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균열의 힘은 ‘저항투표’에서 비롯했다. 한국 정치의 3당 현상을 ‘저항투표’의 개념으로 분석해온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의 저항투표 분석에 영감을 얻어, 이번 총선 결과를 분석하는 한편 국민의당과 안철수 공동대표의 미래를 전망해보았다.
잔치가 끝난 마당에서 다시 잔치는 열린다. 2017년 12월 잔치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취재 전진식·홍석재·송호진·김선식·서보미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font>
‘저항투표’(Protest Vote)가 돌아왔다.
제3정당 출현, 정부·여당 심판, 지역주의 균열. 4·13 국회의원선거(총선) 결과를 압축하는 열쇳말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표심의 정체가 바로 저항투표다. “양당적 경쟁이 유지되어오던 정치 체제에서 제3당의 지지가 갑자기 증가하게 되는 데에는 기존 정당 구조에 불만을 갖는 유권자들로 인한 저항투표인 경우가 많다.”(참고 문헌 ②)
<font size="4"><font color="#008ABD">호남과 부산·울산·경남의 변화 </font></font>D<A+E. 저항투표를 설명하는 도식이다. D는 불만족(Dissatisfaction), A는 대안의 수용 가능성(Alternative), E는 항의를 동반한 퇴장(Exit-with-Voice)의 줄임말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향한 ‘불만족’ 정도에 견줘 ‘대안의 수용 가능성’과 ‘항의를 동반한 퇴장’을 더한 가치가 더 크다면 저항투표가 이뤄진다.
“저항투표는 유권자가 정치에서 느끼는 다양한 형태의 불만족을 표시하고 정당으로 하여금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하는 능동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의 방법이다.”(참고 문헌 ⑤) 반대로 불만족 정도가 더 크다면 유권자들은 ‘조용히 퇴장’(Exit-with-Silence)할 것이다. 투표 불참, 곧 기권이다.
이번 총선에서 저항투표는 여당과 제1야당 텃밭에서 모두 나타났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4"><i><font color="#991900">“제3정당에 대한 저항투표는 본질적으로 기존의 지지 정당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적 유용성’을 갖기 때문이다.”
-강원택 교수</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먼저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을 상대로 거둔 압승.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구 28개 의석 가운데 23석을 휩쓸었다. 광주에서는 8석 모두 독차지했다. 전국 정당득표율에서는 아예 더민주를 제치고 2위를 기록했다. 호남 쪽 정당득표율은 50% 안팎에 이른다.
더민주에 실망한 호남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은 더민주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제3정당에 대한 저항투표는 본질적으로 기존의 지지 정당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적 유용성’을 갖기 때문이다.”(참고 문헌 ①)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새누리당의 위세가 꺾였다. 이 지역 40개 의석 가운데 새누리당은 27석에 그쳤다. 제19대 총선(36석)보다 9석이나 줄었다. 반대로 더민주는 3석에서 8석으로 갑절 넘게 증가했다. 새누리당에 크게 실망한 유권자 상당수가 대안으로 더민주를 선택한 결과다. 그리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일색으로 굳어버린 이 지역의 표심에 중대한 균열이 난 것 아닐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족의 표시 </font></font>호남 더민주, 영남 새누리당 양강 구도의 지역주의가 3당 합당 이후 고착화한 게 벌써 26년, 한 세대가 지났다. 지역주의 고착화의 폐해는 정책선거 실종, 정치 효능감 저하, 투표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나의 행동이) 정부나 정당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내적 효능감)이 갈수록 허물어지면서 투표율은 75.8%(1988년 13대 총선)에서 46% 수준(2008년 18대 총선)까지 떨어졌다. “저항투표는 특정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 지지를 획득해온 정당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다.”(참고 문헌 ⑤) 저항투표가 지역주의를 깨는 돌망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8년 전에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저항투표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이 벌어진 바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은 이번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공천 잡음’을 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계와 박근혜계가 정면충돌했고, 민주당에서는 비례대표 순번 갈등으로 집단 탈당 사태까지 터졌다. 직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화려하게 원내에 진입했던 민주노동당은 선거를 앞두고 당내 노선을 두고 격돌해 당이 두 조각 나기도 했다.
선거 결과 친박연대(14석), 자유선진당(18석), 창조한국당(3석), 무소속(25석) 돌풍이 불었다. 한나라당은 153석으로 과반을 지켰지만, 통합민주당은 81석에 그쳐 4년 전 의석수(152석)에 견줘 거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민주노동당은 의석수가 10석에서 5석으로 반토막 났다.
이번 총선은 그러한 저항투표의 확대판이자 결정판이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이 양당 체제에 ‘정치적 균열’을 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유권자들이 정당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선거 뒤 이뤄진 패널 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양당 가운데 한쪽에는 호감을, 다른 한쪽에는 혐오를 드러내는 유권자층(상극적 정당 태도)이 17~19대 총선을 거치며 48.6%→33.7%→30.7%로 크게 줄어들었다.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 수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항투표의 수혜를 맛본 국민의당이 안심할 일은 아니다. 저항투표는 그 속성상 해당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족의 표시인 탓에 일시적인 표심 이동인 경우가 많다. 또한 여야 양당 체제가 단단한 한국에서 제3정당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자민련과 통일국민당의 말로</font></font>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그랬다. 1990년대 유권자들의 ‘정치적 변비’가 심화하는 사이 자민련이 제3정당으로 출현했다. 자민련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꿰차며 급부상했다. 그러나 김종필이라는 단 한 명의 인물에게 기댄 자민련은 뒤이은 총선에서 의석수가 17석으로 그다음 총선에서 4석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특히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구분해 1인2표제가 처음 시행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율은 2.82%에 불과했다. 이번 선거에서 기독자유당의 득표율 2.63%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자민련은 2년 뒤 2006년 당시 한나라당에 흡수되면서 소멸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 사례도 있다. 이 당은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창당됐는데, 그해 3월 총선에서 31석을 거머쥐었다. 통일국민당의 일시적 성공 또한 “정주영이라는 ‘인물’과 경제문제 해결의 ‘이미지’, 그리고 ‘저항투표’”(참고 문헌 ⑤)의 결과로 분석이 가능하다. 국민의당과 유사한 표심을 등에 업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12월 대선에서 정 회장은 3위에 그쳐 낙선했다. 당은 2년 만인 1994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일국민당 사례는 총선용 이합집산의 말로를 상징한다. 결국 국민의당이 받아든 ‘1차 시효’는 내년 대통령선거까지다. 당의 꼴을 그때까지 유지할지가 관건이며, ‘온전한 정당’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나라 밖에서는 영국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s)이 대표적이다. 1988년 창당한 자유민주당은 노동당·보수당에 이은 제3정당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전체 의석수의 10% 벽을 넘지 못했다. 2015년 총선에선 8석에 그쳐 제4정당으로 추락한 처지다.
상품의 질이 떨어지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2가지다. 그 상품을 사지 않거나, 그 상품을 제대로 만들도록 항의하는 것이다. 3당 합당 이후 추락한 투표율은 유권자들 상당수가 정당·정치인이라는 상품 자체의 구매를 포기해왔다는 방증이다. 반대로 앞선 19대와 이번 총선에서 투표율이 반등한 것은 포기하는 사람은 줄고 항의하는 사람은 더 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표지 아닐까. 소극을 버리고 적극으로, 무기력한 지지가 아니라 강력한 저항으로 돌아선 것은 아닐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저항 투표 다음은 저항 </font></font>국민의당 또는 안철수는 저항투표의 최대 수혜자다. 그러나 수혜는 수해(水害)로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민심의 도도한 물길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정당 와해’라는 수해를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자민련과 통일국민당을 기억할 일이다.
저항투표는 기권이 아니라 기립하려는 의지다. 무너진 한국 민주주의 기둥을 일으키려는 유권자들의 기립 의지다. 1년8개월 뒤 대선이 열린다. 저항투표 다음은 저항이다.
2011년, 지금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제3당 창당’을 권했던 적이 있다. 그의 전망은 5년 뒤 현실이 됐다. 안 대표가 주도한 국민의당은 4·13 총선에서 국회의원 38명을 보유한 ‘원내 교섭단체’가 됐다. ‘신 3당 시대’ ‘20년 만의 가장 강력한 제3정당’ 따위의 수식어를 달았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사진)는 유권자들의 ‘저항투표’에서 원인을 찾았다. 기존 거대 정당에 대한 정치적 불만족이 ‘강력한 제3당’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강 교수는 이번 총선 결과를 “대통령과 여당의 오만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심이 무섭다”는 말로 정리했다.
‘강한 제 3정당’의 등장이라고 봐도 좋나.
외형적으로는 1990년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이후 가장 강력한 제3당이란 평가가 나올 만하다. 국민의당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일체감을 갖느냐가 당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 국민의당은 선거를 위해 뭉친 성격이 강하다. 당내 의원들이 사안마다 제각각 의견을 내고 행동할 수 있다. 게다가 안철수 대표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지 못했고, 천정배·정동영·박지원 당선자들처럼 산전수전 겪은 정치인들의 입장이 제각각이다. 자민련과 달리, 강력한 제3당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무려 38석을 얻었다.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과 더민주에서 흩어진 표를 제3당이 챙긴 것이다. ‘저항투표’적 성격이 뚜렷하다. 새누리당·더민주의 기존 지지자들은 상대 당에 교차 투표하는 ‘상호 지지 전이’가 어렵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그동안 지지했던 정당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싶은 것이다. 국민의당이 좋은 저항 수단이 된 것으로 본다.
특히 국민의당 비례대표가 더민주와 같은 13석이나 됐다.
모든 유권자는 ‘내 표가 버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사표 방지 심리가 있다. 호남 지역을 빼면, 당선권에 있는 국민의당 후보가 없었다. 이 때문에 호남 외 유권자들은 지역구에서는 ‘될 만한 인물’, 즉 새누리당·더민주 후보를 찍고, 정당 투표에선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이다.
<i> 김 교수는 저항투표 가운데 정당 지지를 포기하는 것을 ‘퇴장’, 일시적 지지 철회를 ‘항의’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번 선거는 어떤 성향이 드러난 것인지 물었다.</i>
호남이 ‘딴살림’을 차린 것인가.
가장 재밌는 게 호남이다. 유권자들은 ‘항의’하고 있다. 호남이 더민주에 ‘이제 인연 끊자’고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게 정권 교체잖나. 그러나 호남 유권자들도 ‘안철수만 갖고 정권 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민주에 ‘정권 교체를 실현해줄 당으로 거듭나라, 애초 우리가 기대했던 정당으로 되돌아가라’고 주문한 것이다.
제3정당의 급부상이 ‘정치적 효능감’을 줄까.
유권자의 정치적 효능감은 분명히 높아졌다. 저항투표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 정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또 기존 정당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잘못하면 다른 선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경고를 준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충분히 전해졌다고 본다.
국민의당에 대해 ‘호남 자민련’ ‘호남에 고립됐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 비판이 나올 만하다. 영남 유권자들에게는 기존 정당인 새누리당에 ‘저항투표’를 할 무소속 후보가 있었다. 호남 쪽에선 저항투표 혜택을 무소속 후보 대신 국민의당이 받은 셈이다. 이런 맥락을 잘 이해해야 한다.
국내 정치 역사에서 수많은 제3당이 명멸했다. 국민의당은 어떻게 될까.
내년 대선까지 국민의당이 살아남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안 대표는 계속 정치인으로 가겠지만, 국민의당 내부의 다른 의원들은 어쩔 것이냐 하는 문제다. 게다가 더민주가 호남을 버릴 수 없고, 안 대표는 호남을 뺏길 수 없을 것이다. 안 대표가 야권의 정치적 지형을 버텨낼 수 있는지가 결과를 판가름할 것이다.
4·13 총선의 총평도 해달라.
민심이 무섭다. 가장 간명하고, 확실한 부분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오만한 것을 국민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줬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① (강원택, 한국정치학회보, 1998)
② (강원택, 한국정치학회보, 2002)
③ (이내영·신재혁, 아세아연구, 2003)
④ (강원택, 2008)
⑤ (문광춘, 고려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9)
⑥ (정한울, 아세아연구, 2012)
⑦ (박영환, 한국정당학회보, 2014)</font>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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