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 문학동: “학교법인 고운학원 정관 제32조 제1항의 규정에 의거 성원을 확인하고 개회를 선언한다. 이번 안건은 수원대학교 총장의 임용 제청에 따라 수원대학교 교원에 대한 임용(안)을 심의하겠다.”
2007년 9월6일 저녁 7시에 열린 수원대학교 학교법인 고운학원의 이사회 회의록에 나타난 문학동 당시 이사장의 발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나와 있는 문 이사장은 이날 아침 7시에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하지만 회의록에는 아침에 사망한 문 이사장의 친필 서명까지 들어 있었다. 죽은 사람까지 부활시킨 수원대의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 사실은 올해 2월 실시된 교육부 감사에서 드러났다. 교육부는 이번 감사에서 수원대와 관련해 무려 33건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여러 가지 심각한 비리 가운데서도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은 임원 취임 승인 취소가 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실제로 경기교육청은 2010년 파주광일중과 파주여고를 설립한 광일학원의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 등과 관련해 해당 재단의 임원 승인을 취소한 바 있다. 경북교육청과 부산교육청도 같은 사례가 있다. 수원대의 경우 당시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과 관련된 4명의 임원에 대한 승인이 취소된다면, 인원 부족으로 이사회 자체가 불성립하게 된다. 교육부의 수원대 감사 결과를 분석한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은 “수원대 고운학원의 경우 사학 비리 의혹이 많은 만큼 이들의 임원 승인을 취소하고 교육부에서 관선이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7년에 숨진 문 이사장과 함께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명시된 4명의 이사는 여전히 고운학원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관선이사’ 파견해야 할 만큼 심각한 비리고운학원은 사실상 이인수 수원대 총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설립자인 고 이종욱씨는 이인수 수원대 총장의 아버지다. 현재 이사장직은 비어 있으나, 지난 6월까지 이인수 총장의 부인인 최서원씨가 이사장을 맡아왔다. 이 총장도 과거에 고운학원 이사장을 지내는 등 이들 부부가 사실상 고운학원의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있다. 학교법인 이사회는 학교 운영의 전반적인 사항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사회가 특정한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될 경우 대학이 사실상 사유화될 수 있다는 점은 그동안에도 수없이 지적돼왔다. 실제로 2013년 고운학원 이사회 회의록 자료를 보면 모두 12번의 이사회에서 총 34건의 안건이 상정됐는데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이사회 의장인 최서원 당시 이사장이 “만장일치로 원안을 통과”시켰다. 이 총장 일가가 학교 운영의 모든 사안을 결정해왔다는 의미다.
특이한 점은 이 총장 일가가 단순히 학교에 대한 지배권만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법인을 통해 이 총장 일가 소유인 개인 기업체의 지배구조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원대는 수원과학대학교, 학교법인 고운학원, 학술·장학 목적의 공익법인인 고운문화재단 등과 연결돼 있는데, 이들 법인은 이인수 총장이 소유하고 있는 (주)한국산업개발과 최서원 전 이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주)라비돌, 이 총장의 딸이 사내이사인 (주)이한센트라, 이 총장의 아들딸이 주주로 있는 (주)서주와 지분으로 얽히고설킨 관계다(그래픽 참조). 이와 관련해 정진후 의원실은 “고운학원이 특정 임원의 개인 기업의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이용되는 것은 아닌지 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을 살펴보면 이 총장이 학교를 어떻게 사유화하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번 감사에서는 이인수 총장의 아들이 수원대에 입학해 학교를 다닌 사실이 없는데도 수원대 졸업증명서 등 학적서류를 발급받아 미국에 있는 대학에 편입했다는 의혹이 지적됐다. 교육부는 이 총장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한 상태다. 이 총장의 아들과 관련해, 참여연대는 “2002년 수원대 졸업장을 위조해 미국의 한 대학에 입학이 허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명백한 사문서 위조의 죄일 뿐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모독하고 망신을 준 중요한 범법행위로서 법적·사회적으로 용납받을 수 없는 비리 행위”라고 밝혔다.
개인 곳간처럼 쓴 수원대 재정이번 감사에서는 또 이 총장이 일주일에 2~3일만 총장실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소유한 (주)한국산업개발로 출근한 사실도 드러났다. (주)한국산업개발 사무실에는 수원대에서 월급을 받는 계약직 직원이 근무하는 일도 있었다. 이 총장은 또 대학에서 보관 중인 미술품 717점과 총장 개인 업체 보관 미술품 370점 등 모두 1087점을 총장 개인 소유 미술품으로 관리하다가, 교육부가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자 학교 보관 미술품 717점 가운데 277점을 총장 소유로 분류하고 이 가운데 240점을 총장 개인 업체인 (주)라비돌로 반출하는 등 대학의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유용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개인 기업인 (주)라비돌의 리조트 옹벽 보강공사 비용을 학교 돈으로 지출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총장의 학교 사유화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총장은 수원대에 입점해 있는 신한은행으로부터 2011년 1월 50억원의 기부금을 받은 뒤 곧바로 사돈 회사인 TV조선에 투자했다. 이는 대학발전기금을 교비회계로 처리해야 하는 수원대의 ‘발전기금 관리규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이번 교육부 감사 이전에 이뤄진 2011년 감사원의 감사에서 이미 적발된 바 있다. 그러나 수원대는 그 이후에도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가 교수협의회(교협)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자 2013년 10월에야 TV조선 주식 100만 주를 수원대 교육용 보통재산으로 이관했다. 2013년 결산 기준으로 고운학원이 소유한 TV조선의 주식가치는 39억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10억원가량의 손실을 발생시킨 셈이다. 수원대 교협 관계자는 “대학발전기금으로 기부된 돈을 이인수 총장의 사돈이 운영하는 TV조선에 사적으로 출자한 것은 수원대학교 내부 규정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법에 위반되는 중대한 불법행위다. 그럼에도 이러한 불법행위를 특별한 잘못이나 아무런 비리가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이 총장의 인식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감사 뒤 ‘솜방망이’ 징계만사립대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과다 적립금’은 수원대에서도 발견된다. 교육부는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당해연도 착공이 불가능한 건물의 신축공사비를 3년 연속 예산으로 편성하는 등 세출 예산을 과대편성해 907억원의 이월금이 증가했다. 또한 적립금 사용 계획 수립 없이 669억원의 적립금을 추가로 적립해 2013년 2월 기준 3244억원을 적립했다. 이에 따라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이월자금을 제외한 수입 대비 지출액 비율은 77.6%로 (다른 학교) 평균 교육비 환원율의 85.3%에 그쳤다. 특히 2010년부터 2012년의 등록금 수입 대비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 비율 평균은 각각 0.88%와 0.25%로 수도권 종합대의 평균 2.13%와 2.79%의 41.23%와 8.98%에 그쳤다.”
즉 수원대가 공사가 불가능한 건물의 공사비를 예산에 편성하는 방식으로 적립금을 늘리고, 학생들에게 받은 등록금을 교육비로 환원하는 데 상당히 인색했다는 뜻이다. 수원대의 적립금 수준은 전국의 4년제 대학과 전문대 309개 학교 가운데 네 번째로 많다. 그러나 실험실습비는 다른 학교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고, 장학금 등 학생지원비는 다른 학교 평균의 10%도 안 된다. 수원대 교협은 “수원대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많은 돈을 목적 없이 적립해 열악한 수업 및 실습 환경 등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에는 수원대 학생 88명이 학교를 상대로 등록금 환불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학교 쪽의 설명은 이렇다. “(학교가 투자를) 늦게 하면 그만큼 이점이 있다. 늦을수록 최신 시설을 (도입)할 수 있다. 지하철도 먼저 생긴 곳은 지저분하고 오류가 많지 않나. (투자 시기는) 가치판단의 차이일 뿐이다.”
이처럼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정작 교육부는 해당 지적 사항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33가지 지적 사항에 대한 처분은 대부분 ‘경고’ 또는 ‘경징계’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이사회 회의록 허위 작성의 경우 사문서 위조 혐의로 임원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처분은 이사장과 이사에게 ‘경고’를 보내는 데 그쳤다. 대학교 직원이 총장 개인 사업체에서 사무를 보도록 한 행위 등도 법인회계와 교비회계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는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법인의 비용을 학교에 전가해 손실을 입힌 것으로 사실상 배임에 해당되지만, 역시 경징계와 경고에 그쳤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기부금을 교비회계로 처리하지 않는 등의 행위도 총장과 이사장을 횡령 혐의로 고발해야 하는 정도의 심각한 문제지만 교육부 감사는 단순 경고에 그치고 있다. 교육부 감사 결과에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교육부로부터 솜방망이 징계를 받은 수원대는 교육부 감사의 일부 지적 사항에 대해서는 처분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를 하고 있다. 특히 교수 4명을 이사회 심의·의결 없이 이사장의 결재만으로 중징계한 건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지만, 수원대는 해당 교수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오히려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감사원 감사에서 이미 지적됐던 기부금 관리의 부적절성의 경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올해 교육부 감사에서 또다시 적발되기도 했다.
“상지대는 누범, 수원대는 현행범”‘수원대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지지 못한 수원대 문제는 이제 누군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일부 야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들을 중심으로 상지대를 비롯한 수원대 등 사학 비리 증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문회 개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청문회가 열리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 총장을 호위하는 세력들 때문이다.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대표인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상지대는 누범이다. 그런데 수원대는 현행범이다. 이인수 수원대 총장은 구멍가게만도 못한 학교 운영을 하고 있는데 권력의 비호로 국회의 진상 규명 노력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교육부가 나설 차례다. 대체 대학이 무엇인가 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운다는 측면에서도 수원대 문제는 교육부가 나서서 정상화시키는 것이 맞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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