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4월20일 ‘아카데미의 친구들’ 신동화 사무국장(왼쪽)과 최은지 대표를 강원도 원주시 무실로에 위치한 ‘아친마당’ 사무실에서 만났다.
“우리는 유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옳았다.”
강원도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다 업무방해죄 등으로 기소된 문화예술인·시민 24명이 1심에 이어 2026년 4월10일 2심에서도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상고기간 만료일까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음에 따라 항소심 무죄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이렇게 2023년 10월30일 철거업체에 맞선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되면서 이어진 2년6개월의 법적 싸움은 결국 ‘시민의 정당한 권리였음’을 인정받는 것으로 끝났다.
1963년 개관한 단관극장으로 국내에서 그 원형을 보존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극장 보전을 위해 함께 싸웠던 ‘아카데미의 친구들’(이하 아친)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아친은 말한다.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들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무죄 확정 이후인 2026년 4월20일 원주시 무실로에 있는 아친 사무실에서 최은지 아친 대표와 신동화 사무국장을 만나 이번 판결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극장은 사라졌지만 청년은 남았다. ‘아카데미의 친구들’(아친) 회원들은 지역의 여성·환경·문화예술 단체와 연대해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신동화 아친 사무국장(왼쪽)과 최은지 대표.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지만,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커요. 법정 싸움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대법원까지 가서 ‘부당한 행정에 대한 시민 저항’의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보자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끝이 났네요.” 기소된 24명 중 한 명으로 검찰이 ‘특수건조물침입’ 혐의 등으로 실형 10개월을 구형했던 최은지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기소는 안 됐지만 저도 이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했던 터라 허탈함도 커요. 아직 원주시나 시장의 공식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거든요.” 신동화 사무국장의 말이다.
이들은 ‘평범한 원주 시민’이었다. 신동화 사무국장은 ‘책방 주인’이었고, 최은지 대표는 ‘미디어 강사’로 활동했다. 나머지 아친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조사와 기소,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한 60대 노교수는 ‘연금 수령 박탈’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20대 청년들은 졸업과 취업에 지장받을까봐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공통된 걱정은 “옳다고 믿었던 행동이 부정당하는 것”이었다. “1·2심 검찰 구형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징역 2년부터 6개월까지 실형을 구형했거든요. 우리는 구호 외치고 피케팅하는 평화적 시위를 했는데, 서부지법 폭동 사태 난동자들 형량과 비슷하다니….” 최은지 대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1·2심 모두 ‘시의 의견 수렴과 주민 참여 절차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 ‘시민들의 행위는 평화적·비폭력적인 방식이라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그 동기나 목적이 정당해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없다’는 점 등을 밝혔다. 신동화 사무국장은 “소통하지 않는 일방적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정당했음을 인정한 판결”이라며 “지역 문화를 지키기 위한 실천적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가 처음부터 옳았음이 인정됐다”고 말했다.

1963년 개관한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형 보존 단관극장이었다. 1983년 무렵 찍은 아카데미극장의 모습.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돌이켜보면 시작은 “지역 청년으로서 우리 도시 문화 행정에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평범한 생각”이었다. 1963년 9월23일 600석 이상 규모의 단관극장으로 개관한 아카데미극장은 원주 시민에게 단순한 극장이 아니었다. “광주극장과 인천 애관극장 등 오래된 단관극장이 있지만, 대부분은 화재 탓에 리모델링했어요. 황해도 영사기사 출신인 정운학 옹이 설립한 아카데미극장은 화재를 겪지 않고 원형이 남은 유일한 단관극장이었어요. 극장과 살림집이 연결됐고 쪽방도 있어서 1960년대 건축사와 생활사를 알려주는 공간이었죠. 임검석(경찰 감시 좌석)도 그대로 남아 있고 영사기, 포스터, 홍보용 사진, 영사기 부품 등도 잘 보존돼 문화사적 아카이브 가치가 있었어요.”(신동화)
2005년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경영난을 겪다 폐관했던 극장은 2016년 보존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 가치를 다시 인정받게 됐다. 6년 넘는 노력 끝에 2022년 1월 원창묵 시장(더불어민주당)이 32억원의 예산을 들여 매입하고 안전진단을 통한 보수·원형 보존을 결정했다. 그런데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 원강수 시장(국민의힘)이 당선되자마자 사실상 일방적으로 철거를 결정했다. ‘손바닥 뒤집기 행정’에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단체대화방을 통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영화관은 그냥 상업시설은 아니에요. 공동체의 경험을 품은 문화공간이자 사회적 공간이잖아요.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인 우리가 나서 시에 대화를 요구하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던 거죠.”(최은지) 2021년부터 활동하던 아카데미 보존추진위원회 어르신들이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했고, 뉴욕 ‘하이라인의 친구들’(폐선된 고가 철로를 공원으로 보존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을 참고해 아친이 탄생했다.
이후 아친과 시민들이 수차례 요구한 시정 정책 토론은 묵살됐다. 원주시는 ‘안전등급이 위험 수준’이라는 논리만 내세우며, 주민참여 기본조례를 무시하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시정 권고마저 거부했다. 신 사무국장은 “이미 39억원의 국비·도비가 보존 예산으로 편성됐는데, 이를 뒤집으려면 최소한 공개토론이라도 하자는 게 무리한 요구냐”라며 “시는 ‘청년이 사라져 지역이 소멸한다’면서 정작 행정을 펼칠 땐 청년들 목소리를 무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카데미극장이 사라진 곳에 들어선 썰렁한 야외극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의 모습.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결국 16억5천만원을 들여 철거한 아카데미극장 자리엔 현재 ‘야외공연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공연은 거의 열리지 않는다. 최 대표는 “극장은 사라졌지만 청년은 남았다”며 “절반의 승리를 딛고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아친 활동이 지역사회의 시민·문화운동과 이어지면서 다양한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 ‘무너지지 않는다’(2024·전주국제영화제 상영)와 단편 애니메이션 ‘환상극장’(2025·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등이 제작됐고, 독서모임이 활발해졌으며, 영화 상영회도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원주시가 공개토론 개최를 거부하면서 실효성 의문이 제기된 ‘주민참여 등에 관한 기본 조례’도 개정했다. 최근엔 원주 아카데미극장 투쟁의 기록을 담은 ‘투쟁 백서’도 제작에 돌입했다. 신 사무국장은 “이번 싸움을 하며 젠더·장애·환경 등 지역에서 취약한 분야에 관심을 더 갖고 다양한 단체와 활동에 연대를 강화하게 된 게 큰 의미”라며 “앞으로 아친은 지역사회에 배제된 목소리를 반영하고 우리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방안을 고민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극장이 사라진 폐허에서 새로운 풀뿌리 청년 운동이 움트고 있다.
글·사진 원주(강원)=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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