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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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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까지 무상교육, ‘개천’을 살리는 길이다

사교육 없이 공교육만으로 4남매 키운 김수진씨가 말하는 공교육의 문제와 교육 불평등 해법
등록 2017-03-28 22:14 수정 2020-05-03 04:28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대선 후보 교육 공약 검증의 열쇳말은 ‘개천’이었다. ‘개천에서 용 안 난다’는 한국 교육의 위기의식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 나선 각 당 후보들 역시 각양각색의 공약을 내놓으면서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겠다’는 약속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의 약속은, 정말 ‘개천’에 필요한 것일까. 한국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오피니언 리더는 자녀 교육에 관여 또는 개입할 물질적·정신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 학부모이고, 한국 언론의 교육 보도는 대체로 이들의 교육적 요구를 대변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번엔 ‘개천’의 교육적 요구를 대표할 학부모를 만나기로 했다. 대학 청소 및 식당 노동자가 속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를 통해 서울의 한 대학 식당에서 일하는 김수진(가명)씨를 소개받았다. 1986년, 1989년, 1991년, 1997년생 4남매를 둔 그는 누구보다 오래 한국의 공교육을 경험한 학부모다.
지난 3월21일 저녁 퇴근한 그를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났다. 그는 1991년생 셋째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나왔는데, 셋째는 저녁 8시께 같은 건물 위층에 있는 회사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났다. 셋째와는 다음날 전화 통화로 부족한 내용을 보충했다.
‘개천’은 사교육비가 아닌 공교육비로 고통받고 있었다. 초·중·고 공교육과 높은 대학 진학률로 사실상 공교육에 가까운 대학 교육을 국가가 완전 책임지는 ‘전면 무상교육 실시’가 절실했다.
취재 진명선 기자, 편집 허윤희 기자, 디자인 장광석
공교육은 ‘개천’을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 한 초등학교에서 쉬는 학생들의 모습. 박승화 기자

공교육은 ‘개천’을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 한 초등학교에서 쉬는 학생들의 모습. 박승화 기자

‘과열과외 예방 및 공교육 내실화 방안’(김대중 정부, 2000년 6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노무현 정부, 2004년 2월)
‘공교육 경쟁력 향상을 통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명박 정부, 2009년 6월)
‘사교육 경감 및 공교육 정상화 대책’(박근혜 정부, 2014년 12월)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사교육비 문제의 해법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내세운 교육정책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하지만 공교육으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부 대책은 여태껏 한 번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진보 정부 10년의 끄트머리인 2007년 처음 실시된 정부의 사교육비 조사에서 최저소득(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과 최고소득(7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 지출 격차는 8.83배(5만3천원-46만8천원)에 달했다. 보수 정부 10년을 마무리하는 2016년 사교육비 조사에선 두 소득 집단의 격차는 8.86배(5만원-44만3천원)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지난 20년 동안 공교육이 사실상 ‘금수저’와 ‘흙수저’의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성공 문법이 폐기된 교육 불평등의 배경에 공교육 실패가 있다. 공교육은 왜 실패했을까.

여기 사교육 없이 오로지 공교육에 의지해 4남매를 키운 김수진(59·가명)씨가 있다. 4남매가 초·중·고에 다닌 20여 년 동안(1993~2015년·24쪽 표 참조) 김수진씨 가정의 소득은 부부 합산 200만원가량, 이마저도 부채 상환에 상당 부분 지출돼 자녀 사교육비는커녕 생계비에 충당하는 데 급급했고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법이 정한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고려하면 김수진씨 가정은 ‘개천’이랄 수 있다.

개천의 4남매는 초·중·고 공교육 12년, 그리고 대학 교육을 받는 동안 ‘용’이 되지 못했다. 4남매의 교육사를 들여다보면, ‘개천’을 살리는 교육 불평등 완화의 해법은 초·중·고·대 전면 무상교육에 있다.

고등학교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방과후학교 성과보고회에 참석해 학생들과 웃고 있다(왼쪽). 2013년 3월 서울 종로구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박근혜씨. 청와대사진기자단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방과후학교 성과보고회에 참석해 학생들과 웃고 있다(왼쪽). 2013년 3월 서울 종로구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박근혜씨. 청와대사진기자단

가난한 부모를 둔 4남매는 공교육에서 배려받는 일보다 배제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등을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고등학교에서 4남매는 종종 곤경에 빠졌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의 올해 수업료는 분기별 36만2700원으로 1년에 145만800원을 내야 한다. 자녀 둘이 고등학교에 다니면 분기별로 70만원, 1년에 300만원가량을 공교육을 받기 위해 내야 한다. 고등학교 교육은 무늬만 공교육일 뿐 실제로는 국가가 아닌 부모가 책임지는 상황이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2∼2014년 3년 동안 전국 2만3805명의 학생이 고교 수업료 167억원을 미납했다.

“학교에서 지원받은 것은 없어요. 삼성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는 했죠. 둘째와 셋째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애들이 사연을 써서 삼성에서 지원을 받았어요. 한창 어려웠을 때라 등록금을 못 냈거든요. 선생님들한테 불려가고 그랬던 모양인데, 그때 삼성에 고마웠지요.” -김수진씨
“그때 부모님이 애매하게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정이 안 돼서 학비 지원을 못 받았어요. 장학금 제도를 선생님이 잘 모르셔서 저희가 최대한 알아내서 지원했어요. 내야 하는 서류도 많았어요. 소득 관련 증명서, 건강보험 납부 서류, 학교장 추천서까지 다 받았죠.” -셋째딸 박지민(26·가명)씨

‘의무교육은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으로 한다’고 정한 교육기본법 제8조에 따라 한국은 초·중학교 9년만 의무교육 기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의무교육 기간은 11년(2012년 기준)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은 터키와 함께 의무교육 기간이 가장 짧다. 의무교육 규정 여부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의무교육에선 공교육비 부담 주체가 부모가 아니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정한 헌법 제31조는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해, 의무교육은 ‘무상 의무교육’으로도 부른다. 박근혜씨는 2012년 대선 때 ‘국민행복 10대 공약’ 가운데 ‘국민 걱정 반으로 줄이기’ 항목의 하나로 ‘교육비 걱정 덜기’를 제시했다. 당시 교육비 걱정 덜기에 있던 세 가지 세부 과제 가운데 하나가 고등학교 무상교육이었으나, 임기 중에 단 한 번도 고교 무상교육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저는 결석은 절대 안 시켰어요. 몸이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야 한다고 꼬박꼬박 보냈어요. 우리 아이들은 12년 전부 개근이에요.” -김수진씨
“우리 처지에선 고교 무상교육이 진짜 필요한 공약이에요. 잘사는 친구들까지 지원받으면 그들은 남는 돈으로 사교육에 더 쓸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우리는 경제가능인구가 아닌데 돈 내라고 하면 안 되지 않나요? 고등학교에선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하게 해줘야지 이것저것 요구하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서) 부담이죠.” -딸 박지민씨

헌법은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로 교육의 의무를 지우고 있다. 부모가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과태료를 문다. 하루도 결석시킨 적 없는 김수진씨는 그런 점에서 부모로서 국민의 의무를 다한 셈이지만, 국가는 4남매의 교육받을 권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 김수진씨는 4남매 교육과 관련해 학교나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기억을 잘 떠올리지 못했다. 그가 고마워한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삼성’과 ‘임대아파트 주민’이었다.

“우리가 임대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 아파트 주민들이 폐지를 주워 모은 잡수익으로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적이 있어요. 우리 애들 대학생일 때 3명이 40만원씩 받았죠.” -김수진씨의무교육이지만 무상교육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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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매를 곤란하게 한 것은 사교육비가 아니라 공교육비였다. 수업료 말고도 학교에 내야 할 돈이 꽤 많았다. 입학할 때 교복비, 급식비, 방과후학교 수강료, 수학여행비까지 학교는 수시로 4남매에게 손을 벌렸다.

“급식비도 내기 곤란할 때가 있었어요. 조금 연체됐는데, 통지서 같은 거 받고 그랬죠. 어린 나이에 창피했어요. 선생님이 ‘누구 와라’ 불러요. 애들이 대충 알죠.” -딸 박지민씨
“세월호 때문에 지금은 멀리 수학여행 가는 게 없어진 것 같은데, 우리 애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면서 70만원을 내라고 해요. 엄청 부담이 됐죠. 안 가면 낙오자처럼 아이 혼자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고…. 분할로 내라고 해서 다행이었지만, 그거 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김수진씨
“교복도 티가 나잖아요. 브랜드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파트 이름 들으면 ‘어, 거기 임대아파트’ 하는 것처럼 교복도 그래요. 교복값도 부담 되니까 물려 입혔어요. 1천원 주면 사거든요. 막내한테 3천원 주고 바지 3개 사오라고 시켰죠.” -김수진씨

고등학교와 달리 의무교육으로 지정된 초·중학교에선 공교육비 부담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공교육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학부모가 교육활동 경비를 부담하는 일이 흔하다. OECD가 회원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만 15살(고1)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연구한 자료(송경오·정지선, ‘공교육 개혁 방향의 국제 비교 분석’)를 보면, 2009년 기준으로 국가가 공교육비를 부담하는 비율인 ‘공적투자비율’이 한국은 48.4%로 핀란드(99.6%), 독일(97.2%), 캐나다(88.0%) 등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공교육비 가운데 학생·학부모가 부담하는 ‘사적 부담 비중’은 한국(46.8%)이 가장 높았다. 핀란드(0.1%), 독일(0.9%), 캐나다(11.1%) 등에 견주면 사실상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이라 말하기 무색한 수준이다. 인도네시아(33.1%), 일본(21.0%), 미국(6.9%)보다 한국 학부모들의 공교육비 부담률은 월등히 높다.


공교육은 정규수업과 방과후학교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만, 수학·과학을 좋아했다는 넷째아들 박지훈(20·가명)씨는 학교 수업 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의 흥미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무상 의무교육 기간’에 얻지 못했다.

핀란드 등 유럽의 국가가 부모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공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한국은 부모 소득에 따라 학생에게 차등 지원한다. 부모가 사적으로 부담할 수 없는 경우를 선별해 부모 대신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한다. 무상급식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마치 교육에 보편복지가 실현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한국 공교육의 운영 방식은 선별복지에 머물러 있다.

선별복지에는 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2017년 교육부 안내를 보면 초·중학생은 연간 최대 273만원, 고등학생은 453만원을 지원받는 교육급여 지원 대상자(중위소득 50% 이하, 4인 가구 월소득 인정액 223만원 이하)가 전국적으로 40만 명이다. 엄격한 수급자 기준에 따라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배제된 빈곤계층이 약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한국보건사회연구원, ‘차상위계층 지원사업 현황과 체계화 방안 연구’)에 견주면, 국가가 ‘개천’의 자녀들이 누려야 할 교육권을 충분히 보장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넷째 때는 방과후학교가 생겨서 좀 시켰는데, 석 달치 교육비를 한꺼번에 내야 해 부담이 돼서 안 했어요. 우린 임대아파트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 시켰죠. 그것도 법으로 인정되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어서 7만원을 냈어요. 남편이랑 나랑 한 달에 100만원씩만 벌어도 맞벌이라 의료보험료 이런 거 따지면 대상이 안 되더라고요. 빚진 거 갚느라 200만원 벌어도 실제 쓸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아 카드깡 하면서 사는데도 그런 건 감안해주지 않더라고요.” -김수진씨

공교육은 정규수업과 방과후학교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면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지만, 수학·과학을 좋아했다는 넷째아들 박지훈(20·가명)씨는 학교 수업 외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의 흥미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무상 의무교육 기간’에 얻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하나로 시작된 공교육의 대표적 교육활동인 ‘방과후학교’도 수익자 부담 원칙이기 때문이다.

분기별로 진행되는 방과후학교는 1강좌당 수강료가 1개월 기준 2만5천~3만원이지만, 교재비나 재료비 등을 포함해 3개월치를 한꺼번에 내야 해서 많게는 1강좌당 10만원을 한번에 납부해야 한다. 주 5일 방과후학교를 수강할 경우 많게는 40만~50만원이 든다. 지훈씨는 2016학년도, 2017학년도 입시에 연이어 실패하고 2018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삼수생’이다. 독서실에서 총무로 일하며 ‘독학’을 한다.

서울시교육청 교육복지 담당 김영삼 장학사가 말했다. “공교육 자체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무상 의무교육의 기준과 범위를 높여야 한다. 현재 부모의 CMS(자동이체)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사부담 공교육비가 너무 많다. 수련회나 수학여행, 급식 등은 전부 교육활동의 하나로 이뤄진다. 교복도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입어야 하는 것이라면 교육활동에 필수적인 것이니 국가가 지급 보장해주는 게 맞다.”

국가가 아닌 부모가 공교육을 책임진다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중시하는 사이 국가는 공교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겼다. 부모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심화된 1차 원인은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국가에 있다. 한겨레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을 중시하는 사이 국가는 공교육의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겼다. 부모 소득에 따른 교육 격차가 심화된 1차 원인은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국가에 있다. 한겨레

“젊을 때 옆집에 고등학교 동창이 살았어요. 그 친구는 학습지를 시키는데, 우리는 형편이 안 되니까 못 시켰죠. 영어도 어릴 때부터 열심히 가르치더니, 그 집 아이들은 다 좋은 대학에 갔어요. 우리는 아파트 18평에 방이 2개뿐이라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자요. 어느 한곳에서 불을 켜면 잠을 못 자니까 애가 공부를 할 수 없어요. 좋은 아파트는 24시간 하는 독서실도 자체 운영한다는데, 우리 아파트는 그런 게 없고 일반 사설 독서실은 새벽 2시면 문을 닫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장소를 확보하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김수진씨

1996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가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 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 흔히 ‘5·31 교육개혁안’으로 일컫는 교육개혁을 수립한 뒤 한국 교육의 중심은 국가가 아니라 ‘수요자’, 특히 학부모가 중심이 됐다. 김기수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이 지적했다. “교육 수요자가 공교육을 좌우할 권한을 가졌는데 수요자마다 파워가 다 다르다. 강력한 파워를 가진 사람은 공교육 안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약자들은 파워가 없으니까 소외됐다. 정부가 수요자에게 권한을 주자고 하면서 그것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작업을 안 했다. 5·31 교육개혁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그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실제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입안한 ‘한국 교육의 중장기 비전’을 보면, 첫 번째 과제로 ‘초중등 교육제도의 다양화’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고등학교 설립과 변경을 허용하고, 특히 △자립형 사립고 지정을 확대해 독자적인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을 부여할 것을 정책 과제로 제안했다. 현재 교육 불평등 심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고교 서열화’의 아이디어와 똑같다.

특히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는 실제 고교 다양화가 아니라 영재고-과학고-외국어고-자율고-일반고-특성화고 순서의 고교 서열화로 나타났고, 어느 고교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불평등이 생긴다. 김준엽 홍익대 교수의 분석(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중학생의 자율고 진학 수요 팽창 및 자율고의 사교육 유발 효과 분석’)에 따르면, 서울 지역 월소득 600만원 이상 가구는 중소도시 및 읍면 지역 월소득 300만원 이하 가구에 비해 자율고 진학 희망 비율이 4.7배(27.5%-5.8%) 높았다.

김수진씨는 “자사고에 진학시킬 생각을 하진 않았냐”는 질문에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등록금이 3배 비싼 고등학교라고 설명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넷째 박지훈씨가 고교에 진학할 때 “특성화고에 가라”고 조언했다.

대입에 앞서 고입 경쟁이 생기면서, 부모들의 교육 경쟁이 시작되는 시점이 크게 하향했다. 유아·초등 단계에서 교육 격차가 심각해지는 이유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가 말했다. “부모가 뒷바라지를 잘한 아이들과 조손가정, 이혼가정 등 부모가 교육에 관심을 쏟을 수 없는 계층의 아이들 사이에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결국 국가와 사회가 그 아이들에게 초점을 둬야 하는데,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대선 때마다 나오는 대입제도 개선 공약은 중산층 이상 부모들의 요구다. 대입제도를 변경해서 교육 불평등 완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초등 단계에서 국가가 기초학력, 기본학력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게 교육 불평등 완화의 현실적 대안이다.”

2015년 고1 학생들이 치른 OECD 주관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 한국의 최하위 성취도 학생 비율이 역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PISA 2015 결과 분석 토론회 자료집’을 보면, 2012년과 2015년의 결과를 비교했을 때 읽기(6.7%→14.4%), 수학(9.1%→15.4%), 과학(6.7%→14.4%) 영역에서 하위 학생 비율이 3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수치화한 지표(ESCS)가 1단위 변화할 때 얻어지는 과학 성취도 변화량이 10년 전인 2006년(32점) OECD 평균(40점)보다 낮았던 반면, 2015년(44점)엔 OECD 평균(38점)보다 훨씬 컸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것은 콜롬비아와 한국뿐이었다.

2006년 PISA를 치른 고1 학생들은 5·31 교육개혁안이 전면 적용되기 전인 1997년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이번 2015년에 PISA를 치른 고1 학생들은 5·31 교육개혁안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교육 현장에 자리잡은 2006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실상 ‘5·31 세대’로 볼 수 있는 이들이 낸 PISA 결과는 공교육을 부모 책임으로 돌린 5·31 교육체제에 대한 파산 선고다.

빚내서 다녀야 하는 대학

딸 박지민씨는 2013년 서울의 중위권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50여 개의 이력서를 썼지만 서류를 통과한 것은 10여 곳, 결국 지난해 독서실 총무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공무원 수험 기간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3월부터 저녁 8시에 출근해 새벽 5시에 퇴근하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 재학 때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받은 학자금의 원리금 상환 기간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독서실 총무 일을 하면서 월 30만원을 받는데, 원리금 상환액이 10만원이다. 갚아야 할 원금은 2500만원에 달한다. 생활비를 버느라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대학 등록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휴학 포함해 5년 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거의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래야 제 생활비를 버니까요. 짧게는 4시간, 길게는 8시간 하고 40만원에서 80만원까지 받았어요. 1학년 때는 학자금 대출을 은행에서 해줬는데 그건 이자를 바로바로 갚아야 했거든요. 다둥이 할인 50% 받아서 한 달에 1만8천원씩 갚았죠. 그러다 이자가 너무 아까우면 돈 좀 모아서 원금을 갚았어요.” -딸 박지민씨

박지민씨는 “큰언니는 이자만 20만원씩 냈다”고 전했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3년 대학 생활을 한 박지민씨는 큰언니보다 사정이 훨씬 좋은 듯 말했다. 큰딸 박소민(31·가명)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때만 해도 대학 교육은 철저하게 학생과 학부모 부담이었다. 학자금 대출제도가 있었지만 은행이 일반 대출처럼 취급해 5%대 금리로 대출해줬다. 현행 한국장학재단이 적용하는 학자금 대출 금리는 2%대다. 어머니 김수진씨는 큰딸 박소민씨가 갚아야 할 학자금 원리금이 3500만원이라고 전했다.

한국장학재단이 과거에 견줘 저리로 학자금을 대출해주고 소득에 따른 국가장학금을 통해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고 홍보하지만,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10명 중 7명 이상이 국가장학금이 필요 없거나 신청해도 소득분위가 높게 산정돼 탈락하는 상대적으로 나은 계층의 자녀다.

지난 2월9일 보도(‘SKY엔 금수저들이 산다’)를 보면, 고려대·서울대·연세대, 즉 ‘스카이대’ 재학생 가운데 국가장학금 미신청자와 9·10분위로 산정돼 국가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된 인원을 합친 비율이 서울대 74.73%, 고려대 72.27%, 연세대 72.56%로 조사됐다.

김병찬 경희대 교수(교육학)는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대학 재정을 옥죄면서 대학들이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에 사활을 걸게 됐고, 결국 정유라 부정 입학 사태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국민이 어떤 교육을 할지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교육 불평등 문제만 따로 떼어내 접근하면 반값 등록금 정책처럼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핀란드는 단 한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평등’을 굉장히 중시하는 교육철학에 사회가 합의하고 있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하는 것도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고 뒤처지는 사람이 없도록 국가가 온 국민을 책임진다는 교육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 결과로 교육 불평등이 자연스레 완화되는 거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특정 목표를 정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수진씨와  딸  박지민씨의  대선  주자 교육  공약  평가


*3월23일 현재 교육 공약 발표한 후보들 대상 평가
■문재인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대학 서열화 해소
엄마 학벌에 따라 이력서도 안 보고 버리는 것 말이 안 된다. 공무원 시험이나 봐야지 제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 같다. 대학 서열화가 없어지면 학벌 차별이 없어지니 좋을 것 같다.
대학 평준화는 부작용이 있을 듯하다. 서열화 자체는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 이른바 ‘스카이’ 우대가 있지만, 학교마다 학과의 장점을 살리면 그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안희정


국공립대 학비 제로, 고교 학비 면제, 학생부종합전형 비중 축소
엄마 국공립대 학비 제로는 예전부터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실행된 것은 본 적이 없다. ‘대학 반값 등록금’도 거리 현수막에 쓰인 것을 많이 봤고 애들 대학 갈 때 원서접수비도 9만원씩 돌려준다고 하더니 감감무소식이다. 고등학교 학비 면제는 좋다. 엄마들은 언제 면제되나 기다리고 있다.
내 의견과 가장 잘 맞다. 학생부종합전형은 10% 미만으로 축소해야 한다. 학비 제로는 세금 문제가 생기는데, 학비를 줄이지 말고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다양한 장학금 제도나 유학 프로그램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안철수


학제 개편(2-5-5-2)
엄마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직업학교 과정이 있는 건 좋다. 결국 입시 위주가 아니라 자기가 노후에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거니까. 얼마 전 셋째가 “엄마 외국에선 용접이 뜬대, 나 용접 배울래” 해서 깜짝 놀랐다.
저렇게 개편해서 얻는 이득이 뭔지 모르겠다.
■이재명


고교 무상교육, 중·고교 신입생 교복비 지원, 만 29살까지 연 100만원 배당
엄마 최대한 현실적인 것 같다. 교복비 지원은 정말 좋다. 선배가 입던 교복 1천원씩 주고 샀다.
청년배당으로 다소 인기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학교 교육에도 만병통치약은 아닌 듯하다.
■유승민


입시 간소화, 외고·자사고 폐지
엄마 월등히 잘하면 몰라도 외고·자사고에서 꼴등 할 바엔 일반고에서 열심히 하는 게 낫다.
입시 전형은 당연회 간소화해야 한다.
■남경필


사교육 폐지 국민투표, 학력차별금지법 제정, 지방 국립대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
엄마 사교육 안 하면 엄마들이 과외를 할 것 같다. 학력차별금지법은 좋다. 그러면 이력서를 보일 기회는 주는 거잖나. 4년 열심히 공부했는데 면접 기회조차 안 주는 건 부당하다.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지방대가 서울대 되는 것도 아닌데. 서열화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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