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주 한겨레TV PD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감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는 독일의 16개 연방주 가운데 하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브란덴부르크 의회에서 30석을 확보해 제1당이 됐다. 보수당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이 21석, 좌파당 17석, 극우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10석, 녹색당이 6석을 얻었다. 사민당은 현재 좌파당과 연정을 이루었다. 3월27일 브란덴부르크 포츠담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의회에서 마리-루이제 폰 할렘(사진) 녹색당 주의원을 만났다. 야당 중에서도 가장 적은 의석수를 가진 녹색당이 주의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물으니 “연정 정부와 소통이 잘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정으로 타협의 정치를 오래 경험한 독일 정치인의 여유가 묻어났다.
한국과 차별화된 독일 정치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오랜 기간 정당에서 쌓아온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의원’이 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만난 지방 의원 서너 명 모두 10년 이상 정당 경험이 있었다. 할렘 의원도 20년 동안 녹색당에서 활동했으며, 2009년부터 주의원으로 일했다. 한국처럼 정당과 무관한 생활을 해오다 어느 날 갑자기 출마하는 사례는 독일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독일에선 의원직을 맡다 그만두면 다시 정당 당직자나 다른 의원의 보좌관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날 주의회 로비에서 인터뷰 장소까지 취재진을 안내해준 할렘 의원의 보좌관도 주의원 출신이라고 했다.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독일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튼튼한 정당과 경험 많은 정치인이지만, 정치인을 권력자로 여기지 않는 사회 인식도 중요한 요인으로 보였다.
이날 만난 할렘 의원은 ‘연정’을 독일 정치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연정으로 정당의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연정 과정에서 시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협상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정을 위한 예비 협상은 선거 전부터 이뤄진다. 브란덴부르크 연방주는 현재 사민당과 좌파당이 연정을 이루었지만, 선거 이전에는 녹색당도 (사민당과) 사전 협의했다. 본격적인 협상이 아니기 때문에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가볍게 얘기하는 수준이다. 다른 당은 어떤 현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정책이 비슷한지 알아보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의석수가 결정되면 누구와 연정을 이룰지 결정된다. 본격적으로 연정 협상을 할 때, 정당 색깔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협상 과정에서 정당이 원하는 정책, 반대하는 정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얼마나 정치를 잘하는지, 우리 의견을 얼마나 많이 반영하는지 평가할 수 있다.
현재 녹색당은 야당이지만 좋은 입지를 가졌다. 사민당-좌파당 연정 정부와 정책적 견해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요구하던 정책을 사민당이 똑같은 내용으로 당 정책으로 만들어낸 적도 몇 번 있다. 연정 정부는 이런 식으로 녹색당의 정책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브란덴부르크 지방선거(2019년 예정)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유리한 점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사민당-좌파당의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한다. 다음 선거에서는 녹색당과 함께 연정 정부를 구성해야 할 수도 있어, 벌써부터 녹색당을 친근하게 대하고 있다.
연방주가 실행할 정책은 이미 연정 협상문에 명시돼 있다. 협상문은 일종의 법안이다. 녹색당 의원으로서 이 안에 반대하더라도 이미 협상이 끝난 정책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물론 협상문에 담기지 않은 부분은 장관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 실행에는 예산이 필요하기에 함께 예산을 협의하는 다른 장관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해당 정책을 실행하기 어렵다.
하나의 질문으로 대답을 시작하겠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어떤 연방주는 예산이 넉넉해 교육 시스템을 잘 갖추고 다른 연방주는 예산 부족으로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기 힘들다면, 아이들이 어느 지역에 사는지에 따라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 그것을 원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바이에른은 독일 연방주 가운데 예산이 가장 풍부해 다른 주에 예산을 나눠주고 있다. 그런 바이에른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가난한 지역에 속해 다른 주에서 예산을 지원받았다. 현재는 옛 동독에 속한 지역들이 주로 다른 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있다고 100% 모든 게 평등하게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 통일 2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서독과 동독의 경제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나 아주 기본적인 평등을 보장해주는 것은 독일 전체의 화합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
기존 정치에 실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정치인들이 시민을 설득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극우당은 (브란덴부르크를 포함해) 동독 지역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일부 동독 지역에는 여전히 교육을 잘 받지 못하는 사람들,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데, 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정치가 우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통일 전 동독 시절보다 삶이 더 나빠졌다는 인식도 있다. 극우파들은 난민과 이민자를 수용하는 것에 반대할 뿐 아니라 독일어를 보존하기 위해 영어를 쓰면 안 된다고도 주장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자기 삶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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