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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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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없애고 버스 다니면 된다?

‘일본식 제3섹터’ 방식은 수익성 보장되는 구간 외 지역 철도 고사 정책
교통약자 고립화와 마을 공동화에 따른 지역 몰락 초래해
등록 2014-02-20 17:19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내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이슈 중 하나는 수서발 고속철도(KTX) 신설법인 설립을 둘러싼 철도 민영화 문제였다. 그러나 수서발 KTX에 가려진 또 하나의 중요한 사안은 지역 철도의 민영화와 외국자본에의 개방, 적자 노선 폐지다. 이것들은 모두 국토교통부가 2013년 6월26일 ‘철도산업 발전방안’이라며 내놓은 미래 철도 정책에 담겨 있다.

버스가 고속도로 보수·유지를 담당한다면

국토부가 밝힌 철도산업 발전방안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철도 이용의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철도 정책을 입안할 때는 수익성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으로서 공익성, 사회·경제적 기능, 문화적 가치, 지역 균형발전 수단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 중에서 오직 하나의 가치,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에만 매달려 철도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발표되자마자 적자 노선을 품고 있는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철도노선 매각을 통한 민영화나 폐선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정부의 주장은 단호하다. 적자 노선은 민간에 넘기고 민간의 참여가 없으면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운영기관이 공동 운영하는 ‘일본식 제3섹터’ 형태를 도입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마저도 안 되면 폐선을 하고 대신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의 파업이 한창일 때 일부 언론이 철도의 비효율을 질타하면서 벽지 노선의 버스 보조비와 철도 보조비를 비교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국의 벽지 노선을 운영하는 버스회사에 대한 국고보조비는 총연장 2만5367km에 711억원인데 철도는 8개 노선 1108km에 2023억원으로 버스 보조금의 65배에 이른다며 이런 비효율을 걷어내는 게 정부의 철도 개혁 방안이란 내용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 버스회사는 도로를 자기 돈으로 건설하지도 않고 운행 중에 신호등이 고장났다고 직원을 파견해 수리하지도 않는다. 버스 정류장의 설치나 운영도 책임지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차선을 새로 그리거나 교차로 통행 개선 공사를 하는 것도 버스회사의 몫이 아니다. 2만5367km의 도로에 대한 건설비와 유지·보수를 버스회사에 전담시킨다면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보조금은 얼마나 될까? 버스와 철도의 교통 특성을 무시한 채 악의적으로 자료를 양산하는 국토부의 행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식 제3섹터는 ‘철도 운영비용 지역에 전가 → 지자체 재정 악화 → 철도노선 폐지 → 버스 대체 → 방문자 감소, 지역 주민 이용 감소 → 버스회사 수익 악화 → 버스 운행 중단 → 공공교통수단 소멸 → 교통약자 고립화, 마을 공동화에 따른 지역의 몰락’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일본은 고속철도인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신칸센 건설에 투자된 엄청난 비용과 자동차 사회로 전환되면서 야기된 철도 수송분담률 저하로 인해 심각한 재정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일본이 선택한 방식은 인구밀도가 높아 수익성이 보장되는 도시철도와 대도시 간 고속철도 연결망을 제외한 지역 철도의 고사 정책인데 이것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철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자체에 전가

적자 노선에 대한 최저보조금 입찰제는 산간벽지 노선처럼 아예 수익성이 없는 노선을 제외한 인천공항철도 같은 비교적 독립적인 단일 구간 노선이나 일산선·경춘선 등 대도시 주변 광역철도망에서 시도될 수 있다. 이런 노선들은 국토부가 추진하는 철도 경쟁 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시도하기에 적당한 규모다.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투자를 요청한 외국 기업들의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다. 외국 기업이나 국내 민간 기업들은 초기의 정부 규제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전망을 갖고 철도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한-유럽연합(EU) FTA의 여러 규정이 강제하는 정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를 획득할 경우 손쉬운 이윤 확보 방법인 요금 인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집중과 우선 정책 때문에 지역 철도가 이중 삼중의 홀대를 받게 된다는 점이다. 국토부의 경쟁입찰을 통한 적자 노선 민영화 계획이나 제3섹터 운영 방식 도입은 앞으로 정부가 철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자체에 전가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중앙정부는 손을 떼고 지자체가 알아서 철도 운영에 대한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 주민들은 적자 개선을 위한 요금 인상이나 철도노선 폐지를 통한 철도 소외 지역으로의 전락이라는 최악의 선택만 남을 뿐이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태에서 상당한 비용이 요구되는 철도 교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국철이 민영화된 1987년 이후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에도 나고야 철도 구로노~다니구미 노선을 비롯해 27개의 지역 철도 노선 569.1km가 적자를 이유로 폐선됐다. 한국 철도의 경부선 영업거리를 크게 상회하는 노선을 폐지한 뒤 철도가 사라진 일본의 지역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2006년 일본 철도건설·운수시설정비지원기구가 발간한 보고서 ‘지방철도의 활성화에 대하여’는 철도 폐선에 따른 사회적 영향이 심각함을 경고한다. 보고서는 지방 철도가 폐지돼도 대신 버스를 운행하면 된다는 국토부나 일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인식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철도가 폐지되고 버스로 대체된 마을의 경우 수송 인원, 운행 횟수, 운임, 소요 시간 등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여건이 낙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01년 4월 철도 운행이 폐지돼 버스로 전환한 시모키타~오하타 구간을 운행하는 시모키타교통의 경우 일일 수송 인원이 650명에서 12명으로, 운행 횟수도 20회에서 4회로 급감했다. 요금이 410엔에서 570엔으로 올랐음에도 소요 시간은 24분에서 40분으로 늘어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의 황폐화가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철도 폐지 이후 이미지 악화 탓에 지역 점포당 매상이 10~15%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역시 버스로 대체된 나고야 철도 이비선은 이용객이 절반으로 줄었다. 쇼핑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주민 이동이 감소하고 주변 상가의 이용률이 떨어져 지역 공동화를 촉진했다. 나고야 철도의 야오쓰선이 폐지된 뒤 버스는 기존 승객의 28.4%만 이용하고 통학용 자전거나 자가용 승용차로 전환됐다. 버스회사도 수익성 문제로 운행을 줄이다가 아예 영업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했다. ‘철도 운영비용 지역에 전가 → 지자체 재정 악화 → 철도노선 폐지 → 버스 대체 → 방문자 감소, 지역 주민 이용 감소 → 버스회사 수익 악화 → 버스 운행 중단 → 공공교통수단 소멸 → 교통약자 고립화, 마을 공동화에 따른 지역의 몰락’의 수순을 밟았다.

일본은 철도가 사라진 다음에야 알았다

공공철도의 축소나 소멸은 결국 어린이·학생·노인·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을 제한하고 부에 따른 차별적인 교통수단 선택이 이루어짐은 물론 지역사회 몰락을 촉진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런 사정으로 일본의 지방도시 곳곳에서는 철도를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철도는 단지 교통수단일 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혈관이며 역사적·문화적 유산임을 철도가 사라진 다음에야 사람들이 깨달았다.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과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철도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철도의 가치를 오직 수익성과 이윤의 잣대로 재단해 민영화와 지역 철도의 몰락을 재촉하는 정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도 영혼도 없는 박근혜 정부를 어찌할 것인가.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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