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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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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들의 삶, 유명한 싸움이 되다

2018년 <한겨레21>이 주목한 보통 사람들의 삶…

발암물질과 싸우는 엄마들부터 천안함 생존 장병, 그리고 꿈 찾은 자해 청소년
등록 2018-12-22 14:12 수정 2020-05-03 04:29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이 만난 사람들

에는 음계는 다르지만 조는 같은 어떤 목소리가 있다. 이미 과대 대표된 정·재계 인사, 기득권층, 주류의 목소리보다는 아픈 사람들과 소수자의 그것을 전하는 것이 2018년에도 일관된 보도 태도였다.

2018년 발행된 50권(제1193~1242호) 가운데 표지에 ‘유력 인사’의 얼굴이 실린 건 13차례에 불과했다. 그나마 여섯 번은 한반도 평화 이슈 등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을, 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내세웠다. 그 외에는 테니스 선수 정현과 고 노회찬 국회의원,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업적과 삶을 기리거나 이명박 전 대통령, #미투 가해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판할 때 정도였다.

‘사회지도층 인사 받아쓰기’를 지양하는 의 주인공은 주로 보통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국가 공백’의 현장에서 고통받거나 소외된 피해자였다. 한 차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간 삶 터, 국가는 또 슬그머니 발을 뺐지만 ‘나들’은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생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다시 아스콘 공장과 싸우는 엄마들
경기도 안양의 ‘건강한 연현마을을 위한 부모 모임’ 회원들이 학교 앞 아스콘·레
미콘 공장 가동에 반대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경기도 안양의 ‘건강한 연현마을을 위한 부모 모임’ 회원들이 학교 앞 아스콘·레 미콘 공장 가동에 반대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제1197호 ‘벤조피렌 마시는 아이들’▶바로가기

“공장 재가동을 가장 먼저 안 것은 어른들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몸이었다.”

연초 (제1197호) 보도로 ‘아스콘 공장 벤조피렌 배출 사건’이 알려진 경기도 안양 연현마을을 12월18일 다시 찾았을 때, 엄마들은 입을 모았다. 그중 ㄱ씨는 “11월부터 아이가 메스껍다, 울렁거린다면서 계속 토했다. 지난 1년간 학교 잘 다니던 아이의 증상이 갑자기 악화된 뒤 ㅈ사가 아스콘 공장 재가동을 위해 보름 정도 ‘예열’한 것을 알게 됐다. 아이의 증상이 아스콘 공장 탓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연현마을 엄마들은 공장 예열 기간, 코피를 쏟고 아토피가 재발하고 두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속출했다고 전했다. ‘건강한 연현마을을 위한 부모 모임’(건연모) 문소연 대표는 “인과관계를 우리에게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외국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업체가 증명해야 하지 않나. 공장이 재가동됐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가동 중단 명령으로 문을 닫았던 아스콘 공장은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11월26일부터 재가동됐다. 이번엔 안양시의 명령으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지만, ㅈ사는 또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이다.

연현마을에서 아스콘 공장은 ‘집단 트라우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월 이 만난 연현마을 30대 엄마 6명은 모두 자궁이나 유방, 갑상샘 쪽 질환을 갖고 있었다. 자녀들 또한 모두 비염, 폐렴, 한포진(손발에 물집이 생기는 질환) 등으로 “약을 달고 산다”고 했다. 갓 40대에 접어든 ㄱ씨는 자궁과 난소를 적출했고, 그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중추신경 손상으로 인한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엄마들이 연현마을 3천여 가구에 직접 설문지를 돌린 결과, 회수된 설문지 618건 가운데 “현재 질환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수가 526건(85.1%)이었다.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 비율은 8.2%로 한국 암유병률(3.2%)의 두 배가 넘었다.

대단지 아파트 단지인 연현마을과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벤조피렌 등 특정대기유해물질을 배출하는 ㅈ사의 아스콘 공장이 있다. 연현마을 아이들이 다니는 연현초등학교는 공장과 직선거리로 200m 이내에 있었다. 벤조피렌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등급 1등급으로 정한 물질이다. 유해물질 배출 공장이 주택가에, 그것도 초등학교 인근에 입주해 생긴 ‘참사’다. 그 뿌리에는 늘 그렇듯 무책임한 정부가 있었다. 정부는 벤조피렌을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해놓고도 배출 허용 기준치를 정하지 않았다. 아스콘 공장이 가동된 수십 년 동안 배출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한 이유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유해물질을 관리하지 않은 ‘무법’ 상태가 엄마와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한 주범이었다.

이런 사실이 보도로 알려진 뒤 한동안 모든 것이 순조롭게 바뀌는 듯 보였다. 엄마들의 사랑방 모임 같던 건연모는 세무서에 등록된 비영리법인이 됐다. 모임을 주도하던 문소연씨는 대표가 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7월 취임 직후 첫 민생 현장으로 연현마을을 찾아 ㅈ사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8월에는 환경부가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만 해놓고 배출 허용 기준치가 없었던 벤조피렌 등 8종에 기준치를 신설하는 내용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2019년 1월1일 자로 시행된다.

개정된 법도 유명무실

변화의 배후에는 ‘건연모 엄마들’이 있었다. 건연모는 3월부터 환경감시단 활동을 통해 ㅈ사의 불법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타 지역의 경우 통장이나 반장이 의례적으로 맡는 환경감시단을 건연모 31명이 위촉받았다. ㄴ씨는 “지난해 12월 처음 안양시청을 찾았을 때 공무원들은 ‘벤조피렌 배출 이외에 ㅈ사에 다른 불법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환경감시단으로 활동하면서 무모하고 용감하게 물어보고 찔러대자 하나하나 불법 사항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 ‘연현마을 주민’ 출신 김선화 안양시의회 의장에게 입수한 자료를 보면, ㅈ사는 개발제한구역 안에서 금지된 골재 생산 작업을 포함해 올 한 해 10여 건의 법 위반 사항을 적발당했다.

건연모 회원 ㄷ씨는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5월 ㅈ사가 안양시를 상대로 제기한 ‘건설폐기물처리업 사업계획 변경 부적정 통보’ 취소 소송이 서울고등법원에서 기각된 것을 꼽았다. ㅈ사는 안양시에 “취급할 수 있는 폐기물의 종류를 7종으로 늘려달라”는 사업계획 변경을 냈다가 반려당하자 소송을 냈다. “주민이 법정에서 발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진짜 연습을 엄청 많이 해갖고 갔어요. 그런데 판사가 ‘짧게 하라’고 해서. 하하하, 결국 그냥 우리 아이들 좀 살려달라고 울었어요. 승소했을 때 정말 기뻤죠.”

ㅈ사 고아무개 대표는 과 한 통화에서 “우리 공장의 배출량은 법적 배출 기준 이내다. 법대로 해야 한다”며 시종 당당했다. 실제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벤조피렌 ‘배출 허용 기준치’는 0.05㎎/㎥로, ㅈ사 굴뚝에서 검출된 벤조피렌 배출량(15.8ng/㎥, 0.000015㎎/㎥-배출 허용 기준치는 ㎎, 설립 허가 기준치는 ng으로 표기)에 견줘 턱없이 높았다. 있으나 마나 한 기준치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아스콘 공장의 ‘설립 허가 기준’이 되는 벤조피렌 배출량은 10ng/㎥으로, 지난해 ㅈ사의 배출량은 이를 초과했다. 현재 기준으로 공장 설립은 안 되는데 배출은 가능한 부조리한 상황이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관계자는 “벤조피렌 허가 기준이 생긴 2015년 이전에 입주한 공장들은 예외”라면서 “법적 문제를 떠나서 주민 동의 없이 공장을 재가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ㅈ사에 전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건연모’는 요즘 1주년 기념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자축보다는 각오를 다지는 자리다. 엄마들은 “일찍 끝날 줄 알았는데 1년이 됐다”며 씁쓸해했다. 10살, 8살, 5살 아이의 엄마인 ㄹ씨는 “지난해만 해도 한 달에 3주는 약을 먹던 아이들이 가동 중지 뒤에는 병원에 덜 간다. 피부로 느껴지니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더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애인 엘리베이터 설치는 아직도 ‘검토 중’
서울 신길역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망 사고 뒤 직원 호출 버튼의 위치를 바꾸
고 경고문을 붙여놨다 김진수 기자

서울 신길역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망 사고 뒤 직원 호출 버튼의 위치를 바꾸 고 경고문을 붙여놨다 김진수 기자

제1227호 ‘목숨 걸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바로가기

2017년 10월20일 베트남전 상이군인인 고 한경덕씨는 지하철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 환승구간에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역무원을 부르는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으로 추락했다. 해당 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한씨는 98일 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다 2018년 1월25일 7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씨가 누르려던 버튼은 계단에서 1m쯤 떨어진 곳에 새로 설치됐다.

사고 1년이 지난 8월 이 표지이야기 ‘목숨 걸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제1227호)에서 한씨의 죽음을 다뤘다. 이후 다시 4개월, 12월 현재 버튼 위치가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유족은 손해배상 소송을, 휠체어 장애인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서울 지하철 역사 5곳에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차별구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은 해를 넘겨 이어질 전망이다.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교통공사 쪽 변호인은 준비 서면을 통해 “장애인인 고인의 경우 반드시 보호자와 동반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며 “역사에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지 않고 이동하다가 당한 사고이기에 고인 과실이 90%”라고 주장했다. 한씨의 아들 영수씨는 과 한 통화에서 “(교통공사로부터) 가족에게 연락 온 적도 없고 사과를 받지도 못했다. 어이가 없다”며 “(교통공사 변호인이 보호자 동반을 주장했는데) 노인분이나 장애인들은 밖을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냐”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들의 시위와 언론 보도가 계속되자 교통공사는 사고 발생 11개월 만인 9월11일에야 자료를 냈다. 교통공사 쪽은 “지난해 신길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으로 공사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휠체어 이동 안전성 강화 대책을 내놨지만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엘리베이터 설치 등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오늘도 장애인들은 목숨 걸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차별과 수모를 오롯이 감내한다. 휠체어 장애인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12월13일 경남 창원 중앙역으로 향하는 케이티엑스(KTX)를 타려다 안내데스크 역무원에게 “다음 기차를 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면 10분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박 대표가 출발 시간 8분 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실랑이 끝에 KTX를 탔지만, 코레일 쪽은 “고객의 열차 출발 방해로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고 방송했다. 박 대표는 “신길역도 그렇고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개선해달라고 했지만 그대로다. 자신들의 시스템에 장애인이 무조건 맞추라는 것이다. 차별을 넘어 폭력 아니냐”고 되물었다.

태아 산재, 길어지는 침묵

제1206호 ‘아이가 죽어야 인정되는 산재’ ▶바로가기

제1206호 표지이야기에 등장한 허자연씨. 그는 2003년부터 제주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생식독성물질에 다량 노출됐다. 그리고 2010년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비슷한 시기 같은 직장 간호사 중 유산 9명,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4명 등 집단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업무로 인해 질환이 생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태아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그 근로자에게 지급한다”고 돼 있다. ‘근로자’인 엄마와 태아는 따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허 간호사는 “법조인들이 너무 똑똑해서” 일반인은 생각지도 못한 논리를 편다고 했다.

일반인의 상식과 한참 동떨어졌지만, 법 조항은 여전히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임신부가 일하다 태아에게 장애가 생겨도 산재로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제주의료원 사건을 계기로 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법 개정은 지지부진하고, 허 간호사의 산재 인정 소송은 2년6개월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 4월 보도가 나갔지만 법원도 언론도 정부도 무섭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허자연 간호사는 최근 통화에서 “법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느낀다. 너무 오래 끌어서 도와주시던 분들도 힘들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하나 희망적인 점은 고용노동부가 태아 산재와 관련해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고용노동부는 “연구용역이 내년 1월께 마무리되면 이를 토대로 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허 간호사의 아이가 10살이 된다. 심장질환으로 호흡이 편치 않은 아이는 여전히 홀로 ‘고산지대’에 살고 있다.

난임 지원 확대, 체감은 먼 길
임신테스트기에 ‘비임신’을 나타내는 한 줄이 표시
돼 있다. 김진수 기자

임신테스트기에 ‘비임신’을 나타내는 한 줄이 표시 돼 있다. 김진수 기자

제1213호 ‘난임이 찍은 낙인’ ▶바로가기

5월 ‘난임이 찍은 낙인’(제1213호)에서 소개된 이명희(37·가명)씨는 힘겹게 연말을 맞고 있다. “어렵게 임신했는데 8주 때 유산이 됐어요. 임신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는데…. 며칠 전에 어머니 생신이었는데 못 갔어요. 차마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요. 임신이 공부처럼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계속 실패만 하고, 막막하네요.”

체외수정과 유산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씨에게는 ‘경제적 부담’ 역시 버겁다. 정부는 만 44살 이하 여성에게 총 10회(인공수정 3회, 체외수정 7회)에 한해 건강보험 적용 혜택을 주고 있다. 10회를 넘으면 시술비는 전액 본인 부담이다. 이씨는 난임 지원 횟수를 이미 채웠기 때문에 이제 난임 시술을 받으려면 1회당 100여만원의 본인 부담금을 내야 한다. “첫아이를 가질 때까지 난임 시술의 건강보험 지원 횟수 제한을 폐지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려도 공감수가 20만 명이 안 되더군요. 다들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은 ‘난임이 찍은 낙인’에서 난임 정책의 문제와 한계를 짚은 데 이어 ‘건보 혜택 있어도 못 누린다’(제1215호), ‘난임휴가 있어도 못 쓴다’(제1222호) 등 난임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다.

정부는 내년부터 건강보험의 본인 부담을 경감하는 방식으로 난임 부부를 지원할 계획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2월7일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보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난임시술비 본인부담률(현행 30%)을 더 낮추고, 만 45살 미만이던 건강보험 적용 연령도 높인다.

난임 부부에게는 시술비뿐 아니라 휴직과 휴가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5월부터 난임 치료를 위한 휴가 3일을 허용했지만 일주일에도 몇 번씩 병원에 가야 하는 치료의 특성상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김송희(32·가명)씨는 여전히 “난임휴가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있는 연차휴가도 다 못 써요. 아마 내년에는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가지려면 그 방법밖에 없네요.”

기본소득 유경험자가 밀고, 경기도가 끌고

제1212호 ‘월 50만원, 내 삶에 쉼표가 찍혔다’▶바로가기

“친정에서 김장했는데, 김장 비용을 못 드리고 몸으로 때웠네요….”

제1212호 표지 사진 주인공 김정화(45)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의 ‘쉼표 프로젝트’에 참가해 매달 50만원씩 기본소득을 받았다. 5월 인터뷰에서 가족·친구와 보내는 시간과 그들에게 쓰는 돈이 늘었고, 평생 숙원이던 자전거도 샀다며 기뻐했다. 기본소득 실험이 끝나고 9개월이 흘렀다. 김씨의 ‘빨간 자전거’는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었지만, 가족·사회 공동체에 베풀던 여유는 물심양면으로 다시 쪼그라들었다.

시청 환경미화원 위탁관리업체 직원인 김씨는 월 140만원을 번다. 국토관리직 공무원인 남편은 월 320만원을 받는다. 자전거 한 대 못 살 형편은 아니지만, 두 아들 학비와 생활비를 지출하려면 ‘엄마만을 위한 지출’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했다. 김씨는 기본소득을 받은 뒤에야 “25만원짜리 자전거를 갈등 없이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12월18일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기본소득 받을 때 정말 마음이 풍요로웠어요. 믿는 구석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사람 마음이 참… 6개월 주신 것도 정말 고마웠는데 받다가 끊기니까 ‘6개월만 더 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기본소득 유경험자’인 김씨는 요즘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김씨의 큰아들은 12월 말 단기 교환학생으로 중국 칭다오에 간다. 김씨는 “기본소득을 받았더라면 롱패딩도 하나 사주고, 여행 다니라고 용돈도 더 줬을 것”이라며 두둑하게 채워주지 못한 아들의 얇은 지갑을 걱정했다. 가수 이문세의 열혈 팬인 김씨는 12월15일 열린 ‘2018 이문세 광주 콘서트’에도 가지 못했다. “기본소득만 있었더라면 미련 없이 다녀왔을 것 같다.” 기본소득이 가족·사회 공동체의 관계 회복은 물론 문화·취미·여가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재작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뜨거웠던 기본소득 관련 언론 보도는 최근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재명 도지사의 의지가 강한 경기도를 중심으로 정책 도입이 검토되는 등 실질적인 논의 자체는 오히려 활발하다. 경기도는 12월20일 기본소득 정책 자문기구인 기본소득위원회 위촉식을 열었고, 농민기본소득·청년배당·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 등 기본소득 정책 전반을 검토할 예정이다. ‘쉼표 프로젝트’를 이끈 서정희 군산대 교수도 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서 교수는 “경기도의 경우 농민 자격 기준과 직불금 문제 등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은 농민기본소득보다는 청년배당이 더 빨리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

천안함 광수씨, 파리의 삶은 지속된다

제1221호 ‘살아남은 게 죄입니까’▶바로가기

7월 제1221호 표지이야기에 나온 최광수씨. 그는 2010년 천안함 참사의 생존자다. 참사 뒤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지만 국가보훈처는 그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개인 돈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회에선 ‘패잔병’ ‘양심선언 하라’는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 2012년 1월 결국 한국을 떠났다. “보수는 이용했고 진보는 외면했다”는 말은 그의 8년 세월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최씨는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의 천안함 생존자 PTSD 조사 공동기획에서 주요 증언자로 나섰다. 그의 증언은 ‘보수 정권에서 천안함 생존자들을 철저히 관리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어 충격을 줬다. 정부와 사회의 미흡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세월호와 천안함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많은 공감을 받았다.

최근 CBS 라디오는 최씨가 머무르는 프랑스 파리를 찾아 인터뷰한 뒤 특집다큐 로 보도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와 테러참사피해단체연합(FENVAC)이 참사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듬는지 살펴보는 기획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최씨는 보도 뒤 “일상에서 큰 변화는 못 느끼지만 우리를 ‘참사의 피해자’로 바라보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SNS를 통해 ‘항상 응원하니 힘내라’는 쪽지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란조끼 운동’이 활발한 파리에서 예술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는 떠났지만, 꿈을 찾았다
한 건물 안을 걷고 있는 15살 Wret Y(예명)의 뒷모습. Wret Y 제공

한 건물 안을 걷고 있는 15살 Wret Y(예명)의 뒷모습. Wret Y 제공

제1237호, 1238호 청소년 자해 3부작 ▶바로가기

청소년 자해 3부작 중 2부 ‘그랬구나 힘들었구나’(제1238호)에 나온 중학생 Wret Y(15·예명)는 결국 자퇴했다. 12월19일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Wret Y가 말했다. “저는 학교 교육과정을 잘 따르는 성향이 아니고, 당연히 학교라는 공간에 잘 맞는 아이들과도 성향이 달라요. 다르니까 겉돌게 되고, 교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제겐 너무 답답했어요. 교실 문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문 여는 게 정말 힘들게 느껴졌거든요.” 중1 때부터 자퇴하겠다는 Wret Y를 말렸던 부모님도, 학교 상담실 위클래스 선생님도 자퇴를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저는 위클래스를 자주 가는 편이었어요. ‘상담 쌤(선생님)’이 제가 자해하는 걸 몰랐을 땐 친했어요. 교육청·교육부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제가 자해하는 걸 안 이상 쌤도 전과 같을 수는 없었죠. 제 상처를 억지로 확인하셔야 했고, 심각성을 판단하셔야 했고, 담임과 부모님께 보고하셔야 했죠. 더 이상 제가 힘든 걸 말할 수 없었어요.”

Wret Y는 자퇴 직전 졸업앨범 사진을 찍었다. ‘졸업앨범’(졸업장이 아니다) 문제가 해결된 만큼, 학교는 더 이상 ‘다닐 의미’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작곡이나 연기 등 예술 계열 진학을 꿈꾸는 Wret Y는 검정고시를 볼 계획이다. “제적 6개월 뒤 검정고시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 자퇴하는 게 오히려 학업을 마무리하고 노는 데 유리하다”고 했다.

자퇴 뒤 잠시 대안학교에 다니던 Wret Y는 그마저도 그만뒀다. 서울 은평구 집에서 이동거리가 편도 1시간30분 가까이 걸리는 구로구의 대안학교가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상담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상담사한테도 “마음을 못 열겠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Wret Y는 “학원만 잘 다녀요, 학원만”이라며 스스로도 어이없게 느껴지는 상황에 웃음을 터뜨렸다. “작곡 학원은 일주일에 1시간, 연기 학원은 일주일에 3시간 정도 가는데 전공은 작곡 쪽으로 선택할 것 같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이미 피아노 체르니를 떼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Ⅱ를 배웠던 한때 ‘엄친딸’(완벽한 엄마 친구 딸) Wret Y에게 학교도 대안학교도 아닌 ‘학원’만이 발 디딜 곳이라는 역설에 대해, 이제 어른들이 답할 차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변지민 기자 dr@hani.co.kr
허윤희 yhher@hani.co.kr·
이승준 기자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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