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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우리는 어디로

거국내각 총리 합의, 촛불 재점화, 시민의 정치 참여, 새 시스템 구성… 14인의 제언
등록 2016-12-15 16:40 수정 2020-05-03 04:28
지난 제1140호 표지이야기에서 ‘민주주의와 촛불의 길’을 물었다.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호에 담지 못한 목소리들을 갈무리해 전한다. _편집자
왼쪽부터 김덕진, 김동춘, 김수민, 신진욱

왼쪽부터 김덕진, 김동춘, 김수민, 신진욱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대외협력팀장)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안 내려오고 최대한 버티겠다는 건데, 대선 주자들이야 정치공학적으로 타임테이블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고려 없이 갈 길을 간다. 서울로 집중하지 않아도 지역에서 많은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최순실이 너무 촘촘히 해먹어서 분노의 크기가 과거와 다르고 촛불은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국민은 어쨌든 퇴진 요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야당은 한편으론 거국내각 총리에 합의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사실상 새누리당이 모든 걸 만들어낸 주체다. 새누리당 심판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김수민 전 경북 구미시 의원(녹색당)

분노하고 때로 절망하는 건 당연하지만, 즐겁게 가자. 낙천적으로 하면 오래갈 수 있다. 1987년만큼 상황이 만들어졌다. (30년 전처럼) 향후 20~30년 체제를 규정할 수 있도록, 한번 불이 붙은 김에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장기화되고 탄핵안이 가결되어 오히려 촛불 동력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촛불은 꺼졌다가도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 지금 야권 정치인들이 1987년과 다른 점은 YS(김영삼)나 DJ(김대중)처럼 지도력을 갖춘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야당이 일정한 선 밑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다그치고 바로잡는 역할을 국민이 해야 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9년간 어떤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고 대통령 권한이 남용된 세월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비공식 지배 블록 네트워크가 한국의 재계, 정계, 사법부까지 얼마나 촘촘한 그물망으로 맺어져 있는지 드러내줘야 한다. 의회도 사법부도 대통령이 휘두르는 권력을 제어할 대항 권력이 되지 못했다. 개헌론자들이 내각제로 전환해서 정권 교체를 막으려는 속임수를 쓰는데, 유럽도 의원내각제이지만 총리 내지는 집권당이 보유한 권력이 강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담합으로 권력이 남용될 여지가 많다.

왼쪽부터 안진걸, 은수미, 윤희웅, 이택광

왼쪽부터 안진걸, 은수미, 윤희웅, 이택광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박근혜씨가 아주 나쁜 마음 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냥은 못 그만둔다, 국민이든 국회든 너희들 고생해봐라…. 마지막까지 나라와 국민을 엉망으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그만둬야 한다는 걸 본인이 인정했다면 지금 깨끗하게 그만두는 게 맞다. 그게 마지막 도리다. 국민이 ‘축 성탄’을 박근혜와 함께 맞이할 수는 없다. ‘축 퇴진’부터 먼저 하시라. 이제 탄핵됐는데 더 빨리 내려오라고 불이 붙을 거다. 이어서 국회가 즉각 퇴진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도 안 물러나면 진짜 청와대에 가서 끌어내려야 한다.

은수미 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시민이 정치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나를 따르라’는 영웅적 리더십이 아니라, ‘나는 당신의 목소리입니다’ ‘나는 촛불의 목소리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해봤자 세상이 바뀌나? 결코 안 바뀐다. 정치, 시민도 위치를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 정치는 시민의 위치에 서고, 시민은 관망자와 시청자에서 참여자로 위치를 바꿔야 한다. 밀레니엄 민주주의는 시민 참여의 민주주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시간이 지나면 충격에서 헤어나오는 보수층이 결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분노가 정점에 와 있다. 대중이 신뢰할 만한 분명한 조처와 대통령 퇴진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분노가 쉽게 진정되거나 약화된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추가 보도나 검찰 수사에서 지금보다 충격적인 게 나올지도 모른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촛불은 시민의 모임이라 가변적이다. 촛불을 끄려는 시도도 많이 있을 거다. ‘나라가 왜 이 꼴이냐’ ‘나라를 정상화하자’는 애매모호한 어젠다가 계속되면 결국 언젠가는 동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래도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라는 데 훨씬 더 의미가 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때 주도했던 386들이 이번에는 주도권을 못 쥔다. 의제가 급진화되면 좋겠지만, 현재 상황 자체로도 의미 있다.

왼쪽부터 임지봉, 장덕진, 정연순

왼쪽부터 임지봉, 장덕진, 정연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립적인 특별검사한테는 수사받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생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가 잘돼야 한다. 진상 규명을 하는 게 대통령을 가장 빨리 퇴진시키는 방법이다. 대통령이 시간 끌면서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나는 사심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는데, 특검 수사에 대비한 방어용 멘트다. 물러나는 순간에 기소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 안 내려오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헌법학자들은 강제 수사도 된다고 본다.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 행사가 중단되면 강제 수사까지 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지금 이 체제의 꼭대기에 누가 앉아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체제는 그대로 두고 사람만 갈아치우면 되나? 지금부터 몇 달이 걸리든 새 시스템 구성 작업이 빨리 시작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선 후보의 역량이 드러날 거다. 야당이 지금 크게 착각하는데 국민들, 특히 중도층에는 정권 교체가 꼭 필요치 않을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4% 됐다고 해서 야당이 정권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2012년 대선은 진영 대결이었지만, 지금은 새 시스템을 만들어서 합의제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건데 그러면 정권 교체의 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연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우리 스스로 주권자이자 책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생활 현장 속에서 힘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광장의 촛불이 (국민의) 3%밖에 안 되지 않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 전달해야 한다. 100만 촛불을 여기서 꺼지게 해서는 안 된다. 힘들겠지만 박근혜로 상징되는 옛 체제를 쓸어내리고 앞으로 나아갈 사회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 힘을 내야 한다.

왼쪽부터 박상훈, 조국, 최태훈

왼쪽부터 박상훈, 조국, 최태훈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대통령을 해고한다는 시민적 평결이 입법부에서 정리되는 과정을 봤다.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그 뒤 대선을 통해 시민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도 지금만큼 대혼란일 것이다. 야당이 반드시 집권할 수 있을까? 지금 실력으론 어렵다고 본다. 개헌은 대통령이 원하는 거라 물 건너갔다. 김종인, 손학규, 김무성은 정치적 시민권을 갖지 못하게 될 거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촛불 민심은 대선을 염두에 두고 탄핵을 바라보지 않는다. 촛불 민심은 박근혜가 대통령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끼는 상태로 갔다. 그래서 내년 4월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박근혜와 친박들에게 5개월의 시간 여유를 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양보해서 하야를 약속하는 시간을 정할 수는 있다. 그런데 5개월을 더 주는 건 아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거국내각) 총리를 지금이라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아무런 나쁜 짓을 안 해도 마이너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까지 4개월, 대선까지 2개월 정도 걸리면 6개월이 황교안 체제다. 엄청난 기간인데 손 놓고 있어도 될까? 1987년 체제 이후 여러 대통령을 바꿔봤는데 문제가 악화된 게 사실이니 체제 전환을 생각할 때가 됐다. 앞으로 6개월이면 공론화를 시작할 수 있다. 촛불이 국회를 노려 ‘체제를 만들어라’ ‘총리도 만들어라’ 정치권을 압박했으면 좋겠다.

정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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