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는 계엄으로 독재를 연장하고 계엄 속에서 숨을 거뒀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소장은 쿠데타의 성공과 함께 반공을 국시로 내건 계엄으로 19년 장기집권의 막을 올렸다.</font>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0차례나 선포됐던 계엄사(史)는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등 수많은 약자가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실제 정부 수립 이후 두 번째로 계엄령을 내린 제주4·3으로 20살 이하의 6864명이 숨졌다. 필요에 따라 체포·구금 등을 합법적으로 인정한 계엄의 폭력성으로 약자들이 얼마나 희생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헌법재판소가 결정하기 직전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A4용지 8장)과 이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A4용지 67장)가 세상에 나왔다. 계획은 미수에 그쳤지만 사실상 계엄령을 준비하고 실행까지 대비한 문건이었다. 하지만 계엄의 공포를 경험한 세대, 그리고 연령별·성별 등에 따라 계엄에 대한 심각성이나 위험성을 체감하는 정도와 수준은 달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계엄 인식 무게 세대별로 달라 </font></font>계엄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 가운데에서도, 10대에게 기존의 계엄은 현대사를 배우며 교과서로 본 역사적 사건일 뿐이다. 과거와 같은 국가폭력이 또다시 작동할 경우 취약한 상태에 놓일 수도 있을 10대들은 “영화나 교과서에서 막연하게 배웠던 계엄에 대한 온도 차는 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2003년 만든 ‘대한민국 청소년의회’에서 활동하는 중·고등학생 13명은 8월9일 과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10대의 눈높이에서 계엄을 말했다.
10대들은 계엄의 폭력성을 영화 등과 함께 떠올렸다. 국가폭력을 실제로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를 보며 국가폭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갔는지 일상에서 간접 경험했다. 임태경(16·전남 순천 승평중)학생은 “ 등에서만 봤던 계엄령이 실제 우리가 사는 지금도 발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청소년의회 등의 활동을 하며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인 학생 13명과 달리 실제 계엄을 잘 모르는 또래가 많다. 학업 등으로 정치에 관심이 적을 수 있고 제도권 교육에서도 계엄의 심각성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아 이를 생각해볼 기회까지 놓치는 탓이다. 지난해 교육부가 편찬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살펴보면 ‘계엄령’의 단어 설명이 처음 등장한 것도 정부 수립 이후 여섯 번째 계엄을 선포한 사건이던 ‘5·16군사정변’에서였다. 앞서 여·순 10·19, 4·19 혁명 등에서는 계엄령이란 단어만 각각 한 차례씩 언급됐다.
양정우(19·서울국제고) 학생은 “주변에 계엄에 대해 물어봐도 잘 모르는 친구가 많았다. 우리는 계엄을 직접 경험하지 못해 계엄령의 심각성이나 영향력을 실감하지 못했다. 당장 계엄령이 떨어져도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은 적다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계엄 대신 촛불집회를 경험한 2018년의 10대는 계엄을 촛불 민주주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촛불집회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을 지켜봤고, 또 함께한 세대였다. 이들에게 폭력적인 계엄 선포는 촛불 민주주의의 후퇴로 비쳤다. 김예원(17·경기 동두천외국어고) 학생은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로 들어선 지 100년도 채 안 됐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점점 발전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촛불집회로 민주주의가 바로 세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깨부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촛불 민주주의’ 믿었는데…</font></font>특히 실제 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상 검열 가능성에 가장 경악했다. 오정하(18·경기 동탄국제고) 학생은 “SNS 검열은 우리의 입을 틀어막는 조처”라고 강조했다. SNS를 통해 세상을 배우던 10대들이 규정으로 인해 시각을 넓히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불법적인 기무사 계엄 문건과 달리 합동참모본부가 합법적으로 작성한 에는 “인터넷, SNS 등 사전 검열이 불가능한 매체에 대한 감시는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이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 유언비어 대응 본부’와 협조해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내용의 발언이 유언비어가 될지 자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SNS가 사실상 주된 소통 수단인 10대에게 SNS 통제는 공포로 다가왔다. 곽혜선 이화여대 약학과 교수팀이 지난 6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중·고교생 1796명에게 조사해보니 여학생 SNS 사용률은 41.2%, 남학생은 26.5%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배서현(17·동두천외국어고) 학생은 “대부분의 친구들이 SNS를 기본 2개 이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문서영(18·경기 고양 화정고) 학생도 “시대가 변했다. 소통의 방식이 달라졌다. 우리는 뉴스, 책보다는 SNS로 정보를 얻는다. 가장 어리고, 삶의 방식을 확립해가는 10대에게 SNS는 자연스러운 통로다. 삶의 수단을 막고, 지식을 얻는 장을 통제하는 것은 자유롭고 정상적인 사고를 틀어막는 조처”라고 덧붙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계엄 실제로 실행될 것 같다” </font></font>10대들은 향후 계엄 실행 가능성이 높다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지금도 원칙 없는 계엄 선포 가능성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제주4·3 등 과거 계엄이 선포될 때에도 최소한의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폭력이 작동했다. 그런데도 법제처는 사후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려 합법 의견을 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였다. 나쁜 교훈을 남겨 나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키운 것이다.
이날 과 토론에 참여한 중·고등학생 13명 가운데 12명이 “앞으로도 계엄이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배서현 학생은 “이번 계엄 문건이 계엄 실행 가능성에 대한 생각에 더 강한 확신을 줬다. 그러나 과거처럼 폭력적인 계엄이 다시 선포된다면 많은 국민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국민,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청소년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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