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남색 인민복을 입은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걷는다. 맞은편에선 붉은 넥타이를 맨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 걸어오고 있다. 시선을 마주쳤을까? 공연무대처럼 마련된 중간 지점에 인공기와 성조기가 울긋불긋 번갈아 내걸렸다. 이윽고 마주 선 두 지도자가 굳게 손을 잡았다.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회담장 로비, 2018년 6월12일 오전 9시4분(이하 현지시각)께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정전체제 65년의 극한 적대관계를 딛고 성사된 만남이다. ‘역사적’이란 수식조차 무색하다. 악수는 12초간 이어졌다.
“거의 70년 세월이다. 생각해보라, 70년 전의 일이다. 극단적 유혈 갈등이 한반도를 유린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 수만 명의 용감한 미군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정전협정은 체결됐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전쟁이 곧 끝날 것이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트럼프)
냉전 해체 프로젝트 본격화오후 1시40분께 회담장에 나란히 앉은 두 정상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문서를 교환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무려 1시간5분에 걸쳐 열변을 토해냈다.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 프로젝트가 본격화했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자리였다. 그는 “과거가 미래를 재단할 필요는 없다.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건 아니다. 역사가 되풀이해 증명한 것처럼, 적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오늘 우리는 고단한 여정의 출발점에 섰다. 두 눈 부릅뜨고 경계하고 있지만, 평화는 언제나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반도에선 특히 그렇다. 이미 오래전에 했어야 할 일이다. 이미 오래전에 해결됐어야 할 문제다. 이제 우리가 해결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한 시대의 끝이 보이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시작됐다. 개전 3년1개월하고도 2일 만인 1953년 7월27일 교전 당사자 간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처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전은 ‘일시적인 적대행위 중단’일 뿐이다. 교전을 벌이던 쌍방이 합의에 따라 잠시 전투를 중단했을 뿐, 전쟁이 계속됐다. 1950년 6월25일 시작된 한국전쟁은 68년째 불을 뿜고 있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일은 아니었다. 정전협정 제13조 ㄷ항은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고 규정했다. 같은 조 ㄹ항은 “한국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 단 정전기간에 파괴, 파손, 손모 또는 소모된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은 같은 성능과 같은 유형의 물건을 1대1로 교환하는 기초 위에서 교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전협정은 ‘제한적인 기간’을 상정하고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정전협정 제40조 60항을 들여다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의 철거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실제 이 조항에 따라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회의가 1954년 4월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당시 회의의 주제는 두 가지였다. 한국전쟁과 함께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도 회담에서 풀어야 할 숙제였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논의는 한반도 통일 방안으로 초점이 모였다. 자유선거에 의한 의회 구성과 외국군 철수, 선거 공정성을 위한 국제 감시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1954년 4월27일 회의 첫 발언에 나선 변영태 외무장관은 중국군 철수 뒤 유엔 감시 아래 북한만 자유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8년 2월 유엔 결의에 따라 남한에선 이미 선거가 치러졌으니, 당시 선거를 하지 않은 북한에 한해 선거를 실시해, 공석으로 남겨놓은 한국 국회의 100석을 채우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북쪽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전 인민군 총참모장이자 정전협정에 서명했던 남일 외무상은 외국군 동시 철수와 남북한 동시 선거를 대신 제안했다. 미국은 남쪽 주장을, 중국은 북쪽 주장을 각각 지지했다. 팽팽한 대치 속에 시간만 가고 있었다.
냉전의 최전선 된 아시아바야흐로 냉전이 본격화하는 시기였다. 동유럽에선 바르샤바조약기구 구성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서유럽에선 유럽연합의 모체 격인 유럽경제공동체(EEC) 구성으로 맞대응할 참이었다. 아시아에선 중국과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이 ‘반공 동맹’ 결성을 추진했다. 제네바 회의에 참여한 존 포스터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이런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아시아가 냉전의 최전선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고위급 정치회담을 통해 한국전쟁을 끝내려던 정전협정의 의도는 달성되지 못했다. 제네바 회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3개월’을 염두에 두고 체결된 정전협정의 수명도 무한정 늘어났다. 미국은 1957년 정전협정 제13조 ㄹ항 무효를 선언하고,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다. 상호확증파괴(MAD)란 냉전의 눈먼 논리가 한반도를 핵전쟁 위기로 몰아갔다. 미국은 세계적 냉전이 해체 국면에 접어든 1991년에야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의 새로운 관계 설정과 관련된 문제들과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 포괄적이고 깊이 있고 진지한 의견을 교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 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그의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싱가포르에서 손을 맞잡은 북-미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이렇게 합의했다. ‘북-미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무엇일까? 북-미 두 나라가 냉전 시절의 적대관계를 끝내겠다는 뜻이다. 두 정상이 공동성명에 담은 4개항의 합의사항 가운데 첫손에 꼽은 것도 “평화와 번영에 대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북-미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북한 은 6월13일 두 정상이 “적대와 불신, 증오 속에 살아온 두 나라가 불행한 과거를 덮어두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며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 조미(북미) 협력의 시대가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피력했다”고 전했다.
평화체제와 맞바꾼 비핵화북-미가 적대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두 정상은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꼽았다. 곧 북-미가 적대관계 청산과 신뢰 구축을 중심축에 두고 평화체제 구축(북한 요구)과 한반도 비핵화(미국 요구)를 동시병렬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는 뜻이다. 파격이다.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이후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맞바꾸는 방식을 북핵 해법으로 고수해왔다.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적대관계 청산과 수교,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비핵화는 긴 과정이었고, ‘악마’는 도처에 숨어 있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북-미는 협상에 성공하고도 이행 과정에서 합의를 뒤집고 판을 깨기 일쑤였다. 북-미 정상이 공동성명에서 적대관계 청산과 신뢰 구축을 앞세운 것은 이와는 정반대의 접근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의 검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신뢰가 생기면 검증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파격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 정례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역시 ‘신뢰’를 위해서다. 그는 “우리가 대단히 포괄적이고 완벽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하는 상황에서, ‘전쟁연습’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연합군사훈련을 ‘도발적’이라고 여러 차례 표현했다. 그간 미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방어용’이며 ‘합법적’이라 일축해왔다. 중국 등이 제안한 ‘쌍중단’(핵·미사일 시험과 연합군사훈련 동시 중단)을 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이 역시 파격이다.
남한 방어를 위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북한의 반발을 부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에 나서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를 미국이 공식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관성은 힘이 세다. 변화는 저항을 부른다. 관성과 저항의 강도는 기존 질서가 유지돼온 세월에 정비례한다. 북-미 정상회담의 후폭풍이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1차 북핵 위기를 잠재운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조차 6월12일 북한 전문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유일한 반응은 실망뿐”이라고 적었다. 주류 언론은 더욱 격하게 반응했다. 는 김 위원장을 히틀러와 스탈린에 견주며,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특히 연합군사훈련 중단 문제를 두고 “한-미 동맹도 협상이 가능한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도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김정은에 휘둘린 트럼프?“지금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양보를 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보다 훨씬 적은 약속을 했다는 점뿐이다. 북한은 그저 1992년 처음 내놨던 ‘비핵화’란 목표만을 단순히 재확인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 보장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약속했다.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민주적 동맹을 맹비난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북한 독재자의 미덕을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도발적’이란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미국 정치권의 반응도 엇비슷하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내어 “성급하게 합의를 이끌어내느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미국 반열에 올려놓고, 북한 정권의 안전까지 보장해줬다”고 비난했다.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공동성명 내용이 대단히 부실해 우려스럽다. 기껏해야 검증 불가능한 약속만 얻어냈을 뿐이다. 잔인한 독재자에게 정당성만 부여해준 꼴”이라고 혹평했다. 향후 북-미 협상 과정을 선선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 준비로 분주했던 6월11일,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 단체인 핵무기금지국제운동(ICAN·아이칸)이 싱가포르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5단계 이행 방안을 제시했다. 핵무기 사용과 그로 인한 참혹한 인도적 결과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게 먼저다. 핵무기를 거부하기 위해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남북한이 동시에 가입·비준 절차를 거치는 게 그다음 단계다. 셋째 단계는 검증 가능하고 시한을 정한 계획에 따른 핵무기 제거 계획 마련이다. 넷째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비핵화와 검증, 핵시설 폐기 절차에 본격 착수하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적 핵군축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다. 북-미 협상과는 별개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하나로 모아내자는 얘기다. 아이칸은 따로 자료를 내어 “한반도 비핵화는 단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남한에 미국 핵무기를 영구적으로 배치하지 못하도록 하며, 항구적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를 지속가능한 비핵지대로 만드는 것까지를 포함한다”고 강조했다. 귀담아들을 만하다.
벌써 끝났어야 할 긴 전쟁평화는, 그저 오지 않는다. 오래전 끝났어야 할 긴 전쟁의 끝자락에서, 냉전의 망령은 요지부동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남북도, 북-미도 적대관계 청산을 위해 최고지도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65년 정전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총을 내려놓아야 마음이 모인다. 믿음이 있어야 산을 넘을 수 있다. 이제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관련 영상] 한반도 냉전해체 프로젝트 ‘이구동성’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