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간곡히 피 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6·15 남북 정상회담 9주년 기념사’)
김대중 전 대통령은 822개, 김영삼 전 대통령은 728개, 노무현 전 대통령은 780개, 이명박 전 대통령은 816개의 연설문(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기준)을 남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작성본 손으로, 낭독본 붓으로 </font></font>대통령 연설문은 역사다. 수백 개에 달하는 대통령의 연설에는 그 시대의 상황과 시대정신이 드러나 있다. 정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국가의 지도자는 무엇을 위해 5년 동안 일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연설기록비서관을 맡았던 강원국 책쓰기학교 교장은 “대통령의 일정은 대통령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일정에는 대통령의 말이 붙는다. 대통령이 말을 하지 않는 일정은 없다. 즉, 대통령의 연설문을 분석하는 것은 대통령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표다”라고 했다.
대통령 연설문에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담겨 있지 않다. 대통령 연설에는 대통령이 해야 할 이야기,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이야기,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 등 세 가지가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때로는 국민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정치의 90%는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절대 국민보다 앞서가면 안 된다고 했다. ‘반보만 앞서가라. 국민과 손을 놓지 말라’고 했다. 본인이 (연설에서) 어젠다를 던지는 것은 극히 드물었고,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쪽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100% 달랐다. 리더는 어젠다를 던지는 사람이었다. 국민을 끌고 가야 한다고 했다. ‘대연정·개헌·증세’ 등 지도자는 국민이 듣기 싫은 소리도 용기를 가지고 해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국민을 각성시킬 부분이 있으면 시켜야 하는 쪽이었다.”(강원국 전 비서관)
“모든 대통령은 똑같다. 정말 중요한 이슈는 1년 동안, 5년 동안 메시지를 반복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선진화였다. 선진화는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서 공정사회·동반성장이라 할 수 있다. 다 변주된 메시지다. 대통령의 심정은 왜 국민이 내 진실한 마음을 몰라줄까, 그게 기본적인 마음이다.”(김영수 전 이명박 정부 연설기록비서관)
대통령 연설문 작성은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이 담당한다. 현재의 틀이 갖춰진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 대통령이 불러들인 정무직과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이 함께 연설문을 쓴다.
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때는 공보수석실이 연설문을 작성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문은 출신 이수정 수석이 주로 썼고, 김영삼 대통령의 연설문은 출신 윤여준 수석이 주로 썼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공보수석 밑에 연설비서관이 신설됐다. 과거 공보수석실 비서관들이 나눠서 하던 연설문 작성 업무를 연설비서관이 전담하게 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공보수석이 홍보수석으로 바뀌었고, 연설비서관실은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으로 독립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연설비서관실이 국정 기록 업무를 통합해 연설기록비서관실로 변화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깐깐한 빨간펜 첨삭… 음성 녹음 vs 공개 토론 </font></font>기술의 발달도 있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만 해도 연설문은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썼다. 작성된 연설문은 읽기 좋게 편집한 낭독본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붓으로 큰 글씨로 옮기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서 17년 동안 일하는 등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 연설문 작성 작업을 지켜본 김철휘 국무총리실 연설비서관은 “김대중 정부 전까지만 해도 연설문이 완성된 뒤에 해야 할 뒷작업이 많아 밤 12시 이전에 퇴근하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컴퓨터로 연설문을 작성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 시작했다. 이때부터 연설문을 수정하는 것도 빨라졌고, 이전 연설문을 검색해 참고하는 게 쉬워졌다.
기술의 발달로 연설문 작성 작업은 쉬워졌지만 이전보다 대통령들은 더 깐깐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빨간펜’ 선생님이었다. 연설비서관실에서 초안을 작성해 올리면, 김 대통령은 꼼꼼히 고쳐 돌려보냈다. 처음에는 검정색 사인펜으로 쓰고, 고칠 때는 파란색 사인펜을 쓴 뒤 마지막에는 빨간색 사인펜으로 수정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연설비서관이 대통령과 직접 만나 여쭤보는 게 불가능했다. 권위주의가 남아 있던 시대였다. 대통령도 그걸 알기 때문에 꼼꼼히 고쳐서 내려보냈다.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원고가 좋지 않으면 본인이 말씀을 녹음해서 테이프로 줬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고쳐준 적은 없다. 초안을 올리는 순간 시작이다. 연설비서관실 직원을 모두 올라오라고 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통령이 구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원고를 올리면 연설하는 시간 전까지 고치고 고쳤다.”(강원국 전 비서관)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4"><i><font color="#991900">말과 글은 국민과 대화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생각한다는 의미를 지닌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연설문의 품격을 중요시한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경제형이었다. 다양한 곳에서 글을 받아 경쟁시켰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중요한 연설의 경우 3∼4개씩 연설문을 (다른 곳에서) 대통령이 받아서 줬다. 소설가 이문열씨나 중간에 나간 박형준 수석 등에게 글을 받았고, 내부에서는 이동우 기획관리실장과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연설문을 수정하지 않고, 관련된 사람들을 모아 독회하는 것을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청와대 사정이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연설문 작성 과정에 대해 말이 엇갈린다. 청와대 쪽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설문 초안에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전한다. “연설문이 대략 완성되면 참모들이 모여 내용을 점검하는 독회를 갖는다. 박 대통령이 직접 독회를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들과 모임을 주재한다”고 는 전한 바 있다.
반면 강원국 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데, 그런 수준으로는 글을 쓰지 못한다. 누가 써주는 것을 읽을 뿐이다. 그것도 연설비서관이 키를 쥐고 있지 않고,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보좌한 정호성 부속실 비서관이 주로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김영수 전 비서관도 “현 연설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을 자주 못 만난다고 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통령을 자주 만나야 대통령의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연설비서관이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전 노태우 대통령은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 김철휘 비서관은 전했다. 노 대통령은 연설문이 올라오면 파란색 사인펜으로 읽었다는 표시를 해서 돌려보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주로 말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박근혜, 언론 불편해 내부 회의서 발언</font></font>대통령이 국민에게 메시지를 말하는 방식도 각각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도 역사의 기록이라 생각해 항상 연설문의 토씨 하나 안 건드리고 그대로 읽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똑같이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지식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연설문에 항상 집어넣었다. 다른 사람의 예를 연설문에 집어넣으면 항상 원위치시켰다. 미래 첨단산업을 이야기할 때도 IT, BT, CT, NT, ST 순서까지 똑같이 해서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는 백번 읽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은 처음이다’가 신조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였다. 같은 말을 하면 청중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혁신도시 기공식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하는데 전주에서 한 이야기를 원주에서 똑같이 하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달리 이야기했다.”(강원국 전 비서관)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이 잘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메시지는 6개월 정도 반복하지 않으면 국민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은 튀어도 일관성이 있게 했다. 바꿔서 이야기해도 같은 원칙이었다.”(김영수 전 비서관)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색다르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 서서 발표하거나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 대신 주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영수 전 비서관은 “수석비서관회의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회의다. 그것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스타일을 쓴다. 그때 ‘진돗개처럼 해라’ 같은 거친 표현을 쓰는데, 대통령 표정을 보면 영 어색하다. 원래 박근혜 대통령은 절제된 말, 필요한 말 아니면 안 하는 스타일이다. 초기에는 격식에 잡힌 말씀만 하다가 주변에서 아마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대중적인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말이다”라고 분석했다.
대통령 연설 가운데 중요한 것은 8·15 광복절 경축사와 3·1절 기념사, 신년연설이 꼽힌다. 8·15 광복절 경축사는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남북관계 위주로 북한을 향해 제안하는 내용이 연설문에 주로 실렸지만,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국정 전반에 걸쳐 성과와 과제를 정리하는 기회로 삼았다. 연설비서관실은 광복절 경축사를 준비하는 데만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이상 쓴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와 국군의 날 기념사는 직접 쓸 정도로 챙겼다.
이 밖에 좋은 대통령 연설문으로 강원국 전 비서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연설(김대중)과 2006년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노무현)를 꼽았다.
광주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가 그날의 광주에 빚지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살아남은 사람들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받들어 인권을 더욱 신장시키고 민주주의를 완성하는데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국민의 정부’는 여성과 노동자의 권익을 크게 향상시키는 등 인권 신장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집회, 시위, 파업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부는『인권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인권위원회를 설치하여 세계에서 모범이 되는 인권 선진국가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정에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더욱 내실있게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살기좋은 나라를 염원하던 5.18 광주시민의 뜻을 받들어 경제적 번영과 21세기를 향한 도약을 이룩해야 합니다. 경제개혁을 철저하게 추진해서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앞서갈 수 있는 정보강국을 건설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생산적 복지를 강화해서 모든 국민이 공동체적 연대 속에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롭고 복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화해와 대화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가신 임들의 고귀한 뜻을 받드는 길입니다. 5.18 광주정신을 완성하는 길인 것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이 되는 오늘을 기해서 이제 지역간, 계층간의 모든 분열과 대립을 종식시켜야 하겠습니다. 특히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사슬을 단호히 끊고 화합과 협력의 새 시대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2000년 5월18일)
<font color="#991900">*'영원히 타오를 민주화의 불꽃' 중 일부</font>
연설문에는 대통령의 지향점과 세계관이 담겨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연설에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담화에는 올바른 역사 인식과 동북아 시대 협력을 향한 해법이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정부는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독도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겠습니다.
물리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세계 여론과 일본 국민에게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끊임없이 고발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역사를 모독하고 한국민의 자존을 저해하는 일본 정부의 일련의 행위가 일본 국민의 보편적인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일 간의 우호관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가 결코 옳은 일도, 일본에게 이로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 국민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로 한국의 주권과 국민적 자존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실과 인류사회의 양심 앞에 솔직하고 겸허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웃나라에 대해,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에서 이 기준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일본은 경제의 크기에 걸맞은 성숙한 나라,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 서게 될 것입니다.
(2006년 4월25일)
김영수 전 비서관은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이명박)을 택했다.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국 경제의 발전에 대한 자부심과 선진화 의지가 담겼다.
존경하는 베이너 하원의장, 바이든 부통령, 상·하원 의원 여러분과 내외 귀빈 여러분!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이곳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의원 여러분과 미국국민 앞에 연설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오기에 앞서 어젯밤 코러스(KORUS) FTA를 상·하원 의회 지도부의 각별한 노력과 의원 여러분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례 없이 신속하게 통과시켜 준 것을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먼 길을 날아와 여러분 앞에 선 지금, 나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오랜 우정을 생각하면서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은 먼 나라가 아닙니다.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이며, 동맹이자 동반자입니다.
지난 60여 년의 한미 동반자 관계를 나타내는 한국어 표현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바로 “같이 갑시다.” 이것을 영어로 하면, “We go together.”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60년을 함께해 왔습니다. 6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미 양국 모두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미국은 지구를 넘어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척해 왔습니다. 우주 시대를 열었고, 정보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과학기술, 의약, 기계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개척정신은 미국을 넘어 세계 평화와 인류 번영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자 위대한 영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난 60년 또한 심대한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고, 독재에서 벗어나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은둔의 나라’는 ‘성숙한 세계국가’로 거듭났습니다.
한국의 이야기는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서울은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황폐했던 남산에 이제는 서울타워가 우뚝 서 있고, 그 아래로는 번영하는 현대적 도시가 펼쳐져 있습니다. 엄마와 아이들이 땔감을 찾으러 다녔던 거리에는 머지않아 전기자동차가 달리게 될 것입니다.
(2011년 10월13일)
지난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는 핵폭탄 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특별한 대책보다 국내 정치·경제 문제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보수 언론조차 국회와 야당을 향해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투정만 부리지 말고, 야당의 손을 잡고 설득하거나 정부 정책을 통해 청년 실업을 해결할 방법을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박’과 ‘진실한 사람’ 그다음은?</font></font>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킨 대통령제는 말과 글에 능통한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말과 글은 국민과 대화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생각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기록관 연설집에 ‘대박’과 ‘진실한 사람’ 외에 무슨 말을 남길지 알 수 없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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