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육아 아빠’들이 말하는 ‘아빠 육아’공약의 허실

‘주양육자’ 문제에 고민 깊은 아빠 4명이 대선 육아 공약을 놓고 격정 토론을 벌였다
등록 2017-04-05 11:29 수정 2020-05-03 04:28
2017년 대선을 맞아 주요 대선 후보들의 육아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육아를 ‘엄마’의 일로 한정했던 과거에 비해 부모 공동의 일로 보는 정책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까지 나온 정책만으로 부모 공동육아의 미래를 펼쳐낼 수 있을까?
은 육아에 관심 많은 아빠 4명을 모아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선 여전히 육아는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빠가 많았고, 육아를 자신의 일로 여기는 아빠들은 좌담회에 참석할 시간이 부족했다. 어렵게 모인 이들에게 ‘아빠 육아’를 하면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들었다. 부모 모두 ‘주양육자’가 되기 위해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해주기 원하는지도 물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나온 육아 공약 가운데 쓸모 있는 것은 무엇이고 비현실적이거나 필요 없는 것은 무엇인지 평가했다. 진행은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맡았다.
각 당의 경선 과정에서 발표한 대선 주자별 공약을 토대로 향후 유권자들이 출산·육아 공약을 평가할 때 눈여겨볼 핵심 쟁점을 ‘아빠’ ‘재원’ ‘격차’ 세 키워드로 정리했다.
취재 송채경화·진명선 기자, 사진 박승화 기자, 편집 홍석재 기자, 디자인 장광석
3월25일 서울 양재동 한 모임카페에 4명의 ‘육아 아빠’들이 모여 육아의 고충을 얘기하고 있다. 진행은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맡았다. 왼쪽부터 박진호(가명)씨, 이신우(가명)씨, 서천석 박사, 최수환씨, 윤사비씨.

3월25일 서울 양재동 한 모임카페에 4명의 ‘육아 아빠’들이 모여 육아의 고충을 얘기하고 있다. 진행은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맡았다. 왼쪽부터 박진호(가명)씨, 이신우(가명)씨, 서천석 박사, 최수환씨, 윤사비씨.

3월25일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모임카페에 예비 아빠 1명을 포함해 4명의 아빠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면 일과 육아의 균형을 찾을지 고민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고됐다. 낮 동안 일 속에 파묻혀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비한 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육아가 더 이상 ‘엄마’만의 일이 아닌 상황에서 겪는 ‘워킹대디’의 고충은 ‘워킹맘’ 못지않게 깊었다.

이들은 ‘주양육자’ 지위에 다가가고 싶어 했지만 온전히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유연근무제로 일찍 퇴근해 첫째아이의 하원을 책임지는 ‘모범생 아빠’ 이신우(35·가명·맞벌이)씨 가정도 결국 육아에 들이는 시간은 아내가 더 많았다. 박진호(40·가명·맞벌이)씨는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탓에 주중에는 아이 얼굴조차 보지 못한다고 했다. 아내가 집에서 주로 육아를 책임지는 최수환(43)씨는 아내 없이 1박2일 동안 아이를 돌보다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일화를 전했다. 내년쯤 아이를 낳은 뒤 스스로 ‘주양육자’가 되기로 결심한 미술작가 윤사비(40)씨는 선배 아빠들의 이야기를 듣고 “군대 가기 직전의 기분”이라고 했다.

주요 대선 주자들이 육아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들은 정책과 현실 사이 간극이 크다고 지적했다. 육아의 책임을 온전히 엄마에게만 지우던 과거에 비해 육아를 부모의 일로 바라보는 육아 정책이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 육아’를 위한 현실적 정책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양육에 필요한 돈을 조금씩 늘려주는 방식도 필요하지만 더 큰 틀에서 ‘육아가 행복한 사회’로 견인해주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해 중요하게 개혁할 부분 중 하나가 ‘노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빠도 육아휴직을 마음껏 하고 육아로 자리를 비워도 눈치 보지 않을 직장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 양극화, 경쟁 구도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행은 의 저자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맡았다. 서천석 박사는 “업무가 줄어들고, 육아를 위한 공공 시스템이 갖춰지고, 삶 속에 육아가 자연스럽게 흘렀으면 하는 게 우리 모두가 가진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실현될지 (대선 주자들이) 아직까지 고민이 깊지 않아 단편적 정책 위주로 나온다”고 평가했다.

‘하루 6분 육아’아빠들, 종일 육아뒤 응급실
“아이 때문에 휴가를 내는 건 제도적으로는 허용하지만, 분위기는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최수환

“아이 때문에 휴가를 내는 건 제도적으로는 허용하지만, 분위기는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최수환

서천석  직장에 다니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 아빠들의 평균 육아 참여 시간은 하루 6분으로 발표됐어요. 여러분은 평소 육아에 어느 정도 시간을 쓰나요.

박진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육아를 못한다고 봐야 해요. 집은 서울인데 직장은 경기도라 새벽 5시20분에 나가요. 돌아오면 밤 10시나 9시. 빨리 들어오면 저녁 8시인데 밥 먹고 아이들 재우면 끝납니다. 한국 평균 6분보다는 많을 줄 알았는데 딱 그 정도네요. 대신 주말에 할애를 많이 하려고 해요. 나중에 아빠 대접을 받아야 하니까. 그게 또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아요.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더러 있어요. 아내가 전적으로 육아를 합니다.

이신우  저는 조금 특수한 경우인 것 같아요. 둘째아이를 가진 뒤 5분 거리인 회사 옆으로 이사를 갔어요. 유연근무가 가능해서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합니다. 직무 성격상 마감이 아니면 퇴근은 정시에 할 수 있고요. 오후 5시30분쯤 어린이집에서 첫째아이를 데려와 이후 육아를 계속해요. 주로 첫째랑 놀아주는데, 사실 둘째는 거의 손을 못 대요. 둘째는 아이 엄마와 장모님 등 여러 사람이 돌봅니다. 최근 7개월이 돼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이제야 아내가 조금씩 자기 일을 할 수 있죠. 아내가 박사후 연구원인데 시간 활용은 조금 유연한 편이에요. 둘째가 하원하면 그 뒤 쭉 아내가 돌봐서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저보다 길죠.

윤사비  저는 미술작가인데 직장인인 아내에 비해 시간을 조정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제가 전업주부 구실을 하는데, 앞으로도 육아는 제가 담당할 계획입니다.

최수환  아무래도 아버지가 육아에 참여하는 게 현실에선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경우 평일 보통 한두 시간 정도인데, 아이를 돌보기보다는 주로 설거지나 청소를 합니다. 아내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은데 아이가 주중에 아빠와 떨어져 있다보니 엄마를 더 찾아요.

서천석  여기 모인 아빠들은 한국 평균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이상이에요. 아빠의 육아 참여 시간이 OECD 회원국 평균이 하루 43분이거든요. 물론 그 평균이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사라졌다, 그러면 육아를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이신우  당장 저에겐 현실이에요. 다음주에 아내가 열흘간 해외 출장을 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둘째아이는 장모님 댁에 열흘간 맡기기로 했어요. 첫째는 제가 최대한 시간 조정을 해서 어린이집 등·하원시켜야죠.

박진호  한 달에 두세 번 아내가 토요일 오전 근무를 해서 반나절을 제가 돌봐요. 그런데 밥도 잘 못 챙겨주고 주중 동안의 피로 때문에 늦잠 자느라 잘 놀아주지도 못해요. 아내가 오후에 온다는 생각 때문에 더 안일해지는 것 같습니다. 만일 아내가 해외 출장이라도 간다면 에너지를 더 많이 쏟을 것 같은데, 생각만 해도 긴장되네요.

최수환  아픈 기억이 있어요. 아이가 9개월 때 아내가 일 때문에 1박2일 지방에 갔어요. 저 혼자 하루 종일 아이를 보고 저녁에 재웠는데 그날 되게 힘들어서 밤에 응급실에 갔어요. 아이가 아니라 제가요. 그날 쌓인 피로가 터졌나봐요. 낮엔 잠시 볼 수 있겠지만 밤까지 돌보는 건 정말 힘들어요. 아무래도 아이에 대해 잘 모르니까요.

윤사비  듣다보니 굉장한 두려움이 느껴지네요. 제가 육아 담당자가 되잖아요. 군대 가기 직전 같은 느낌이에요. 힘은 들겠지만 그냥 하면 되지 뭐, 이 정도 추상적인 선에서 생각해왔는데 지금 응급실 얘기까지 들으니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웃음)

가족 보다 ‘회사친화’ 강요받는 사회
“정부에서 기업에 이상한 걸 시키지 말고 육아를 더 강조해서 말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박진호

“정부에서 기업에 이상한 걸 시키지 말고 육아를 더 강조해서 말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박진호

서천석  (한 분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육아가 아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네요. 육아는 기본적으로 엄마가 하고 아빠는 돕는 차원이라고 여기는 게 우리나라 아빠의 현주소입니다. 잘 돕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어도 좋은 아빠로 대우받는 현실이죠. 저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라서 제가 더 잘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잘 되는 것 같아요. 엄마들은 자신이 마지노선이어서 무너지면 끝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합니다. 우리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육아는 굉장히 힘든 일이고 버티면서 하는 거죠. 그런데 아빠들은 내가 마지노선이 아니고 다음 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실력이 잘 안 늘어요. 직장에서 아이 때문에 좀 일찍 퇴근한다거나 휴가를 내야겠다는 말을 해보신 적 있나요?

이신우  우리 회사는 여성이 많고 그런 식의 자율성이 높은 편이에요. 또 마침 우리 부서 남자들 모두가 육아를 하고 있고요. 아이가 한두 명 있고 나이대도 비슷해요. 그래서 (그런 요청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어요. 이게 특수한 경우이긴 하죠.

서천석  가정친화적 조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박진호  우리 회사는 전형적으로 조직 친화적이에요. 저는 개발자인데 항상 일정에 쫓겨요. 조직이 크다보니 본부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본사가 더 빡빡한 편입니다. 저희 부문은 그래도 졸업식, 입학식에 간다고 하면 아무 말 안 해요. 하지만 육아 관련 휴가가 너무 자주 있으면 안 돼요. 어쨌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끝내야 하는 분위기죠. 표면적으론 연·월차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게 나중에 성과평가로 어떻게 돌아올지 모릅니다.

최수환  저희도 조직에서 심하게 관리하진 않아요. 아이가 아프면 급하게라도 반차나 연차를 쓸 수 있고요. 대신 아무리 양해해주더라도 완전히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어요. 제가 회사에 안 가면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좀 돼요. 제도적으로는 허용을 하지만, 분위기는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윤사비  저는 직장생활을 안 해본 주부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요. 조직 차원에서 필요한 업무를 특정 담당자만 처리할 수 있다면 그건 굉장한 리스크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건 담당자가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조직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잖아요. 만일 20∼30대 미혼 사원을 채용한다면 그가 앞으로 결혼할 수도 있고 결혼 뒤엔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예요. 그런데 회사에서 이 문제를 적극 해결하지 않고 직원이 왜 “내가 아이를 낳으면 이 업무는 어떻게 하지, 아예 그만둬야 하나” 고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적 육아 시스템 갖춰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짐보리 대치센터에서 3살 아이가 아빠와 놀이를 하고 있다. 육아는 더 이상 ‘엄마’만의 일이 아닌 ‘부모 공동’의 일이라는 사회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짐보리 대치센터에서 3살 아이가 아빠와 놀이를 하고 있다. 육아는 더 이상 ‘엄마’만의 일이 아닌 ‘부모 공동’의 일이라는 사회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서천석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육아를 해나가긴 어렵죠. 사회적으로 도움을 줘야 합니다. 흔히들 예전에는 부모가 다 키웠고 지금은 (보육기관 등을 통해) 많이 도와주지 않냐고 하지만, 실제 아이를 부모만 키웠던 적은 없거든요. 과거에도 마을 공동체나 대가족 공동체가 함께 키웠고 부모의 역할은 제한적이었죠. 지금은 도시화·핵가족화가 되면서 엄마·아빠에게 온전히 맡겨진 상황이에요. 예전보다 부모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나 심리적 부담감이 더 강해졌어요. 그것 때문에 육아가 행복하지 않으니까 아이를 안 낳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 최저 출산율 1.15까지 내려갔어요. 사회가 도와줬으면 싶은데, 아빠로서 이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게 있나요?

이신우  너무 많아요. 전업주부는 모여서 함께 아이를 보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사실상 공동육아 형태가 돼요. 그런데 맞벌이인 경우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다보니 놀아주는 역할도 부모한테 더 많이 몰려요. 갈 수 있는 곳이 뻔하죠. 키즈카페, 박물관 등을 한 번씩 다 돌아보는 거고요.

최수환  아침에 일어나면 아기 얼굴도 너무 예쁘고 굉장히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출근해요. 그런데 퇴근 때쯤 되면 완전히 에너지가 소진돼서 아침에 가지고 있던 희망찬 생각을 다 잊고 힘든 상태에서 아이를 보게 돼요. 어느 정도 에너지가 남아서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이전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저녁이 있는 삶’을 구호로 내걸었을 때 굉장히 와닿았어요.

이신우  공감해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아이를 돌보면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같이 놀면서도 더 많이 짜증내니까 죄책감도 쌓이고요.

박진호  조직장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민간회사는 총수나 오너가 한마디 하면 아랫사람들은 거기에 쫙 맞춰 일을 처리하고 전파하거든요. 정부에서 기업에 이상한 걸 시키지 말고 육아를 더 강조해서 말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기업에서는 경영층의 생각이 바뀔 필요가 있고요.

“심상정의 ‘아빠 의무 휴직’ 가장 현실적”
“제가 상상하는 육아는 되도록 내 삶과 아이의 삶을 분리하지 않는 형태입니다.” -윤사비

“제가 상상하는 육아는 되도록 내 삶과 아이의 삶을 분리하지 않는 형태입니다.” -윤사비

서천석  자녀 양육에서 돈 문제가 중요하다고 많이 얘기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선 경제적 비용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직장·사회 분위기 쪽으로 많이 이야기가 나오네요.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 10명 중 8명(78.8%)이 ‘남성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아이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어요. 고무적입니다.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만 봐도 차이가 납니다. 대부분의 후보가 육아를 엄마의 일이 아닌 부부 공동의 일로 보고 있어요. 과거에 비하면 큰 발전인데, 여러분이 보기에 인상적인 대선 공약은 뭔가요?

이신우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 심 후보의 아빠 육아휴직 의무화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은 들지만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기 육아에 참여를 못하면 두려움이 커져서 주양육자 지위를 못 갖거든요. 젖병 소독부터 우는 아이 다루는 방법 등 별것 아닌 듯해도 한 달 정도 몸에 익으면 주양육자로 인정받을 수 있죠. 그런데 여전히 아빠를 육아에 참여시키자는 건지, 어린이집에 더 많이 보내게 하겠다는 건지, 조금 섞인 느낌이 있어요.

윤사비  대부분 후보들의 공약이 ‘100만원 받던 것을 150만원으로 올려줄게’ 하는 식이에요. 여기에 근본적 의문이 들어요. 정부가 계속 재원만 투자한다고 육아 공동체가 회복될까요? 그것보단 노동자가 기업을 상대로 직접 협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조가 활성화돼 노동자가 육아를 비롯해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각 사업장의 환경에 맞게 생산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심상정 후보의 공약이 제 맘에 다가온 것은, 그것이 가능토록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규제를 높여간다는 거예요.

최수환  심상정 후보의 3개월 아빠 육아휴직 의무 할당 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의무가 된다면 회사에서도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편하게 육아에 집중하는 시기가 되고요. 자율적이기만 하면 실제 시행은 힘들 것 같아요. 저희는 외벌이라 육아휴직 급여도 중요해요. 지금은 통상임금 40%에 최대 100만원이잖아요. 현실적으로 몇 개월 쉴 수 없어요. 이 부분에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80%로 올리고 상한액을 없애는 방안을 얘기한 걸로 알고 있어요. 외벌이 경우 중요한 공약이에요.

서천석  아빠에게 육아휴직을 강제로 하게 하면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될까요?

이신우  인생 계획에서 아이 양육이 급해도 일에 집중해서 경력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있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시기가 있어요.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시기와 양육이 맞물렸을 때 아빠들이 휴직을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봐요. 당장 현실적으로 아이를 돌보기 위해 1년 쉰다고 할 때 30대 남성이 경력을 만들어가는 처지에선 아직까지 타격이라고 느낄 부분이 있어요.

‘육아는 즐겁다’ 패러다임 전환해야
“(대선 공약이) 아빠를 육아에 참여시키자는 건지, 어린이집에 더 많이 보내게 하겠다는 건지, 조금 섞인 느낌이 있어요.” -이신우

“(대선 공약이) 아빠를 육아에 참여시키자는 건지, 어린이집에 더 많이 보내게 하겠다는 건지, 조금 섞인 느낌이 있어요.” -이신우

서천석  그건 육아휴직을 아이와의 긴밀한 관계를 위해 쓴다기보다 자기계발을 위해 쓰는 게 아닐까요. 아내와의 평등한 육아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계발해 가정을 발전시키기 위한 거죠.

박진호  육아휴직이 좋긴 할 것 같아요. 저는 육아를 잘 못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육아휴직을 한다면 처음에는 잘 놀아주겠지만 효율적으로 아이들을 돌보지는 못할 거 같아요. 주말이나 퇴근 뒤에는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육아휴직 1년을 쓰면 현실적으로 경력에 영향이 줄 거 같기도 하고요. 보육시설을 강화하고 야근을 줄이는 게 현실적일 수도 있어요.

최수환  저는 말씀하신 것과 생각이 달라요. 나의 경력 관리라든가 자기계발 부분에서요. 아내 처지도 중요하잖아요. 엄마·아빠가 같이 의무할당제를 가져서 시간을 나눌 수 있다면 육아 때문에 자기계발이나 경력 단절이 생기는 걸 좀 나눠가질 수 있어요. 그런 분위기가 안 만들어지고 이건 당연히 여성이 안고 갈 몫이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윤사비  저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쓰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시간은 부부가 같이 육아에 쓰든, 이직이나 승진을 위한 자기계발로 쓰든 다 좋다고 봅니다.

서천석  엄마·아빠가 육아를 함께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시켜놓으면 실력이 늘지 않을까요. 혼자 돌보다보면 자신감이 늘 거예요. 내 일이 되니까요. 이런 경험이 없으면 육아는 영원히 아내의 일이고 아빠는 거드는 일로 여기지 않을까 싶어요.

서천석  지난해 20대에게 한 조사를 보면, 육아를 주로 엄마의 일이라고 보는 비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졌어요. 엄마·아빠의 공동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비중이 늘어난 거죠. 그런데 오히려 직장에 다니면 거꾸로 변해요.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는 직장 분위기가 있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선 후보들이 정책이나 사회적 리더십으로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늘릴 수 있을까요? 지금 나온 정책 가운데 이런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게 있다고 보십니까?

최수환  대선 공약들을 보면서 목적이 뭘까를 생각해봤어요.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니까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해서 공약이 나오는 거 같아요. 선거에는 도움이 안 될지 모르겠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해요. 육아라는 즐거움,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가치 중심으로 전환돼야 해요.

이신우  유승민 후보의 정책을 보면 저출산 대책이라기보다 여성들의 경력 단절 방지에 집중돼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직장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이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거든요. 어린이집은 오후 5시까지 봐주는데 초등학교는 오후 1시에 집에 오잖아요. 그런 지점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고 봐요. 그런데 이게 정규직 맞벌이 시스템에 최적화된 것 같아요. 외벌이나 비정규직의 경우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전반적인 대선 공약들을 보면 아이를 공공에 맡기라는 건지, 누군가 혼자 보라는 건지 아직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아빠가 괴로워야 아이가 즐거운 보육은 ‘그만’

서천석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육아에서 가정의 역할을 여전히 중요하게 보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사회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한 방향이고, 현실적 상황을 인정하고 공공보육 시스템을 확대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방향이에요.

박진호  방과후 돌봄, 구청 주관 아이돌보미와 관련된 것, 특히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돌보미 지원, 처우 개선 등이 와닿았어요. 제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돼서 돌봄교실에 들어간 것에 안도했어요. 경쟁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윤사비  정책을 열심히 만들어봤자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보입니다. 이런 문제가 다시 육아에까지 연결될 수 있어요. 간극이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 대기업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대기업에 못 들어간 사람은 들어가기 위해 경쟁해야 해요. 경쟁이 심하니까 직장생활도 피곤한데 집에 오면 다시 육아로 피곤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죠. 쉴 시간과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육아를 분담하자고 하는 건 무리 아닐까요. 저는 좀더 넓게 봐서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이 제도적으로 잘 갖춰져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봅니다. 부모가 그렇게 경쟁적으로 살아가면 결국 아이도 경쟁적으로 살아가게 돼요.

서천석  여전히 육아는 아빠보다 엄마을 위한 공약이 많아요. 아빠에게 필요한 공약은 뭘까요?

이신우  아이를 볼 때 가장 힘든 게 놀이터였어요. 제가 대학원 다니면서 다세대주택에 살 때, 공공 놀이터에 가보면 관리가 잘 안 된 경우도 있었어요. 키즈카페에 갈 수밖에 없는데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돈을 써서 가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아빠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곳이 많지 않아요.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도 남성에게 배제돼 있고요. 수유실도 분유 탈 때 쭈뼛쭈뼛 들어가거든요.

최수환  공간 문제는 도시계획과 맞물려요. 서울 노원구는 아이들이 워낙 많다보니 인프라가 잘돼 있어요. 도시 공공 계획을 할 때도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해요.

윤사비  아이를 키즈카페에 데려가면 그 시간은 제 시간이 아닐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는 느낌이죠. 키즈카페에 가면 어른들은 재미없지 않나요? 육아 환경이 점점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키는 것 같아요. 내가 즐거운 게 아이가 즐거운 게 아니고, 아이가 즐거운 게 내가 즐거운 게 아닌 게 되죠. 아이만을 위해 힘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형태로 보여요. 제가 상상하는 육아는 되도록 내 삶과 아이의 삶을 분리하지 않는 형태입니다.

서천석  중요한 문제의식입니다. 육아가 또 하나의 의무나 책임, 부담으로 다가오면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어렵고 그 안에서 삶의 만족을 얻기도 어려워요.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업무가 줄어들고, 공공시스템이 갖춰지고, 삶 속에 육아가 자연스럽게 흘렀으면 하는 게 우리 모두가 가진 중요한 문제의식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실현될지는 아직까지 고민이 깊지 않은 부분이어서 단편적 정책 위주로 나오고 있지 않나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의 육아 정책을 보고 든 느낌이나,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은 아니지만 이건 꼭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지 후보·정당의 육아 정책은 ‘글쎄’

최수환  제가 지지하는 후보의 육아 공약은 되게 실망스러워요. 비전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 제안도 없어서 아쉬워요. 심상정 후보의 공약이 현실적인 것을 담고 있어요. 의무할당제처럼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기 힘든 걸 공공에서 유도할 수 있고요. 휴직 급여 상한도 현실적 제안이고요. 그래도 삶의 질이란 가치 문제를 고민하는 정책이 필요해요. 아빠 육아를 위해선 일하는 시간을 주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좋고요. 그러려면 육아 정책도 중요하지만, 예를 들어 성과연봉제처럼 점점 더 경쟁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정책은 다시 한번 고민이 필요해요.

윤사비  아직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고요. 다만 어떤 후보의 육아 정책에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더 비중을 둘 요소가 있다면 표를 줄 것 같아요. 육아 정책만으로 봤을 때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는 심상정 후보예요. 육아 정책이 더 크고 중요한 다른 것을 위해 양보해야 할 요소라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삶에서 정말 필요한 작은 정책들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진보와 보수, 혹은 정권 교체 같은 이유보다 더 중요하죠.

박진호  마음속에 정한 후보가 있긴 한데, 육아 정책만 보면 크게 괜찮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더 큰 문제가 있잖아요. 사회와 나라가 바로 서야죠. 아이가 있다보니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아이가 어떻게 크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지 후보가 사회를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를 지지합니다.

이신우  아직 지지하는 후보를 정하진 않았어요. 지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인데 육아 정책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고요. 심상정 후보와 유승민 후보의 육아 정책이 방향성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좋았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부분은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서천석  이번 대선에서 민주주의 회복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정권이 교체되면 어떤 사회를 만들지가 바로 당면한 문제가 됩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을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도울지, 이런 생각이 잘 정리돼 있지 않다면 정권을 잡아도 정작 변하는 건 없고 아까운 시간만 낭비될 수 있어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정권 교체 그 자체가 아니잖아요.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거죠.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정리 나경렬 객원기자 nakr7258@naver.com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