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록하는 자’이다. 그러나 기자를 가리키는 ‘대세어’는 바뀌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기자는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되었다. 기자들은 이제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다. ‘지사적’인 면모를 보이는 실천적 지식인의 이미지·아우라는 점점 사라지더니,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문제적·잉여적 존재가 되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재난 사고에 대한 보도지침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속보와 특종 위주의 보도 관행이 문제였을까. 그래서 따져봤다. 의 지면을 꼼꼼하게 읽고 평가하는 독자편집위원들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냉정하게 진단해봤다. 편의를 위해 정현환 위원이 진행하는 형식을 취했다.
들리지 않는 유가족들의 목소리
정현환- 지난 4월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국민은 언론 보도를 불신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기사를 보며 다들 어떤 생각을 하게 됐나.
김영식- 기사에서 유가족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1008호에서 다루긴 했는데 유가족들의 요구를 직접 대변하기보다는 구조에 무기력한 국가의 모습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언론은 JTBC뿐이었다.
이은지- 세월호 참사는 언론이 해석하고자 하는 방향대로 사건을 끌고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민했다. 과연 의 관점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봤다. 은 시스템의 부재, 신뢰의 추락 등을 지적하며 불신의 시대가 펼쳐졌음을 염려했다. 다른 언론사들이 놓치기 쉬운 시민, 그리고 유족들의 내면의 상처에 대한 심도 있는 인터뷰 기사는 누군가는 반드시 작성해야 할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엄기호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사건 이후의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자세를 보인 것도 좋았다. 1011호에서 지적한 ‘재난의 자본주의’ 등 가치의 전도 문제는 이 신중히 고른 ‘주제’가 상당히 날카롭고 탄탄한 것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너무 넓은 범위를 포괄하려다보니 근거가 미약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착해지지 마라’(1009호)와 ‘짐이 곧 국가, 다만 국가 개조에선 빠지겠소’(1010호) 같은 기사가 그랬다. 차가운 사실보다 뜨거운 가슴이 우선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경식- 기자들이 쓴 기사에서 ‘감정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물론 이번 참사를 지켜보면서 누구나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기사에서 기자들의 감정이 쉽게 노출됐다. 감정을 절제하고, 이번 참사의 잠재적 원인과 사고가 일어난 과정 등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기만 했어도 충분했다. 독자들은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했을 거다. 그런데 감정적 표현이 많았다. 르포 기사는 슬픈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는 표현이 많았다. ‘착해지지 마라’ 기사에는 분노를 드러내는 단어가 종종 언급됐다.
박예향- 갑작스러운 사태 뒤에 수많은 정보가 고개를 내밀었다. 은 그 정보를 다듬고 독자들에게 물들지 않은 깨끗한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정보 속에는 잘못된 정보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굳이 지금 밝히지 않아도 되는 성급한 정보도 있다. 단원고에서의 3일을 다룬 ‘꽃 아직 예쁘다, 다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1009호)가 대표적인 경우다. 언론은 피해 학생을 비롯해 그 주변 사람들의 현재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목적이 뒤바뀌었다. 이번 사건으로 모두가 예민하다. 상실감과 허전함 사이를 오가고 있을 단원고 학생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3일 이야기는 반가움 대신 오히려 반감을 사게 했다.
지나친 밀착 취재는 외려 반감을 사기도정현환- 기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끔찍하지만 세월호 대참사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할 경우 어떻게 보도를 해야 할까.
김찬혁- ‘속도’ 대신 ‘깊이’가 있어야 한다.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뉴스 영상마저 이동하며 시청할 수 있는 지금 ‘빠른 뉴스’에 대한 독자의 욕구는 크지 않다. 오히려 독자는 ‘느린 뉴스’, 정확히는 정제되고 깊이 있는 뉴스를 반긴다. 그런데 은 종종 기사에서 이 점을 잊은 듯하다. 더욱이 은 1009호에서 ‘기록해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세월호 참사 전반의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했다. 참신한 구성과 간결한 디자인이 의 자랑이다. 하지만 기사는 오히려 단순 정보 전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한다. 인포그래픽을 통해 단순 정보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숫자에 담긴 의미를 다듬고 해석해야 한다. 장점을 살리시라.
권준희- 이번 사태에서 공무원들은 또 얼마나 큰 자괴감을 느꼈을지 상상해본다. 귀책 사유의 시스템 속에서, 예산과 인력의 한계 속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절실히 깨달았을 공무원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따라서 앞으로 은 공무원들이 느꼈을 허탈감에 대해 살펴봤으면 한다. 그러면 사건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거라고 생각한다. 비판과 함께 힘도 같이 북돋아줬으면 한다.
이은지- 의 가장 큰 장점은 ‘긴 호흡’이다. 나아가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를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은 늘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면서도, 조금 더 실천적이고 다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능동적인 보도를 통해 따듯한 시선으로 사건을 다뤄야 한다.
김영식- 끝으로 하나 더 지적하고 싶다. 세월호 사건에서 은 핵심을 놓쳤다. 특히 사고 초기 2시간 동안 해경이 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에 대해 파헤치지 못했다. 따라서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가족들과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없다. 기사 가운데 이 핵심을 다루고 있는 기사가 잘 안 보인다. 세월호 사건 발생 뒤 해경은 선박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은 그래선 안 된다. 사건의 핵심으로 가야 한다.
사고 초기 구조 실패의 이유를 파헤쳐야요즈음 우리 언론의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생각보다 쉽다. 섣불리 여드름을 짜내면 아프지만, 다 곪아버린 여드름을 짜낼 때는 아프지 않다. 따라서 언론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이 시점에 은 스스로 자신의 고름을 짜내야 한다. 생각보다 아플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문제는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직면할 때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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