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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고통의 뿌리는 무엇인가

지난 1년 ‘고통의 연대기’를 사진과 글, 책으로 톺아보며 철학자와 상담심리사에게 전망과 답을 묻다
등록 2016-06-22 16:03 수정 2020-05-03 07:17
슬픔을 퍼내도 슬픔, 고통을 짜내도 고통. 한국 사회는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고통의 뿌리’는 무엇인가.
유성기업부터 메르스(MERS)까지, 지난 1년 ‘고통의 연대기’를 살폈다. 슬픔·고통을 천착해온 철학자 김상봉을 만났다. 그는 “우리들이 참된 주체가 되어 만나야 한다. 만나서 길을 같이 찾고 같이 생각하고 형성해야 한다. 연대는 책에서 나온다”고 했다.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심리사들을 찾았다. 고통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새겨보았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의 바다’. 보이는 고통, 안 보이는 전망의 시대. 스크럼을 짠 파도가 바위섬에 부딪친다.
취재 전진식·박승화·박수진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가뭄은 있어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 1년이었다. 1년을 휘감은 시간의 실타래에는 무엇이 있나. 올해 6월 노동자 한광호(42)의 ‘꽃길 100리’부터 지난해 5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까지. 죽음에서 죽음으로, 상여에서 화장터로, 눈물에서 또 눈물로. ‘고통의 실타래’는 언제쯤 멈출 것인가.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❶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는 지난 3월17일 아침 8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조합은 회사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노조 탄압과 잇단 징계로 한광호가 쓰러졌다는 것. 2011년 회사의 공격적인 직장폐쇄와 폭력적인 용역 투입으로 촉발된 유성기업 사태. 5년이 지나도록 노동자들은 ‘고통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6월13~15일 한광호의 동료 노동자들은 그의 꽃상여를 떠멨다. 분향소를 차렸던 서울광장에서 ‘고통의 배후’ 현대자동차 본사까지, 노동자들은 100리 길을 걸어갔다.

지난 5월13일 서울고법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에게 11억원 넘는 손해배상 판결을 선고했다. 경찰 청구를 받아들인 것. 7년 전인 2009년 정리해고 파업 투쟁의 결과. 노동자의 권리는 어디에 청구해야 하나. 꽉 막힌 노동권의 창구.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겨레 신소영 기자

❷ 강남역 5월17일 새벽 1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한 상가. 20대 여성이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살해됐다. 범인은 34살 남성. ‘혐오범죄’라는 말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애도·분노의 말들이 이룬 1004개의 포스트잇 분화구. 가장 많이 적힌 서술어는 “살아남았다”(132회). 생활이 생존으로 추락한 한국 사회의 절단면.

5월28일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19살 청년이 숨졌다. 쾌락의 독점, 고통의 외주화. 사람을 철로로 떠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❸ 가습기 살균제 ‘생활용품’이란 말 자체를 허구로 만든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 환경단체들이 사건 진실 규명과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사이 2천 일이 지났다. 5월 말 기준 피해자는 2300여 명. 이 가운데 사망자 464명. 자본의 이익에 과학이 부화뇌동하고, 정부는 딴전을 피우는 사이 벌어진 일. 기업에 의한 초유의 ‘연쇄살인 사건’. 6월23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 1층에서 피해 사진전 ‘2000일의 기록’이 열린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한겨레 김명진 기자

❹ 미세먼지 6월3일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놨다. 환경단체의 반응이 곧바로 돌아왔다. “응급수술 필요한 정부 대책.” 경유차가 수도권 미세먼지의 주된 배출원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미세먼지 주범 석탄화력발전소도 문제다. 충남 지역의 경우 석탄화력발전소 6기가 신규 운영될 계획. 미국 예일대·컬럼비아대의 연구 결과, 올해 한국의 공기질은 180개국 가운데 173위. 박근혜 정부는 예의 요지부동. ‘시계 제로’의 고통.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❺ 위안부 피해 할머니 공점엽 할머니의 펄럭이는 명정. 5월19일 전남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끝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명정에 담기지 못했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으로 4월31일 만들어진 ‘화해와 치유의 재단’. 이에 맞서 시민 참여로 모인 후원금 10억3천여만원으로 6월9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출범했다. 1945년 이후로 71년. 고통이 너무 길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❻ 아동학대 아이들이 위험하다. 지난 3월 친부와 계모의 학대로 7살 아이가 숨졌다. 헤아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일회성·면피성 정부 대책은 ‘고통의 방관’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동학대 사건 수는 2006년 5202건에서 지난해 1만1700건으로 갑절이나 늘었다. 가해자와 아동을 분리하거나 고소·고발 처리하는 경우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14일 이후 백남기(69) 농민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 살인의 고의가 고압의 물줄기에 담기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물대포였다. 경찰의 사과·책임·처벌은 전무.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❼ 난민 인간의 윤리를 묻는 배. 지난해 유럽으로 간 난민이 100만 명에 이르렀다. 난민들은 고통마저 고립될 위기다. 최근 국제앰네스티 27개국 조사 결과, 난민 수용 찬성률은 자신과 가까워질수록 급락했다. 자기 나라(80%), 자기 거주 지역(30%), 자기 집이나 이웃(10%) 차례. 한국은 마지막 항목이 3%로 최하위권. 지난 5월 또다시 지중해 난민선이 침몰해 사흘 새 700명이 숨졌다.

지난해 7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사기업한테서 RCS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사용한 사실이 폭로됐다. 민간인 사찰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이후 국정원은 여당의 힘을 이용해 지난 3월 ‘국민감시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테러방지법 제정을 관철했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❽ 메르스 38명이 숨진 메르스 사태는 국가방역과 공공의료의 허점을 그대로 노출했다. 병원감염 관리와 환자 안전의 핵심은 보건의료 인력을 충분히 두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끝내 제정되지 못했다. 올해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르스 환자는 100명 안팎에 이른다. 올여름은 지카바이러스 방역도 큰 문제다. 고통이 바이러스처럼 둥둥 떠다닌다.

개성공단은 4개월 넘게 봉쇄돼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해악 또한 올해 안에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고통의 연대기’ 1년의 결론은 명확하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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