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5당 체제에서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야당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강한 야당이 되겠다”며 벼르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밖으로도 ‘사면초가’다. 미·중·일·북한과의 사이에서 ‘그림자’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다시 찾아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두고 그는 시험대 위에 올랐다.
5월10일 아침 8시9분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의 72시간을 쫓았다. ‘탈권위’의 소탈한 대통령 모습을 보이면서도 저돌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는 그의 광폭 행보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취재 송채경화 기자, 편집 허윤희 기자, 디자인 장광석
5월10일 오전 10시20분.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정문 앞 도로에 경호 인력 수백 명이 쫙 깔렸다. 인도와 도로 사이에는 허리보다 높은 철제 울타리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아침 8시9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당선인 확정 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이순진 합참의장에게 전화로 우리 군 상황을 보고받은 뒤, 오전 9시30분 서울 홍은동 자택을 출발해 10시10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그는 방명록에 고개 숙여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 2017. 5.10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적었다.
우연히 자유한국당 당사 안에서 만난 대통령
이후 문 대통령이 향한 곳은 제1야당인 여의도동 자유한국당 당사였다.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도로를 건너 한 블록 떨어진 자유한국당 당사 앞까지 가는 길 역시 허리에 무전기를 찬 경호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러다 대통령 모습 제대로 취재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안고 당사 앞으로 향했다. 그 앞에는 더 많은 경호 인력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경호원들은 당사로 성큼 걸어 들어가는 기자를 쳐다볼 뿐 아무도 막지 않았다. 평소 자유한국당 당사 앞은 아무 일이 없을 때조차 전경들이 지키고 있었고 문 앞에서 신원을 확인한 뒤에야 출입을 허락하곤 했다. 그런데 심지어 대통령이 방문한다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경호원 한 명이 긴급하게 들어와 말을 걸었다. 대통령이 도착했으니 “잠시만 옆으로 비켜달라”는 얘기였다. 오전 10시25분, 일정보다 35분이나 빠른 시각이었다. 기자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거나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회담이 예정된 6층에 올라가 있어 1층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통령과 같이 엘리베이터 타도 되나요?”
“하하, 글쎄요. 타는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비좁을 텐데요.”
잠시 뒤 문재인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있는 대통령을 향해 재빨리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댔다. 역시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권위주의적인 경호 속에 꽁꽁 싸여 있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그 ‘작지만 큰 차이’에서 시대가 변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문재인 시대’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까.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어달라는 ‘촛불’의 기대를 한 몸에 안은 문재인의 대한민국이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9일 대선에서 41.08%(1342만3800표)를 얻어 24.03%(785만2849만표)에 그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멀찌감치 밀어내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557만 표 차이는 대통령 당선인과 2위 낙선인 사이의 최다 득표 차다.
이 승리로 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보수정권 9년 동안 쌓인 대한민국의 여러 적폐를 청산하고, 정체 상태에 빠진 대한민국의 경제를 되살리며, 북핵 문제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적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준엄한 의무를 한 몸에 떠안게 됐다.
문 대통령 앞에 놓인 가장 큰 현실적 어려움은 여소야대라는 정치 상황이다. 5월10일 ‘야당’에서 ‘여당’으로 자리가 바뀐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는 120석에 불과하다. 현재 5개 정당이 난립한 국회 의석 구도상 다른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안정적 정국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협치가 불가피하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통합’과 ‘정의’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 대통령은 현충원 참배를 마친 뒤 첫 일정으로 여당보다 먼저 자유한국당 당사를 향했다. 자유한국당은 당분간 문재인 정부와 ‘허니문 기간’을 이어가겠지만, 작은 실수가 발견되는 순간 정부를 향한 공세의 고삐를 더욱 세게 쥐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간곡하게 협조를 청하겠다”는 문 대통령에게 “대통령께서 야당 대표를 할 때보다 저희가 더 강한 야당이 될지도 모른다”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을 찾아 협조를 요청했다.
4당 방문을 마친 문 대통령은 오후 12시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약식 취임식을 했다. 부인 김정숙씨와 나란히 앉은 그의 얼굴엔 지난 64년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연단에 선 문 대통령이 취임사를 읽었다. 이날 그가 강조한 것은 ‘통합’과 ‘정의’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몇 달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겪었습니다. 정치는 혼란스러웠지만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앞에서도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앞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승화시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위대함입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중략) 거듭 말씀드립니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이북 출신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고 문용형씨는 함경남도 흥남 솔안마을 출신이다. 명문이던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흥남시청에서 농업계장·과장을 했다. 해방, 분단,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 속에 문 대통령 가족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문용형씨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한다. 가족이 정착한 곳은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던 거제도였다. 문용형씨의 수입이 턱없이 부족해 부인 강한옥(90)씨가 달걀 행상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이 무렵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가족은 문 대통령이 7살께 부산 영도로 터전을 옮겨 양말 도매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부친 문용형씨는 1978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부친이 숨지자 모친이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좌판 장사와 연탄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문 대통령은 방과 후나 휴일에 어머니를 도와 리어카를 끌며 연탄을 배달했다. 문 대통령은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수석 입학한 뒤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다 옥살이를 했다. 사법연수원을 2등으로 마쳤지만 대학 시절 전과 탓에 판사에 임용되지 못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인생 최대 변곡점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
문 대통령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82년 법무법인 부산의 동업자로 만난 인권변호사 문재인을 20년 뒤인 2002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불러들인다. 노 전 대통령이 숨진 뒤 문 대통령은 2011년 6월 출간한 책 에서 이렇게 적었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도식을 마치고 밤에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소주 한잔 합니다. 탈상(脫喪)이어서 한잔, 벌써 3년이어서 한잔, 지금도 ‘친노’라는 말이 풍기는 적의 때문에 한잔.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두고 낯선 세상에 들어가는 두려움에 한잔. 저에게 거는 기대의 무거움에 한잔. 그런 일들을 먼저 겪으며 외로웠을 그를 생각하며 한잔.”
그로부터 반년 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제18대 대선에 나섰다. 결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6%포인트 차이로 뒤진 패배였다. 상식적인 사회를 희망하던 이들은 좌절했고, 야권은 패배 앞에서 속절없이 분열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국가는 무능했고, 물에 빠진 아이들이 숨져가는 7시간 동안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2년 반 뒤, 영원할 것 같았던 박근혜 정권에 결정적 균열이 생겼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분노한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분노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촛불의 열망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갈가리 찢겼다. 지난겨울 대한민국의 광장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은 “통합과 공존” “권위주의 청산”이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깨끗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빈손으로 취임하고 빈손으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되어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습니다.”
취임식을 마친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천천히 이동하며 차 밖으로 몸을 내놓고 길거리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카퍼레이드’를 했다.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자 보도에 선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질렀다. 카퍼레이드를 마친 문 대통령은 오후 1시께 청와대 앞 분수대 삼거리에서 주민들의 환영 인사를 받은 뒤 청와대로 들어갔다.
제1호 업무지시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 방안’
문 대통령은 오후 1시20분 황교안 국무총리와 오찬을 한 데 이어, 오후 2시40분 대통령으로서 첫 업무에 나섰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내정하고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임명했다. 대통령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 이들을 임명한 이유를 밝혔다. 밀봉 교지를 내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달랐다. 국민은 비로소 ‘정상적인’ 대통령을 맞이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하루 종일 “대통령이 그냥 기자회견을 하고 말을 하고 대화를 하고 사람들과 자연스레 만나고 악수하고 인사할 뿐인데 그게 신기하고 놀랍고 막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아닌가”라는 반응이 넘쳐났다. 하얀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거니는 모습도 공개됐다. 시민들은 그 청량한 모습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국민의 83.8%는 ‘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직후인 오후 3시30분,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 방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하달했다. 대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운 ‘일자리 정책’에 대해 굳은 실행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대국민 메시지였다. 이틀 뒤인 5월12일 오전에는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행사에서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공항 가족 1만 명 모두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을 지나며 대한민국은 내우외환에 빠졌다. 어쩌면 국내적 혼란보다 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외교적 곤경이다.
문 대통령 앞에 도사린 가장 큰 문제는 북핵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북핵 문제를 방치했고, 보수정권은 ‘북한 붕괴론’이라는 미몽에 빠져 남북관계를 포기했다. 그 사이 비극이 이어졌다.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2011년 11월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2016년 2월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던 개성공단마저 폐쇄됐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발언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과 북핵 위협을 내세워 한국을 향해 “역사 논쟁은 그만두고 안보 협력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12·28 합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나왔다. 미-일 양국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미-일 동맹을 강화한 뒤 그 여세를 몰아 한-미-일 3각동맹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한국을 중국 봉쇄를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을 둘러싼 외교적 곤경의 상징적인 예가 문 대통령 취임을 보름 앞두고 감행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기습 배치였다.
사드 문제 등 난마처럼 꼬인 외교 현안
난마처럼 꼬인 외교 현안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 관계의 재조정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전화 회담을 한 이는 ‘필연적’이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밤 10시30분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이뤄진 첫 한-미 전화 회담에서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워싱턴을 방문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외교부에선 6월께 문 대통령의 방미를 준비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인 조처를 취하도록 설득하는 동시에, 사드 배치로 인해 한국이 감내해야 할 ‘난처한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됐다.
사드 문제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 안정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한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이튿날인 5월11일 낮 12시에 이뤄진 첫 한-중 정상 통화에서 은근한 어조로 문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했다. 시 주석은 “중-한 양국 수교의 초심을 명심해 서로의 중대한 관심 및 정당한 이익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여기서 시 주석이 말한 ‘서로의 중대한 관심과 정당한 이익’은 다름 아닌 사드 배치 문제다. 문 대통령은 이에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이 문제에 서로 이해를 높여가면서 양국 간 소통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국민들과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제약과 제재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특별한 관심 기울여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오후 2시35분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그 합의(위안부 문제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국민들의 정서와 현실을 인정하면서 양측이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했다.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재협상’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내세워 한국인의 민족 정서를 자극하지 말도록 암묵적인 경고를 날린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독일, 러시아 정상과 차례로 통화하는 등 정상 외교를 이어갔다.
대표적 ‘적폐’ 국정교과서를 폐기하라
문 대통령의 광폭 행보는 업무 사흘째인 5월12일에도 이어졌다. 그는 이날부터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본관 가까이에 새로 지은 비서동인 여민관(옛 위민관)에서 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용했던 청와대 관저가 아닌 집무실에서 참모들과 함께 호흡하며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조처 하나를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의 제2호 업무지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 때 을 제창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은 이명박 정권이었고, 이 조처는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전날 제창을 가로막았던 박승훈 보훈처장을 경질했다. 문 대통령은 그와 함께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 ‘적폐’인 역사 국정교과서를 폐기하라고 교육부에 지시했다.
이제 올해 5월18일에 열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는 모두 함께 일어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대통령은 노래 가사처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5년 뒤 그가 취임식 연설 때 약속한 것처럼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시민”이 될 수 있을까.
대통령 당선 뒤 이어진 문재인의 72시간. 준비된 안정감 속에 개혁적 색채를 분명히 하는 문재인 대통령 시대는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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