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일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던 캄보디아 봉제노동자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해 5명이 사망했다. 최저임금 160달러(약 17만원)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9일에는 방글라데시의 한국 수출 가공공단에서 노동자 5천 명이 수당 축소에 반발해 항의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스무 살 여성노동자가 죽었다. 같은 날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 신축 현장에서는 늦게 출근한 노동자를 단속하던 중 노동자들과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매일 15시간 노동, 휴일은 한 달에 하루
국회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효과적 이행방안’ 토론회를 연 1월13일, 캄보디아 등에서 대규모 인권침해가 벌어진 탓에 나는 자연스레 40년 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먼지로 가득 차 숨 쉬기 힘든 작업장,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천장(그 위로 다락을 만들어 시골에서 온 노동자들의 숙소로 이용했다), 노동자 1천 명에 화장실은 두 개뿐인 열악한 환경…. 열여섯 살이던 1970년부터 학교 대신 공장에 다녀야 했던 내가 직접 겪은 공장 풍경이다.
평화시장 봉제공장, 인천의 가죽 수출 공장 등 8년간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양복 수출 공장에서 일하던 1977년, 매일 15시간 이상, 한 달에 일요일 한 번만 쉬고 일했지만 월급은 고작 7500원이었다. 껍데기와 대가리뿐인 콩나물국, 고춧가루가 부족해 멀건 김치와 꽁보리밥이 공장 기숙사의 주메뉴였다. 게다가 노란 양재기 국그릇은 구멍이 숭숭 나서 발등에 국물이 흥건히 고일 정도였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동료들과 파업하던 날 제일 먼저 노란 양재기를 찌그러뜨려 엿장사에게 넘겨버렸다. 그로 인해 기물파괴죄를 적용받고 해고됐지만 통쾌했다.
노조위원장 선거 방해를 목적으로 사 쪽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퍼붓고 투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1978년 동일방직 사태 당시 노조를 지원하다 경찰서에 2주간 갇힌 적도 있다. 해고되고 체포됐지만 노조를 통해 이름을 찾았고 그것은 큰 자부심이었다.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이름 대신 ‘3번’ 또는 ‘시다’로 불렸기 때문이다.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1980년대 수많은 일터에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노동’의 화두는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1988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 일본인이 특별한 고백을 해왔다.
“1960년대 노동자로 일하던 중 공장이 한국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을 때 한국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유지하는 바보들이라고 비난했는데 뒤늦게 노동자 잘못이 아니라 기업 자본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1970년대 수출 공장에서 일했던 나도 저임금을 유지시킨 바보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꿈꿨지만 진정한 노동의 실현 과제가 한국만의 것이 아닌 전 지구적 문제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산업자본은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서남아시아로 이동했다.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 조건은 한국 노동자에서 가난한 아시아의 노동자들에게 넘겨졌고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진정 사안 20건, 조사 중재 없이 자동 종결2014년 새해 벽두에 수년 동안 착취당하며 저임금을 유지했던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1970년 전태일이 더 이상 ‘바보’로 살 수 없다고 항거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같은 조짐은 진작 나타났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아시아의 노동자들을 착취해 원성이 잦았으며 이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국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국제사회에서 다국적기업들의 노동환경권 인권침해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국제 기준이다. OECD 회원국이라면 반드시 한국 연락사무소(NCP)를 설치해 제기된 진정 사건 등을 조사·중재해야 한다.
2001년 산업자원부가 NCP 역할을 맡았는데 공식적인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약 20건의 진정 사안들은 대부분 조사 중재 없이 자동 종결되거나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다뤄지지 않았다. 노사 및 시민단체 등이 접근할 통로조차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2011년) 등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사무국 업무를 대한상사중재원에 위탁했는데 이는 더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의 책임을 친기업적 민간에 떠넘기기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나는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한국 연락사무소의 구조와 운영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했다. 그런데 새해가 되었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개선책은 감감무소식이다. 이 와중에 캄보디아 노동자 유혈 진압 사태가 벌어졌다. 해외 진출 기업과 관련된 분쟁 해결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한국 연락사무소에도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NCP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 교육·홍보로 분쟁을 예방하는 것인데 이를 게을리했다.
납품 중단될 수 있는데 정보 부족다국적 의류업체인 갭, H&M, 아디다스 등은 경찰의 진압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며 “모든 노동자는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의 캄보디아 진출 기업들은 파업 계속시 공장 해외 이전,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을 발언해 사태를 악화시켰으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해버렸다.
한국은 세계적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리스크 관리에는 인색한 것 같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다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지난해 11월, 2014년도 중소기업청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나는 기획재정부가 삭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예산의 증액을 요구해 8억원을 확보했다.
“가스 공급관을 핀란드 기업에 수출하는 회사인데 핀란드 기업의 기업 심사시 ISO 26000(사회적 책임경영) 활동과 인증을 요구받았으나 CSR 미이행으로 핀란드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 등록이 보류됨. 기업 내부적으로 CSR 활동을 추진하려 했으나 정보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있음.”
“저희는 소니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임. 최근 소니에서 CSR 평가 지표를 보내며 이행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함. 결과에 따라 납품이 중단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함.”
이 사례는 글로벌 기업들이 하청기업(Supply Chain)들에 CSR 이행을 요구하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거래를 중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중소기업에 CSR 내용을 숙지시키는 것은 절박한 과제다. 따라서 컨설팅 및 교육 제공 예산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캄보디아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하청기업들에 제공하는 리스크 관리 교육 기회를 해외 진출 기업들엔 주지 않고 있다.
주관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먼저 해외 진출 기업들을 교육할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인권단체와 협력해 해외 진출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현지 노동자들의 애로를 청취해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인권 전문가들을 한국 연락사무소 업무에 직접 참여케 하는 등 전문성과 개방성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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