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내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이슈 중 하나는 수서발 고속철도(KTX) 신설법인 설립을 둘러싼 철도 민영화 문제였다. 그러나 수서발 KTX에 가려진 또 하나의 중요한 사안은 지역 철도의 민영화와 외국자본에의 개방, 적자 노선 폐지다. 이것들은 모두 국토교통부가 2013년 6월26일 ‘철도산업 발전방안’이라며 내놓은 미래 철도 정책에 담겨 있다.
버스가 고속도로 보수·유지를 담당한다면
국토부가 밝힌 철도산업 발전방안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철도 이용의 양극화를 가속화하는 것이다. 철도 정책을 입안할 때는 수익성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으로서 공익성, 사회·경제적 기능, 문화적 가치, 지역 균형발전 수단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 중에서 오직 하나의 가치,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에만 매달려 철도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발표되자마자 적자 노선을 품고 있는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철도노선 매각을 통한 민영화나 폐선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정부의 주장은 단호하다. 적자 노선은 민간에 넘기고 민간의 참여가 없으면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운영기관이 공동 운영하는 ‘일본식 제3섹터’ 형태를 도입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마저도 안 되면 폐선을 하고 대신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는 상당히 자극적이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의 파업이 한창일 때 일부 언론이 철도의 비효율을 질타하면서 벽지 노선의 버스 보조비와 철도 보조비를 비교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국의 벽지 노선을 운영하는 버스회사에 대한 국고보조비는 총연장 2만5367km에 711억원인데 철도는 8개 노선 1108km에 2023억원으로 버스 보조금의 65배에 이른다며 이런 비효율을 걷어내는 게 정부의 철도 개혁 방안이란 내용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 버스회사는 도로를 자기 돈으로 건설하지도 않고 운행 중에 신호등이 고장났다고 직원을 파견해 수리하지도 않는다. 버스 정류장의 설치나 운영도 책임지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차선을 새로 그리거나 교차로 통행 개선 공사를 하는 것도 버스회사의 몫이 아니다. 2만5367km의 도로에 대한 건설비와 유지·보수를 버스회사에 전담시킨다면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보조금은 얼마나 될까? 버스와 철도의 교통 특성을 무시한 채 악의적으로 자료를 양산하는 국토부의 행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식 제3섹터는 ‘철도 운영비용 지역에 전가 → 지자체 재정 악화 → 철도노선 폐지 → 버스 대체 → 방문자 감소, 지역 주민 이용 감소 → 버스회사 수익 악화 → 버스 운행 중단 → 공공교통수단 소멸 → 교통약자 고립화, 마을 공동화에 따른 지역의 몰락’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일본은 고속철도인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신칸센 건설에 투자된 엄청난 비용과 자동차 사회로 전환되면서 야기된 철도 수송분담률 저하로 인해 심각한 재정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일본이 선택한 방식은 인구밀도가 높아 수익성이 보장되는 도시철도와 대도시 간 고속철도 연결망을 제외한 지역 철도의 고사 정책인데 이것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철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자체에 전가
적자 노선에 대한 최저보조금 입찰제는 산간벽지 노선처럼 아예 수익성이 없는 노선을 제외한 인천공항철도 같은 비교적 독립적인 단일 구간 노선이나 일산선·경춘선 등 대도시 주변 광역철도망에서 시도될 수 있다. 이런 노선들은 국토부가 추진하는 철도 경쟁 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시도하기에 적당한 규모다.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투자를 요청한 외국 기업들의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다. 외국 기업이나 국내 민간 기업들은 초기의 정부 규제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전망을 갖고 철도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한-유럽연합(EU) FTA의 여러 규정이 강제하는 정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를 획득할 경우 손쉬운 이윤 확보 방법인 요금 인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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