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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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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환경도 행복한 스트레스 없는 돼지

동물복지 돼지농장 개척자 김문조 대표의 ‘행복한 농장’…

넓은 공간에서 뛰놀며 건강하게 자라
등록 2018-09-15 14:28 수정 2020-05-03 04:29
‘더불어 행복한 농장’ 김문조 대표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한테 안기는 아기들처럼 돼지들이 김 대표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더불어 행복한 농장’ 김문조 대표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한테 안기는 아기들처럼 돼지들이 김 대표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우리 돼지들 보세요.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먹고 싶을 때 먹어요. 언제라도 먹을 수 있으니, 과식하는 일도 없어요. 그러니 소화를 잘 시키고, 소화가 잘되니 똥오줌의 악취가 심하지 않아요. 건강하게 자라잖아요. 올여름 지독한 폭염에도 한 마리 폐사도 없었어요. 당연히 농장의 생산성이 올라가죠.”

경남 거창의 동물복지 돼지농장 1호인 ‘더불어 행복한 농장’ 김문조 대표는 “동물복지 농장을 하면 돼지도, 사람도, 환경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4500마리 사육할 수 있는 공간에 2500마리를 키워요. 돼지한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9월6일 덕유산 동쪽 자락에 터를 잡은 김 대표의 ‘행복한 농장’을 찾아갔다. 이름 그대로 행복한 농장이어서일까, 농장 입구로 들어섰는데도 여느 양돈장에서 풍기는 고약한 악취가 나지 않았다. ‘돼지공장’의 악취에 익숙한 기자로선, 처음 겪는 신기한 일이었다. 농장 안 돼지방(돈사)의 창문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김 대표를 따라 방역복을 입고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결은 단순했다. 넓은 공간과 바닥에 푹신하게 깔아놓은 왕겨였다. 임신한 돼지들도 쇠틀로 만든 스톨에 갇혀 있지 않았다. 왕겨를 밟으며 마음껏 뛰어놀고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왕겨와 섞인 똥오줌은 퇴비로</font></font>
호기심이 넘치는 어린 돼지가 천장에 매달아놓은 나무토막을 치면서 놀고 있다

호기심이 넘치는 어린 돼지가 천장에 매달아놓은 나무토막을 치면서 놀고 있다

왕겨를 깔아놓으니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우선 공간을 충분히 준다. 임신한 돼지 20마리가 30평 방을 넉넉하게 쓴다. 넓은 방에서 돼지들이 싼 똥오줌은 왕겨와 섞이고 발에 밟혀서 자연스럽게 썩어서 익는다. 냄새날 일이 없다. 2주마다 새 왕겨로 바닥을 깨끗하게 갈아준다. 바닥에 쌓인 퇴비는 근처 농가에서 사간다. 냄새가 없고 잘 썩어서 인기가 좋다.

임신한 돼지들을 한 방에 풀어놓으면, 힘 약한 녀석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나.

여기서도 인공수정한 뒤 첫 2주 동안은 쇠틀로 만든 스톨 안에서 지내도록 한다. 그 정도 안정 기간이면 충분하다. 그 뒤론 이렇게 뒤엉켜 놀도록 하는 게 오히려 건강에 더 좋다. 원래 돼지는 깨끗한 동물이다. 우리 돼지들을 보라. 똥자리와 잠자리를 뚜렷이 구분한다. 자기들이 누울 공간엔 똥오줌을 싸지 않는다. 다른 농장에서 돼지들이 똥오줌 싼 곳에 그냥 드러눕는 것은 공간이 좁기 때문이다. 결국 병에 잘 걸리게 된다.

‘행복한 농장’에선 1년 동안 어미돼지가 낳은 새끼 중 24마리를 비육돈(살이 찌도록 기르는 돼지)으로 길러 시장에 출하한다. 우리나라 평균이 17마리이니, 생산성이 아주 높은 편이다. 거기엔 김 대표가 직접 개발한 ‘사료 급여기’도 큰 몫을 했다.

“우리 농장에서도 처음엔 20마리가 지내는 방에 동물복지용 사료 급여기 1대씩을 넣었어요. 수입품이고 비쌌거든요. 그랬더니 순서에 밀려 제때 사료를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는 녀석들이 생기는 거예요. 궁리하다가 농장에 있는 스톨을 개조해 직접 사료 급여기를 만들었어요. 방마다 4대를 설치했습니다. 돼지들이 시달리지 않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게 되더군요.”

‘행복한 농장’의 돼지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기자가 우리 안으로 들어가니, 녀석들이 먼저 장난을 걸어왔다. 기자를 입으로 밀기도 하고, 발 쪽을 가볍게 물기도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장난치는 느낌이었다.

돼지가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어미돼지의 지능지수가 60~90 정도라고 한다. 아주 머리 좋은 녀석은 80마리까지도 서열을 인식한다. 그래서 (중간 크기 돼지들이 자라는) 육성사에는 100마리 이상이 한꺼번에 뒤엉켜 지내도록 해놓았다. 서열을 흔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면 힘 약한 녀석들이 시달릴 일이 없어진다. 이렇게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항생제 쓸 일도 없게 된다.

동물복지 농장에선 새끼돼지 송곳니와 꼬리를 자르지 않는다. 그래도 문제가 없나.

송곳니를 자르는 것은 어미돼지 유두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미가 잘 먹고 젖의 양이 풍부하면 송곳니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송곳니는 오히려 유두 끝을 자극해 젖을 잘 나오게 하는 순기능을 한다. 꼬리 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료 관리를 잘 못해 곰팡이가 생기고, 그 사료를 먹은 돼지가 설사해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항문과 꼬리 쪽을 다른 녀석이 물어뜯는 것이다. 사육 환경을 좋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들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덜 먹고 더 빨리 자라</font></font>
금방 태어난 새끼돼지가 아빠(김문조 대표)의 손가락을 빨고 있다.

금방 태어난 새끼돼지가 아빠(김문조 대표)의 손가락을 빨고 있다.

경험으로 알게 된 동물복지의 장점을 말해달라.

우리 돼지들은 덜 먹고 더 빨리 자란다.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1㎏을 생산하는 데 국내에선 평균 3.4㎏의 사료가 소비된다고 한다. 우리 농장에선 사료 2.6~2.7㎏이면 충분하다.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니, 과식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올여름 폭염 때도 우리 농장에선 평소처럼 170일 만에 출하했다. 다른 농장에선 돼지가 자라지 못해 한 달 이상 출하가 지연되는 곳이 많았다.

분만방 등 일부 공간은 왕겨를 깔지 않은 돈사를 유지하고 있었다.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없앤, 대규모 돼지공장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닥 아래로 빠져나가는 똥오줌 섞인 액비에선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커피와 간장이 섞인 것 같은 색깔의 액체는 손으로 만져도 냄새가 남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가.

미생물을 일부러 첨가한 게 아니다. 돈사에 돼지를 들이기 전에, 석 달 이상 자연상태에서 산소를 일으켜 충분히 발효 분해된 액비를 바닥 아래에 넣어주었다. 똥오줌이 차기 전에 완전한 상태의 액비를 먼저 흐르게 한 것이다.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액비가 순환하면서 똥오줌 속 미생물을 분해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7년 전 축산 분뇨 해양 투기가 중단됐을 때, 전국의 액비 순환 농가를 돌아다니면서 배우고 연구했다. 하수처리장의 자연 침전 방식도 응용했다.

김 대표는 2016년 동물복지의 길로 들어설 때, 가슴에 새겼던 나이 든 영국 수의사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조물주가 돼지를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사람이 잘못 사육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그전까지는 내가 돼지의 질병까지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지요. 돼지 스스로 면역력을 가지도록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랍니다.”

김 대표는 동물복지 돼지농장의 개척자를 자임하지만, 아직은 아쉬움이 더 크다. 공들여 동물복지 농장을 꾸렸으나 시장에서 좀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제가 출하하는 물량의 10% 정도만 동물복지 고기로 팔려요. 그나마 물량이 너무 적어 가격을 더 받지도 못해요. 출하 물량의 90%는 일반 돼지와 똑같은 취급을 받아요. 동물복지 돼지고기 물량은 전체 생산량의 0.001%에도 못 미칠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살아 있는 동안 최선의 배려를”</font></font>

그의 다음 목표는 김문조의 동물복지 브랜드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도드람양돈농협 등에서 그의 돼지를 특별가격으로 공급받겠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취재를 마치고 귀여운 돼지들과 이별하자니, 예쁜 눈망울이 눈에 밟혔다. 자식 같은 녀석들을 도축장으로 내보낼 때 마음이 어떤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전엔 그저 먹고살기 위해 돼지를 키웠어요. 무감각했지요. 동물복지를 시작하면서 돼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돼지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놈들을 위해 최선의 배려를 다할 겁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불편하진 않아요. 사람을 위한 쓰임새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겠어요.”

거창=<font color="#008ABD">글 </font>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 </font>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font color="#A6CA37">정부 주도 동물복지 제도의 한계</font>


소비자 신뢰로 크는 동물복지


우리나라 돼지농장은 4500개, 그중 고작 12곳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전체 동물복지 인증 농가 170여 곳의 대부분을 산란계와 육계 등 닭이 차지한다. 150곳 이상이다. 올해 새로 인증받은 돼지농장도 전무하다.
김문조 대표는 정부가 주도하는 동물복지 제도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지금처럼 간다면, 이미 인증받은 동물복지 돼지농장들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벌써 인증을 포기하겠다는 양돈 농가들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동물복지 농장에선 사육 두수를 줄이고 그만큼 비용을 많이 들여 돼지를 키우는데,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기꺼이 내려는 소비자와 시장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동물복지는 뜻있는 소비자가 지켜내는 거예요. 동물복지 돼지를 인정하는 소비자그룹이 어서 빨리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정부의 직접 지원은 기대하지 않아요. 소비자 인식이 형성되도록 정부가 끌어주기만 해도 좋겠어요. 동물복지 연구는 정부가 맡아줘야 하고요. 개별 농장이 그걸 감당하진 못하거든요.”
동물복지는 소비자와 생산자의 신뢰, 곧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의 앞선 사례를 이야기했다. “유럽연합에는 돼지농장의 동물복지 등급이 4단계나 있더군요. 최고 등급을 받은 동물복지 돼지는 시장에서 가격을 4배나 높게 받아요. 소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하는 거죠.”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지금의 동물복지 인증 기준은 동물을 학대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작 동물복지 수준은 높은데, 너무나도 복잡한 서류를 갖추지 못해 인증을 포기하는 농가도 있다. 작은 돼지농장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주길 바란다.” 김 대표는 “우리도 유럽연합처럼 소비자단체가 동물복지 인증에 적극 참여토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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