학 점수가 필요 없었거든요. 수학을 그렇게 많이 공부했는데 한 번도 안 써먹는 거 보면 너무 억울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거 할걸 그랬어요. 아닌가? 그래도 한 번은 경험해봐야 하나요? 아무튼 저 대학 갈 때는 필수과목이라 싫어도 무조건 수학은 해야 했는데, 요즘 입시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저희 대학도 제도가 바뀌어서 이제 수학 점수 보거든요? (웃음)

휴식은 학생들의 건강·관계·정서·창의성 발달을 위해 필수적이다. 김 대표는 앤드루 스마트의 (미디어윌, 2014)에 나온 내용을 인용해 “최근 뇌과학에서는 디폴트모드네트워크(DMN)라고 하여,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을 때 활성화하는 뇌의 부위가 자기 이해와 성찰, 창의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밝혀냈다”고 설명한다. 김 대표는 종종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이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출범식 때 보내준 동영상 지지사를 인용한다. “공부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듣고 외우고 필기할 때만 뭔가 남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정리해서 머릿속에서 안정된 구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휴식 시간에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를 촬영해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에 굉장히 뇌가 활성화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디폴트모드네트워크라고 합니다. 휴식은 공부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불안해서 자꾸 더 해라 더 해라 하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공부, 괴로운 공부가 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쉼이 있는 교육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이 인생은 되게 길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스러운 자녀를 일요일마저 학원으로 등 떠밀며 가혹한 ‘학습노동’을 강요하는 학부모들의 심리는 대체로 비슷하다. 경쟁 상대인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 가기 때문에 우리 아이도 학원에 보내는 불안 심리다. 김 대표는 이런 심리를 “나만 학원을 보내지 않는 것은 불안하지만 만약 모두가 함께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충분히 찬성할 수 있다는 것, 개인 간의 무한경쟁으로 모두가 피곤해지면서도 실익이 없는 ‘제로섬게임’(어느 쪽도 얻는 게 없는)의 상황, 즉 개인 차원의 합리성이 사회 전체의 비합리성을 초래하는 딜레마”라고 정리한다. 김 대표 역시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라는 정체성과 이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텐데, 그는 이런 ‘딜레마’를 어렵지 않게 극복했다.

자식이 공부 잘하면 좋죠. 하지만 쉴 땐 쉬면서, 지킬 건 지키면서 공부해야지 지나치게 무리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검증은 안 됐지만 휴식 시간까지 다 떼어서 공부에 투입한다고 투입 대비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사람들이 불안 때문에 쫓아가는 거지 효과 때문에 합리적으로 (과도한 학습 시간을) 투입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거시적으로 보면 아이 인생이 되게 길잖아요. 조금 더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해서 인생이 더 멋지고 그것 때문에 더 잘 사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점수 몇 점… 인생을 길게 봤을 때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돈은 많은데 가성비가 낮다, 인생 대세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빠가 공부를 강압적으로 시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제가 공부방 다니고 싶다고 하면 어떤 데냐고 묻고 확인하시고 보내주시는 것 정도?

사실 아이한테 아주 깊은 속얘기까진 하지 않았지만, 저희는 기독교인이라 성경 말씀대로 안식일에 쉬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어요. 어릴 때가 아니면 부모가 자녀한테 신앙 교육을 할 수가 없어요. 부모가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현실을 선택하고 현실에 양보하고 말로만 신앙을 교육하는 건 의미가 없죠. 저희 어머니도 제가 학생일 때 일요일에는 공부를 못하게 하셨어요. 그게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머니의 메시지로 들려서 마음이 편안했어요. 일요일에 스위치를 완전히 끄고 쉬니까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항상 생기를 되찾았고요. 일요일에 공부하는 친구들과 비교해도 성적이 뒤처지지 않았어요. 그런 개인적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아이들도 이런 맛을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사실 교회도 문제인 게, 미션스쿨(기독교학교)인데 일요일에 학생들을 등교시켜요. 목사님들도 주일에 자녀들 학원에 보내는 교인들, 학원 영업하는 교인들 심기 불편할까봐 교회에서 학원 일요휴무제 말씀을 못하세요. 그러니 ‘교회도 입시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꼭 일요일 하루 전체를 다 쉬어야 하나 싶어요. 그래도 부모님이 강압적으로 학원 못 다니게 한 것은 아니고 설득한 거라 크게 거부감은 없었어요. 저는 아빠가 하시는 일에 큰 관심은 없고, 아빠 나오는 기사도 안 찾아봐요. 그냥 ‘우리 아빠가 학원 일요휴무제에 관심이 많으시구나, 성향이 그러시구나, 아빠 같은 사람도 있구나’ 정도? 아빠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별로 안 해봤고요. 그래도 아빠처럼 교육정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으니까 교육의 미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빠 같은 분들을 응원해요.

교회도 말 못하는 일요휴무제

아버지가 집에서도 언행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나봐요.
딸 아빠가 동생한테 “양치할 때 휴대전화 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어느 순간 아빠도 휴대전화 하고, 텔레비전 보지 말라 하면서 가끔 아빠가 보고 계실 때는 있어요. 이런 ‘사소하게 안 되는 것’ 말고는 대체로 언행일치가…. (웃음)

휴일에 쉬는 문제 말고 또 청소년기에 아버지와 딸의 의견이 달랐던 이슈가 있나요?
중학교 때 딸이 귀를 뚫겠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에 물어보니 요즘은 귀걸이 정도는 허용한다고 해서 귀는 뚫고 (연골) 피어싱은 안 되는 거로 ‘타협’했어요. 딸이 집을 어지럽히는 문제로 저랑 옥신각신하다가, 거실은 어지르면 안 되고 딸 방은 제가 ‘돈 터치’ 하는 거로 ‘타협’했고요.

피어싱은 독립하면 바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아… 그런 생각으로… 아빠를… 참아준 거야?

(웃음)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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