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도 정부는 지난 11월3일 국정화를 확정고시했다. 2017년부터 국가가 만든 ‘단일 역사 교과서’를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국가가 역사 해석을 하나로 통일해 내놓는 교과서는 어떤 모습일까? 집필 기준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가늠할 순 없다. 하지만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주장한 논리를 모아보면 대략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은 역사 국정교과서에서 확대되거나 축소될 우려가 높은 10가지 핵심 쟁점을 추려봤다. 역사교사 김태우(경기 양주 삼숭중·전국역사교사모임 부회장)·조용문(경기 김포 통진중)·주은구(서울 석관고)씨와, 최근 정부의 국정화 논리를 반박하며 화제를 모은 역사 과목 학원강사 심용환씨 등 4명의 자문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등의 발언, 정부가 편향됐다고 언급하지 않은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 등을 근거로 삼았다.
1. 상고사의 민족주의적 서술 강화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기자회견에서 “첫째, 상고사 및 고대사 부분을 보강할 것입니다. 고대 동북아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학생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고등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강사들은 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에 상고사·고대사 비중을 늘리는 동시에 과도한 민족주의적 해석을 반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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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문 교사는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류의 내용이 교과서에 실려 과도한 민족주의 의식과 배타적 사고를 심어줄까 걱정된다”고 했다. 는 1911년 계연수가 펴낸 책으로, 우리 민족이 석기시대부터 동북아 지역 범위를 넘은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정통 역사학계는 ‘위서’로 평가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나라는 인간에게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의 한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다. 이미 정부는 박 대통령 취임 첫해부터 상고사·고대사 연구 기획·지원을 대폭 늘려 그 배경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 축소역사 국정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가 축소·왜곡 서술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검정교과서에선 애국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족주의 독립운동(김구, 임시정부), 민족주의 좌파 독립운동(약산 김원봉 등), 만주 무장투쟁, 좌우합작(신간회) 등 당시의 폭넓은 독립운동을 모두 서술하고 있다.
주은구 교사는 “(다양한 독립운동들이) 체제에 맞지 않거나 내용이 너무 많다는 논리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유관순 열사는 (교육부의 국정화 광고에서) 강조했으니 꼭 넣겠지만 대체로 민족주의 계열과 임시정부 계열의 독립운동만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황 부총리는 “일제의 수탈과 그에 항거한 독립운동사에 대하여 충실히 기술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그의 말과 달리 독립운동사가 파편적이고 협소하게 서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3. 1948년 대한민국 건국 강조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1월3일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된 역사 교과서가 있다.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니라 정부단체가 조직된 것처럼 의미를 축소하고, 북한은 ‘국가 수립’으로 건국의 의미를 크게 부여해 오히려 북한에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왜곡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악의적인 왜곡이란 비판을 받았다. 1948년을 ‘국가 수립’ 대신 ‘정부 수립’의 해로 표현한 것은 1948년 제헌헌법 전문에서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1919년)으로 대한민국을 (이미) 건립”했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현 교과서에서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3·1운동의 정신과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민주공화국”(두산동아 교과서)이라고 밝히고 있다.
황 총리의 발언은 1948년 정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3·1운동부터 남한 단독정부 수립까지의 역사적 맥락을 축소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심용환 강사는 “(국정교과서에선) 3·1운동, 임시정부, 해방 이후 좌우 갈등 등에 대한 서술을 축소하고, 1948년 건국을 중심으로 교과 내용이 재편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현 교과서들은 임시정부 수립 이후 국민대표회의(1923년), 윤봉길 의거(1932년), 충칭 임시정부(1940년), 해방 뒤 좌우 갈등(1945년 이후) 등의 과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4. 이승만 대통령 업적 강조교학사 교과서의 전국 채택률은 0.1%(전국 3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가 편향된 교과서라고 지목하지 않은 유일한 교과서여서, 역사 국정교과서의 주요한 모델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교과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광복 직후 좌우를 떠나 당시 한국인들에게 민족 지도자”(293쪽)였다고 묘사한다. 2013년 8월 검정 통과 당시 “가장 신뢰하고 존경받는 지도자” “광복 후 국민적 영웅”으로 적었다가 논란이 일자 그나마 누그러뜨려 수정한 표현이다.
이 교과서는 1940년대 국제사회로부터 임시정부를 승인받으려는 운동의 주역을 ‘임시정부’가 아닌 ‘이승만’으로 서술(293쪽)하고 있다. 다른 교과서들은 1946년 6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이승만의 ‘정읍 발언’에 대해 남북 분단 가능성이 커진 계기(리베르)나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한 중도파의 반발을 촉발한 사건(두산동아·천재교육·미래엔 등)으로 평가하는 반면, 교학사는 “북한이 먼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했기 때문”(305쪽)이라고 합리화한다.
주은구 교사는 “(국정교과서는) 이승만의 공(임시정부 당시 외교적 노력, 여러 직함 등)만 서술하는 대신 임시정부 활동을 침체에 빠뜨린 과오 등을 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용환 강사와 조용문 교사는 ‘이승만의 정읍 발언’ 내용이 빠지거나 우호적으로 서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5. 반민특위 활동 축소·왜곡
교학사 교과서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해체 과정도 다른 교과서들과 달리 적고 있다. 이 교과서는 반민특위 해체 경과에 대해 “국회는 1948년 9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해 반민특위를 설치하고 그 산하에 특별경찰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치안 유지와 공산세력 저지의 공을 주장하며 반발하였다. 1949년 6월 경찰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여 특별경찰을 무장해제시키기도 하였다”(307쪽)고 쓰고 있다. 친일파 처벌 등에 나선 반민특위에 대한 당시 정부와 경찰의 ‘방해’ 맥락이 빠져 있다.
“반민족 행위자 처벌보다 반공을 더 중요하게 여긴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 활동에 비협조적이었다. 반민특위 소속 국회의원들 중 일부가 공산당과 접촉했다는 구실로 구속되었고(국회 프락치 사건),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혐의로 고위급 경찰이 체포되자 일부 경찰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건마저 발생하였다”(비상교육 352쪽)와 같은 다른 교과서의 서술과 대조된다. 주은구 교사는 “(국정교과서는) 반민특위 해소에 미친 이승만의 영향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삭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6. 한국전쟁에서 북한 책임 기술 강화
황 총리는 국정화를 확정고시하면서 현 교과서들이 “6·25 전쟁의 책임마저 북한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38도선이 그어지고 6·25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남북한 간에 많은 충돌이 있었다”(두산동아)는 한 줄 언급을 문제 삼았다. 이 교과서는 38도선에서 남북한 충돌 횟수를 그래프로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국방부 직속 최고 연구기구”라고 정부가 밝힌 ‘군사편찬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특히 현 교과서 모두 ‘북한의 기습 남침’ ‘불법 남침’이라고 적고 있다. 황 총리가 틀린 주장을 편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정화의 이유로 한국전쟁 서술 문제를 끌어들인 이상 북한 남침의 책임론이 교과서에서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남북한 내부의 좌우 갈등과 남북한 충돌,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상황 등 한국전쟁 무렵의 국내외 정세가 간단히 언급되는 대신 북한의 공산화 전략과 북한군의 민간인 학살 등이 부각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전쟁 때 자행된 미군과 우리 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은 지금보다 더 두루뭉술하게 서술될 것으로 점쳐진다.
7. 북한의 도발과 참상 고발 증가
현 교과서들은 북한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적고 있다. 김일성이 소련파·연안파·갑산파를 제거한 뒤 주체사상에 기초해 개인숭배 사상과 유일체제를 구축한 점, 이후 3대 세습과 경제개발 노력의 실패로 고립되는 과정 등을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황 총리는 국정화를 강행하면서 천안함 사건(2010년) 등 “북한의 군사 도발이 최소한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심용환 강사는 “북한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이해해 통일을 위한 기초 지식을 마련하는 것이 (역사) 교육의 의의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선) 북한의 대남 도발과 북한의 참상에 대한 고발이 북한 관련 교육의 주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용문 교사도 “현 교과서도 북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면이 더 강조되고, 사진 자료도 자극적인 자료가 선택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통일 노력에 대한 서술이 간략해 교과서만으론 이해하기 어려운데 더 축소될 수 있다”고 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미 ‘북한의 실상과 남북 간의 통일 노력’(340~349쪽)이란 단원에서 북한 실상·인권 문제 분량을 9쪽 남짓에 걸쳐 적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 노력’ 부분은 1쪽에도 미치지 못했다.
8. 5·16 쿠데타의 필연성 서술박근혜 대통령이 1989년 MBC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1961년에 일으킨)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밝혔지만, 국정교과서에서 5·16 군사 쿠데타(정변)를 혁명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여론의 저항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같은 인터뷰에서 “중병이 들어 수술을 해야 할 사람에겐 당장 수술을 해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5·16 쿠데타가 불가피했다는 기술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김태우 교사는 “노골적으로 5·16의 명칭을 (혁명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독재를 미화하는 방향으로 서술할 우려가 높다”고 했다. 심용환 강사도 “당시 2공화국의 부패와 무능을 강조하며 5·16의 필연을 서술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미 324쪽에서 “장면 정부(2공화국)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특히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군비 축소를 약속하고, (중략) 경찰의 치안 능력을 약화시켜 혼란을 자초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하였다”(324쪽)며 2공화국의 실정이 5·16을 부른 필연적 원인인 듯 설명한다. 반면 천재교육 교과서는 5·16을 설명하며 “이에 따라 민주화를 지향한 4·19혁명 정신이 사실상 부정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9. 유신 정당성·박정희 경제성장론 강화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유신헌법을 제정했다. 현 교과서들은 ‘대통령 임기 6년, 중임 제한 철폐, 긴급조치 발동권’ 등 유신헌법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이를 토대로 1970년대를 평가하는 시험문제에서 긴급조치를 통한 ‘인권유린’ 부분이 곧잘 출제돼왔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선 유신 체제의 정당성이 더 보완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1989년 와의 인터뷰에서 “유신이 무슨 범죄처럼 됐다”고 반박했다. 그해 MBC와의 인터뷰에선 “빠른 시일 내에 방위산업과 자주국방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해 72년에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그게 유신”이라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엔 박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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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과서는 북한의 도발과 군사력 증강,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언급한 뒤 “이같은 긴박한 분위기에서 박정희는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또한 통제와 동원을 쉽게 하기 위하여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고 적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더 부각할 가능성도 높다. 주은구 교사는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및 산업화(국토개발계획 포함)가 강조되고, 그 시기의 정치적 독재를 축소하거나 분단과 반공의 논리로 합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심용환 강사도 “(박정희 대통령이) 1~3차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강조하고, 정경유착·부정부패, (서민에게 전가된) 저임금·저곡가 등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축소·누락될 수 있다”고 했다.
10. ‘4·3, 전태일, 5·18’의 축소다른 시대적 사건들이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할 우려도 제기된다. 주은구 교사는 “제주 4·3사건(1948년), 유신반대운동(1979년 부마 민주화운동 등), 5·18 민주화운동(1980년), 6월 민주항쟁(1987년) 등을 간소화하거나 변형 서술할 수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미군과 우리 군·경찰에 의해 제주도민이 대규모로 희생된 4·3사건을 다루면서, 이 사건과 연관된 남한조선노동당과 좌익의 행적을 더 강조할 수 있다.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현 교과서들은 박정희 시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분신한 전태일을 ‘노동운동’이란 제목으로 묶어 설명하고, 전두환 체제에 대항한 5·18 민주화운동도 따로 단원을 만들어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교과서들을 좌편향된 ‘99.9%의 교과서’라고 지목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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