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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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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희대의 탐욕범

영장에 나타난 ‘악덕 상인’의 모습 … 부끄러움이 없었다
등록 2018-03-27 17:53 수정 2020-05-03 04:28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쪽에서 공개한 영상자료. 2000년 MBC기자였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준 BBK 대표(정면)한테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전 대통령과 김씨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물증으로 주목받았다. 한겨레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쪽에서 공개한 영상자료. 2000년 MBC기자였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준 BBK 대표(정면)한테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전 대통령과 김씨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물증으로 주목받았다. 한겨레

법원이 3월22일 발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은 그가 대통령은커녕 그 어떤 공직도 맡아서는 안 될 인물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구속영장 발부가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해 “(불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거나 범죄인 줄 몰랐다”고 부인한다. 그의 유죄 여부는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퉈질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사적 이익 챙겨

하지만 영장에 적시된 여러 혐의는 이 전 대통령이 공인 의식이 전혀 없는 공직자였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은 물론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공적 소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담하게 사리사욕을 챙겼다. 영장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한 푼이라도 더 사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악덕 상인’에 가까웠다. 만약 10년 전 검찰과 특별검사 수사로 영장에 적시된 혐의 중 일부라도 드러났다면, 그는 대선 승리는커녕 경선 출마도 못했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무렵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하는 같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여권(대통합민주신당)을 향해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다스는 법인 등기 서류에 나타난 대로 큰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공동 소유한 회사일 뿐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 결과 이씨와 김씨는 다스의 ‘바지사장’일 뿐 실제 소유주는 이 전 대통령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부터 제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7월까지 자신이 실소유하고 있는 다스의 회삿돈을 빼내 339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이 돈은 자금세탁을 거쳐 국회의원·서울시장 선거비용, 우호적 언론인 등에 대한 촌지, 국회의원 후원금 등으로 쓰였다. 또 다스 명의로 법인카드를 만들어 가족 생활비를 충당하는가 하면, 서울시장 시절에는 다스 법인자금으로 신형 에쿠스 차량을 사서 타고 다녔다.

이처럼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의 꿈 실현뿐 아니라 실제 삶을 영위하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럼에도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순간까지 다스는 자기 회사가 아니라고 잡아뗐다.

다스 소송 직접 챙겨 “이자까지 받아내라”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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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재벌 등 비리 기업인들의 ‘단골 메뉴’다. 하지만 ‘재벌 전과자’들은 비자금을 사적 용도로 쓰지 않고 회사 경영을 위한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썼다. 불법 자금을 만들었지만 그나마 회사를 위해 쓰는 일종의 ‘금도’를 지킨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2006년 형제간 싸움으로 촉발된 검찰 수사로 횡령 사실이 드러나 형사처벌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다. 그도 이 전 대통령처럼 회사 자금을 생활비로 썼다. 그로 인해 박 전 회장은 ‘생계형 사범’이란 조롱을 받았다. 박 회장은 회사 자금을 형제들과 함께 유산 분배 비율(큰아들 1.5, 아들 1, 딸 0.5)에 따라 매달 600만~700만원씩 나눠가졌다. 또 1년에 8천만원씩 ‘특별 보너스’도 받았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해 ‘미스터 쓴소리’라 했던 박 회장의 체면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뿐 아니라 경기도 가평 별장, 충북 옥천 임야는 처남 김재정씨, 서울 이촌동 상가, 경기도 부천 공장은 누나 이귀선씨 명의로 각각 차명 보유하고 있었다. 다스 직원 등 8명 명의로 된 차명계좌도 가진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 선거 유세 방송에서 전 재산의 사회 환원을 ‘공약’하며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살 조그만 집 한 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영장에는 그의 실제 재산 규모가 나와 있지 않지만, 검찰 안팎에선 최대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비자금 ‘사용’뿐 아니라 ‘관리’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복수의 비자금 관리인을 둬 재산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돈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크로스 체크’를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성우 전 다스 사장에게 매년 비자금 총액을 보고받으면서 동시에 처남 김씨로부터 따로 보고를 받은 것이다.

그의 치밀한 재산 챙기기는 국사에 바쁜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이어졌다. 다스의 BBK 투자금 140억원 반환 소송을 직접 챙긴 게 대표적이다. 이 전 대통령은 야인 시절인 2000년 김경준씨가 대표로 있는 BBK투자자문에 다스 자금 190억원을 투자했다. 이 가운데 50억원은 회수했지만, 나머지 140억원은 떼일 위기에 놓였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미국에 있던 김씨와 BBK를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며 압박을 가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친구 김백준씨를 총무비서관으로 임명한 뒤, 다스 관련 소송을 민정수석실 소속 공무원을 동원해 지원하게 했다. 또 외교관 경험이 전혀 없는 미국 변호사 출신 김재수씨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로 임명해 BBK 관련 소송을 전담하게 했다.

다스가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를 미국 소송대리인으로 내세운 것은 대선을 석 달 앞둔 2007년 9월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앞선 1심에서 패소하자 기존에 선임한 로펌을 불신하게 됐다. 이후 에이킨검프의 김석한 변호사를 추천받았다. 김 변호사는 2009년 9월 검찰의 압박 등에 부담을 느낀 김경준씨가 합의 의사가 있음을 밝히자 이 사실을 김백준 비서관에게 전했다. 김 비서관의 보고를 받은 이 전 대통령은 “이자까지 받아내라”고 지시했다. 투자원금 140억원과 별도로 이자 57억원까지 총 197억원을 받아낼 것을 주문할 정도로 소송을 세밀하게 챙긴 것이다.

“남은 돈 받도록…, 이학수 실장 찾아가라”

삼성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이 전 대통령은 김석한 변호사를 통해 삼성의 지원 의사를 전해듣고, 직접 승인했다. 김 변호사는 BBK를 상대로 한 소송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7년 9월께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만나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이 부담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삼성은 당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사건과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 등의 악재가 겹쳐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형사처벌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학수 부회장은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 전 대통령을 지원하면, 검찰 수사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 사실을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했다. 이학수 부회장은 이 회장의 승인을 받은 뒤 김 변호사에게 지원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청와대를 찾아와 이런 사실을 보고하는 김 변호사에게 밝게 웃으며 삼성의 소송비 대납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후 소송 내용 보고를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김 변호사에게 “삼성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계속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이학수 부회장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의 고맙다는 말은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영장에 2009년 12월31일 이건희 회장을 단독으로 특별사면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검찰은 “피의자(이 전 대통령)는 이 회장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고 적었다. 당시에도 여러 구설이 많던 이 회장의 단독 사면이 삼성의 소송비 대납 대가였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보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융 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 간 교차 출자로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해 오고 있는 삼성에 금산분리(산업자본이 은행 등 금융자본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정책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뒤 정부 입법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도록 지시해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이 개정되도록 했다.

이 전 대통령의 탐욕은 치밀하고 끝이 없었다. 삼성은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매달 12만5천달러씩 총 68억원을 에이킨검프에 송금했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12년 초 삼성이 보낸 돈 가운데 소송비용으로 쓰지 않고 남은 돈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김석한 변호사에게 이 돈을 받아내려 했다. 돈거래에 밝은 김 변호사가 응할 리 없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김백준 비서관에게 “이학수 실장을 찾아가서 김 변호사에게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해라. 받을 돈을 받아와라”고 지시했다. ‘충복’이던 김 비서관은 실제 이 실장을 찾아가 이 전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이 실장도 김 변호사에게 직접 전화를 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적립된 돈이 없으니 돌려줄 게 없다”였다.

이팔성 회장과 매관매직형 거래

이 전 대통령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매관매직’에 가까운 거래를 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08년 2월 당선인 사무실로 찾아온 고려대 동문 이 전 회장을 만났다. 영장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대선 때 최선을 다해 자금 지원을 해드렸다. 금융위원회 위원장, 산업은행 총재, 국회의원 공천까지 의향이 있다”며 한자리 챙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내게 복안이 있다. 그러니 조금 기다려보라”며 청탁을 들어주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자리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이었다. 이 자리가 성에 차지 않았던 이 전 회장은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게 ‘산업은행 총재가 아니라서 안 가겠다’고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수행비서인 청와대 행정관을 보내 이사장 공모에 응하도록 설득했고, 이 전 회장은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국거래소 노조 등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선임이 좌절됐다. 이 전 회장은 곧바로 우리금융지주회장에 임명됐다. 이 전 회장은 청와대 지원을 등에 업고 2011년 3월 그때까지 전례가 없었던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그가 한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은 20억원이 넘었다.

이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행태는 ‘감방 선배’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큰 차이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기업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을 때 구체적인 청탁을 받지도, 뇌물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들이 ‘대가성이 없으니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그러나 대통령 지위에 따른 포괄적 대가성이 인정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이들의 청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접수한 뒤 최대한 대가를 지불하려 했다. 그것이 공익과 충돌하는지 여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거래’를 중시하는 비즈니스맨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 재임 중 80억 뇌물 챙겨

고위 공직자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공직 기간에 재산 늘리는 것을 꺼린다. 이 전 대통령은 달랐다. 영장에 따르면, 그가 받은 110억원대 뇌물 가운데 대통령 재임 기간(2008년 2월25일~2013년 2월25일)에 받은 액수가 80억원대에 이른다.

“박근혜가 국사범이라면, MB는 탐욕범이다.”

3월19일 이 전 대통령의 영장이 법원에 접수되기 직전, 내용을 검토한 사정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그의 말대로 이 전 대통령은 ‘희대의 잡범’이었다. 부끄러움은 왜 늘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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