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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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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농장 죽이고 돼지공장 키우는 나라

정부, 공장식 축산 지원으로 환경 파괴와 동물 학대 불러…

대통령직속 동물복지위원회 설치를
등록 2018-09-15 14:44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2010년 11월 말부터 2011년 5월까지 우리나라에선 동물 대학살이 벌어졌다. 소나 돼지, 사슴과 같이 발굽이 둘로 갈라진 포유류가 350만 마리나 파묻혔다. 극단적으로 많은 수의 동물을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전염병은 무섭게 번질 수밖에 없었다. 농가당 수천 마리, 한 동네에서 수십만의 동물이 집단 학살됐다. 매몰은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더 이상 질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다는 ‘명목’ 아래 진행됐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던 어미소를 의식이 또렷한 채 근육마비제로 죽이고, 새끼돼지들을 울부짖는 어미돼지와 함께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땅에 생매장해 죽이는 행위를 정부는 ‘살처분’이라고 했다. 죽이고 또 죽였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질병은 계속 번졌다.

이즈음 경기도의 한 친환경 농장. 이곳에 ‘동물권행동 카라’의 활동가들이 급히 달려갔다. “그만 죽여라,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펼침막이 그들 손에 들려 있었다. 이 지역은 이미 구제역으로 초토화돼 오직 이 농장 하나만 남아 있었다. 주변에 다른 농장이 전혀 없었는데도 당국에서는 이곳 돼지들도 모두 살처분 대상이라고 했다. 건강한 돼지들을 죽일 수 없었던 농장주가 저항해봤지만 끝까지 버틸 힘이 없었다. ‘살처분에 응하지 않으면’으로 시작하는 각종 권고에 겁먹지 않을 농장주는 없었다. 방역 관계자들이 대기 중이던 쓰레기차에 돼지들을 몰아서 실었다. 눈을 의심했지만 정말 쓰레기차였다.

새끼돼지 순결이의 죽음
2017년 말 자유로 근처 찻길에서 발견된 농장 탈출 돼지 ‘삐용이’의 귀여운 모습. ‘동물행동권 카라’의 도움을 받아 동물복지 농장에서 평화를 누리던 삐용이는 올 3월 감기 몸살을 앓다가 영영 눈을 감았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2017년 말 자유로 근처 찻길에서 발견된 농장 탈출 돼지 ‘삐용이’의 귀여운 모습. ‘동물행동권 카라’의 도움을 받아 동물복지 농장에서 평화를 누리던 삐용이는 올 3월 감기 몸살을 앓다가 영영 눈을 감았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이 농장에는 순결이가 ‘살고’ 있었다. 코에 짚을 묻히고 눈을 반짝이며 뛰어놀던 새끼돼지가 귀여워 카라 활동가들이 지어준 이름이 순결이다. 이날 녀석도 쓰레기차에 실려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순결이 같은 동물들을 미리 죽여 없애는 일을 정부는 ‘예방적 살처분’이라고 했다. 2010년 11월29일 경북 안동발 구제역은 너무나도 혹독했다. 돼지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죽였던지 같은 기간 발생한 650만 마리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은 뉴스거리도 못 됐다.

돼지고기 수출을 위한 청정국 지위 유지를 위해 무모하게도 백신 접종이 미뤄졌다. 연간 달랑 700억원 정도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 2조8695억원의 방역 비용을 치렀다. 방역 비용은 전액 세금으로 냈다. 막대한 자산가들이 운영하는 공장형 축사에도 예외 없이 죽인 동물 마릿수에 정확히 비례해 살처분 보상금을 주었다. 얼마 뒤 다시 동물 고기 공장은 가동됐다. 사람들은 다시 웃고 떠들며 삼겹살을 굽고 술잔을 기울였다.

2000년 새 세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공장식 축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전세계 전문가 1360여 명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참여해 발간한 보고서 ‘밀레니엄 생태계 평가’에서 인간과 동물이 서로 절대적으로 의존적이며 자연환경이 이들의 삶을 지탱한다는 ‘원 헬스’(One Health) 개념이 제시됐다.

뒤늦게 공장식 축산 키운 한국

보고서에는 사람, 야생 조류, 가금류, 돼지 사이에서 순환하며 강력한 균주로 변이돼 인간을 위협하는 위험 인자로 조류인플루엔자가 언급돼 있다. 자연생태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밀집 대량 사육은 잠재 감염의 저장소를 창출해 백신과 살처분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가축 생산 형태로는 인간 감염의 위험성을 없애기는 불가능하다는 섬뜩한 경고와 함께였다. 식량농업기구에서도 2006년 ‘가축의 긴 그림자’(Live stock’s long shadow) 보고서 발간을 통해, 공장식 축산이 지구온난화의 최대 원인이자 치명적인 환경오염과 녹지 소실, 물 부족의 주범임에 따라 지금 같은 축산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밝혔다.

현재 가공할 규모로 널리 퍼진 공장식 축산의 역사는 생각보다 매우 짧다. 최고도 밀집 사육은 백신이나 항생제, 살충제, 심지어 초식동물인 소에게 소나 양의 도축 부산물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갈아 먹이는 등 기괴한 행위에 의존하며 관행 축산으로 자리잡았다. 오직 단편적 이익만을 좇아 동물 학대를 무제한 용인하며 기형적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그 결과 불과 50여 년 만에 소해면상뇌증(속칭 광우병)이나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인간들에게 그 해악이 돌아오고 있다.

영국이 본격적인 공장식 축산 시대를 시작한 것은 1947년 생산성 증진 신기술을 적용하는 농장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새로운 축산법을 시행하면서다. 1996년 영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사망하자 30개월 이상의 소 440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2001년 구제역으로 600만 마리 살처분이라는 끔찍한 사태를 맞기까지 불과 5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불행히도 공장식 축산이 내리막으로 치닫기 얼마 전, 그 정점에 있을 때, 한국 정부는 뒤늦게 공장식 축산의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동물을 오직 생산성만으로 평가하는 잔인한 질주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에 대응해 축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공장식 축산을 전격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돼지는 최소 1천 마리 이상, 양계는 최소 3만 마리 이상을 지원 대상으로 했고, 상한은 규정하지 않았다. 지원 기준은 얼마나 많이 낳고 많이 도축했는지였다. 그 결과 농가당 돼지 사육 마릿수는 1990년대 초반 34마리에서 2000년 10배인 342마리로, 다시 2013년에는 1652마리로 5배 늘었다. 지금은 2천 마리를 훌쩍 넘어섰다.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약 8천만 마리의 조류를, 약 400만 마리의 돼지와 소를 거의 생매장했다.

2013년 녹색당,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공장식 축산을 허용하는 현행 축산법과 축산업 허가 기준 등이 국민의 행복추구권, 생명 및 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 보건에 관한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 생명권네트워크변호인단의 서지화 변호사가 청구인들의 대리인으로 참여했다. 시민소송인단 1129명도 함께했다.

소송을 낸 지 2년6개월 만인 2015년 9월24일 헌법재판소는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소송’을 기각했다. 한국 축산은 전체 농경지의 6%만 활용하면서도 농업총생산액 43조원의 41%를 담당하고, 곡물 자급률 27%에 비해 육류 자급률이 78%에 이르는 등 중요 산업으로 기능한다는 정부 쪽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현행 축산 관련 법령이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과 관련된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라고 했다. 육류 생산에 쓰이는 곡물이 대부분 수입 곡물로 충당되는 문제나 동물의 고통은 언급되지 않았다.

동물 학대의 정점 스톨 사육
돼지들이 사는 축사 바닥 아래 똥물이 가득 차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돼지들이 사는 축사 바닥 아래 똥물이 가득 차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돼지 스톨은 폭 60㎝, 길이 2.2m의 쇠로 된 감금틀이다. 다 큰 돼지가 이 안에 들어가면 거의 옴짝달싹하기 힘든 크기다. 돼지들은 이 안에서 정상 행동을 할 수 없다. 암퇘지들은 인공수정에 의한 강제 임신과 출산의 반복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는 3~4살 나이로 도축될 때까지 평생 이곳에서 살아간다. 인간을 포함해서 동물의 능력은 문제 해결 능력이나 복잡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능력, 여기에 더해 다른 동물의 ‘생각이나 의도를 유추’하는 능력, 마지막으로 자아를 인식하는 능력 등으로 파악한다. 돼지는 집단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동물일 뿐 아니라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영장류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테스트를 통과하기도 했다.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탐색을 즐긴다.

돼지의 행동 욕구는 지내는 환경이 삭막할수록 더욱더 간절해진다. 돼지들이 스톨에서 처한 상황은 어쩌면 너무나 끔찍해서 초현실적이다. 돼지에게 스톨은 악몽 자체일 것이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스톨 사육에 대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줄 100만 시민의 서명을 받아 공장식 축산의 상징인 돼지 스톨과 산란계 ‘배터리 케이지’ 철폐를 위한 입법 운동에 나서려 한다.

살충제 달걀 사태 이후 이제야 동물복지 축산에 관심이 높아졌다. 대통령이 나서서 동물복지 축산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동물복지 축산의 기준은, 다만 동물이 본래의 생태 습성과 신체 원형을 유지하며 모성의 보호와 유대를 존중하는 것, 더하여 전기충격을 금하고 도태시 수의사나 숙련된 자가 하는 등 직접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 깔짚이나 작은 공간을 제공하며 혹한과 혹서로부터 보호하는 등 가장 기초적이며 당연한 내용들이다.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대한민국 동물보호법 제3조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은 이렇게 천명돼 있다. 동물복지 축산 기준이 높은 게 아니라, 돼지 스톨 사육 등 축산 현실이 너무 동물학대적이다.

영국은 1990년 초반 구제역 살처분 당시 농업수산식품부(MAFF)를 환경농촌식품부(DEFRA)로 개편하고 구제역 사태의 교훈을 파악하며 미래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장식 살처분 국가에다 세계 최다 농장동물 살처분 국가다. 4천만 마리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과 살충제 달걀 사태 이후에도 공장식 축산 폐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위기다. 이런 인식의 위기가 이후 얼마나 더 무서운 대가를 가져올지 두렵기만 하다. 문제가 어디에 있으며 그 규모는 어떠한지, 해결하려면 어떤 부처가 움직일지, 또는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한지 누가 판단하고 실행을 주문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사태를 위기로 인식하고 근본적 변화를 이끌 장기적 국가 비전과 정책을 수립할 주체가 필요하다. 비전과 정책 실행을 담보할 통찰력은 물론 강력한 실행 추진력도 갖춰야 할 것이다. 인간, 동물 생태계의 안전과 복지를 도모하기 위해 대통령직속 국가 동물보호정책 추진 기구의 설치가 간절하다.

우리 동물보호법에서는 국가의 책무로 “국가는 동물의 적정한 보호·관리를 위하여 5년마다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할 것을 명하며,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에 동물복지위원회를 두어 자문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동물복지 정책 시행을

대규모 공장식 축산에서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의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고 지속적인 난개발과 자연 훼손으로 인한 멧돼지·고라니·해양동물 등 야생동물들의 위기도 상존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대규모 산업적 개농장이 존속함으로써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를 왜곡 퇴행시키는 개 식용 같은 한국에만 있거나 유독 심한 동물복지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축산이나 환경 담당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국가 차원의 미래 비전과 다층적이며 포괄적인 고민과 정책 결단, 사회적 담론 형성, 이를 기반으로 한 합의와 정책 실행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 산하 일개 ‘부’ 수준을 넘어선 연구와 의사결정 기구가 필요하다.

하여, 동물권행동 카라는 대통령직속 국가 동물복지위원회의 설치를 주장한다. 이 위원회는 인간과 동물이 환경의 품안에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 장기 비전을 수립해 실현하기 위한 10대 또는 5대 핵심 과제를 제시해, 부처를 아우르는 복합 다층적 행정을 이끌고 실행하는 강력한 추진체가 되어야 한다.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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