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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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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지지층은 왜 1번을 찍지 않았나

제3당의 탄생, 여당 심판, 지역주의 균열의 열쇳말 ‘저항투표’ 기존 정당에 불만족 표시한 유권자들의 기립 의지
등록 2016-04-19 17:59 수정 2020-05-0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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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선거(총선)가 새누리당(122석)의 패배로 끝났다. 영남에서 야권 성향 후보들이 65석 중 13석(더불어민주당 9명·정의당 1명·무소속 3명)을 차지하며 새누리당 텃밭에 균열을 낸 효과가 컸다. 122석이나 걸린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이 35석만 건진 것도 여당의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했다. 수도권은 국민의당이 호남과 함께 집중적으로 후보를 낸 곳이다. 새누리당은 야권 표가 분산되는 상황에서도 실익을 별로 얻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국민의당이 삼킨 표

여야 승패를 가를 격전지로 꼽힌 수도권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정치 전문가들이 낸 분석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일부가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 이탈, 야권 지지층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야권 후보(주로 더민주 후보)에게 표를 집중, 지역구 투표에서 더민주를 찍고 정당 투표에선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야권 지지층의 전략적 교차 투표.’

하지만 이들의 분석은 박근혜 정부와 여당에 실망한 새누리당 지지층의 ‘일부 또는 상당수’가 표에서 이탈했다는 정도의 추정에 머물고 있다. 은 격전지인 서울을 중심으로 그 수치를 가늠하는 분석을 시도했다.

은 데이터분석기관 ‘빅토리랩’(여론데이터분석센터장 최정묵)과 함께 최근 7년간 치러진 4차례 전국선거에서 수도권 유권자가 실제로 투표한 결과를 수도권 1126개 행정동별로 분석(제1106호 표지이야기 참조)한 바 있다.

제5회 지방선거(2010년), 제19대 총선·제18대 대통령선거(2012년), 제6회 지방선거(2014년)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 후보, 무소속·제3당·군소정당 후보들이 받은 득표율 평균값 등을 계산한 분석이었다. 응답률이 떨어지는 여론조사가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는 수도권 전 지역의 실제 표심을 보여주려 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 결과는 표심 사전 분석 내용과 상당히 일치한다. 예를 들어 당시 분석에서 서울 종로구에서 더민주가 받아왔던 평균득표율이 52.2%라고 밝혔는데, 이번 총선에서 정세균 더민주 후보의 득표율은 52.6%였다.

이에 따라 은 ‘수도권 표심 분석’과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서울 지역 득표율을 비교했다. 이를 통해 서울 지역구 선거에서 새누리당 표의 손실이 얼마나 됐는지, 합리적 보수 성향들만 새누리당 표에서 이탈했는지, 국민의당으로 흘러간 새누리당의 표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아울러 이번 총선에서 원내 제3의 교섭단체가 돼 정국 운영의 결정적 변수로 떠오른 국민의당에 표를 던진 이들의 성향도 가늠해볼 수 있었다.

비교 방식은 이렇다. 서울 광진갑을 예로 들어보자.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이 지역의 평균득표율이 44.1%, 더민주 후보의 평균득표율이 53.5%, 무소속·제3당·군소정당 후보의 평균득표율이 2.4%였다(①). 이번 총선에선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37.94%, 더민주 후보가 40.67%, 군소정당 후보들이 1.44%를 얻었다(②). ①과 ②를 비교하면, 새누리당 후보는 그간 전국선거에서 받은 이 지역 평균득표율보다 6.16%, 더민주 후보는 12.83%, 원외 군소정당 후보들은 0.96% 떨어졌다.

여기서 각 당 후보들이 잃은 득표율의 총합은 19.95%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새롭게 등장한 국민의당 후보가 얻은 득표율이 바로 19.93%였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어떤 정당의 표를 흡수(잠식)했는지, 이런 비교 방식으로 알 수 있다.

새누리당 8.6%, 더민주 9.2% 흡수

이런 방법으로 서울 지역구 49곳을 비교해보니, 새누리당은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얻은 서울 지역 평균득표율(46.2%)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7.5% 떨어진 38.7%에 그쳤다. 서울에 출마한 더민주 후보들의 평균득표율은 43.3%였다.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얻은 서울 지역 평균득표율(50.1%)보다 6.8% 떨어졌다.

더민주 후보들보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잃은 손실이 좀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더민주 후보들이 얻은 평균득표율이 새누리당보다 높게 유지됐다. 야권 지지층이 더민주 후보들의 표의 손실을 방어해준 덕이다.

이처럼 야권 분산을 극복하려는 야권 지지층의 결집 투표는 이번 총선에서 ‘서울 지역구 득표율’과 ‘서울 지역 정당득표율’의 차이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지역구 투표에서 새누리당은 38.7%, 더민주는 43.3%, 국민의당은 18.5%, 정의당은 2.7%를 얻었다. 하지만 서울 지역 정당 투표에선 새누리당 30.8%, 더민주 25.9%, 국민의당 28.8%, 정의당 8.5%로 크게 달라졌다. 지역구 투표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더민주를 찍었다가, 정당 투표에선 국민의당·정의당 등으로 분산됐음을 볼 수 있다.

지역구 투표에선 더민주 후보를 찍고 정당 투표에선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등 ‘전략적 분할 투표’에 나선 50대 신아무개(서울 강서을)씨는 “국민의당 지역구 후보는 인지도가 낮아 야당 후보 중에 당선 가능성이 있는 더민주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30대 강아무개(서울 강동을)씨도 같은 방법으로 투표했다.

“사표를 막으려고 더민주 후보를 찍었다. 국민의당 후보가 정치를 처음 한 분이라 당선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정당 투표에선 국민의당을 찍었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1·2번에 과학기술인을 배치하는 등 안철수 대표가 일관성이 있어 보여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서울 지역구 투표에서도 국민의당 후보들을 찍은 사람들은 어떤 성향의 유권자일까. 국민의당은 서울 지역구 49곳 중 41곳에 후보를 내어 평균득표율 18.5%를 기록했다.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얻은 득표율과 이번에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한 서울 지역구 41곳의 득표율을 비교해 ‘표의 이동 경로’를 살폈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 후보가 없는 2곳의 경우 새누리당 성향 무소속 후보(이재오 후보 등)가 얻은 득표율을 참고했다.

이런 방식으로 비교하니, 새누리당이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얻었던 서울 지역 평균득표율에서 8.6%, 더민주가 받았던 평균득표율에서 9.2%가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두 정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엇비슷한 비율로 국민의당의 서울 지역 후보들을 찍은 것이다.

새누리당 적극 지지층도 돌아서

서울에서 국민의당 후보를 찍은 30대 김아무개씨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쪽에 실망해 그동안 투표하지 않았다. 정치적 견해가 보수에 가까웠는데 새누리당에 실망하다가 야당을 택하려니 더민주한테도 크게 실망해 국민의당으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60대 강아무개씨도 “원래 더민주를 지지했는데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가 (스스로) 비례 2번으로 나온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새누리당은 ‘친박 갑질’이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합리적·개혁적 보수 성향 유권자가 새누리당 소극지지층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서울 지역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 이동한 새누리당 득표율은 소극지지층(3.9%)보다 2배 이상 많은 8.6%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의당 쪽으로 빠져나간 ‘새누리당 득표율 8.6%’다. 이 빅토리랩과 함께 수도권 1126개 행정동의 표심을 분석한 결과를 보자면, 서울 지역 새누리당의 평균득표율에서 소극지지층이 차지한 비율은 3.9%였다. 합리적·개혁적 보수 성향 유권자가 새누리당 소극지지층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서울 지역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 이동한 새누리당 득표율은 소극지지층(3.9%)보다 2배 이상 많은 8.6%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새누리당 적극지지층의 일부까지 ‘변심 투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 용산에 사는 60대 조아무개씨는 “1번(새누리당)을 찍을 마음도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 (지역 투표에선) 진영 더민주 후보를 찍고, 정당은 국민의당을 찍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구 투표에서 기존 정당 지지를 접고 국민의당으로 이동한 득표율이 새누리당(8.6%)보다 더민주(9.2%)가 좀더 많은데 서울에서 더민주가 선전한 것도 눈에 띈다. 총선 이전부터 예상된 ‘야권 분열-야권 참패’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민주로도 옮겨간 1번 표심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를 통한 수도권 표심 분석에서 보듯, 서울 지역은 원래 더민주의 평균득표율(50.1%)이 새누리당(46.2%)보다 높았던 곳이다. 이번에 더민주 지지층의 일부가 국민의당 후보를 찍었지만, 그 비중 못지않게 새누리당 지지층의 일부를 국민의당이 흡수해 서울에서의 ‘더민주 우세’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서울에서의 ‘더민주 선전’을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표를 잠식했다고만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얻은 득표율의 총합보다 더 많이 표를 얻은 더민주 초강세 지역은 종로구(정세균), 구로갑(이인영), 노원을(우원식) 등 7곳이었다. 또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서울 강남을(51.5%), 양천갑(52.1%), 은평갑(54.9%), 동대문을(58.2%), 도봉갑(60.1%) 등에선 더민주 후보가 50~60%대를 몰아서 득표했다. 야권 분화가 되지 않은 곳에선 야권 후보가 새누리당을 압도한 것이다. 특히 현역 의원인 인재근 더민주 후보(도봉갑)는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이 지역 새누리당이 얻은 평균득표율 가운데 4.2%, 황희 더민주 후보(양천갑)는 1.9%를 더 끌어왔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에 강한 경고를 보내려는 의지가 야권 지지층뿐 아니라 새누리당 일부 지지층 내부에서 이미 꿈틀대고 있었다는 것이 이번 총선의 표심이 말하는 메시지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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