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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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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게요 울지 마요

연극 상연하며 상처 치유하는 세월호 엄마들…

깊은 슬픔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을 때까지
등록 2018-04-10 17:15 수정 2020-05-03 04:28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공연에 앞서 무대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공연에 앞서 무대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다시 4월이 찾아왔다.

가랑비가 잠시 내리다 그친 4월3일 오후 4시 경기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분장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활동 중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 엄마 8명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지 1년 반 뒤인 2015년 10월, 지난 참사로 큰 내상을 입은 가족들을 위한 연극 치유모임으로 처음 생겼다. 이후 극단은 2016년 3월 정식 극단으로 닻을 올렸다.

이날 엄마들이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추모하는 ‘4월 연극제’에 올린 작품의 이름은 였다. 이 작품은 안산 연립주택에 사는 세월호 유가족과 이웃 주민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코믹극이다.

“나도 예진이랑 싸워보고 싶다”

노란리본 모양이 달린 목걸이를 목에 건 김도현씨(세월호 희생자 정동수군의 엄마)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분장을 했다. “벌써 4주기라니…. 어떻게 4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굵직굵직한 일만 기억나요. 아이를 잃었다는 것, 아이를 못 본 지 4년 됐다는 것, 집에 가도 아이가 없다는 것….” 김씨는 무심한 듯 말을 이어가다 끝내 말끝을 흐리고 만다. “그래도 어찌 시간은 흘렀고, 이제 밥을 먹으며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그러고 지내네요.”

그래도 김씨에게 4월은 여전히 아픈 달이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두 분 다 오랫동안 투병하다 돌아가셨어요. 그때도 많이 힘들었는데, 그거하고 자식 잃은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는 같이 따라가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으니까요.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래도 내 품에서 자식을 보내주면 마음이 좀 낫다고 하는데, 저희는 그러지도 못했고. 지금도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모르잖아요.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고, 화가 나요.”

김씨는 아들 동수가 다녔던 단원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그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반항적인 고등학생 역할을 맡았다. “극중 딸 역할을 하면서 내 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니 둘째가 중3 때 (세월호 참사로) 오빠를 잃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엄마한테 한창 투정 부릴 때인 사춘기를 그냥 보냈어요. 미안하죠. 이 연극을 하며 딸이 ‘이래서 이런 행동을 했구나’ ‘나랑 아픈 게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딸이랑 대화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도 싸울 땐 겁나게 싸워요.”(웃음)

옆에서 김씨의 이야기를 들던 박유신씨(정예진양의 엄마)가 한마디 툭 내뱉는다. “나도 예진이랑 싸워보고 싶다.” 박씨는 김씨의 딸 이야기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김씨가 웃으며 되받는다. “난 이제 (아들이 없으니) 모자가 될 수 없잖아. 며느리랑 팔짱 끼고 다니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하고…. 기자님, 우리가 이러고 살아요.” 엄마들이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은 자식을 잃은 상실감과 아픔의 표현이다. 깊은 슬픔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될 때까지, 이들은 어떤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온 것일까.

“‘박근혜 7시간’ 고통스럽고 화나”

노란 재킷을 입고 노랗게 머리카락을 탈색한 최지영씨(권순범군 엄마)는 동수 엄마 김도현씨의 권유로 연극을 시작했다. 노란리본 단원이 된 것은 지난해 7월부터다. 대본조차 보기 힘들어하던 최씨를 위해 대본 전체를 직접 녹음해준 이는 예진 엄마 박유신씨다. 최씨는 지난해 세월호가 있는 전남 목포신항과 경기도 안산을 차로 오가며 녹음 파일을 들으며 대본을 외웠다. “머리 있잖아요, 이거 멋 내려고 이렇게 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마음이 충족이 안 돼요. 날마다 허전해요. 머리로라도 내 심정을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최씨는 지난 4년 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해달라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삭발을 하고,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하고, 세월호 인양 작업을 지켜보려고 몇 날 며칠을 진도 동거차도에서 지내기도 했다.

분장실 한쪽에서 대사 연습을 하던 이미경씨(이영만군 엄마)는 “요즘 무척 침울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 세월호의 7시간과 관련해 검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20분께 첫 보고를 받았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 보도를 보고 화가 나고, 다시 숨이 죄어올 정도로 고통스러워요. 그 긴박한 상황에 침실에서 안 나왔다니.”

이씨는 분통을 터뜨리다 휴대전화 속에 담긴 아들 영만군의 사진을 본다. “나랑 닮았죠? 다들 얼굴만 봐도 누구 자식인 줄 안대요. 참 웃는 게 예쁜 아이였어요.” 이씨는 어제도 빨래를 개다 갑자기 영만이가 보고 싶어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고 했다. “우리 둘째(영만군)가 애교가 많았어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볼, 코, 이마에 뽀뽀를 자주 해줬어요. 그러면 영만이가 ‘히히’ 하며 웃어요. 잘 웃었어요. 남들은 애들이 ‘엄마, 엄마’를 입에 달고 산다는데 난 ‘영만아, 영만아’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제가 혼자 있는 걸 무척 싫어해요.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도 영만이를 부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데리고 가고. 내 껌딱지였어요.”

갑자기 밀려드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진다. 이씨는 “내가 죽으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 힘들어요.” 이씨는 “사람들이 올해가 세월호 4주기라는데 내겐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날 같아요. 아이는 내 안에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걸요. 아직도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나요.”

“실제 인물 닮아 연기할 때 힘들어”

세월호 엄마들이 선보이는 연극 는 자신들이 실제 겪어낸 지난 4년의 이야기다. 김태현 노란리본 연출가는 지난해 엄마들과 두 달 정도 함께하며 들은 이야기를 연극에 담았다. 극중에서 세월호 유가족 신순애는 세월호 참사를 겪기 전까지 밝았던 동혁 엄마(김성실씨)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고, 예술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하던 신순애의 딸 은주는 예진이가 모델이다. 김태현 연출가는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인물을 본떠 만들어서 그런지 어머니들이 연기할 때 힘들어한다. 그래서 리허설 땐 너무 아픈 대사는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세월호 보상금과 특례입학 등을 둘러싼 사회의 오해로 큰 상처를 받았다. 극 안에서 신순애는 직장 동료들에게 “누구는 돈이 없어서 난리인데, 누구는 갑자기 돈벼락 맞게 생겼네!” “죽은 애만 불쌍하지. 산 사람들 인생은 앞으로 편하지, 뭐!”라는 말을 듣는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가 실제 겪은 일이다. 영만 엄마 이미경씨는 “세상 사람들이 ‘세월호 엄마’라는 낙인을 찍는 것 같았다. 어딜 가서 밥을 먹어도 세월호 엄마라고 손가락질하며 수군대는 것 같다. 지금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 움츠러들게 된다”고 했다.

세월호 엄마들의 아픔을 녹여낸 연극은 이웃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김태현 연출가는 “우리는 흔히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4·16 이후 이웃을 대하는 나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픈 이웃의 손을 잡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이야기를 연극으로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도 연극의 의미를 말했다. “같이 연극하는 언니들이나 세월호 생존 학생 부모 등 모두를 감싸고 힘을 주기 위해 연극을 해요. 그래서 더 연극을 잘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내 아이가 무대에 선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아니었다면 연극을 할 생각조차 못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잊어도

공연 시간인 저녁 7시30분이 되자 무대 조명이 켜졌다. 세월호 엄마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네 번째 맞는 4월의 무대에서 한목소리로 (솔가와 이란)을 노래했다.

“곳곳에 걸려 있는 노란 리본/ 울먹이듯 우리 앞에 나부껴/ 빨리 떠나버린 작은 생명들/ 네 생각이 나 눈물이/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잊어도/ 우리는 기억할게요 울지 마요/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잊어도/ 우리는 기억할게요 아프지 마요/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잊어도/ 우리는 기억할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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