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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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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짚어야 할 세 가지 의혹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 마쳤지만 의혹만 쌓여가…

항해경로 기록 정확성, 급선회 및 해경 선내 진입 안 한 이유 등 밝혀야
등록 2014-07-24 15:07 수정 2020-05-03 04:27

진실은 빙산의 일각도 드러나지 않았다. 7월11일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가 22개 기관보고 일정을 마무리했는데도 말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각 정부기관은 중요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뒤늦게 공개했다. ‘사안’을 장악하지 못한 위원들은 수준 낮은 질문과 발언만 쏟아냈다. 8월4일부터 국회 청문회가 예정돼 있지만, 속시원한 진상 규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수많은 의혹 가운데 ‘기본 중 기본’ 세 가지 항목을 정리해보았다.

<font color="#A48B00">① 세월호 항해경로 기록은 정확한가</font>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첫 단계는 항해 경로 기록인 ‘항적도’의 복원이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부실하게 끼워졌다. 해양수산부는 참사 다음날인 4월17일, 4시 방향으로 향하던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작스럽게 100도 이상 방향을 바꾼 것으로 해석되는 첫 번째 항적도를 공개했다. 8시48분37초부터 8시52분13초까지 사고 당시 3분36초간의 위치 정보는 누락된 채였다.

<font size="3">거듭 업그레이드된 항적도 </font>

4월22일, 해수부는 목포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데이터 등을 이용해 자료를 복원했다며 두 번째 항적도를 언론에 공개한다. 이 자료를 보면 세월호는 아침 8시49분36초께 원래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45도가량 선회한다. 선회 직전 8시48분37초부터 36초간의 위치 정보는 비어 있는 채였다. 해수부는 당시 기록 누락에 대해 ‘정전’ 가능성을 언급했다.

4월25일에 이르러서야 해수부는 진도 VTS의 AIS 데이터를 입수해, 다음날 세 번째 항적도를 만들어 최종본이라며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항적도에도 29초간의 위치 정보가 누락돼 있다. 그 뒤 해수부 산하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세월호 주변을 항해 중이던 두우 패밀리호의 항해 기록 장치를 입수해 네 번째 항적도를 작성한다. 해양안전심판원 항적도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항적도가 거듭 ‘업그레이드’됐던 것일까. 사고 당일인 4월16일 새벽 3시37분부터 정부통합전산센터의 AIS가 고장나 오전 9시30분까지 세월호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저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수부는 사고 뒤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 7월1일 해수부는 국조특위 기관보고에서 “4월16일 03시37분부터 09시30분까지 세월호 항적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저장이 지연돼, 16시께 복구를 했으나 3분36초간 기록이 누락된 걸 확인해 재복원한 결과 36초간은 아직 복원이 안 됐다”고 밝혔다. 진도 VTS의 AIS 데이터를 반영했는데도 해수부 항적 자료엔 29초가 비어 있다. 더구나 항적도 복원 과정이 선명하지 않은 만큼, 정확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font color="#A48B00">② 세월호는 왜 급선회했나</font>

“수리·증축하는 과정에서 복원성에 문제가 있었던 세월호는 최대 화물 적재량의 두 배에 달하는 화물을 싣고, 차량과 컨테이너를 부실하게 고박하는 등 복원성이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에서 출항했다. 여기에 3등 항해사와 조타수가 과도하게 변침을 하는 과실이 더해져 침몰했다.” 5월15일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중간 수사 발표 내용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입수한 진도 VTS ‘세월호 레이더 영상’을 보면, 아침 8시49분께 세월호가 병풍도 옆으로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돌리는 모습이 확인된다. 오른쪽 급선회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다. 그러나 급선회 이유는 안갯속이다. 합수부나 국조특위도 이 부분을 밝히지 못했다. 복원성이 나쁘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확인됐지만, 조타수가 큰 타각으로 변침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font size="3">타를 잘못 돌린 사실이 없다는데…</font>


<font color="#A48B00">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된 건 오전 10시21분. 그로부터 4분이 흐른 10시25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해경 상황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한다.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냥 적어. 그다음에 여객선 내에 객실 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가지고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해라.”</font>


3등 항해사 박아무개씨의 변호인은 지난 6월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선박직 직원들에 대한 재판에서 “평소처럼 조타수에게 5도 이내 변침을 지시했다”며 “사고 해역은 물살이 빠르고 당시 반대편에서 배 한 척이 올라오고 있어 레이더를 지켜보고 있었던 상태”라고 주장했다. 조타수 조아무개씨의 변호인은 “당시 세월호는 135도를 유지한 채 항해 중이었고, 3등 항해사가 140도로 우현 변침을 지시해 이를 따랐다. 그러나 배가 143도까지 오른쪽으로 가 왼쪽으로 3도가량 타를 돌렸으나 오른쪽으로 진행이 계속됐다. 이를 막고자 왼쪽으로 5도가량 타를 돌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타를 잘못 돌린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전남도청이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사고 당시 영상 자료를 보면, 세월호 조타기는 거의 직선 형태다. 큰 각도로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해양경찰청이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영상을 보면 침몰하는 세월호 바닥에 약한 마찰 흔적이 보인다. 선체가 인양되기 전에, 조타기 이상이나 부유하는 물체와 마찰이 생겨 배가 균형을 잃었을 가능성 등을 아예 배제하기엔 이르다.

<font color="#A48B00">③ 해경은 왜 선내에 들어가지 않았나</font>

인근 해상에 있던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구조인력 9명)이 세월호 사고 지점에 도착한 건 오전 9시33분께. 당시 세월호 선체의 기울기는 50도가량이었다. 출동 과정에서 123정은 세월호가 승객을 450명 이상 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달받는다. 그러나 승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진도 VTS와는 교신을 한 적이 없다. 123정을 비롯해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대부분의 승객이 구조를 기다리던 선내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타실 문에서 1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던 퇴선 신호 비상벨도 누르지 못했다. 목포해경은 오전 10시30분께까지 네 차례 123정에 ‘승선·퇴선 조치’ 명령을 내리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오전 9시45분께 조타실 문 앞까지 진입한 박아무개 경장은 7월2일 국조특위 기관보고에서 “세월호에 올라갔을 때 선체 바닥이 벽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이라 조타실 내부로 진입하지 못했다”며 “100t에서는 전복 선박 훈련을 받지 않는다. 물에 빠진 익수자에게 구명벌을 던져 구조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7월8일 발표한 ‘세월호 침몰사고 대응실태’ 감사 중간결과에 따르면, 해경은 경비규칙에 따라 세월호 항로가 지나는 구역에 200t 이상 중형 함정을 하루에 한 척씩 배치해야 한다.

<font size="3">불법조업 단속하느라 역량 부족 경비정 투입</font>

사고 당일 서해 해경청은 중국 어선 불법조업 특별단속에 중형 함정 10척(훈련·수리 함정 제외)을 모두 동원하는 바람에 지휘·통신 장비와 구조인력이 부족한 100t급 경비정을 사고 현장에 투입했다. 규정을 어겼다는 이야기다. 애초 역량이 부족했던 123정은 1분1초가 값진 시간 동안 현장 지휘 함정이란 임무를 부여받았다. 사고 해역을 관할한 진도 VTS는 레이더망에 잡힌 세월호의 이상 신호를 파악하지 못했고, 해경 지휘 라인은 우왕좌왕했다. 그러는 동안 선내 상황을 파악하고 외부에 알려야 할 선장은 오전 9시46분께 배를 빠져나온다. 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된 건 오전 10시21분. 그로부터 4분이 흐른 10시25분,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해경 상황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한다. “첫째 단 한 명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냥 적어. 그다음에 여객선 내에 객실 엔진실 등을 포함해서 철저히 확인해가지고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해라.” 일선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광범위하게 일어난 ‘직무유기’의 원인과 책임이 조목조목 규명돼야 참사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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