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한 삶
인간은 똑같고 역사는 반복되는가? 이 2018년 표지에서 다룬 인간은 ‘같은 길’을 가면서도 서로 ‘다른 삶’의 기록을 남겼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그랬고, 고 노회찬 의원과 기성 정치인들이 그랬다.
7월26일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추도식이 열린 서울 신촌 연세대 대강당에 대학생 서진원(24)씨는 행사 시작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방송과 언론에 비친 그를 보며 ‘모든 걸 이해해줄 것 같은 분, 기댈 수 있는 정치인 같다’고 생각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해서 왔다. 자리에 앉아 노 의원의 죽음을 생각했다. 추도식이 끝난 뒤 ‘내 짐까지 지게 한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직접 나서 정치로, 글로 풀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한테 대신 짐을 맡길 게 아니라 스스로….”
서씨는 현재 정의당에서 ‘청년 노회찬’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진행하는 ‘진보정치 4.0아카데미’ 수강생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를 보고 정의당 당원이 된 뒤 처음으로 당 활동을 시작했다.
청년 노회찬들이 꿈꾸는 세상제1223호 표지 문구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은 노 의원이 유서에 남긴 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를 인용했다. 그는 멈췄지만 그가 떠난 뒤 그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4.0아카데미는 정치인을 꿈꾸는 만 35살 이하 청년 30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29일부터 5학기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평화·정치·경제·젠더·생태 등에 대해 강의·토론하고, 민주화운동의 성지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과 서울 남영동 경찰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 등을 방문했다. 수강생이 직접 쓴 논평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도 한다. 서진원씨도 지난 10월 동물권 관련 논평을 쓰고 정론관 마이크를 잡았다.
서씨가 ‘청년 노회찬’을 꿈꾸는 것은 노 의원처럼 ‘투명인간’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다. 노 의원이 세상을 떠난 뒤, 그가 2012년 한 연설인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가 화제에 올랐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청소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 노 의원의 연설은 많은 이에게 울림을 줬다. 서씨는 “부모님이 대학교 등록금을 내주는 것도 ‘금수저’라고 부르는 게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이라며 “모두가 존중받고,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노회찬 정치’를 되살리겠다는 ‘노회찬재단’ 설립도 진행 중이다. 9월9일 모란공원 묘역에서 진행된 고인의 사십구일재 추모 행사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김영숙 국회환경노조 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 유시민 작가, 박찬욱·변영주 영화감독, 방송인 김미화씨 등 문화·예술계 인사, 정광필 전 이우학교 교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백승헌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등 18명의 제안으로 재단 설립이 추진됐다. 재단은 현재 노회찬 의원의 영상과 글을 모은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제2, 제3의 노회찬’을 길러보자는 취지로 시민정치학교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 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누구나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을 동물의 세계로 만들지 않기 위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연대의 나라’ ‘남과 북이 서로 교류하고 도와주고 협력하는 평화로운 나라’ 등을 위한 연구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최근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이란 이름을 확정하고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를 재단 이사장으로 뽑았다. 2019년 1월 창립을 목표로 한다. 누리집(www.hcroh.org)에서 시민 후원회원을 모으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 논의 진전고인이 생전에 그토록 꿈꿨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국회 논의도 한 발짝 나아갔다. 여야 5당은 12월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등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가 아닌 정당 투표를 기준으로 의석수를 배분하자는 것으로, 노 의원이 생전에 “도입만 된다면 영혼을 팔겠다”고 할 정도로 많은 힘을 쏟았던 제도다.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1명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에만 유리하고 다른 후보에게 던진 유권자의 표는 사표가 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그동안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회에 좀더 반영하자는 취지로 논의돼왔다.
노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그가 대변하려던 우리 사회 ‘투명인간’들의 눈물과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노회찬 정치’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가 사고로 숨진 뒤 우리 사회에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당장 정의당은 노 의원이 지난해 4월 대표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별법은 기업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기업과 책임을 방기한 정부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 의원은 “오늘날 대부분의 대형 재해 사건은 특정한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 결과가 아니라, 기업 내 위험관리 시스템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같은 ‘현대형 중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업 등이 조직적·제도적으로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도록 유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드루킹 “노 의원 쪽에 불법 정치자금 전달 안 해”한편, 노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발단이 된 ‘드루킹’ 김동원씨는 그동안 재판에서 수차례 진술을 번복하다 12월11일 결심 공판에서 “노 의원 쪽에 불법 정치자금 5천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특별검사는 그에게 “수사를 통해 범행이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면서 반성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국회에서는 현직 의원이 아니면 후원금을 모을 수 없는 현행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는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거의 논의되지 않은 채 계류 중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받는 사람: 대통령님♥’…성탄 카드 500장의 대반전
서태지 “탄핵, 시대유감…젊은 친구들 지지하는 이모·삼촌 돼주자”
한덕수, 내란 엄호 논리로 쌍특검법 거부…정국 불안 고조
15년 전 사별 아내 이야기에 울컥…고개 숙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이승환·예매자 100명, 대관 취소 구미시장에 손배소 제기한다
메리 ‘퇴진’ 크리스마스…광화문 시민들이 바란 성탄선물은
[영상] 이재명 “한덕수 또다른 국헌문란 행위, 반드시 책임 물을 것”
허락 했을까요 [그림판]
구미 공연 취소된 이승환에…강기정 시장 “광주서 합시다”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