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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아웃

1987년 이한열 사망 사건 이후에도 지속된 경찰의 과잉 진압

최루탄 빈자리 채운 살수차도 법으로 통제해야
등록 2016-10-04 17:13 수정 2020-05-03 04:28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지난해 11월14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차벽을 치며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지난해 11월14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차벽을 치며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뒤통수가 아프다.”

1987년 6월9일. 머리 뒤에서 흘러나온 피가 얼굴에 번졌다. 입과 코에서도 피가 나왔다. 희뿌연 최루탄 연기 속에 이한열(연세대 2학년)의 의식도 희미해졌다. 이윽고 병원으로 옮겨진 이한열은 뇌사 상태에 빠졌다. 다량의 이물질이 뇌에 박혀 의료진은 수술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인공호흡으로 버티던 이한열은 노태우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조치를 발표한 엿새 뒤인 7월5일 세상을 떠났다.

이한열의 뇌를 망가뜨린 이물질은, 총에 장전해 최루탄을 쏘는 총류탄(SY-44)의 파편이었다. 경찰은 발사기 총구를 45도 각도를 유지한 채 하늘로 쏘아야 할 최루탄을, 시위대의 등 뒤에서 직격 발사했던 것이다. 누구의 총구가 이한열을 조준했는지 검찰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최루탄에서 최루액 섞은 물대포로</font></font>

이한열이 쓰러진 직후 전국에선 최루탄 추방 대회가 열렸다. 1960년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이후 최루탄을 앞세워 민주화 시위를 잔인하게 진압해온 경찰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한열 1주기를 맞아 이한열열사추모사업회는 최루탄의 제조·사용을 금지하는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요구했고 야당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응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89년 6월, 최루탄으로 시위대가 부상당하거나 사망했을 경우 현장 책임 경찰관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시민들이 요구하던 ‘최루탄 퇴출’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1990년대까지도 경찰의 총류탄 직격 발사로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실명하는 대학생과 시민이 속출했다.

1998년 정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은 “경찰은 되도록 최루탄을 쏘지 말라”며 ‘자제령’을 내렸다. 눈치 빠른 경찰은 9월 만도기계 노조 파업 현장의 진압을 끝으로 ‘무최루탄 원칙’을 선언했다. 이한열이 숨진 지 11년 만이었다.

최루탄을 포기한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킬 수 있는 더 위력적인 진압 장비를 찾았다. 2001년부터 신종 화염병이 등장했다는 명분으로 다목적 가스소총(고무충격총)과 최루액분사기를 휴대하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신임 조현오 경찰청장이 서울지방경찰청장 시절 들여오려다 안전성을 이유로 거부당한 ‘지향성 음향장비’(음향대포) 도입을 다시 추진하다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포기하기도 했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size="4"><i><font color="#991900">오히려 경찰은 올해 안에 성능이 향상된 살수차 1대를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다. </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평범한 시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시작한 2000년대에 집중 활용된 진압 장비는 차벽과 물대포였다. 특히 캡사이신이나 최루액을 섞은 물줄기를 고압으로 뿌려대는 19대의 살수차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반대집회(2004년), 경기도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 농성(2005년), 광우병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2008년), 평택 쌍용자동차 옥쇄파업(2009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집회(2011년) 등 전국의 집회 현장을 헤집고 다녔다.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로 분류되는 최루액인 파바(PAVA)와 캡사이신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 높은 수압의 물대포만으로도 시민들에겐 치명적이었다. 경찰은 ‘20m 이내 거리에선 물살 세기를 2천 아르피엠(rpm) 이내로 하고, 직사 살수의 경우에는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 사용한다’는 살수차 운용 지침을 너무 쉽게 어겼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얼굴에 물대포를 맞은 송아무개씨가 고막이 찢어진 뒤 합병증으로 청력을 상실했고, 김아무개씨의 시력도 손상됐다. 2011년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선 박아무개씨의 고막이 찢어졌고, 이강실 목사는 뇌진탕을 일으켰다.

급기야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직사 살수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하는 훈련을 받은 적 없이’ 현장에 처음 투입된 최아무개 경장이 ‘20m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최대 2800rpm’의 세기로 머리를 향해 ‘20초 이상’ 쏜 물대포에 맞은 백남기 농민이 생명을 잃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살수차 포기하지 않는 경찰</font></font>

이런 위험을 예견했다는 듯 영국은 지난해 7월 ‘시민 안전’을 이유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의 물대포 사용을 불허했다(제1089호 특집 ‘물대포? 67가지 결함부터 해결할 것’ 참조). 독립 자문기구인 ‘위해성 무기의 의학적 영향 검토 과학자문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가 정부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물대포에서 고압으로 분사된 물줄기가 콧구멍, 귀, 입 등으로 흘러 들어갔을 때 근골격계 손상(염좌, 탈구, 척추골절 등)과 뇌진탕, 안구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외에 물대포로 파손된 간판·벤치 등 거리의 구조물 조각으로 인해 부상당할 경우, 기온이 낮거나 알코올을 섭취한 상태에서 물대포를 맞아 저체온증에 빠질 경우, 강한 충격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경우 등 시민의 안전을 해치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시됐다.

한국에서도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금지·자제해야 한다는 국가기관과 시민사회의 줄기찬 요구가 이어져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과도한 물대포 사용을 자제하고 살수차의 구체적인 사용 기준을 경찰 내부 지침이 아닌 법률에 명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버텨왔다.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빠뜨린 뒤에도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가 계속되는 한 살수차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11월16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며 물대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은 올해 안에 야간 작전을 위한 적외선 촬영이 가능하고 물대포 수압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할 수 있는 안전밸브가 장착된 살수차 1대를 추가로 들여올 계획이다. 기존 19대 살수차의 성능 역시 단계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직사 살수, 법으로 통제할 필요</font></font>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감시·통제해야 할 국회의 논의는 멈춰 있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물대포의 직사 살수와 최루액 혼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살수차 직사 금지법’(경찰관직무집행법 일부개정법률안·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제출돼 있으나 소관 국회 상임위인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되지도 못한 상태다.

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경찰이 시위대와 몸으로 직접 충돌하는 대신 시위대에 물을 쏘면 되는 물대포는, 가시적으로 덜 폭력적으로 보이는 대신 더 위협적이기 때문에 경찰이 선호하는 진압 방식”이라며 “물대포 사용이 현실적으로 중단·금지될 수 없다고 한다면 적어도 경찰의 자의적 사용을 통제할 수 있도록 (운용 방식을)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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