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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정당은 없다

여야 총선 청년 정책, 졸업한 구직자에 초점 맞춰 ‘시간 빈곤’ 해결할 4대 보험 전면 지원, 심야수당 집중 감독 필요해
등록 2016-03-24 15:29 수정 2020-05-03 04:28

“시급은 지금 5300원 받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12월부터 시작했어요.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이에요. 2016년에 최저시급이 오른다고 들었는데 오른 게 적용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심야수당 같은 건 없었고, 주휴수당도 안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주휴수당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라요. 하루에 10시간씩 이틀 일을 하니까 일주일에 20시간씩 일하는 거긴 한데, 딱히 안 받습니다.”(최○○씨·20)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는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2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어리고 조직되지 않는 힘없는 이들을 위한 정책은 있을까.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지된 각 정당별 공약을 살폈다. 각 정당은 10개씩 대표 공약을 내걸었고, 이 가운데 미취업청년 또는 아르바이트 관련 정책은 ‘청년’ ‘일자리’ 분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알바노조 “각당 정책 실효성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취업청년(18~34살)들에게 자기주도적 구직 활동을 증빙하는 경우 취업활동 지원비 60만원(최대 6개월)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또 다른 야당인 국민의당은 아르바이트 임금 체불을 근절하고 최저임금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미취업청년에게 청년디딤돌급여를 월 50만원(연간 최대 540만원)을 제공하는, 가장 금전적 지원 규모가 큰 공약을 택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현금 지원 대신 취업정보와 맞춤훈련을 제공하는 청년희망아카데미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다른 당에 견줘 새누리당은 청년 일자리 정책의 규모가 적었다. 반면 어르신 일자리를 매년 10만 개씩 대폭 확대 공급하겠다고 했다.
알바노조 용윤신 사무국장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위한 각 정당의 특화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청년 정책은 대부분 학교를 마친 구직자들의 취업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용 국장은 “최저시급 인상 방안이 있지만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2020년까지 올리는 정책은 별 의미가 없다. 2020년이면 현재 올라가는 수준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수당을 주겠다고 하는 것도 구직 노력을 전제하고 있어 거리가 멀다”고 했다. 용 국장은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노동권을 보장받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난해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사이트인 ‘알바몬’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아르바이트 노동자 612명 가운데 441명(72.1%)이 ‘아르바이트 중에 부당한 대우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로 겪은 부당한 대우로 휴게시간 무시·연장근무(253명), 임금 체불(171명), 최저임금에 미달한 급여 지급(153명) 등을 꼽았다. 모두 법 위반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자본주의의 기본 질서인 임금마저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인턴 가이드라인을 냈듯이, 심야수당·주휴수당·근로계약서 준수 등을 찍어서 감독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종진 연구위원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규모(1700여 명 수준)로는 아르바이트 감독이 쉽지 않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 모니터링 권한까지 주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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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자유가 만드는 결정적 차이

법적 보호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정당들이 내놓은 구직활동 지원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년들이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보장하는 정책이다.

“누가 알바를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하면, 우선 ‘좋겠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그다음에는 ‘집에 돈이 많나’ 생각을 많이 해요. ‘나도 알바 쉬고 여유롭게 용돈 받으면서 지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제일 심하게 들 때가 언제냐면…, 사실 사소한 것을 많이 포기했어요.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난 그런 걸 할 생각을 못했어요. 왜냐하면 주말에는 항상 알바해야 하니까. 친구들이 다 하는 대외활동이나 공모전 같은 것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되니까 못했죠.”(김○○씨·25)

김씨의 경우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공모전’을 생활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와 맞바꿨다. 청년 실업률이 12.5%에 이르는 등 갈수록 취업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김씨의 선택은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을 더 낮춘다. 그가 열심히 일하고 생활에 충실했어도 그 시간에 이른바 ‘스펙’을 쌓은 이들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해 대학을 마친 뒤 신분이 상승한 이야기는 이제 신화에 가깝다. 한국 사회의 아르바이트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자식의 취업 등이 갈리는 이른바 ‘금수저·흙수저’ 논란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를 바꾸기 위해 아르바이트 임금의 기준으로 통용되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필요하다고 김종진 연구위원은 말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지금보다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면 김씨는 주말이나 밤을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에만 쓰지 않아도 된다. 공부만이 아니다. 20대인 그가 친구들과 함께하는 ‘사소한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연금·건강보험 등 4대 보험료를 전액 지원하는 것도 이들의 미래를 지원하는 방법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떼가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가입을 꺼리는 상황이다. 월평균 보수가 140만원 이하인 노동자(10명 미만 사업장)의 사회보험료를 50% 지원하는 정부의 ‘두루누리 사업’은 오히려, 올해부터 40%(신규 가입자 60%)로 축소된 상태다.

복지 수준의 차원이 다르지만 덴마크는 대학생에게 매달 760유로(약 102만원)를 지급한다. 집이 부자든 가난하든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책은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만든다. 덴마크는 올해도 전세계에서 행복한 나라 1위로 꼽혔다.

내일을 생각할 여유도 없어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글쎄요, 여행을 가거나 했겠죠. 근데 별로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요. 생각하면 슬퍼져서가 아니라,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는) 모습들이 이미 제 삶의 구성 요소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저는 아직 ‘N포 세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아요. 내가 지금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가지도 않거든요. 당장 이번달 알바비 얼마 받고, 이거 받아서 방세 내면 얼마 남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기 바쁘니까요. 출산·결혼·취업,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당장 오늘 문제가 더 심각하니까요.”(유○○씨·22)

이완 기자 wani@hani.co.kr
이미진·박리세윤·최유진·김동관(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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