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알지도 못하면서 막 내뱉는다며 툴툴거렸다. 나 역시 속이 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들은 선배의 안부 인사도 비아냥일 뿐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남자로 사는 게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낯선 사건이라는 걸 실감했다.
아내의 눈물샘을 터트리게 한 건 시청자 게시판의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은 이랬다. 물론 부드럽게 각색했다. ‘선사시대부터 남자가 사냥하고 여자는 아이를 돌봤다. 어디 자랑할 게 없어서 남자가 애 키우는 이야기를 방송하느냐. 담당 피디(PD)는 당장 사과하라. 남자 망신 다 시킨 애 아빠도 사과하라.’
<font size="4"><font color="#008ABD">전업주부아빠에게 날아든 ‘입소 훈련’</font></font>2017년 3월2일, 첫 촬영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큰아이는 이사 오며 학교를 옮겼고, 둘째는 어린이집이 바뀌었다. 셋째도 26개월 만에 재택근무를 끝내고 어린이집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새 출발을 방송사 카메라와 함께했다. 그해 1월에 출간된 가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중 한 곳과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것이었다. 안정된 길을 떠나 전업주부가 된 남편, 안사람에서 바깥양반이 된 아내, 바로 우리 부부가 주인공이었다. 성역할이나 성평등 같은 이슈몰이에 이만한 콘텐츠가 없었다.
방송은 좋았다. 우리 부부에겐 아름다운 감동 실화였다. 하지만 전통적 삶에 익숙한 사람에겐 낯설고 거북했나보다. 그리고 익명이 보장된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의견이 우리 부부에게 여과 없이 전해졌다.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아이 셋 키우는 남자’를 보는 시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또 얼마나 더 굳건해졌을까.
나는 마흔이 안 돼 소령으로 전역했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을 포함하면 17년간 군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해마다 2박3일을 입소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가 아직 6년이나 남아 있었다. 전혀 예상 못한 훈련 소집에 우리 부부는 막막했다.
돌도 안 된 막내를 어디에 맡길까? 큰놈이랑 둘째는 누가 챙기나? 훈련을 담당하는 병무청에 문의해보니 육아휴직자는 증명서를 내면 연기할 수 있지만 전업‘남자’주부는 규정상 연기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기막힐 노릇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나는 휴직 기간에만 잠깐 키우는 게 아니라 전업이라고 전업! 몇 번의 시도 끝에 담당 부서장과 통화했고 규정을 보완해야 할 사안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흘간 출퇴근하는 형태로 훈련을 받았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증명서만 내면 뚝딱뚝딱 잘도 연기하던데. 도대체 아이 키우는 일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걸 중요한 일로 여기기는 하는 것일까? 규정을 개선하겠다는 말은 어디로 갔을까? 여전히 나는 매년 훈련 기간만 되면 사정을 설명하고 훈련을 최대한 연기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이를 핑계 삼아 도전을 미루는 것인가</font></font>전역 후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고 있지만 책을 내고 강의나 수업을 하며 경제적 역할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계가 있었다. 아이 키우며 사업을 제대로 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아내의 스케줄을 고려하면 약속 시간은 언제나 점심이었고 일이 좀 커질 기미가 보이면 슬며시 발을 뺐다.
아이 중 누구라도 감기나 눈병에 걸리면 며칠씩 집을 지켜야 했다. 미세먼지가 심해도 부모 교육이나 소풍 같은 행사가 있어도 반나절 내지 하루를 비워야 했다. 게다가 아이가 셋이다. 학교나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일을 크게 벌여보자 마음먹을 때면 언제나 아이든 사업이든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까지 집에서 아이 볼 거냐고. 사업 안 할 거냐고. 일 안 할 거냐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건가. 아이를 핑계 삼아 도전을 미루는 것인가. 주저앉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언제나 고민의 끝은 하나였다. 내 뜻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것!
주변 사람들에게 ‘주부 아빠’인 내 상황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지만 그래야 하는지도 궁금하다.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고 아빠가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면 남자 망신인가? 전업주부엄마는 당연한데 전업주부아빠는 이상한 걸까? 아이를 돌보기 위해 사업을 확대하지 않는 것이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일까? 이 질문에 모두가 ‘아니요’라고 답할 테지만 실제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은 다르다.
나를 피곤하게 했던 사람들은 내 모습이 생소하고 낯설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익숙지 않아서니까. 하지만 다름이 ‘틀림’과 다르다는 걸 우리는 지겹도록 들어왔다.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목소리 높여왔다.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아이들을 데리고 대낮에 마트나 문화센터를 가면 뒤통수가 뜨겁다. 놀이터에서는 이방인이다. 나조차 나 같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주된 양육은 엄마 몫이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엄마 중 75%가 ‘평일에 3시간 이상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5시간 이상도 34%에 이르렀다. 반면 아빠의 육아는 70%가 2시간 미만이었다. 주말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5시간 이상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64%로 늘었고, 아빠의 31%는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2시간도 안 됐다. 이를 양육 태도가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각 가정의 환경 등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전업주부아빠는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더 이상 방송사 촬영 요청이 오지 않기를</font></font>나는 전업주부라는 길을 선택했다. 오랜 조직생활을 뒤로한 채. 든든한 배경도, 그럴듯한 직함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갖춰졌던 사무실도, 전화만 들면 달려오던 지원팀도 이젠 옛말이다. 대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며 육아와 글쓰기 강의를 한다.
집으로 들어온 지 4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전업주부아빠라는 이름이 어색할 때가 있다. 내가 그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내보이고 싶다. 나조차도 여전히 낯설고 고민이다. 4년도 부족한가보다. 내 자리가 나에게 딱 맞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전업주부아빠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도 더 많은 시간을 삼켜야 나아질 듯하다. 유모차 끄는 아빠,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아빠, 손잡고 같이 등교하는 아빠가 더는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만큼 자연스러워지고 편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천천히 그렇게 변해가면 좋겠다. 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정책 담당자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더 이상 방송사에서 촬영 요청이 오지 않길 바란다. 내 이야기가 평범한 스토리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그래야 전업주부아빠도 문화센터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밥 먹을 동지가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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