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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뒤꿈치를 들고 있을까

‘평화의 소녀상’ 제작 김운성 작가 인터뷰
등록 2016-01-05 14:27 수정 2020-05-03 04:28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김운성(51) 작가는 참담함을 말했다. 2011년 12월14일 이른 새벽, 김 작가는 아내이자 조각가인 김서경(50)씨와 함께 만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평화의 소녀상’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 길에 설치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천 번째를 맞던 날이었다.

그는 최근 벌어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정부가 가해국인 일본과의 거래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 작가는 “피해국 정부인 한국이 어떻게 이런 협상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독재자의 딸이고 무능력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아울러 그는 “일본이 국제법에 따라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에게 배상하고,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진실한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 한-일 협상 뒤, 첫 위안부 수요집회가 열린 2015년 12월30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 인근 한 카페에서 김운성 작가를 만났다.

‘소녀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의 침략전쟁 때 군위안부가 존재했고, 자신이 그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나는 그렇게 큰 이슈가 됐으니까 해결되는 것으로 알았다. 2011년 어느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는데 할머니들이 그때까지 앉아 계시더라.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할머니들을 찾아갔다. “제가 미술하는 사람인데, 미안함을 덜고 싶다. 할 수 있는 역할을 달라”고 해서 시작됐다.

어떤 의미가 담겼나.

소녀상은 머리를 짧게 뜯겼고, 신발을 신지 못했다. 군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빼앗긴 할머니들의 소녀 시절을 그렸다. 소녀의 발뒤꿈치가 들려 있다. 조선의 딸이면서도,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살아온 아픔 그 자체다. 그러나 희망을 담고 싶었다. 소녀상 왼쪽 어깨에 앉은 새는 평화를, 빈 의자는 누구나 함께 앉아 할머니들과 연대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소녀와 이어진 그림자에 할머니들을 투영했고, 그림자 속 하얀 나비는 더 좋은 삶으로의 환생을 바라는 뜻을 담았다.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최근 미국과 일본이 만나면서 일본의 평화헌법이 없어지는 상황이 됐다. 다른 나라를 침략한 행위를 눈감아주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국이 끼어들었다. 실재하지도 않는 국익을 위해, 역사적으로 피해국인 한국이 가해국인 일본의 입맛대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일 외교장관이 만나서 소녀상을 어떻게 하려는 것 아닐까 불안했다. 결국 이런 상황까지 왔다.

일본이 소녀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에서 약탈이나 성폭행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 국가가 조직적으로 여성들을 전쟁터에 끌고가 성노예로 이용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피해국의 여성들을 전쟁터에 데려가 성노예로 만든 것이다.

용납할 수 없는 전쟁범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 게 소녀상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전쟁범죄에 대한 상징으로 보일 것이다. 게다가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사과와 반성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들의 치부의 상징인 소녀상을 어떻게든 지우려는 것이다. 이런 일본을 왜 박근혜 대통령이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느냐. 아무리 독재자의 딸이고 무능력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 한심하다.

소녀상 철거와 10억엔을 맞바꾸겠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소녀상은 민간 성금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가 소녀상을 어찌할 수 있다는 식의 반응은 어불성설이다. 나한테 연락도 일절 없었다. 정부가 돈을 들여서 만들어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여서 우리 정부가 소녀상을 옮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조각상 하나를 놓고, 한 나라의 총리가 제안하고 우리 대통령이 그걸 받아서 어쩐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도 비정상적이다.

우리 정부도 미묘하게 태도를 바꾸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이해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라도 국민의 마음을 받아 실천해야 한다. 왜 엉뚱한 짓을 하고, 국민의 이해를 바라는지 모르겠다.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문제를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그게 국가가 할 일이다. 소녀상이 발뒤꿈치를 들고 있다. 정부가 못나서 끌려갔으니까, 정부가 이 소녀를 안아서 치유하고 도와줘야 한다.

최근 상황이 국제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보나.

소녀상을 추가로 설치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이미 2점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제막식을 못했다. 당초 소녀상을 세우려던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교적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정부는 ‘10억엔의 떡고물을 주면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는 어떤 것일까.

일본이 스스로 침략전쟁을 반성하는 상징물을 세워야 한다. 애초에 피해국인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소녀상마저 없애려고 한다. 일본은 유엔에서 결의한 대로만 하면 된다. 국제법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진실한 사과와 반성을 하면 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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