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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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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는 광화문 촛불의 심지”

민중총궐기 주도 혐의로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인터뷰

“정권교체도 정치교체도 아닌, 세상교체가 이번 대선의 목표”
등록 2017-02-28 18:10 수정 2020-05-03 04:28
톱니바퀴는 뒷니를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박근혜 대통령을 궁지로 몬 거대한 촛불 민심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불꽃이 아니다. 톱니바퀴를 거꾸로 돌리다보면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가 있다. 그날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끝내 생명을 잃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법원은 한 위원장에게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백남기 농민을 숨지게 한 이들의 책임을 물은 적은 없다. 은 강원도 춘천교도소에 수감된 한 위원장에게 서면으로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 대선 등에 대해 물었다. 한 위원장을 면회한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통해 전달받은 답변을 정리해 싣는다. _편집자
수감 생활은 어떤가.

2016년 12월9일 국민들의 힘으로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그날 이후 감옥은 형식적인 곳이 됐다. 마음으로는 이곳이 감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은 단조롭다. 주로 비정규직, 불평등, 정치개혁 관련 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최근 읽은 책 중 기억나는 것은 박노자 선생의 이다. 한국 사회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잘 분석했다. 이번 촛불혁명처럼 민중이 들고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탄핵안 통과 뒤 감옥은 형식적인 곳”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2015년 11월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2015년 11월14일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비상식에 저항하는 민중의 함성이었다. 당시 구호는 세월호 진상 규명, 노동 개악 폐기, 쌀값 보장, 국정교과서 철회 등이었다. 국민의 정당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전국에서 상경한 노동자, 농민, 시민이 광장에서 처음 본 것은 거대한 차벽과 끝없는 물대포 세례였다. 청와대는 물론 광화문으로 한 발짝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민주노총은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웠다.

당시 민중총궐기는 국민의 요구에 귀 막은 정부가 만든 집회였다. 대통령이 귀를 막은 이유는 최근의 국정 농단 사태가 폭로되며 선명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2년 전 총궐기는 오늘 광화문 촛불의 심지 역할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날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박근혜 정권이 불러온 비극이다. 박근혜의 국민을 보는 시각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을 대하는 태도와 극명히 대비된다. ‘1% 권력과 재벌을 위한 정부’라는 비판은 은유와 상징이 아닌 선명한 현실이다. 1987년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최루탄이 물대포로 바뀌었을 뿐 민초의 목소리는 여전히 억압받고 있다. 위험 업무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는 열차에 끼어 죽고, 수학여행을 떠난 금쪽같은 우리 아이들을 태운 세월호는 침몰했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는 죽으면서도 ‘가난해서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굳이 곤봉과 물대포가 아니더라도, 국가가 구해내지 않은 국민이 죽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무엇이라고 보나.

1천 명의 노동자에게는 1천 개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한 실상을 꼽자면 끝도 없다. 다만 제도적으로 보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전면 부정하고, 노동법이 보호하는 모든 보호 장치를 해체한 노동 개악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또 고 김영한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전에 이미 청와대가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7%로 정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를 위한다고 선전하면서 실제로는 500만 저임금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박근혜 정부의 민낯이다.

노동 개악과 최저임금 억제는 재벌·대기업을 비롯한 자본의 민원사항이었다. 특히 노동 개악과 관련된 법안 발의와 행정지침 발동 시기를 보면, 재벌이 최순실을 통해 거액의 뇌물을 건넨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권력과 자본이 뇌물을 주고받으며 법안 장사, 정책 장사를 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1% 권력과 재벌을 위한 정부박근혜 정부 이후를 이끌 대선 후보들의 노동에 대한 관점은 어떠해야 하나.

지난 대선의 이슈가 ‘복지’였다면, 이번 대선의 이슈는 ‘노동’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노동절을 맞아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고용을 원하면 노조에 가입하라”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대선 후보들이 노동문제를 중시한다면 지금 당장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 ‘노조에 가입하라’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 연설이 발표된 시점은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를 인정한 결정이 내려진 직후였다. 오바마 대통령을 친노동자 정치인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대선 후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노동관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이 차기 노동부 장관으로 한 위원장을 거론했다.

설사 민주노총 위원장이 내일 당장 노동부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노동자들은 해고를 막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핵심은 장관을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삶을 소중히 하는 기반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이 어떤 의도로 나를 거론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노동자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하고 있다.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대선 시기 민주노총은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정권교체도 정치교체도 아닌 세상교체, 즉 세상을 바꾸는 것이 이번 대선의 목표여야 한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적폐와 악습을 끊어내고, 촛불에 모인 소중한 목소리를 실현하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최저임금 1만원과 비정규직 철폐 등의 요구와 더불어 재벌체제 해체, 국가 대개혁 등 전 사회적 이슈도 전면에 내걸 계획이다. 촛불의 힘으로 적폐 청산, 개혁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 대선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 싸우겠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주노총 위원장 임기가 2017년 12월31일까지다. 우연히 박근혜 대통령 임기와 비슷해서 선거 때 “박근혜를 내 임기 끝나기 전 하루라도 먼저 끌어내리겠다”고 했다. 내가 잘한 것은 없겠지만, 촛불광장에 모인 국민들의 힘으로 조합원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켜켜이 쌓아올린 적폐의 담을 허물지 않으면, 나와 내 아이의 삶은 단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국민의 절박함이 TV와 신문으로 전달된다.

젊은이들은 이런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른다. 차별과 불평등, 뇌물과 특혜가 지배해온 헬조선을 바꾸는 그날까지, 광장에서 한분 한분 느꼈을 연대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날카로운 칼바람마저 막아내던 광화문광장 옆 사람의 온기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자. 민주노총도 늘 함께하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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