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년 동안 만났던 이들을 6월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다시 만났다.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헌법 조항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 나오는 날이었다. 병역거부운동을 18년 동안 해온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 이용석·여옥·염창근·임재성 그리고 오태양씨 등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대학생이던 임재성씨가 병역을 거부해 감옥에 갔다 오고 로스쿨을 다니고 변호사가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전쟁없는세상 상근 활동가로 헌신해온 이용석씨는 여전히 기자회견 사회를 보았고, 여성 병역거부 활동가 여옥씨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낯익은 얼굴 몇몇이 다가와 “저 기억하시죠?”라고 물었다.
17년 전 처음 만난 사람들 “너무 좋다”그분들이 없을 리 없었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낯익은 얼굴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17년 전 처음 만났던 정운영·홍영일씨. ‘여호와의 증인’ 홍보팀으로 만났던 이들에게 다가가자 환한 얼굴로 반겼다. “어떻게 될까 걱정했는데… 헌법 불합치라고 하니까 너무 좋죠.”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세월이 흘러도 정운영씨의 차분한 말씨는 여전했다. 가장 간절했을 이들이 “좋다”고 하니 되었다. 2004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공론화된 뒤 최초로 나왔던 합헌 결정 당시 이곳에서 처연했던 그들의 표정이 새삼 떠올랐다. 2011년 합헌에도 실망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도 간절한 만큼 기대를 누르면서 왔을 헌재였다.
2001년부터 병역거부자 변론을 해왔고, 여전히 병역거부 위헌심판소송 대리인단으로 활동하는 김수정 변호사가 여옥씨에게 “정민씨는?”이라고 물었다. “지금 미국 동생네 가 있어서 못 왔어요. 토요일에 돌아와요.” 병역거부 기사는 2001년 당시 평화인권연대에서 활동하던 최정민씨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활동가 중 한 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한 명이던 그가 여호와의 증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징집당한 연병장에서 호출돼 끌려가던 그들이 병역거부자이고, 병역거부는 국제인권법으로 보호받는 권리란 이야기를 들었다. 최정민씨가 정운영씨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정씨가 소개한 병역거부자의 재판을 보고 작성한 첫 기사의 일부다
“이씨처럼 종교적 양심이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한다. 80년대 한때 정치적 이유로 군입대를 거부하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9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지고, 현재 우리 사회에 남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집단은 이낙근씨 같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유일하다. 기독교계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시되는 현실이다.”
인권 피해자이자 군사주의 희생양연병장에서 불려나가는 사람들을 수많은 한국인이 수십 년간 봤지만, 무관심에 방치됐던 그들을 ‘병역거부자’라는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부르니 공론화가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매 맞는 여성’을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부르자 인권 문제로 선명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병역기피자’로 폄하되던 이들이 그렇게 대체복무가 필요한 병역거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반세기 넘게 투옥을 감수하는, 저항하지 않는 인권 피해자이자 군사주의 희생양이었다.
1990년대 한국 사회에는 분단과 계급 문제와 얽혀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운동으로 여성, 생태, 인권, 평화 등의 의제가 제기됐다. 평화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으로 이어지는 386세대 이후 활동가들은 남북 정치체제 문제와 다른 차원에서 군사주의와 평화운동을 고민했다. 이들을 통해 지난한 병역거부자 피해의 역사는 인권 담론과 비로소 만났다. 해결해야 할 소수자의 권리가 되었다.
다시 6월28일, 헌재 앞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병역법 88조 1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특정종교 병역혜택 절대반대”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헌재의 합헌 결정을 촉구하는 이들의 기자회견이었다. 지난 18년, 병역거부 관련 고비마다 반복된 풍경이다. 그동안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도 이들이 속한 집단도 변하지 않았다. 안보 논리, 특혜 시비를 강조하는 이들은 주로 개신교 관계자였다. 의 첫 기사에 “기독교계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시되는 현실이다”라는 구절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국방부와 개신교는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도입을 반대하는 거대한 두 벽이었다. 2000년대부터 병역거부 공론화가 진척될 때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성명을 냈다. 이날 기자회견도 기독교 이름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사회를 본 사람의 명함엔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가 적혀 있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병역거부, 성소수자 등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가장 강력한 반대 집단은 개신교였다. 단체 이름은 달라도 이들은 인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
개신교 일부가 반대 세력 핵심가장 강력히 압력을 가하는 개신교 일부가 반대 세력의 핵심이어서, 지역구 표를 의식하는 국회를 통한 해결은 더욱 어려웠다.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문은 “2004년 입법자에 대하여 국가안보라는 공익의 실현을 확보하면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그로부터 14년이 경과하도록 이에 대한 입법적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고 지적한다. 14년 동안 국회가 입법으로 왜 해결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 등이 나왔지만 해결이 쉽지 않았던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압력 집단 중 하나인 개신교 일부의 반대가 있었다. 이런 현상은 최근 난민을 둘러싼 찬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는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명확한 인권 문제로 확인해왔다. 한반도는 국제인권법 기준에서 예외인 섬으로 남았지만, 법조인들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끝없이 양심을 찌르는 문제였다. 법학개론 첫머리에서 최상급 기본권으로 배우는 ‘양심의 자유’에 근거가 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역거부가 공론화되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비롯한 많은 인권변호사들이 병역거부자 공익 변론에 나섰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단장이 된 이석태 변호사, 낙태죄 위헌소송 변호인단의 김수정 변호사가 초기부터 오래 병역거부자들과 함께했고, 임종인·이정희·진선미·박주민 등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변호사들도 있었다. 최초로 무죄를 선고한 이정렬, 처음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시환 전 판사 같은 이들이 나왔던 이유도 양심의 자유가 그만큼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공론화가 되고 빠르게 2년형에서 1년6개월의 징집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맞춤형 처벌로 낮아진 맥락도 다르지 않다.
최근 몇 년은 하급심에서 무죄판결이 쏟아졌다. 헌재는 합헌, 대법원은 유죄라고 했지만 기본권을 배우고 인권침해를 외면하지 못하는 판사들은 판결로서 이의를 제기했다. 평화운동의 주장은 하급심 판결문의 논리가 되고 마침내 헌재의 다수 의견으로 결정문에 담겼다.
“대체복무제는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것에 비하여 양심의 자유를 덜 제한하는 수단임이 명백하므로” “대체복무제 도입이 우리나라의 국방력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거나 병역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 상황을 이유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거나 그 도입을 미루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할 수는 없다.” 안보 상황 등을 합헌 이유로 들어온 2004년, 2011년의 결정문과 사실상 반대 내용이 2018년 결정문에 담긴 것이다. 소수자 인권 보호가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사법부가 국민의 여론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어쩌면 최초의 사례일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의제병역거부 역사는 알수록 참혹했고, 현실은 여전히 가혹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는 역사가 깊었고, 군사정권 시대에 징역형은 물론 가혹한 고문을 당하고 숨진 이들의 숨은 역사가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까지 3대에 걸쳐 징역을 살아온 처연한 가족사는 물론 형제가 수감된 사례가 숱했다. 한 해 수감자가 수백 명이고 70년 누적된 수감자 수가 2만 명에 이르는 현실은 국제 인권 문제가 됐다. 전세계 병역거부자의 90% 이상을 한국이 차지하는 통계는 상징적이었다.
한국 수준의 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은 2002년 한국과 안보 상황이 유사한 대만의 대체복무제 도입 현장을 취재했다. 물 샐 틈 없는 강력한 징병제와 구멍 난 제도가 만나면서 한국은 지구촌 병역거부 문제의 가장 치열한 현장이 되었다. 형사처벌을 하는 다른 나라의 병역거부는 입대를 하면 같은 민족을 적으로 총을 겨눠야 하는 소수민족 문제 등이 많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주요 의제로 자리잡았다. 한때 인권에 관심을 기울인 대통령들이 나오고 정부 차원의 해결 방법이 모색된 적도 있었다. 어쨌든 공론화 이후 18년,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늘었다.
한편 병역거부는 소수자의 이름이 되었다. 국가안보 논리에 저항하고 군사화된 남성성을 거부하는 이들이 자신을 해석하고 저항을 실천하는 근거가 됐다. 2001년 12월 오태양씨 이후 종교적 사유 외에 다양한 신념을 가진 병역거부자가 꾸준히 나왔다. 징병제를 통해 확산되는 남성성의 억압에, 저항하는 성소수자의 사연, 평범한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국가권력의 물리력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는 평화주의자의 고백 등이 병역거부 선언서에 담겼다. 한국 사회가 예민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책임을 돌려온 일들이 인권의 이름을 얻었다.
병역거부자들은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가 되어 반군사주의 평화행동을 확장했다. 대량살상 무기에 반대하는 행동을 무기전시장에서 벌였고, 외국에 수출돼 시위를 탄압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한국산 최루탄 반대 운동을 조직했다. 군대에 기대지 않는 평화를 알리고 넓히기 위해 애썼다.
분단 논리를 반복한 ‘이명박근혜’ 정부의 9년에선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법원 하급심에서 병역거부 무죄판결이 잦아졌지만,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수년간 미뤄지고 있었다. 다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고, 대결로 치닫던 한반도에 봄날이 왔다. 평화로 가는 남북관계 흐름에 이번 위헌 결정이 있다. 분단체제가 강요한 군사주의에 짓눌린 한국 사회가 변하는 데 마중물처럼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작됐다. 이런 면에서 이번 헌재의 결정은 오랜 병역거부 논란의 끝이 아니라 평화체제로 가는 한국 사회 변화의 시작이란 의미가 크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의 후퇴6월28일 헌재에서 기자회견을 연 전쟁없는세상 등은 군사적 업무와 관련 없고, 복무 기간이 징벌적이지 않으며, 입대 뒤에도 선택 가능한 대체복무제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의 주장일 뿐 아니라 국제 기준에 맞는 대체복무제의 요건이다. 이번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2019년 12월12일 전에 병역법 제5조 1항 병역 종류 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모든 입영 영장이 효력을 잃는다. 그때까지 국회가, 한국 사회가 어떤 대체복무제를 만들까. 이제 절반의 과제가 남아 있다.
신윤동욱 여론팀 기자 syuk@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뉴진스 “29일 자정 어도어와 전속계약 해지…광고·스케줄은 그대로”
[영상] 명태균 “조은희 울며 전화, 시의원 1개는 선생님 드리겠다 해”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러, 우크라 전력 시설 폭격…영하 날씨에 100만명 단전 피해
친한, 김건희 특검법 ‘불가→유보’ 기류 변화…친윤 공세 방어용인가
명태균 처남의 이상한 취업…경상남도 “언론 보도로 알았다”
이명박·박근혜가 키운 ‘아스팔트 우파’, 현정부 언론장악 전위대 노릇
포근한 올 겨울, 축축하고 무거운 ‘습설’ 자주 내린다
의사·간호사·약사 1054명 “윤석열 정책, 국민 생명에 위협”
전쟁 멈춘 새…‘이스라엘 무기고’ 다시 채워주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