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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주의에 빠진 법원

사법부 독립에 경계 목소리 낸 김인회 교수

“사법부 독립은 재판 독립이지 행정 독립이 아냐”
등록 2018-10-20 17:12 수정 2020-05-03 04:29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0월12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0월12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사법 농단 사태의 본질은 ‘사법부 독립’의 침해다. 정권과 재판을 거래하고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하는 것은, 정치권력에서 사법부를 독립시켜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사법부 독립’을 막는다. 사법부 독립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권력(입법·사법·행정) 가운데 한 축이 무너진다. 사법 농단을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사법 농단을 막기 위해 오히려 ‘사법부 독립의 도그마(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그는 최근 발간한 책 에서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교조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참여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참여해 사법부 독립을 구현하기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그런 그가 왜 사법부 독립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낼까. 지난 10월12일 김 교수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갈피 못 잡고 헤매는 ‘김명수 코트’책의 부제가 다. 판사들에겐 다소 도발적으로 들릴 것 같은데.

(웃음) 책을 쓴 이유부터 말해야겠다. 2017년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뒤 국가적 차원의 개혁이 추진됐다. 당연히 사법개혁도 기대됐다. 더구나 사법부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태인 ‘양승태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나. 대통령과 대법원장,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두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시도한 증거가 드러났다. 법원에서 만든 비밀 문건으로 확인된 것이다. 어느 때보다 사법개혁이 절실하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는 어떤가. 이 중요한 시기에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지 않았다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결코 지금 자리에 있지 못했다. 탄핵이 없었다면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후임으로 차한성,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들 중에서 한 명을 임명했을 거다. 모두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등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가. 사법 농단 관련자로 곧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야 할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이 대법원장이 됐다면 사법 농단은 그냥 묻혔을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될 때 그가 사법 농단 사태를 잘 처리하고 사법개혁을 강단 있게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가 많았다. 그는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없고 대법관 출신도 아니라서 기득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청와대도 그를 대법원장에 임명하면서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할 적임자”라고 논평했다. 김 대법원장도 취임 직후 판사들 앞에서 “사법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김명수 코트(Court·법원)’가 양승태 게이트부터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사법개혁은커녕 사법 농단 사태를 해결할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간 사법부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큰 짐이 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촛불 정신’에 대한 모독‘김명수 코트’가 헤매는 이유는 뭔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사법 농단 문건에 대한 내부 조사 때 외부 인사를 배제한 게 패착이었다. 공적 영역에서 투명성이 점점 중요해지는데 이 흐름에 역행한 것이다. 김명수 코트는 사법 농단 문건을 법원 내부의 일로 판단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외부의 접근을 막았다.

후속 조처도 실망스러웠다. 처음에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검찰에 고소·고발을 하겠다고 했다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사법 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영장 기각이었다. 물론 대법원장이 영장 심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전체적 분위기라는 게 있다. 대법원장이 이번 사태를 심각한 불법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면 영장전담판사가 그렇게 마구잡이로 영장을 기각할 수 있겠나.

법원 비주류였던 김 대법원장이 기득권 세력을 포용하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소수파 또는 비주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소수파라면, 일선 판사들은 뭐냐. 대법원장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리고 법원 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은 당연한 거다. 반발을 이겨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게 리더십이다. 반발한다고 해서 무조건 포용하나? 그건 개혁적 리더십이 아니다. 그런 리더십은 기존 법원행정처 출신 대법관들도 보여줄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일선 판사들은 개혁적인 판사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대법관이 되기를 갈망했다. 그런 대법관이 한 명만 있어도 법원이 많이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은 그런 법관이 대법원장이 됐다. 그런데 왜 비주류, 소수파라고 스스로 깎아내리나. 그런 패배주의는 ‘촛불 정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사법개혁 의지 없는 청와대
노무현 정부가 역점을 둔 사법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빠져 있다. 200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정부가 역점을 둔 사법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빠져 있다. 200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얘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법개혁이 왜 실종됐다고 보나.

사법 농단 사태는 참여정부 때부터 추진했던 사법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계기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 대상으로 전락하는 바람에 검찰과 법원의 갈등, 법원 내부의 불신이 부각되고 나라의 걱정거리가 돼버렸다. 이로 인해 사법개혁을 추진할 기구도 늦게 만들어졌다. 법무부와 검찰, 경찰은 정권 교체 한 달 만에 만들어졌는데 사법부는 1년이 훌쩍 지난 올 6월에야 만들어졌다.

청와대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 사법개혁 역사를 보면 청와대의 의지가 중요했다. YS(김영삼) 정부와 DJ(김대중) 정부 때는 청와대가 주도해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비록 대법원의 비협조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법개혁을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다.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와 대법원이 함께 추진해서 국민참여재판 도입, 공판중심주의 확립 등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에선 이런 의지가 안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우선 국민참여재판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국민참여재판, 즉 배심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제도다. 그런데 전 정권에서는 지지부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무죄 평결이 나오자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다. 판결을 국민이 결정하면 정치권력이 개입할 수 없다. 재판 거래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도 더욱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참여정부 때의 ‘독수리 5형제’(이홍훈·전수안·박시환·김영란·김지형, 진보 성향의 다섯 대법관을 가리키는 말) 수준은 돼야 하는데 지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김명수 코트가 사법부 독립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다?

사법부 독립은 재판의 독립을 말한다. 재판이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 특히 정치권력의 압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 사법부는 이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판사 임용과 임명권, 이게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인가. 미국은 연방법원 판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독일은 의회, 일본은 내각에서 한다. 선출된 권력이 법관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성이 없다.

사법행정은 선출된 권력 감시받아야

사법부 독립이란 재판에 해당하는 거지, 법관 인사 같은 사법행정이 아니다. 사법행정은 선출된 권력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사법행정까지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엘리트주의다. 지금 법원은 엘리트주의, 무오류주의에 빠져 있다. ‘우리가 제일 똑똑하니까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게’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법원에 관한 모든 것을 법관들이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오만한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가권력의 한 축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주권 원리에 맞지 않다.

김명수 코트가 그야말로 ‘대오각성’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법원 밖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한다. 대법원장이 개혁을 위해 도와달라고 하는데 안 도와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좋은 법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톡톡히 경험했다. ‘정치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사람들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것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았나.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김인회는 누구?
김인회(54) 교수는 1996년 변호사 개업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내며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추진에 참여했다. 정권 교체 뒤 야인이 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성적으로 고찰한 책 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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