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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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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 경감’ 한목소리 냈지만…

대선 후보들 고교 무상교육·국공립대 학비 제로 등 공약…

전문가들 “교육 불평등 완화를 위한 ‘대공사’ 필요”
등록 2017-03-29 23:51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월20일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가 공동 주관한 교육현실 보고대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형해화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지난 1월20일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가 공동 주관한 교육현실 보고대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형해화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대학을 포괄하는 ‘공교육 전면 무상교육 실시’는 대선 주자들의 공약 목록에 명시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교 무상교육 실시, 초·중·고 수익자 부담 경비 축소, 국공립대 학비 제로(0) 등 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을 국가가 책임지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어, 국가 교육정책이 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을 경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각각 ‘공교육 전면 무상교육 실시’와 유사한 맥락의 공약을 발표했다.

교육의 책임은 부모가 아니라 국가

지난 2월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가장 먼저 교육 분야 공약을 밝힌 안철수 전 대표 쪽은 당시 ‘학제 개편’의 근간을 공교육 전면 무상교육을 원칙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당시 유치원 2년(만 3~5살)-초등학교 5년(만 6~10살)-중학교 5년(만 11~15살)-진로탐색학교·직업학교 2년(만 16~17살)으로 구성한 ‘2-5-5-2 학제개편안’을 제안했다. 그는 학제개편안을 설명하면서 “사교육을 혁명적으로 줄이기 위함”이라고 했을 뿐 교육 불평등 완화나 계층 격차 해소의 필요성을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새 교육제도로 학제개편안을 설명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에 대해 안 전 대표 쪽 교육 공약을 입안한 조영달 서울대 교수(사회교육)는 과의 통화에서 학제개편안이 무상교육을 원칙으로 설계됐다고 밝혔다. “중학교까지는 원래 의무교육이고 나아가 고등학교 단계인 진로탐색학교와 직업학교도 무상으로 이뤄진다. 국가가 모든 학생의 교육을 무상으로 책임진다.” 조 교수는 또 “대학 교육에서도 누가 언제 대학에 가든 헌법이 정한 교육기본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국가책임장학제를 실시하고 나아가 생활비까지 국가가 지원할 것이다. 사실상 유아 교육부터 대학 교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각각 ‘공교육 전면 무상교육 실시’와 유사한 맥락의 공약을 발표했다.

가장 최근에 교육 공약을 발표한 문재인 전 대표는 아예 5개 대표 공약 가운데 첫 번째로 ‘국가 책임 교육’을 제시했다. 교육 공약을 아우르는 슬로건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 역시 교육의 책임이 부모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표는 3월22일 서울 영등포구 대영초등학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가 교육을 완전히 책임지는 시대를 열겠다”며 △GDP 대비 정부 부담 공교육비 비중을 임기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으로 상향 △누리과정 예산 중앙정부 책임 △초·중·고 국가 책임 의무교육 실시 △대학 등록금 인하 등 사실상 초·중·고 전면 무상 의무교육과 대학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약속했다. 국가 책임 교육은 만 3~5살 영유아에게 실시되는 무상보육을 일컫는 ‘국가 책임 보육’과 유사한 형태로, 사실상 학부모의 공교육비 부담을 ‘0’으로 만드는 일로 해석된다.

문 전 대표의 교육 공약을 입안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쪽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언급한 배경은, 단순히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공과금이나 급식비 등의 공교육비만 지원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교육 기회가 박탈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 교육하겠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의 범위는?

문 전 대표 쪽 역시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의 범위를 대학 교육까지로 넓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가장학금의 상한선이 540만원이어서 등록금만 900만원에 달하는 의대 학생들은 나머지 금액을 자부담하고 있다. 이런 장학금 액수를 현실화할 것이다. 누구든 로스쿨이나 전문대학원 진학을 고려할 수 있도록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 주거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무상교육 관련 공약은 공교육비 부담 ‘경감’ 정도로 전면 무상교육과는 거리가 있지만,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공교육비 항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등 ‘디테일’이 살아 있다. 안 지사의 공식 블로그에 게시된 교육 공약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 농어촌부터 확대 △수익자 부담 경비 단계적 축소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의 경우 국가가 비용을 책임지는 범위를 전체 대학이 아닌 국공립대로 좁혀 우선 국공립대의 학비를 무상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2018년부터 고교 무상교육 실시 △중·고교 신입생 교복비 지원(1인당 29만원) 등 구체적인 무상교육 공약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학부모 부담 공교육비를 학교가 책임지는 구조이기보다는 아동·청소년 배당(연 100만원)으로 가정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어서 맥락이 달라 보인다.

바른정당의 대선 경선 후보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사교육 폐지 국민투표 실시’가 대표 공약일 정도로 교육 공약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공교육비 부담에 대한 공약은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남 지사 쪽 관계자가 말했다. “고교 무상교육 등은 재원 조달 방안을 책임 있게 제시하기 위해 현재 논의 중이다. 증세는 옳지 않고 법인세나 비과세의 실효세율을 조정해서 3조~5조원의 교육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명확한 추세로 보면 의무교육을 고교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사교육 금지 뒤 일부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사회교육’으로 운영하겠다는 복안을 밝힌 것과 관련해, 해당 비용 부담의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남 지사 쪽은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대선 경선 후보인 유승민 의원과 정의당 대선 주자인 심상정 대표는 아직 완성된 형태의 교육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심 대표 쪽은 “3월 말께 교육 공약을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다. 고교 무상교육과 무상급식비를 국가가 50% 책임지는 등 무상교육 철학은 당연히 반영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교 교육 ‘못하는 아이’에 초점을”
친환경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점심 급식 시간. 한겨레 장철규 기자

친환경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점심 급식 시간. 한겨레 장철규 기자

전문가들은 공교육비 부담을 제로(0)로 만드는 무상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육 불평등 완화를 위해서는 기존 학교 교육 제도를 뜯어고치는 ‘대공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저소득층 밀집 지역 학교에 별도 예산을 배정해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대상 학교에 재직 중인 광주의 박상철 교사가 말했다.

“지금의 공교육 체제로는 개천의 아이들을 회복시킬 수 없다. 개천의 아이들은 학습이 아니라 정서가 더 중요한데, 현재의 공교육은 교과 전문가로 채워져 있어 아이들의 삶을 보살피기 어렵다. 교육복지 학교에는 교육복지사 선생님이 1명씩 있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지만, 1명이서 많게는 100명 되는 아이들을 살펴야 한다. 앞으로 공교육에는 교과 전문가와 함께 교육복지사 선생님도 학교 구성원으로 충원돼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교육복지를 담당하는 김영삼 장학사는 ‘잘하는 아이’를 중심에 둔 학교 교육 구조가 교육 불평등을 악화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공교육은 아이들한테 등수만 매겨준다. 모든 아이들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무상 의무교육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모든 아이들의 성공과 성취를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공교육 내부의 등수와 서열을 매기는 구조를 내버려둔 채 고교·대학 서열화를 완화한들 서열 체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공교육의 공공성을 교육 내용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도 “가난한 가정에서 실력을 갖춘 아이들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학교 교육이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못하는 아이’에 초점을 둬야 한다. 그런 공교육이 결과적으로 교육 불평등 완화의 직접적 해법이 된다”고 지적했다.

가난한 수재를 일컫는 ‘개천의 용’ 패러다임이 역설적으로 교육 불평등을 악화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남기 교수가 말했다. “한국 교육은 실력 있는 아이들이 점점 발전해나가는 시스템이라, 가난해도 실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개천의 용이 자기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목격하고 있지 않나. 개천의 용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잘살든 못살든 실력 있는 인재가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떻게 교육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대론 교육 불평등 완화할 수 없다

김병찬 경희대 교수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는 건 어떻게 교육할지 합의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미국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낙오학생방지법(NCLB)을 시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국가의 미래를 봤을 때 우리 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한 철학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학생들 학업성취도가 낮으니까 점수 높이려는 수단으로 접근했다. 우리도 단순히 학습부진아를 없앤다는 정도로는 결코 교육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별  공교육  전면  무상교육  견해


*후보 이름 가나다순

남경필  “고교 무상교육 등은 재원 조달 방안을 책임 있게 제시하기 위해 현재 논의 중, 의무교육을 고교까지 확대하는 방향은 옳다”

문재인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교육이 이뤄질 것”

심상정  “3월 말께 교육 공약 발표 준비 중, 고교 무상교육과 무상급식비 50% 국고 부담 등 무상교육의 철학은 당연히 반영”

안철수  “국가가 유아기부터 대학 교육 단계까지 모든 학생의 교육을 무상 책임진다는 원칙으로 학제개편안 설계”

안희정  “무상교육 범위 단계적 확대… 고교 무상교육은 농어촌부터, 공교육 수익자 부담 경비 단계적 축소”

이재명  “학생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교육대통령… 고교 무상교육 실시, 중고생 교복비 지원”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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