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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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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만5150원, 2019년 첫 월급명세서

인숙씨는 막내 용돈 주고, 미영씨는 친구와 여행 계 조직,

진철·지희씨 부부는 통장에 저금
등록 2019-01-26 16:47 수정 2020-05-03 04:29
최저임금이 인지도는 최고입니다. 2018년 시민 10명 중 2명이 최저임금을 올해의 뉴스로 꼽았다지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2위입니다. 놀라운 #미투도, 지구적 스타 방탄소년단도, 드디어 구속된 이명박씨도 최저임금한테는 안 됐습니다. 2018년 12월24일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조사 결과입니다. 1월24일 현재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최저임금을 포함한 게시글은 1만 건이 넘습니다.
최저임금이 이토록 논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290만 명,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자영업자는 165만 명입니다. 최저임금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는 많게는 550만 명, 자영업자는 674만 명이나 됩니다. 우리라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을까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사먹고 아파트 관리비를 내는 우리도 최저임금에 민감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논쟁 속에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최저임금 월급명세서’가 나왔습니다.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월 174만5150원)이 찍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속도에는 못 미쳐도 2년간 인상률이 29.1%에 이릅니다.
8350원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이고, 누군가에게는 걱정일 겁니다. 그러나 이 만난 ‘누군가’가 노동자, 사장님, 소비자로 정확히 갈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마다 8350원을 대하는 우리의 이야기 안에 최저임금 논쟁을 끝낼 정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서로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논쟁의 절반쯤은 해결될는지도요. 결국 언젠가는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새집에 닿겠지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2년 내리 20만원씩 월급이 오른 청소노동자 인숙(가명)씨는 “서울 대학에 합격한 막내의 용돈을 챙겨줄 수 있어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한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년 내리 20만원씩 월급이 오른 청소노동자 인숙(가명)씨는 “서울 대학에 합격한 막내의 용돈을 챙겨줄 수 있어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한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스윽~. 새해 첫 월급날인 1월17일 점심시간,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월급 통장을 집어넣었다. ‘급여 이체 171만1650원’. ATM 화면에 낯선 숫자가 떴다. 예상보다 20만원이 더 보태진 돈이었다. ‘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왔지?’ 마이너스이던 잔액도 오랜만에 플러스였다. 스윽~. 고개를 갸우뚱하며 통장을 뽑고 돌아선 인숙(49·가명)씨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 맞다. 최저임금이 올랐지!’

지방 국립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인숙씨의 2019년 월 기본급은 173만7310원이다. 정부가 정한 월 기준 최저임금은 174만5150원이지만 올해 식비를 비롯한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산입되면서 7840원 손해를 봤다. 그래도 식비 13만원에 처음 생긴 목욕비(위생수당) 5만원을 넣고, 4대 보험료를 빼니 실수령액이 171만원이 됐다. 가사노동자로 13년, 청소노동자로 4년간 일하며 받은 월급 중 최고액이다.

원래 인숙씨 월급은 해마다 기록을 경신해왔다. “월 최저임금이 월급”이라서다. 해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려준 만큼 월급이 늘었다. 4년 동안 아침 7시30분~오후 4시30분 혼자 강의실 7~8개와 화장실·복도를 청소하는 인숙씨도, 같은 일을 20년 한 동료도 똑같다. 해마다 임금이 오르는데도, 이상하게 인숙씨는 늘 제자리였다. 시간당 200~300원, 많아야 450원 올라서는 월급의 두 번째 자릿수도 잘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와 세 아이를 혼자 책임지는 가장에겐 야박한 숫자였다.

직간접적 수혜자 550만 명

2018년 월급명세서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기본급이 135만원에서 157만원으로, 22만원 뛰었다. 법정 최저시급이 한 번에 1천원 넘게 올라서다. 손에 남는 돈도 130만원에서 20만원 늘었다. 1년 뒤인 2019년엔 최저시급 인상으로 실수령액에 20만원이 더 보태졌다. 그사이 용역업체 소속에서 국립대학교 소속으로 신분이 바뀌어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이 더 오르겠다”는 기대와 달리,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지만 “이마저도 안 올랐으면 큰일이었겠다” 싶다. 2018년의 ‘20만원’이 늘 적자인 생활비를 메꿔주는 고마운 돈이었다면, 2019년의 ‘20만원’은 “서울 대학에 입학한 막내 용돈으로 줄 귀한 돈”이다.

2019년 1월, 두 번째 문재인표 ‘최저임금 월급명세서’가 발행됐다. 수령인은 저임금 노동자 290만 명. 1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586만 명의 18.3%에 이른다(고용노동부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조사 기준). 2018년보다 13만 명 늘었다. 최저임금이 곧 월급인 노동자에,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월급을 받는 차상위 최저임금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새 월급명세서의 직간접적 수혜자가 550만 명(최저임금의 80~115%·2018년 기준)에 이를 것이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추정도 있다.

이들 명세서에 찍힌 2019년 기본급은 ‘174만5150원’. 월 40시간 일하고 주휴일(유급휴일·보통 일요일)에 8시간 쉬었을 때 받는 임금이다. 1년 전(157만3770원)보다 약 17만원 올랐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에서 8350원으로 10.9%(820원) 오른 결과다.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다. 1년 앞선 2018년에는 최저임금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16.4%(1060원) 뛰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는 못 미쳐도, 2년간 인상률 29.1%는 무척 빠른 속도다. 이제 1만원까지는 1650원 남았다.

“체력 키워 오래 일하려고” [%%IMAGE4%%]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엔 노동자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2019년은 갓 시작됐으니, 2018년에서 앞날을 상상해보자. 공항 주차 징수원인 경미(50·가명)씨는 비로소 노동의 기쁨을 느낀다. 용역업체와 1년마다 최저시급에 계약을 연장하며 청소노동자나 주차 징수원으로 일한 지 20년 만이다. 기본급(177만원)·연장수당(45만원)·식비(10만원)·교통비(10만원)에서 각종 공제 항목을 빼고 남은 돈은 230만원 남짓. 1년 만에 20만원 늘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이전엔 1평(3.3㎡) 부스에서 평일·주말, 밤낮으로 하루 5~11시간씩 일했지만 1년에 10만원 인상도 어림없었다.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주차비 떼는 칼만 안 든 강도”라는 고객의 욕을 먹고 있노라면 “노동의 보람은커녕 고달프기만 했다”고 말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변화였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걸자 노조는 공기업의 용역업체인 회사를 상대로 “원청이 책정한 용역 단가에 맞게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알파(α)’의 인건비를 지급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노동자가 힘을 모은 덕분에 2018년에는 최저임금보다 1천원 많은 시급을 쟁취했다.  

곧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시작됐다. 경미씨는 “그동안 어머니와 두 아이의 뒷바라지도 빠듯했는데 이젠 남들이 누린다는 작은 행복”을 느껴보고 싶었다. 가족과 한 달에 한두 번 외식하는 것도 행복, 노후 준비로 10만원짜리 적금을 든 것도 처음 발견한 행복이다. 설이 지나면 “체력을 키워 오래 일하려고” 헬스장을 다닐까, 요가를 다닐까 설레는 고민을 한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는 한 달 5만원씩 모아 5년에 한 번은 여행을 가는 ‘계’도 곧 시작한다.

노동자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돌려준 돈은 10만원, 20만원이다. 그들의 노동에 견줘서도, 물가에 견줘서도 결코 많은 돈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2017년 비혼 단신 노동자의 평균 생계비는 193만3957원. 인숙씨 급여인 월 최저임금(157만3770원)은 물론, 경미씨가 투쟁으로 얻은 ‘최저임금+알파’(177만원)보다도 많다. 최저임금을 받아서는 혼자 생계를 꾸리기도 버겁다는 뜻이다. 5인 가족의 가장인 인숙씨와 남편의 이직 준비로 잠시 5인 가족을 부양하는 경미씨도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 안정’(최저임금법)을 꾀한다는 ‘최저임금 현실화’가 아직은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가족’에게는 좀더 여유가 생겼다. 2017년 50대 부부인 진철(가명)씨가 경마장 경비원으로, 지희(가명)씨가 마트 용업업체 계약직으로 일하며 번 돈은 총 330만원. 이전엔 법정 최저임금과 상관없이 용역업체와 ‘120만원’의 고정 월급에 3년간 계약한 지희씨의 월급이 최저임금을 밑돌 때도 있었다. “한 번에 10만원이 드는 외식은 하지도, 브랜드 옷은 사지도 않을 정도”(지희)로 악착같이 아끼며 버틴 세월이었다.

아르바이트생·비정규직 ‘실감’

그러다 월소득이 360만~370만원으로 늘어난 2018년, 아빠는 취업준비생·대학생·고등학생인 세 아이의 용돈부터 2만~3만원씩 올려줬다. 한 달 10만원의 용돈으로 생활하던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진철씨는 “무척이나 뿌듯했다”고 했다. 엄마는 “비상금으로 한 달 20만원, 30만원씩 통장에 쌓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1인 가구인 의현(28·가명)씨도 한시름 놓았다. 의현씨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타는 뮤지션이다. 밤에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지만 낮에는 생계를 위해 햄버거 배달을 한다. “직장에 매이지 않고 음악을 하려고” 선택한 아르바이트다. 기본급에 배달 건당 400원씩 수당을 합하면 월수입은 130만원. “원룸 월세 40만원, 밴드 합주비, 공연 장소로 이동하는 교통비를 빠듯하게 맞출 수 있는 돈”이다. 노래방 아르바이트비 100만원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손을 벌리던 때보다는 형편이 좋아졌다. “돈 걱정 없이 음악만 하는 게 꿈”이지만 “130만원도 크게 부족함이 없다”며 만족한다.  

최저임금을 가장 반기는 이들은 주머니가 가벼운 청년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접 혜택을 입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최저시급을 주는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일자리에 노출된 청년이 많아서다. 2019년 최저시급 8350원에 대해 19~29살의 57%가 ‘적정하다’고 답했다. 응답자 평균(42%)을 웃돈다. 한국갤럽이 1월15~17일 전국 성인 1002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또 최저임금 인상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의견도 52%로 평균(27%)의 두 배였다.

200만원, 꿈을 이루는 숫자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준현(29·가명)씨가 2018년 받은 실수령액은 165만원. 1년 전보다 오른 20만원으로 “가족이나 조카, 지인의 생일 선물을 챙길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그전에는 부모님과 살고 있어도 140만원 남짓으로 학자금 대출 5만~10만, 저축 30만~40만원, 식비 40만원, 통신비 10만원, 경조사비 등으로 모두 지출했다. 조카 장난감이라도 하나 사주려면 “가계부를 보면서 식비를 줄이거나 다른 항목을 줄여 선물값을 맞춰야” 했다. 토·일요일 중 하루는 회사에 나와 특근을 하며 30만~40만원의 수당을 보태기도 했다.

2019년에 월급 10여만원이 더 오르면 영어 학원에 다니며 토익 점수를 더 높일 계획이다. 24살에 전문대 디지털전자과를 나와 취업을 한 뒤 두 번이나 회사로부터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적이 있어 “지금처럼 최저시급을 주더라도 좀더 안정적인 직장”으로 이직할 준비를 하고 있다.

52시간제 시행 이후로 야간노동·휴일근로 수당이 줄어 수입이 적어질까봐 걱정이었는데, 때마침 최저임금이 올라 평일만 일하고 175만원은 받을 수 있어 다행이란다. “시간이 있고 돈이 있으면 다른 일을 준비하거나 남을 챙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이 좋아요.”

29살 준현씨의 목표는 결혼 전에 독립부터 하기. “세후 200만원은 돼야 혼자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속도대로라면 앞으로 3년? 그때까지 잘리지 않고 다닐 수 있다면요.” 200만원, 준현씨가 꿈을 이루는 숫자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최저임금 못 받는 사람들


여전히 임금노동자의 13.3%


달라진 월급명세서에 희망을 느낀다는 노동자도 마음 한켠 최저임금 인상을 걱정한다. 동료인 가게 주인이나 회사 사장에게 감당 못할 부담을 주진 않을까, 내 아버지나 딸의 일자리를 빼앗는 건 아닐까, 경제가 더 나빠지거나 물가가 오르는 건 아닐까 염려한다. 경비원인 진철(가명)씨는 “자영업자인 친구들이 힘들어해서”, 마트에서 일하는 지희(가명)씨는 “고객이 눈에 띄게 줄어서” 마음 쓰인다고 했다.
이런 걱정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갤럽 설문조사에서 최저임금의 영향권에 있는 블루칼라의 53%, 청년의 54%가 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영업자(60%)가 비관하는 비율보다는 낮지만 전체 평균(52%)보다 조금 높다.
월급명세서가 여전히 절망적인 노동자도 많다. 경기도 요양원에서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미영(60·가명)씨는 “최저임금 인상을 조금도 체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야간조(오후 6시~아침 9시)로 환자 기저귀 갈기, 식사 챙기기, 목욕시키기, 병실 청소하는 등 쉴 새 없이 일해서 받는 급여는 세후 150만원에 불과하다. 최저시급의 월급에 야간노동 가산금까지 붙은 돈이다. 요양원은 “수당은커녕 하루 한 끼 1500원씩 20일을 곱해 한 달 식비로 3만원”을 떼간다. 주간조(오전 9시~오후 6시)에서 일했던 1년 전 실수령액(130만원대)과 겨우 10여만원 차이. 야간노동 가산금을 생각하면 거의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2013년부터 정부에서 지원받던 ‘요양보호사 처우개선비’ 10만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이 큰 폭 올랐고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 등을 들었지만 미영씨는 “우리가 너무 고된 일을 한다고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더니 이젠 그마저도 안 주는 것”이 야속하기만 하다. 갑작스러운 인건비 인상으로 힘들어진 음식점·커피숍·편의점·중소기업 사장님들이 고육책으로 직원들 근무시간을 줄이고 있어 노동자의 월급은 그대로거나 줄어든 경우도 있다.
여전히 최저임금마저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도 266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3.3%나 된다. 사업주의 고의나 실수로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3개월 미만 수습근로자처럼 현행법상 감액 적용 대상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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