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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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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머리는 죄가 없지만

‘315명 배에 갇혔다’ 보고받은 뒤 미용실 연락…

2년여 은폐해온 ‘세월호 7시간’ 일부 행적 드러나
등록 2016-12-15 17:17 수정 2020-05-02 04:28
5부_세월호 7시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드러나면서 ‘세월호 7시간’은 국정 왜곡·공백의 극단적 상징이 됐다. 탄핵소추 안에도 포함됐다. 사흘간의 국정조사에선 청와대가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내놓은 그간의 해명이 ‘총체적 거짓말’이라는 의심을 살 만한 증언들이 나왔다.
고 육영수씨(오른쪽)를 연상케 하는 올림머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상징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올림머리를 한 사실이 최근  보도로 드러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고 육영수씨(오른쪽)를 연상케 하는 올림머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상징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전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올림머리를 한 사실이 최근 보도로 드러났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올림머리는 박근혜다. 박근혜 대통령의 올림머리는 어머니 고 육영수씨를 연상한다는 이유로 박 대통령의 상징이었다. 박 대통령이 외부 일정이 있을 때면 습관처럼 올림머리를 했다는 것은 정치 이력과 함께 남겨진 사진이 증명한다.

올림머리가 구설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7년에도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검색대에서 올림머리에 고정한 머리핀 24개 때문에 경고음이 울려 머리를 풀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예스럽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오히려 박 대통령이 이 스타일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잠시 머리를 내려 단발머리를 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깐, 대선 후보로 공식 일정을 시작한 박 대통령은 늘 올림머리로 대중 앞에 섰다. 올림머리는 죄가 없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삶을 가꾸는 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것이 여성이란 이유 때문이라면 비판은 더욱 온당치 못하다.

하지만 그날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이었다. 300여 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선수 일부만 남기고 침몰한 세월호 안에 있었다. 온 국민이 그 모습을 현장 중계로 지켜보았다.

미용사 정 원장, 낮 12시께 ‘청와대로 와달라’ 요청받아

오전 11시께 ‘전원 구조’ 언론 보도는 잠깐이었다. 청와대에선 오전 11시10분부터 해경513함의 현장 중계를 통해 전남 진도 앞바다의 세월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밖에도 청와대는 실시간 해경이 보내온 보고를 분석해 대통령에게 유선보고와 서면보고를 올렸다. 11시23분, 박 대통령은 “315명의 미구조자가 세월호 안에 있다”는 보고를 국가안보실장에게서 받았다(제1140호 특집 ‘박근혜는 315명 갇힌 사실 전화로 들었다’ 참조).

그럼에도 정오가 다 된 시각, 청와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ㅌ미용실 정아무개 원장에게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위해 들어와줄 것을 요청했다. 미용실부터 청와대까지 이동시간을 따져보면 평소 40여 분 거리, 화장을 맡은 동생과 함께 도구를 급하게 챙겨 청와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그 시각 진도 앞바다에서는 침몰한 세월호에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생존자 구조가 시작됐다. 목포해경 122구조대는 수중수색을 거듭했다. 선체까지 다다르는 선을 설치한 것은 오후 6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이날 구조는 실패였다.

상황은 급박했다. 하지만 미용사 정 원장은 곧바로 박 대통령의 올림머리 작업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로부터 올림머리와 관련해 별다른 지시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와 수차례 만난 자리에서 정 원장은 보통 올림머리를 하는 것과 다름없이 작업을 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일반적으로 올림머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머리감기, 말리기 등 이른바 세팅을 포함한 시간이다.

12월6일 저녁 보도가 나간 직후 청와대가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당일의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연애설, 굿판설, 성형시술설 등이 근거 없는 의혹으로 밝혀지자 이제는 1시간 반 동안 머리 손질을 했다는 터무니없는 의혹 제기까지 등장했다”며 “4월16일 출입기록에 따르면 오후 3시20분경부터 약 1시간가량 청와대에 머문 것으로 확인된다.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은 20여 분”이라고 했다. 연애, 굿, 성형시술 등과 스스로 비교하면서 머리 손질은 인정하되 90분이 아닌 20분이 걸렸다는 해명이다.

머리 손질에 걸린 시간보다 중요한 것

실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는 청와대 내부의 온전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당일 1시간가량이란 해명은 다음날 7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3시22분부터 4시37분, 75분으로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머리 손질 시간을 차치하고라도 머문 시간이 ‘1시간가량→75분’으로 불일치를 보이는 것이다.

실제 일부 언론은 박 대통령과 유사한 모양의 올림머리를 직접 만들어보며 소요 시간을 확인하기도 했다. 올림머리는 머리카락을 모아 올려 머리핀 수십 개와 스프레이로 고정하는 형태다. 짧게는 46분에서 길게는 70여 분까지 시간은 다양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머리 모양을 미리 잡아놓고 시간을 측정했거나, 머리감기·말리기는 고려하지 않았다. 미용업계에선 올림머리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메이크업까지 더하면 90분 이상 소요될 수밖에 없고 올림머리만 하더라도 1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고 설명한다.

진실은 당시 미용사와 박 대통령, 또는 배석한 ‘누군가’만이 알고 있다. 나아가 세월호 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서 올림머리에 들어간 시간이 90분이냐 아니냐는 본질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세월호 희생자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유예은 학생의 아버지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지난 시간이 허무하고 서럽다. 온갖 이야기를 들어오면서도 그래도 뭔가 급하거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기 바랐다”고 말했다. 또 “올림머리를 하려고 미용사를 불렀건 머리를 헝클려고 미용사를 불렀건, 그 시간에 뭘 했느냐가 아니라 세월호 가족들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왜 구조하지 않고 죽였느냐’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해명을 위해 공개한 자료는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자료가 청와대 주출입문 기록인지, 세월호 당일 대통령이 하루 종일 머문 관저의 기록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공개하면 명확해질 일이지만 청와대는 증폭되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20분이라는 해명만으로 갈음하겠다는 뜻이 분명해 보인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할 때 한 초등학교 교실에 있었다. 9·11 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대통령이 7분의 시간을 머물러 있었다고 기록하면서 그 대응이 적절했는지 따진다. 미국 대통령의 그날 행적은 ‘아침 조깅’ 등 분 단위로 쪼개져 있다.

청와대는 7시간, 420분을 철저히 감췄다. 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어떤 보고가 이루어졌는지, 보고받은 대통령이 그에 대해 어떤 지시를 했는지’ 등을 알기 위해 2014년부터 ‘대통령의 7시간’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진행했다. 법원이 직접 나서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라고 했다. 청와대는 별다른 주장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대통령 업무수행의 공정성’을 국민의 알 권리보다 앞세워 청와대 손을 들어줬다. ‘공정성’이 최순실이란 이름으로 오염된 현실, 올림머리는 2년여를 버텨온 ‘은폐’의 높은 담장에 구멍을 냈다.

9·11 당일 미국 대통령 행적은 분 단위 공개

구멍으로 들어온 빛은 깜깜하던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면서 또 다른 진실의 실마리를 드러냈다. 청와대는 “(올림머리를 마친 뒤) 오후 5시10분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출발해 5시15분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도착했다”고 해명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대통령의 7시간 중 오후 5시11분에 정무수석실 서면보고(잔류자 구조 방안 등)가 있었다. 드러난 내용만 보면 차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서류가 대통령에게 전달된 셈이다. 보고와 지시 과정에서의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청와대 공개 자료를 보면, 2014년 참사 당일 오전 10시30분께 박 대통령은 당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해경청장의 이동이 기록된 자료를 보면, 해경청장은 10시30분 헬기를 탄 것으로 돼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통화가 소란한 헬기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헬기에서 대통령과의 통화가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설령 통화했더라도 내용이 전달됐을 리 만무하다는 게 당시 의혹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 시각에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전화 내용을 브리핑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의 ‘말’을 대변인이 미리 브리핑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통화 지시가 과연 있었는지 의구심은 여전하다.

올림머리로 드러난 것은 90분의 시간만이 아니다. 청와대의 지금껏 해명과 달리 당일 박 대통령에게 접근한 ‘외부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12월7일 청와대는 “미용사는 계약직 직원이라 출입증을 찍고 들어간다. 총무비서관실 소속이니 외부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밝힌 지금까지 대통령이 머문 관저의 유일한 출입자는 간호장교 신아무개 대위였다. 세월호 당일 오전 10시께 ‘가글’(구강청결제)을 전달하기 위해 관저에 방문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홀로 있었다는 관저에 누군가가 출입한 것 자체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미용사가 비서실 소속이니 문제될 것 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청와대의 헛발질은 국정조사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보안손님’(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출입증을 달지 않고 별도 출입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경호실 내부 용어)이 존재했느냐까지 의혹의 영역을 넓혀놓았다. 지금까지 보안손님으로 확인된 최순실씨, 차은택씨 등을 포함해 누군가 당일 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세월호 당일 알려지지 않은 미용사의 출입은 나머지 출입자들의 존재, 특히 보안손님의 출입을 확인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대통령 식사 공간에 텔레비전 있다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해 올림머리와 함께 확인된 것은 ‘끼니’다. 원래 박 대통령은 혼자 식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와 만나 “평소 대통령은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 세월호 당일도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인분 식사가 준비됐고 (식사 시간은) 평소와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는 규칙적으로 낮 12시에 시작되며 1시간 뒤에 후식으로 과일이 들어간 다음 마무리된다고 전했다. 이를 토대로 보면, 참사 당일 식사하는 데 1시간여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식사하는 공간에는 텔레비전이 있어 평소대로라면 텔레비전을 보며 식사했다고 전해진다. 식사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준비된 식사는 조리 담당자가 아니라 부속실 보좌진 누군가가 늘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대통령은 대개 혼자가 된다.

이 인사는 “상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방해받지 않기를 원하는 박 대통령의 식사 습관을 볼 때) 식사 시간에 보고가 들어가는 일은 거의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텔레비전 속 침몰한 세월호의 모습을 홀로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소대로 식사가 끝난 뒤 과일 한쪽을 입에 넣었다면, 그 과일에선 단맛이 났을까. 박 대통령은 세월호 당일 낮 12시부터 1시간가량 세 차례 올라온 정무수석실 서면보고에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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