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은 엄청난 인물이었다. 파상공세로 밀어닥치는 의혹 제기에 “이게 다 거짓말인 줄 아시죠”라고 외치며 뻔뻔하게 버텼다. 자주 파안대소를 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거짓말을 하기 전에는 꼭 혀를 내밀었다. 그래서였을까. 모두 그의 추락을 기다렸지만, 정말 추락하기 시작하자 뭔가 시시해졌다. 그의 구속은 6개월 전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이젠 모두 예정된 일인듯 당연해 보인다.
MB를 만든 절댓값, 시각화MB가 37살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을 때, 사람들은 난생처음 ‘샐러리맨의 신화’를 보았다. 야간상고를 나온 저 사람도 했는데, 혹시 나도? ‘누구나’는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그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서울시장 시절 그가 ‘청계천’을 복원했을 때 사람들은 개발시대 이후 토건의 미래를 봤다. 손학규 전 경기도자사의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구호가 아직 유행하기 전이었다.
인공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달랐던 청계천 주변을 걸으며 사람들은 조금 더 여유롭고 행복해지는 상상을 했다. 그가 ‘희대의 악법’이라는 세간의 비난을 뭉개며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출범시켰을 때, 어떤 사람들은 보수의 영구집권 가능성을 점쳤다. 가뜩이나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을 보수세력이 완전히 장악해버리자 MB를 향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찬양하는 목소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눈에 보이게 하는 힘. 시각화(visual- ization)는 오늘의 MB를 만든 절댓값이다. 그는 보여줬고, 보여줘서 믿게 했고, 보이는 것만이 우리가 이르러야 하는 곳임을 설파했다. MB가 이룬 대부분의 성공이 그랬다. 건설회사 사장 시절은 물론 정계에 입문한 뒤 그는, 목표를 가시적으로 제시하고 시각적으로 재현해간 독특한 유형의 정치인이었다. (그를 모델로 한 KBS 드라마다)을 건너 개천에서 솟아난 진짜 용이라는 세간의 인물평이 이 독특함에 환상을 보탰다.
서울시장 시절 MB는 행정을 시각화하는 전략으로 모든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영감을 줬다. 짧은 정치 경력에도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꺾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과정은 ‘한때 배고팠지만 부자가 된’ 그의 삶을 시각화한 전략이었다.
예컨대, 서울시장이 된 지 딱 1년 되던 날 MB는 두 가지를 보여줬다. ‘G-R-Y-B’라는 알파벳 기호(새로 개편된 버스의 색깔을 딴 앞글자. 당시 누리꾼들은 ‘지랄염병’의 약자라고 했다)로 형상화한 버스운영체제 개편안과 청계천이었다. 당시, 버스운영체제 개편과 청계천 공사 시공이 취임 1주년에 맞춰 발표된 것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행정을 시각 기념일로 대체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이자 진보 진영의 딴지걸기로 치부됐다. MB는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말로 그를 향한 비판에 귀를 닫았다. 재개발 건설 현장에서 일방적으로 공사를 밀어붙이는 작업반장의 수완으로는 손색없을지 몰라도, 1천만 시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행정 책임자로서는 분명 함량 미달인 자세였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걸 제대로 따지지 못했다. 뭔가를 만들어 보여주는 MB의 힘이 너무 셌기 때문이다.
익숙한 낡은 것의 부활행정을 시각 기념일로 만드는 것이 MB가 시작한 특별한 전략은 아니다. 특정 기념일에 볼거리를 만들던 행정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질리게 반복됐던 풍경이다(기념일에 맞춰 주요 토목공사를 벌이거나 끝내는 것은 이명박 이전에 ‘원조 불도저’로 불렸던 김현옥 시장(재임 기간 1966~70년)의 전매특허였다). 그럼에도 MB의 시도는 낯설었다. 당시는 ‘참여민주주의’라는 긍정적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였다. 참여민주주의와 공존하는 불도저 서울시장. MB는 오지 말았어야 할, 익숙한 낡은 것의 부활이었다. 그러나 희한하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MB가 만든 서울광장을 생각해보자. 2002 월드컵을 경유하며 한국 사회에 벼락처럼 쏟아졌던 열정을 MB는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잔디광장으로 박제화했다. 민주사회에서 광장이 지녀야 하는 의미를 한낱 시장 집무실의 푸르른 풍경으로 조경한 돌이킬 수 없는 퇴행이었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왜? 보기에 그럴싸했기에.
이렇게 된 데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행정을 시각화하는 MB의 전략을 언론은 호의적으로 다뤘다. 반대자들은 그것을 ‘신개발주의’ ‘네오파시즘’ ‘불도저 리더십’ ‘유사 박정희 모델’ ‘졸속 행정’ ‘밀어붙이기’ ‘고삐 풀린 개발주의’ ‘포클레인의 후예’라고 했지만, 보수언론은 MB의 남다른 추진력에 감복하며 구심점을 잃은 보수정치를 구할 새 이름으로 그를 호명했다. MB의 실제와 현상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괴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 괴리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모든 비극이 잉태됐다. MB의 서울시가 반대자를 배척하고, 비판자를 배제하는 방식의 토목 행정을 부활시키자 한 외신은 “서울시가 ‘어린(young) 민주주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기 내에 어떻게든 청계천 공사를 완료시키겠다는 속도전의 욕심 탓에 민주적 토의나 민관 합의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MB식 ‘총동원 체제’는 사실 이해관계 대립과 갈등이 첨예한 현대 도시에선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서울시의 모습을 민주주의 미성숙이 낳은 풍경으로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이 비판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때 간파했어야 하는 MB의 실체를 못 봤거나 혹은 고의적으로 외면했다. 어쨌든 속도전 끝에 2005년 10월 청계천이 완공되자 누구도 저항하지 못했다. 도심을 서에서 동으로 꿰뚫는 5.4km의 그 인공 물길은 MB를 청와대 앞으로 데려간 환상의 물길이 됐다.
취임 100일 만에 쌓은 ‘명박산성’MB가 언론의 힘을 알아챈 것은 역설적으로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보수언론은 2008년 MB를 흡사 한국 사회에 찾아온 마법사처럼 묘사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정체불명의 외래어 한마디에 모두가 열광했다. 1% 부자 ‘고소영·강부자’를 위한 마술이 시대정신처럼 격상됐다. 민주주의 같은 것이 이미 지나간 버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보편적 권리와 형평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비루해 보였다. 삶의 여러 가치가 경제적 이익으로 대체되고, 대통령과 국민의 거리가 위계적 질서로 재조직되는 과정은 민주화를 되돌리는 퇴행이었지만, MB는 흡사 ‘돈의 신’처럼 이 모든 비판에서 자유로웠다.
물론 반작용도 있었다. MB는 취임 100일 만에 ‘명박산성’을 쌓았다. 2008년 5월 느닷없이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는 취임 초 MB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MB는 청와대 앞 사거리를 시위대에 내주고 인왕산에서 홀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 뒤 겨우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차 없는 반격이 시작됐다. 시민의 외침에 휘청했던 이때의 경험은 MB 정부 내내 반대자를 잔인하게 박멸하는 근거가 됐다.
MB 정부가 시행한 공영방송 장악과 종편 출범은 ‘매체의 문제’가 아닌 ‘정치의 문제’였다. 단순히 미디어 수를 늘리고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보수정치의 몫을 키우는 기획이었다. 종편 출범을 가능하게 한 입법을 대다수 언론 종사자들은 ‘언론 악법’이라고 했다. 그 법안만큼 입법 전부터 반대 여론이 뜨거웠던 법률은 일찍이 없었다. 종편을 둘러싼 범정부 차원의 ‘특혜’와 범언론적 ‘투쟁’이 서로를 노려보던 형국에서, MB는 ‘글로벌 미디어’와 ‘일자리 창출’이란 경제 논리를 앞세웠다. 불가능한 미래를 호기롭게 당겨쓰는 MB의 화법에서 종편은 태생부터 극단적인 정치 ‘편향’을 갖게 됐다. 이후 지금까지 종편은 ‘의무 전송, 광고 협찬 영업 혜택’ 등 정치적 수혜를 거둬들이면 도무지 생존이 불가능한 집단으로 남았다.
진짜 적폐는 우리의 얄팍함일지도MB의 시대는 진정 끝난 것일까. MB 같은 정치인이 다시 등장하면 한국 사회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린 여전히 수단과 방법이 좀 어긋나더라도 들통나지만 않는다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을 원하진 않는가. 전에 없었던 것이란 이유만으로 열광하진 않는가. 세속적 욕망을 자극하는 누군가들의 약속에 정녕 홀리지 않을 수 있을까. MB의 진짜 적폐는 보이는 것을 믿었던, 물신을 신봉했던 우리의 어떤 얄팍함일지도 모른다. MB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부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MB는 우리가 만든 세계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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