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결과”라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도 했다.
권은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서울중앙지법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당일(2월6일) 내내 침묵했다. 그가 송파경찰서 소회의실에서 기자들을 만난 건 이튿날 오전이었다. 그는 “판결문을 다 검토하지 못한데다 예상치 못한 결과(김용판 무죄)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선거 개입 축소·은폐 의혹 확산시킨 결정적 계기 </font></font>
판결문을 보면 권 과장은 재판부의 ‘타깃’이다. 원고(검찰)와 피고(김용판)가 법리를 다투는 형사소송에서 재판부(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가 우선 겨눈 과녁은 권 과장이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엔 포함되지 않는다면서도 권 과장의 진술을 검증하는 데 판결문의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법원은 권 과장의 진술을 흔들면 검찰의 공소사실도 치명타를 입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권 과장의 폭로는 김 전 청장의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재판부는 권 과장의 진술을 총체적으로 배척했다. “권은희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 “권은희의 진술은 신빙할 수 없다”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등의 표현이 동원됐다.
“재판부는 나의 진술과 다른 직원들의 진술이 배치된다는 점을 (김 전 청장의) 무죄 이유로 들었다. 상이한 진술은 직무를 이용한 행위와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행위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다. 그런 특성을 감안하고 다른 간접 사실들과 드러난 사실들에 대해 정치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심 판단의 핵심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특성들을 나열하고 그것을 이유로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에서 면밀히 살펴봤어야 하는 간접 사실에 대한 구성과 판단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기 때문에 누락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재판부는 “다수의 다른 증인들의 진술이 모두 거짓이고 권은희의 진술만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특단의 사정이 이 사건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권 과장의 진술을 부정하기도 했다. 경찰관들의 말맞추기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경찰의 내부 자료가 김 전 청장 변호인을 통해 공개된 적도 있다. 재판부조차 “경찰관들이 미리 대답을 준비해온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한 상황이었다. 불이익을 무릅쓴 한 사람의 내부고발자를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관련자 다수의 입을 빌려 절벽으로 재판부가 내모는 셈이다. 진실 규명을 다수결로 하는 모양새다.
“예를 들어 (진술이 서로) 평행선을 달려온 것 중에 증거물 반환 지연이 있다. 수사과장으로서 신속한 증거분석과 내용의 입수는 필연적인 것이어서 신속한 증거물 반환을 거듭 요청했다. 서울경찰청에선 2012년 12월14일 이미 아이디와 닉네임이 기재된 문서 파일을 발견하고도 전혀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채 5일이 경과한 후에야 수서경찰서에서 받아볼 수 있게 했다. 반대로 (은폐 의도가 아니라) ‘실무상의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라는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의) 상이한 진술도 나왔다. 그렇다면 (빠른 수사를 위해) 검색 키워드 축소를 요구할 정도로 신속성을 강조했던 입장에 비춰 모순되진 않는지 검토됐어야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김 전 청장 전화 받고 경찰서로 복귀”</font></font>재판부는 2012년 12월12일 김하영씨의 노트북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이 보류되는 과정에서 김 전 청장이 개입했음을 주장하는 권 과장의 진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영장 신청 보류가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권은희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수서경찰서 수사팀이 적절하게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와 내용이 제공되고 그 바탕 아래 합리적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사팀이 이미 압수수색영장을 만들어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발한 상황이었다. 이후 (김 전 청장의) 전화를 받았고 경찰서로 복귀했다. 그 부분이 핵심이다.”
수서경찰서가 아닌 서울경찰청에서 김씨의 증거물을 분석토록 하는 데 김 전 청장이 개입했는지 여부와 서울경찰청이 증거분석 과정에 김씨를 참여시켜 분석범위를 제한하려 했는지 여부에서도 법원은 권 과장의 진술을 부정했다. 김씨의 디지털 증거물 반환을 두고 권 과장이 서울경찰청 수사 담당자와 통화했다는 진술을 상대방이 부인하자 재판부는 권 과장의 진술을 거짓으로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통화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통화 이외에 직무상 내부 전화를 이용해 이뤄진다. 현재 재판부에 제출된 것은 휴대전화 통화 내역이다. 거듭 통화 사실을 밝혔고 입증을 위해 노력했다.”
서울경찰청이 2012년 12월16일 수서경찰서의 반발에도 일방적으로 보도자료 배포와 언론 브리핑을 결정했다는 권 과장의 의견을 재판부는 “믿을 수 없는 진술”로 정리했다. 대신 김 전 청장과 함께 공모한 것으로 지목된 경찰관들의 진술을 채택했다.
“수사 결과 언론 발표가 당시 발견된 자료들에 비춰, 그리고 당시 발견된 자료를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알리지 않은 점에 비춰 시기와 내용이 적법·적절했는지 명확하게 (재판부가 국민에게) 알려드려야 한다.”
법원 판결문의 묘사대로라면 권 과장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다. 권 과장이 ‘위증의 죄’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다. 그러나 김 전 청장과 서울경찰청 직원들에게 제기된 모든 의혹을 벗겨준 재판부가 한 사람의 내부고발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권 과장의 사례는 한국 사회와 권력이 결기 있는 내부고발자를 대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권 과장 “책임 있는 자세로 대처하겠다”</font></font>희비는 엇갈린다. 사건 당시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던 최현락씨는 이듬해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영전해 전국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책임자로 있다가 지난해 말 대전지방경찰청장으로 옮겼다. 최 청장 밑에서 일했던 이병하 당시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은 현재 경기지방경찰청 청사경비대장으로 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관련자 징계 요구에도 1심 재판 결과를 본 뒤 가부를 결정하겠다며 시간을 끌더니 선고가 나기도 전에 지방경찰청 수장 등으로 발령냈다.
권 과장은 반대다. 언론 인터뷰를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총경 승진 인사에서도 탈락했다. 의혹을 산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동안 의혹을 제기했던 그는 거취를 고민하는 상황이 됐다.
“재판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향후 거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직 사안의 핵심 문제에 대한 사실 검증과 판단을 받아보지 못했다.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는 만큼 1심 재판부가 판단하지 않았거나 부족하게 판단한 점에 대해 당시 사건의 담당 수사과장이자 경찰공무원으로서 명확한 사실적·법률적 판단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 책임 있는 자세로 대처하겠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김자현 인턴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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