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처음과 끝은 시민일 것이다. 철학자 김상봉에게 한국 사회 진단과 전망, 과제를 들었다. 꽃길을 원하는 시민들의 토론 현장을 취재했다. 2016~2017 촛불의 심지라고 할 2015년 민중총궐기의 상징적 인물(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고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도 만났다. 촛불의 의미를 궁구하는 학계의 논의를 차분히 살펴 전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촛불과 외침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싣는다.
취재 전진식·진명선·정환봉·김효실 기자, 편집 김선식·허윤희 기자, 디자인 장광석
‘백남기’는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밀접한 이름이다.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사망한 그로 인해 박근혜 정부를 떠받친 공권력의 폭력성이 드러났다. 집회에 참여해 그가 외친 구호가 겨우 ‘쌀값 21만원 대선 공약 이행’이었다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뒤 헌신짝처럼 버려진 다른 많은 공약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상기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21만원으로 약속했던 쌀값은 지난해 12만9711원(80kg)으로 1995년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강제 부검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내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와 함께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이후 최순실·박근혜 국정 농단 국면에서 연인원 1천만 명 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됐다.
지난 2월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35)씨를 만났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적임자다. 아버지가 물대포에 쓰러진 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서울대병원으로부터 그와 가족이 당한 일은 국정 농단의 ‘샘플’이었다.
재판서도 ‘직무상 비밀’ 뒤에 숨은 경찰어떻게 지냈나.회사 다니고 있다. 민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중간중간 법원에 간다. 악플 단 사람들을 고소한 건이 있어서 고소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있다. 그때는 휴가를 낸다.
다른 가족도 잘 지내고 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의 부재에 적응이 안 된다고 하신다.
지난해 3월 백씨 가족이 국가와 강신명 경찰청장,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지 8개월여 만인 11월에야 첫 번째 공판이 열렸다. 2월24일 다섯 번째 공판의 쟁점은 경찰의 자료 제출 거부였다고 유족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정일 변호사(법무법인 동화)가 전했다.이 변호사는 “살수요원 2명과 살수 지시자 신윤균에 대한 청문감사 진술 조서와 이를 정리한 청문감사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법원이 자료제출 명령까지 내렸는데 경찰이 직무상 비밀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며 “국회 청문회 때는 소송이 있을 때 대응하기 위해 제출할 수 없다고 하더니 정작 민사 절차가 진행되니 직무상 비밀을 이유로 제출할 수 없다고 한다. 대체 어떤 내용이 있기에 이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국정 농단으로 많은 국민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아버지 사건을 겪으면서 정부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면.
뭐든지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아빠가 그렇게 심하게 다쳤을 줄 몰랐다. 집회 참여자한테 그렇게 쏘아댈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검찰이 수사를 아예 안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검찰도 경찰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아빠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나 서울대병원이 보여준 태도도 상상 이상이었다. 아빠가 누워 계실 때 가족이 혜화경찰서에 간 적 있는데 형사들이 “우리 서장님이 제일 잘하신다는 의사 불러서 수술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형사님이 뻥이 심하시네’라고 생각했고, 믿지 않았다. 경찰서장이 전화한다고 서울대병원 교수가 오밤중에 수술한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 서울대병원이면 의학적으로 권위도 있고, 최상급 의료기관인데 설마 했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위한 어떤 결정을 할 때 환자에게 최선인 쪽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본인의 출세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윗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는 쪽으로 치료나 수술이 결정됐다. 환자와 가족이랑 상관없는 제3자에 의해 치료와 수술이 결정되는 건 누가 봐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은 한통속이었다가해자인 경찰에 대해서는 어떤가.
지난해 9월 청문회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을 처음 봤다. 경찰 30~40명이 강신명을 에워싸고 다녔다. 강신명은 현직도 아니고 전직인데, 경찰을 동원해서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우리가 무섭나? 강신명 바로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우리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이 사과하라고 호통을 쳤는데도 (의원들과) 청문회 끝나고 웃으면서 악수하더라.
범죄를 저질러놓고 ‘법대로 하자, 증거 있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한 프로파일러가 말하길, “걸릴 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더라. 청문회 때 강신명이 그랬다. “사법적으로 잘잘못이 가려지면 사과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결국 ‘나는 무죄 나올 거야, 유죄 안 받아’ 하는 자신감 아닌가. 검찰이 자신을 수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얘기로만 듣다가 경찰과 검찰이 한통속이라는 것을 청문회에서 직접 목격했다.
2016년 10월25일, 고 백남기 농민 시신에 대한 경찰의 부검영장 집행 시한 마지막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농단과 관련해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날이었다. 시신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오전부터 1천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던 경찰은 오후 4시 대통령의 사과 내용이 방송된 지 2시간 만인 오후 6시에 ‘철수’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10월28일 경찰이 “부검영장 재신청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부검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국가의 면책을 위해 시도됐다는 의심을 산 강제 부검을 막은 일등공신은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었다. 10월25일 대통령의 사과를 “최순실을 위한 사과”라고 표현했다.박근혜 대통령이 한 사과 중에 최순실 연설문 사과가 제일 빨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 일은 아니지만 지휘받는 집단이 한 일인데, 아빠가 돌아가신 일에 대해서는 사과는커녕 아무 언급도 없었다. 우리는 1년 가까이 사과를 못 받았는데, 최순실 관련 일은 그렇게 빨리 사과한다는 게 좀 우스웠다. 세월호 때도 한 달 넘어서 사과하지 않았나. 사과의 속도나 반응을 보면, 대통령이 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가 여실히 드러난다.
경찰이 철수한 뒤 빈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 손으로 아버지를 지켜냈다”고 했다.가족만 장례식장에 있었으면 경찰이 밀고 들어왔을 게 분명했다. 돌아가신 뒤 부검영장 집행 시한이 가는 동안 많은 분이 빈소를 지켜주셨다. 10월25일에도 많이 모였다. 사람들이 그렇게 안 모였으면 아빠를 데려갔을 거다. 그러고도 남았다.
피해자가 누구든 국가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 가족사가 보도되는 것을 꺼린 것으로 안다.그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 가정교육이 어땠냐는 질문도 받았다. 제가 집에서 독립한 지 20년이 넘었다. 기억도 잘 안 나고, 국가폭력과 상관없는 얘기였다. 가정교육을 잘한 사람이건, 못한 사람이건 국가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 질문하는지 알겠는데, 만약 아빠가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국가폭력을 당해도 되나. 아빠의 인품이나 가족의 사적 이야기는 국가폭력과 별개다.
국가를 상대로 싸운다는 게 두려웠을 텐데.우리 가족이나 아빠가 잘못한 게 없다. 전적으로 정부가 잘못한 일이다. 방송에 수차례 나왔지만 물대포를 쓰더라도 규정에 맞춰 물살의 강도를 조정하거나, 직사가 아니고 곡사로 했으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가 집회에 나가서 한 요구가 과한 것이었나. 대통령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쌀값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지키라고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그 정도의 말을 할 자유가 없나.
‘백남기 물대포 사망 사건’의 종결에 대한 백도라지씨의 기준은 단순 명쾌했다. 책임자 처벌이다. 그런 점에서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은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 2월20일 만난 그는 “사람을 죽였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검찰이 수사를 안 할 수 없다”고도 했다.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지 4일 만인 2015년 11월18일 가족들은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살수차(충남 9호)에 살수를 지시한 신윤균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장(현 영등포경찰서장), 살수차에 탑승했던 살수요원 등 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1년이 지나도록 수사에는 진척이 없다.
검찰 수사가 지연되자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 ‘백남기 특검안’(경찰폭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등을 위한 특별검사의 수사요구안)을 발의했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11월6일 장례 과정에서 발표한 가족의 입장문에서 “우리 가족들은 아직 제대로 된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해야겠다”고 했다.
아빠의 장례는 마쳤지만, 아무도 감옥에 안 갔다. 아빠를 잘 보내드리자, 그것만을 위해 싸운 게 아니었다.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징계를 받은 것도 아니다. 책임자로 지목된 이들이 오히려 승진하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장례를 치렀으니까 이제 다 해결된 건가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다 정리된 거지?’라고 묻는 친구도 있다. 정리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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