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낙인과 차별을 동반한다.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김미진(27·가명)씨는 혈액암을 앓고 난 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암 완치 판정을 받고 직장에 복직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아픈 ‘암환자’로 보았다. “사람들은 암을 완치했다 해도 완전히 다 나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 바라봐요. 그냥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회사를 그만둔 뒤 어학연수를 떠난 미진씨는 재취업을 걱정한다. 다음 직장에서는 자신이 암 투병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편견 없이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뭔가를 잘못해 병에 걸렸을 것”이란 편견3년 전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은 박서주(35·가명)씨는 회사에 다닐 때 검사 등으로 휴가를 쓸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다. “조퇴, 월차, 연차를 연달아 쓰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봐요. 상사가 매번 이유를 물어요. 병원에 간다고 하면 ‘자꾸 빠지면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고 해요. 쉬어서 업무가 밀린다고 눈치를 주고요.”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인 듯 미안한 상황을 만든단다. 현재 서주씨는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
암 경험자들은 치료받고 완치된 뒤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복귀 과정이 쉽지 않다. 걸림돌도 많다. 그중 하나가 그들을 향한 일반인들의 사회적 편견이다. 2017년 국립암센터가 일반 시민 1500명에게 한 ‘암 생존자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암 생존자의 직업 능력은 정상인보다 낮다’(57.3%), ‘가족 중 암 생존자 있는 사람과 결혼을 피하고 싶다’(63.2%) 등 편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편견과 함께 그들의 발목을 잡는 건 또 있다. 갑상샘암 경험자인 조한진희씨는 질병에 걸린 이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질병의 개인화’라고 지적한다. 책 에서 “암 경험자들은 질병의 고통 이외에도 자책감이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며 “그들은 자신의 성격, 음식, 생활습관 등이 잘못되어 질병에 걸렸고 이로 인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고생스럽게 한다는 자책감과 남몰래 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어렵게 다시 일하는 암 경험자들은 일터에서 느끼는 편견과 차별을 호소한다. 대한암협회가 2019년 4~5월 두 달 동안 암 경험자 855명에게 한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를 보면 암 경험자 4명 중 1명(26.4%)은 “암 투병을 했던 사실을 일터에 알리지 않을 예정이거나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들이 알리지 않은 이유는 “편견 우려”(63.7%)라고 답했다. 암 경험자 69.5%는 “일터 내 암 경험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중요 업무 참여와 능력 발휘 기회의 상실”(60.9%), “단합과 친목 활동 배제”(37.1%), “직간접적 퇴직 유도 또는 해직”(33.6%), “승진시 불이익”(27.2%) 등 차별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 설문조사를 한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조비룡 교수는 “‘일터에서 차별을 극복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암 생존자들은 ‘동료의 응원과 배려’라고 응답했다”라며 “암 생존자들이 일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살피고 편견 없이 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치료와 사회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유연근무제도가 절실하다고 했다. 암 치료 이후에도 추적 검사, 진료 등으로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암 경험자의 사회 복귀를 연구하는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의 조주희 교수는 “아직도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죽는다, 완치돼도 다시 일할 수 없다고 오해한다”며 “암 경험자들 스스로 위축되고, 주변의 권유로 일을 그만두고 치료가 끝난 뒤에는 직업 복귀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에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2월까지 4개월간 암 경험자 735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4%가 “일을 그만뒀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47%가 암 진단을 받자마자 사표를 냈다.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암 진단을 받자마자 사표 내지 말고 회사 내 휴직 제도 등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앞으로 치료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암 수술과 항암치료 이후 체력 저하, 우울증 등을 앓는 사람도 많다.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 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최미옥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암 경험자들이 경제활동, 학업, 가정 내 자신이 맡은 역할 등에 다시 복귀하여 시작할 수 있도록 가사, 육아, 정신건강 등 통합적인 돌봄 케어서비스가 필요해요. 이런 심리사회적 돌봄과 함께 재취업 교육, 일자리 알선,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투병 때 찍은 맘모그라피도 작품으로암 투병 이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육체적, 정신적 회복 속도도 다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안착하는 사람일수록 삶의 질이 높다. 유방암 경험자 김형기(44)씨는 2017년 3월1인 예술기업을 창업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강의했던 그는, 암 투병으로 멈췄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형기씨는 세 아이의 엄마, 아내라는 역할 말고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 “치료 끝나고 집에만 있으니 불안하고 병에 대해 걱정도 컸어요. 자꾸 우울해졌어요. 내가 하던 일을 다시 하고 싶었어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한다는 심정으로 사회로 나왔어요.” 그는 암 투병을 하며 다시 사는 세상을 따뜻하게 그린 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유방암 투병 때 찍은 맘모그라피(유방촬영검사)를 이용한 작품도 있다. “아프고 힘들었던 그 시간을 지나 내 능력을 펼치며 일한다는 건요, 너무 행복하고 기쁜 일이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암 경험자 분들이 저처럼 일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새로운 취미생활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하셨으면 해요.”
조주희 교수는 “암 생존자의 사회 복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직장 복귀”라며 “암 생존자에게 직장 복귀는 경제활동을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 일원으로 암 진단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자존감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암 경험자 직장 복귀 오해와 진실
일은 회복에 도움을 준다
암 경험자가 다시 일해도 될까요? 일하면 암이 재발하지 않나요?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암 경험자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암 경험자의 직장 복귀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 질문도 많다. 무엇이 오해이고 진실일까.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에서 펴낸 ‘암환자 직장 복귀 가이드’ 중 직장 복귀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정리했다.
암 진단 뒤 일하면 암이 재발되기 쉽다.
아니다. 암 진단 뒤 일하면 암이 재발되기 쉽다는 근거는 없다. 유해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일하는 것이 회복을 돕고 일에 몰두할 수 있어 자기 삶에 더 충실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계속 일할 수 있는지, 직장에 복귀해도 되는지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해보고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는 게 중요하다.
일하면 몸이 피곤해져 건강이 안 좋아질 수 있다.
피곤하다고 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암 치료 중이나 치료 뒤에 계속 피곤함을 느끼다보니 일해도 될지, 건강이 나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더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피곤함은 운동치료, 스트레스 관리법 등으로 충분히 감소될 수 있으며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다.
암 치료 뒤 예전처럼 일할 수 없다.
예전처럼 일할 수 있다. 다만 예전과 똑같은 강도와 양으로 일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무리해서 예전과 똑같이 100% 업무를 맡기보다는 적응할 때까지 차근차근 늘려나갈 것을 권한다.
암 치료를 하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
아니다. 무조건 일을 쉬거나 그만둘 필요는 없다. 다만 개인마다 상황이 다양해 치료와 일을 병행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자신의 신체·정신·경제적 상황, 업무 요인, 치료 일정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계속 일해도 되는지, 쉬어야 할지, 쉰다면 얼마나 쉬어야 할지 의료진과 상의하기 바란다.
자료: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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