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처음과 끝은 시민일 것이다. 철학자 김상봉에게 한국 사회 진단과 전망, 과제를 들었다. 꽃길을 원하는 시민들의 토론 현장을 취재했다. 2016~2017 촛불의 심지라고 할 2015년 민중총궐기의 상징적 인물(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고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도 만났다. 촛불의 의미를 궁구하는 학계의 논의를 차분히 살펴 전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촛불과 외침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싣는다.
취재 전진식·진명선·정환봉·김효실 기자, 편집 김선식·허윤희 기자, 디자인 장광석
철학자 김상봉은 서양 정신의 극복과 윤리적 인간의 모색,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탐구와 ‘서로주체성’의 확립을 거쳐 기업 문제에 이르기까지 사유의 각도를 넓혀왔다. ‘만남의 철학’을 강조하는 그는 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서를 준비하고 있다.
“광장 촛불은 정치적 의미에서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는 낡은 체제를 타파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 과거 청산은 사람들이 생각을 못하고 있다. 정신의 쇄신 없이 시대가 새로워질 수는 없다.”
김상봉(59)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제주도 모슬포 바닷가에서 겨우내 한 권의 책 집필에 매달렸다. (가제, 도서출판 길 3월 출간 예정). 촛불집회에서 터져나왔던 구호 ‘이게 나라냐?’에 대한 김 교수의 철학적 응답이다.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박정희가 무엇인가. 힘이 진리인 게 박정희다. 나는 함석헌에 기대어 ‘힘이 아니라 뜻이 진리’라고 계속 말해왔다. 뜻은 나라의 기초다. 지금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우리 마음속의 뜻이 하나로 모일 때 그게 나라이다.”
책의 1부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라는 주제로, 2부는 ‘갈 길을 내다봄’이라는 제목으로 전망을 내놓는다. 1부는 다큐·독립 영화 제작자, 2부는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과 대담하는 형식으로 짜였다. “한국 사회의 현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심층적 차원에서 해명하고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담았다. 특히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새로운 세대가 무엇을 할지 지혜를 전해주려고 한다. 그 핵심은 박정희 이데올로기의 청산이다.”
김 교수의 양해를 얻어, 일부 원고 내용을 미리 독자와 함께 읽는다.
“이론적 주체성이 없으면 자기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게 돼요.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되고 세계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하는데, 한국의 지식인들이 입에 올리는 거의 모든 이론이 서양에서 수입된 것이라 한국의 역사에 조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니, 역사의식이란 것이 퇴화할 수밖에 없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사람들이 스스로 먹고살 만하면, 남에게 고개를 숙이겠어요? 그러니까 돈으로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대다수를 먹고살기 힘들게 만들어야 그들이 돈 있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겠지요. 그래서 더는 물리적 폭력으로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어려워진 민주화 이후의 기업국가에서 돈으로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전반적으로 가난하게 만들고 아직 살 만한 사람들에게도 끊임없이 가난의 공포를 불러일으켜 심리적으로 억누를 필요가 있지요. 이것이 재벌에 포섭된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본질이에요.”
“저는 5·18 항쟁 공동체에서 계시된 참된 나라의 이념이 사물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헌혈의 피, 총과 수류탄, 주먹밥, 이 셋인데요, 헌혈은 시민들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어 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총이나 수류탄 같은 무기는 불의와 폭력으로부터 시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같이 싸운다는 것을 뜻하고요, 마지막으로 주먹밥은 시민들이 같이 먹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야말로 참된 나라의 토대지요. 그런데 세 번째 주먹밥을 나눈다는 것이야말로 나라가 경제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한쪽에서 배불리 먹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 굶고 있다면, 그건 나라가 아니죠. 쉽게 말해 같은 나라에 살면서 지금처럼 날 때부터 금수저, 흙수저로 분리된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시험관이 도와주면 다 풀 수 있어요. 최근 밝혀진 국민연금의 부당한 의결권 행사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있나요. 도움을 청하려면 무릎을 꿇어야죠. 결국 모든 면에서 이제 삼성이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거예요. 꼼짝할 수 없이 덫에 걸린 거죠. 예전 같으면 박근혜는 고사하고, 어떻게 최순실 같은 사람이 이건희를 상대로 호가호위할 수 있었겠어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벌어진 거예요. 이렇게 되자 본격적으로 기업국가를 예전 유신독재 시절의 절대군주 국가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단 거죠.”
“엄밀하게 말해 노예에겐 도덕이 없어요. 도덕은 자유인에게만 가능한 사태인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민주화되기 전에는 모든 언론이 독재권력 아래 노예적 예속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도덕적 면책을 주장할 수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자기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고 또 져야 할 시대가 된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는 언론이 처음으로 도덕적 시험대 위에 서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 시험에서 떨어진 신문이에요. 민주화가 가져다준 언론의 자유를 용서받을 수 없는 방식으로 악용했어요.”
“세월호 사건은 우리들 한국인을 발가벗겨서 거울 앞에 세운 사건과 같습니다. 자기의 숨길 수 없는 치부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사건이지요. 사람들이 현실을 적당히 긍정하는 한,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좀 시끄러운 일이 있어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데 왜들 야단이야?’ 이렇게 한마디 하고 다시 돌아누워 잠드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세월호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그런 허위의식에서 정말로 처절하게 깨어나게 만든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아무리 이해하고 정당화하려 해도 절대로 이해할 수도 정당화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으니까요.”
“지금과 같은 탄핵 국면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정치인에 대한 무관심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같이 가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당인으로서의 정치인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니 정치인들이 속한 정당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니까, 자꾸 정당이라는 매개 없이 또는 제도 정치를 애써 무시하고 무언가 시민이 직접 나라 일을 도모해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거지요.”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다 여러분들 같은 20대였어요. 전태일이 분신한 것이 고작 스물두 살 때였어요. 민주노조 운동의 효시라고도 말할 수 있을 동일방직 여공들도 대부분 20대 초반이었어요. 그리고 그들과 연대했던 수많은 대학생들도 당연히 20대였지요. 1971년 체포되어 옥살이를 시작했던, 서경식 선생의 형님들인 서승·서준식 두 형제도 그때는 푸릇푸릇한 20대였습니다. 그러니까 1970년 전태일의 분신부터 1979년 10월16일 부마항쟁까지 70년대 역사를 쓴 건 20대였어요. (…) 이런 사정은 80년대 들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5·18부터 87년 6월항쟁까지 전두환의 신군부 독재와 싸우면서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 나중에 386이라 불리며 한동안 동네북 신세였던 사람들도 당시에는 20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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