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공개된 엔씨소프트의 모바일게임 광고 영상에는 권투·만화·격투기·축구의 신구 세대 대표 주자가 등장한다. 권투 분야에서 ‘4전5기의 신화’ 홍수환과 함께 ‘한국 권투의 신성’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카메룬에서 온 ‘난민 복서’다. 지난해 6월 제1165호에 소개된 지 한 달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던 이흑산(35·본명 압둘라예 아산)이다.
난민법 이후 되레 낮아진 인정률이흑산은 요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명성 덕분에 광고를 찍었고, 영화 촬영도 예정돼 있다. 평일 낮에는 강원대에서 한국어 강의를 듣는다. 지인의 과수원에서 가끔 일하기도 한다. 저녁엔 본업인 권투 훈련에 힘을 쏟고 있다. 7월 말로 예정된 ‘WBA 아시아 웰터급 챔피언전’을 준비 중인데, 컨디션이 좋다. 아시아 챔피언이 되면 후원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훈련에 집중해 순위가 오르면 세계 챔피언 도전 자격이 생긴다. 꼭 세계 챔피언이 되지 않더라도 ‘파이트 머니’(시합에서 선수가 받는 보수)를 받아 원하는 대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
만일 아시아 챔피언 도전에 실패한다면…. 이흑산을 지도하는 이경훈 코치는 한국말이 아직 서툰 이흑산을 대신해 “형편이 어려우니 공장 같은 데 취직하지 않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난민 인정을 받으면 기초생활보장 수급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이흑산은 아직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이 코치와 이흑산이 춘천시 담당자에게 “춘천에서 난민 인정 사례가 없으니 확인해보고 답을 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게 지난해 7월이다. 일단은 아시아 챔피언전이 급해 행정 절차를 미뤄두고 있다.
그래도 이흑산은 지난해 ‘1.5%’ 바늘구멍을 뚫은 행운의 사나이다.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한 통계를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총 9942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121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가족 결합으로 인정받은 35명과 재정착 난민 30명, 취소자 1명을 제외하면 실제 심사에서 인정받은 사람은 55명에 불과하다. 난민 인정률은 해당 연도 난민 심사자 수 대비 인정자 비율이다. 복잡한 난민 심사자·인정자 구분을 거쳐 계산해보면, 2017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5%라는 초라한 수치가 나온다.
한국 정부가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7년까지 23년 동안 총 3만2733건의 난민 신청이 접수됐다. 인종·종교·국적·정치적 의견·특정사회집단 구성원·가족 결합·기타·내전 등 8가지 사유로 분류되는데, 종교와 정치적 의견에 의한 난민 신청자가 가장 많다. 같은 기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모두 합해봐야 792명밖에 안 된다. 난민 인정률이 40% 수준에 이르는 유럽 국가들에 견주면, 한국은 난민 인정 부분만큼은 아직 후진국이다.
전문가들은 2013년 난민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난민 인정률이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을 걱정한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인정률은 ‘9.7→6.6→3.9→1→1.5%’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난민 신청자 수가 2013년 1574명에서 2017년 9942명으로 6배 넘게 늘어난 반면, 난민 지위 인정자 수는 57명에서 121명으로 2배가량 늘어난 데 그친 영향이 크다.
최근 중동 등 난민 신청자 급증난민인권센터 쪽은 “최근 예멘과 시리아·이집트 등 중동 지역 정정 불안 국가에서 난민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난민 신청자 급증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난민협약에 충실하게 신청자들에게 난민 사유가 있는지를 심사해야 하는데, 인력 부족으로 심사 적체가 심각하고 심사 기준이 너무 까다로운데다 결과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들쭉날쭉하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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