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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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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최저임금 탓이라고요? 레알?

보수·경제지 최저임금 망국론 팩트체크 해보니…

중국집에서 겪은 불편부터 한식 뷔페 퇴조까지 최저임금에 덤터기

<조선일보>, 수백 건의 판결 중 10건 조사해서 ‘을 대 을’ 갈등 뻥튀기하기도
등록 2019-01-26 16:55 수정 2020-05-03 04:29

1. 2019년 최저시급은 전년 대비 820원(10.9%) 오른 8350원이다. 다음 중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어난 상황을 모두 골라라.

① 식사의 품격 저하: 중식집에서 4만원대 중반 코스 요리를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큰 접시 하나에 담긴 요리를 손님 개인 접시에 나눠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손님은 입속에 들어가는 요리가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머리와 가슴이 느끼는 ‘식사의 품격’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고 한탄했다.

② 명동 상권 위축: 세계적으로도 비싼 임대료로 유명한 서울 명동과 종로3가 일대 식당·편의점 등 30곳 가운데 7곳이 아르바이트 해고, 7곳이 아르바이트 근무시간 줄임, 3곳이 폐업이나 음식값 인상 등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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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프렌차이즈 뷔페 퇴조: 2018년 말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한식 뷔페 ‘계절밥상’ 11개 매장이 동시에 문을 닫았다. 패밀리레스토랑 ‘애슐리’와 한식 뷔페 ‘올반’ 매장들도 잇따라 영업을 종료했다.

④ 홍석천씨 폐업: 스타 요식업자인 홍석천씨가 서울 이태원 매장 2곳의 문을 닫았다.

정답은 ①, ②, ③, ④ 모두다. 난센스 퀴즈 아니냐고 항의하지 마시라. 근거가 있다. ①은 2018년 12월11일치 2면, ②는 12월27일치 1면, ③은 2019년 1월2일치 3면, ④는 보도를 인용한 1월18일 온라인 기사를 거의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하나같이 2019년 1월1일 전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변화를 담은 신문과 온라인의 간판 기사다. 2017년 5월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보수·경제지는 일부 극단적인 사례를 앞세워 ‘최저임금 때리기’에 열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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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1 이미 최저임금은 1만원?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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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이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은 벌써 달성됐다. 약속한 시점보다 1년이나 앞당겨졌다. 보수·경제지 주장에 따른 계산이다. 이들은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에 주휴수당(주 15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 유급휴일에 주는 하루치 수당)을 얹으면 실질적인 최저시급이 1만30원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로 문재인 정부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29.1%가 아니라 55%라고 계산하기도 한다. 사용주 부담을 뻥튀기하려는 억지 주장이다.

1953년 최저임금제 도입과 함께 생긴 주휴수당은 노동의 대가로 주는 임금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노동자가 돈 걱정 없이 쉬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별도 수당이다.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주휴수당 지급을 전제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해왔다. 최저시급 노동을 하는 구교현 전 노동당 대표는 “주휴수당은 특정 조건을 충족했을 때 지급하는 수당”이라며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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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2 고용 참사의 주범?

문재인 정부의 2018년 일자리 성적표는 초라하다. 통계청 ‘연간 고용동향’을 보면 2018년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9만7천 명 늘었다. 2017년 증가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연간 취업자 증가 규모가 10만 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실업률은 3.8%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할 말 없게 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저조한 일자리 지표를 두고 ‘고용 참사’ ‘일자리 쇼크’라고 진단한 보수·경제지는 그 원인을 최저임금에서 찾았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논리다.

그러나 통계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3년 11월 기점으로 취업자 증가폭이 둔화되는 큰 흐름이 나타나는데, 2018년에는 세 요인이 더 겹쳤다. 15~64살 생산가능인구가 처음 줄어 노동시장 유입 인구가 감소했다. 여기에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여파로 일자리가 줄었고, 한계상황에 놓였던 ‘나 홀로’ 자영업자들도 줄줄이 가게 문을 닫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부 일자리를 줄이는 요인은 되겠지만 최저임금 탓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고용 효과를 분석한 실증적 연구 결과들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 효과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주를 이룬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들이 생산성, 이윤, 비용 절감, 노동시간 등을 조정하기 때문에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거나 적다는 보고서가 많다.

문 대통령의 주장대로 긍정적인 일자리 지표도 있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효과’ 논문을 낸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총 취업자 증가 수가 10만 명을 밑도는 와중에도) 상용직 근로자 증가세가 30만 명대로 유지됐다는 것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인) 임시직·일용직 근로자 일부가 상용직으로 바뀐 결과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팩트체크3 저소득층이 더 궁핍해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실제 가계소득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2018년 3분기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에서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 소득이 1년 전보다 7% 줄어드는 동안 소득 상위(5분위)는 8.8% 늘었다. 앞서 1·2분기에 이어 3분기 연속 ‘1분위 감소-5분위 증가’ 추세가 나타났다.

그러나 근로빈곤층의 임금소득은 오히려 늘었다. 2018년 8월 기준, 저임금 노동자(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5.7%(315만 명)로 1년 전보다 5.8%포인트 줄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연구 결과다. 임금노동자 양극화도 다소 완화됐다. 임금 하위 10%와 상위 10%의 시간당 임금 격차는 4.13배에서 1년 만에 3.75배로 줄었다.

왜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늘었는데 최하위 가구의 소득은 줄었을까. 논란이 되는 가계동향 조사의 신뢰성 문제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임금 통계와 가계소득 통계에는 원래 차이가 있다. A라는 노동자의 임금이 늘더라도 A가 속한 가구는 자영업자·무직자 등으로 구성돼, 전체 가구 소득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득이 줄어든 소득 하위 20% 가구에는 다른 소득 분위보다 가구주가 고령이었고, 세대원 수도 적어 가구 소득이 늘기 어려운 구조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최저임금 정책은 일차적으로 근로빈곤층을 위한 대책”이라며 “소득 하위 10%, 20% 가구의 빈곤 문제는 최저임금 정책으로만 해결할 수 없고 기초연금 등 사회보장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19년부터 소득이 낮은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연금액을 월 30만원으로 올리는 등 사회보장 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팩트체크4 을과 을의 전쟁?

문재인 정부 들어 보수·경제지에는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 사장님이 유독 자주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존 갈림길에 선 사장님들이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수를 줄이고 영업시간을 단축하며 아예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는 무인화를 도입하기도 한다.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인건비 인상이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그러나 건물주 갑질과 프랜차이즈 횡포를 상수로 놓고 최저임금 인상만 부각하는 것은 무리한 보도다. 때로는 가짜 통계도 동원된다. 1월5일치 의 ‘최저임금 소송 80%가 영세업주·직원 ‘을 대 을’ 갈등’ 기사가 대표적이다. 전국 법원에서 1심이 선고된 최저임금법 위반 사건 43건 중 임의로 추출한 10건을 분석한 결과, 8건이 노동자 10명 이하 사업장이란다. 영세 사업장이 갈등의 주 무대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서울지법에 이 자료를 요청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서울지법은 ‘지난해 중앙지법 최저임금법 위반 1심 선고 건수만 해도 수백 건으로, 기사의 통계(전국 법원에서 43건)가 엉터리’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현금으로 지원해주고 있어 모든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의 고통이 급격히 늘지도 않았다. 최저임금이 16.4%로 뛰었던 2018년, 정부는 3조원을 풀어 최근 5년간의 최저임금 평균인상률 7.4%를 초과하는 인상분 9%포인트에 대해서는 인건비를 보태주고 있다.

오히려 직원을 쓰는 자영업자는 늘었다. 2018년 전체 자영업자 674만 명 중 직원이 1명이라도 있는 자영업자는 165만 명으로 전년보다 2.7% 늘었다. 반면 직원이 없는 ‘나 홀로’ 자영업자(399만 명)는 2.1% 줄었다.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는 일을 쉬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팩트체크4 겁나게 뛰는 물가?

떡볶이, 피자, 빵, 커피, 건전지, 샴푸, 치약, 택시 기본료, 아이 돌봄 서비스, 미용실, 피시(PC)방. 보수·경제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으로 새해부터 물가가 올라 서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2018년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1.5% 올랐다. 1% 안팎이던 2015~2016년보다는 다소 높지만 2017년(1.9%)에 견줘 안정적이다. 소비자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식료품, 교통, 음식·숙박비는 비교적 많이 뛰었지만 정부가 지원 정책을 편 공과금, 의료비, 통신비가 평균 물가를 끌어내렸다. 인건비 상승은 제품·서비스 가격을 밀어올리는 요인이지만 아직 ‘최저임금 후폭풍’ ‘최저임금발 물가 공포’라 분석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김용기 아주대 교수(경영학)는 “(자영업자나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분을 생산성 향상이나 직원 근로시간 단축 등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수요를 떨어뜨리는) 가격 인상은 마지막으로 선택하려 노력한다”며 “실제 지금까지 물가 상승에서 유의미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수·경제지는 지난 2년 가까이 기승전‘최저임금 망국론’으로 문재인 정부를 몰아붙여 일부 성과를 거뒀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공약을 못 지켜 사과한다”고 밝혔다. 연속 두 자릿수 인상(16.4%10.9%)을 하긴 했지만 목표치에는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보수 진영의 여론전이 결정적이었다. 다소 악화된 일부 일자리, 가구 소득, 자영업자 매출 지표는 과도하게 부각됐고 이를 보완할 정부의 자영업자 대책과 사회보장 대책은 완전히 묻혔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만 늦어진 것이 아니다. 1988년 이후 30년 만에 최저임금제가 대폭 손질됐다. 문재인표 최저임금이 처음 적용된 2018년 초부터 보수·경제지는 ‘상여금, 숙식비 등 산입 범위라도 조정해달라’는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의 주장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그해 5월 국회는 노동자의 밥값과 버스비까지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산입 범위 확대는 경영계의 숙원이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2018년 12월에는 보수·경제지가 최저임금 산정시 유급휴일을 노동시간에서 제외하라는 여론전을 대대적으로 폈다. 법정 주휴시간(보통 일요일 8시간)과 노사가 약정한 휴일시간(보통 토요일과 공휴일)을 명시해 노동 현장의 혼란을 없애려는 정부의 시행령 개정안을 무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여론에 밀린 정부는 12월31일 국무회의에서, 법정 주휴시간은 노동시간에 포함하되 약정 휴일시간은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또 최저임금 결정 기준도 경영계의 주장을 수용하는 쪽으로 변경됐다. 정부는 1월7일 기존 ‘근로자의 생계비’ ‘노동생산성’ 등에 더해 ‘고용 수준’ ‘기업 지불능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상황’을 반영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쯤에서 문제 하나 더. 보수·경제지는 왜 그럴까.

① 우리나라 일자리가 줄어들까봐 진심으로 걱정한다.

② 소비자의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질까 진심으로 우려한다.

③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둔화될까봐 진심으로 불안해한다.

④ 그냥 문재인 정부가 싫다.

정답은, 출제자도 모르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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