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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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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터는 얼마나 덥나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에 노동자 125명 참여
등록 2019-08-20 11:24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기상청 온도는 35℃라는데, 노동 현장의 온도는 얼마일까?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온열질환자가 4526명 생겼고 이 중 48명이 사망했다. 상당수는 일터에서 쓰러졌다. <한겨레21>은 지난해 8월 ‘누가 폭염으로 숨지는가’(제1224호) 기사를 통해 폭염 사망자의 사회적 부검을 시도했다. 이번 기사는 그 후속 성격이다. 한 차원 근본적인 접근이기도 하다.
올여름 <한겨레21>은 녹색연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과 함께 시민참여형 실험을 했다. 시민들이 7월22일부터 8월9일까지 19일 동안 각자 일터에서 노출된 실제 기온을 측정하는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이다. <한겨레21> 독자, 녹색연합 회원, 각 노동조합 조합원, 일반인 등 125명이 모니터링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기온을 자동 기록해주는 명함 크기의 온도기록계를 착용하고 출퇴근했다.
125명의 자료는 아직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중 일부인 ‘폭염 일지 작성 그룹’의 경험을 다뤘다. 사전에 직종 등을 고려해 선정한 20명은 매일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적었다. 짧은 시간에 기사화하느라 제대로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이 겪는 폭염은 직종, 고용형태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였다. 좀더 엄밀하고 과학적인 분석은 9월 중 KEI에서 진행할 예정이고, <한겨레21>은 이를 보도할 계획이다.
올해 여름은 지난해 여름만큼 온도가 높지 않았다. 비가 자주 내려 달궈진 지면을 식혀줬다. 사건·사고도 드물었다. 그래서 이번 기획 기사에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는 있다. 기후위기로 폭염이 갈수록 심해지는 중에 사회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고민은, 이웃이 나와는 다른 여름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까.
기획 변지민·조윤영·방준호·이재호·박태우 기자
“현장에서 고온 주의 장소와 무더위 쉼터에 설치된 온습도계를 통해 근로자 스스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관리자로서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자부했지만, 역시 자위였을 뿐.”(마상은, 7월22일 일지)

마상은(42)씨는 서울 강서구의 한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다. 이번 ‘2019 폭염 시민모니터링’에 일부러 참여해 폭염 일지를 남겼다. 현장에도 스스로 온습도계를 설치하고 날마다 기록할 정도로 폭염 관리에 적극적이었다. 건설 현장 중 드물게 쉼터에 에어컨을 달 정도로 노동자 건강 관리에도 열의를 보였다.

8월14일 마상은씨가 안전관리자로 있는 건설 현장을 찾았다. 마상은씨가 설치한 온습도계 화면에 42.6℃라고 떠 있다. 류우종 기자

8월14일 마상은씨가 안전관리자로 있는 건설 현장을 찾았다. 마상은씨가 설치한 온습도계 화면에 42.6℃라고 떠 있다. 류우종 기자

건설 현장 기상청 온도보다 늘 높아

하지만 마씨의 폭염 일지 곳곳에선 자괴감이 느껴졌다. 7월22일은 그의 목에 걸린 온도기록계가 41.3℃(오후 2시37분)를 기록한 날이다. 현장 노동자 10여 명은 40℃가 넘는 온도에도 지하 4층 깊이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얼음조끼에 넣은 아이스팩을 2시간마다 교체해야 하지만, 복잡한 구조물을 뚫고 지상까지 올라오는 게 힘들어 포기한 노동자가 많았다.

이날 폭염 일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위험을 인지했음에도 스스로 피할 수 없는 근로자를 위해, 작업효율을 떨어뜨리지 않고 비용을 따로 들이지 않는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8월14일 마씨가 일하는 현장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물음에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안전한 시스템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마씨는 돈을 내는 ‘발주처’에 책임을 묻고 강제성을 줘야 현장이 바뀔 거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옥외 작업 현장에서 35℃ 이상인 날 무더위 시간대(오후 2~5시) 작업을 중지하라고 권고하지만, 시공사는 따르기 어렵다. 폭염에 작업을 멈췄다가 약속한 공사 기간을 못 맞추면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작업 중지를 할 때 임금을 주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반대한다. 결국 돈이다. 마씨는 “발주처의 의지가 없으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건설 현장은 늘 기상청 기온보다 높다. 햇볕에 달궈져 열을 뿜는 소재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마씨의 현장에선 H빔이 대표적인 고온 물질이다. H빔은 알파벳 ‘H’ 모양으로 생긴 쇳덩이다. 건축물의 뼈대로서 무게를 지탱한다. 마씨는 “폭염에 H빔이 달궈져 온도가 78℃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노동자들이 그 위에 올라가 볼트로 조이고 용접도 해야 하는데, 너무 뜨거워 바로 앉지 못하고 마대자루를 깔고 앉는다”고 했다.

[%%IMAGE5%%]일터 기온 34.8℃, 지역 기온 29.4℃

건설 현장에서 형틀 조공(보조 인부)으로 일하는 이은혜(42)씨는 ‘알폼’이 가장 뜨겁다고 했다. 알폼은 ‘알루미늄 거푸집’의 줄임말이다. 예전에는 거푸집을 나무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주로 알루미늄으로 한다. 그 위에 철근을 얹고 콘크리트를 부어 굳힌다. 건물이 올라갈 때 최상층에 설치하는데, 알루미늄은 철보다 3배 이상 열전도율이 높아 쉽게 달궈진다. 그 위에 올라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열이 쉽게 전달된다.

이은혜씨는 7월29일 폭염 일지에 “바닥에서 반사되는 빛이 여름엔 진짜 뜨겁고 눈이 따가울 정도로 부시다”고 적었다. 이씨는 “한여름 알폼은 50℃ 이상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알폼에 콘크리트를 얼마나 부을지 표시하는 일을 한다. 그 표시를 위해 사용하는 먹실이 뜨거워서 끊어질 때가 있다. 알폼 위에 올라가면 안전화 밑창 고무가 녹아서 바닥에 달라붙어 발을 뗄 때마다 ‘짝’ 하고 소리가 난다. 햇빛을 받는 어깨는 쿨타월을 둘러도 따갑고, 안전모 안에 넣은 얼음팩은 한 시간이면 녹는다. 물과 이온음료를 하루에 3ℓ씩 마셔도 오후가 되면 탈진 증상이 생긴다.

전기공사 기술자인 최평호(40)씨도 열흘 중 사나흘은 알폼 위에서 일한다. 알폼에 콘크리트를 부을 때 전기선이 들어갈 배관을 설치하기 위해서다. 7월23일도 그런 날이었다. 오후 1시16분 그가 있는 현장의 온도는 34.8℃였다. 일터가 있는 인천의 기온은 29.4℃. 국지적 온도가 5℃ 이상 높았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사례가 있는 이은혜씨는 “폭염시 작업 중지 기준을 법으로 정할 때도 체감온도 기준으로 해야지, 기상청 기온으로 하면 현장 온도랑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가장 고온에서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알폼을 조립하거나, 알폼 위에 철근을 놓거나 콘크리트를 붓는 일이다. 직사광선을 계속 쬐고 힘을 많이 써야 한다. 마상은·이은혜·최평호·이성원(아래 소개)씨는 “한국인 노동자는 이런 일을 안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중국인 등 외국인 노동자가 맡는다는 이야기다. 그중에는 불법체류자도 많다고 했다. 폭염 최전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정작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고용부 작업 중지 권고 지침 안 지켜져

이번 모니터링 기간에 이성원(55)씨는 큰일을 겪을 뻔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기둥 만드는 일을 한다. 8월3일 서울은 긴 장마가 끝나고 오랜만에 해가 쨍했다. 이성원씨 온도기록계는 오전 10시16분 35.1℃, 11시1분 38℃를 기록했다. 그는 11시25분께 심장에 이상을 느껴 현장에서 혈압과 맥박을 측정했다. 맥박이 무려 분당 140번. 정상 기준인 분당 60~100번보다 두 배쯤 높은 수치였다.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성원씨가 서울시 발주 공사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날 폭염경보가 발령돼 오후 1시에 작업이 중지됐다. 이성원씨도 쉬면서 안정을 찾았다. 하마터면 온도기록계와 폭염 일지가 산업재해 신청의 근거 자료가 될 뻔했다.

국토교통부는 공공 발주 공사일 경우 공사 기간을 산정할 때 폭염 기간을 반영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민간에도 이를 권고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의 지침을 제대로 따른 곳은 서울시밖에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8월14일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올해 폭염경보로 작업을 중지한 날짜가 모두 5~7일 된다. 현장마다 유연성을 둬 다소 차이는 있다. 오후에 작업을 중지해도 임금은 2시간치씩 지급해 노동자들의 호응이 좋았다”고 했다. 또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를 발주할 때 폭염 기간을 반영한다. 그 기간보다 작업 중지 일수가 많으면 나중에 계약 기간을 연장해준다”고 했다.

서울시 발주 공사가 아닌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선 폭염에도 작업 중지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마상은씨는 건설 현장마다 폭염 기간에 하루 정도는 고용노동부 권고를 따라 무더위 시간대 작업을 중지한다고 했다. 바로 근로감독관이 현장을 방문하는 날이다. 근로감독관에게 잘못 보이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뿐이다. 현장은 많고 근로감독관은 턱없이 적다.

대기업이 참여했거나 노조가 강한 건설 현장은 사정이 조금 낫다. 이은혜씨는 “대기업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는 폭염이 닥쳤을 때 평소보다 1시간30분쯤 더 쉴 수 있었다”고 했다.

대형 건설 현장에선 고용노동부의 폭염 안전 대책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일하거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구체적인 폭염 대책은 아직 없다. 류우종 기자

대형 건설 현장에선 고용노동부의 폭염 안전 대책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일하거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구체적인 폭염 대책은 아직 없다. 류우종 기자

특수고용직 비도 폭염도 못 피해
“비가 오면 비를 맞는 것도, 땡볕에 작업하는 것도 택배 기사들이다. 비와 햇볕을 막을 수 있는 가림막 설치를 바라는 것은 2019년에 너무 미래지향적 바람일까?”(박대희, 7월26일 일지)

올여름은 비가 많이 내렸다. 지난해처럼 폭염이 심하지 않아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택배 기사인 박대희(38)씨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 “비옷을 입자니 습한 날씨에 통풍 안 되는 옷으로 더욱 피부가 숨을 쉬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우비 미착용하고 비를 맞으며 배송함.”(7월24일 폭염 일지)

음식 배달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최원준(29)씨는 7월27일 폭염 일지에 이렇게 썼다. “헬멧 착용이 계속되면서 땀 때문에 헬멧 내피가 젖음. 내피가 닿는 피부 쪽이 붉게 일어나며 가려워짐. 여름용 이륜차 헬멧 개발하는 사람은 노벨평화상 추천해주고 싶음.”

최씨의 조끼에 매달린 온도기록계는 7월27일 오전 11시에 30℃를 돌파했다. 오후 1시28분 35.2℃로 최고점을 찍었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30℃ 밑으로 떨어졌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최씨의 일터는 기상청 기온보다 늘 1℃에서 3℃쯤 높은 곳에 있다.

우리는 폭염 일지 작성 그룹을 선정할 때 고용 형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전체 모니터링 참가자 중 폭염에 주로 노출될 만한 직종을 중심으로 골랐다. 한 명씩 폭염 일지를 받고 인터뷰를 하다보니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특수고용·간접고용이 많았다. 앞서 소개한 박대희·최원준씨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하청 직원 ‘징하게’ 덥지만 대책 마련 ‘차일피일’

가스검침원 김효영(49)씨는 도시가스 회사의 하청업체 직원이다. 비가 올 때도 외부로 다녀야 하지만 우비나 장화는 자비로 사야 한다. “아파트 검침도 맨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면서 하는데, 남들은 밖은 더운데 아파트가 낫지 않냐고 하지만 통풍이 되지 않는 곳에서 검침하다보면 어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속 걷다보면 다음날 일어나는 게 힘들다.”(7월23일 일지)

인터넷 설치 기사인 함지훈(40)씨는 통신사 하청업체 직원이다. 폭염경보가 발령돼도 고객 방문 일정을 취소하거나 바꿀 권한이 없다. 서울의 한 대학교 주차유도원인 김아무개(64)씨도 용역업체 직원이다. 낮 12시30분부터 햇볕과 지열이 더해져 “징하게” 더워지는데, 이때 속옷까지 다 젖는 경우가 많다. 3년 전부터 에어컨을 달아달라 요구했는데 성사가 안 됐다. 함씨와 김씨의 온도기록계에 찍힌 올여름 최고온도는 각각 37.2℃, 41.5℃다. 같은 기간 서울의 최고온도는 36.7℃였다.

고용노동부는 열사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가 작업장에 물을 준비하고 그늘을 마련하며, 적당히 쉬게 하라고 강조한다. 대형 건설 현장에서는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지침이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일하거나 규모가 작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구체적인 폭염 대책은 아직 없다.

농민 폭염에 가장 취약

폭염 일지 그룹에서 가장 고온에서 일하는 직종은 단연 농민이었다. 박기현(39)씨와 유정현(34)씨의 모니터링 기간 19일 중 최고기온이 각각 54.6℃, 48.9℃였고 35℃ 이상을 기록한 날이 각각 14일, 8일에 이른다. 그런데 농민은 가장 노동조건이 취약한 직종이기도 하다. 농업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시간, 휴게와 휴일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에서도 상시 노동자 5명이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은 예외 대상이라 열사병으로 다치거나 숨져도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폭염이 낳은 사망자와 온열질환자 증가 비율은 야외 노동자, 고령자, 1인 가구, 만성질환자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현재의 기상특보와 대응 체제는 실제 노출 온도와 직종에 따른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상청 관측 온도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선임연구위원은 “취약한 거주 환경에서 사는 고령의 만성질환자이자 야외 노동자는 폭염으로 인한 건강 위험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며 “폭염 취약계층의 체감온도와 작업환경, 거주환경 등을 고려한 영향 기반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사와 같은 맥락으로, KEI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적 환경에 따라 폭염을 체감하는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는 조사로 12문항이며 약 5분 정도 걸립니다. 폭염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기반 조사입니다. 설문에 응해주시는 분들께 2019년 9월 <한겨레21>을 1개월간 보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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