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벽돌공장 굴뚝 꼭대기에서 ‘난장이’는 검은 쇠공을 쏘아올렸다. 쇠공이 파고드는 하늘 아래서 키 117cm, 몸무게 32kg의 아버지는 한없이 위태로웠다. 사람들은 치솟는 쇠공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난장이의 아들과 딸도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고 굴뚝에 올랐다. 크레인 위로, 굴다리 위로, 아파트 꼭대기로, 야구장 조명탑으로. 그들에겐 오를 수 있는 모든 곳이 아버지의 굴뚝이었다.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 위에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송전탑 위에서,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 난장이의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꼭 닮은 난장이가 되어 쇠공을 쏘아올리고 있다.
하늘이 검은 쇠공들로 빽빽하게 덮이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은 난장이에게서 하나둘 멀어졌다. 고공농성이 200일(5월4일), 170일(5월8일), 100일(5월15일)을 채워가자 하늘로부터의 절규에도 둔감해졌다. 난장이를 땅 위로 이끌 사람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난장이들의 농성은 그들의 외면 속에서 ‘일상’이 되고 ‘생활’이 돼버렸다. 땅을 밟지 못하는 난장이들로 2013년 5월 한국의 하늘에는 빈틈이 없다. 최병승·천의봉(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한상균·복기성(쌍용자동차 해고), 오수영·여민희(재능교육 해고). 이 가난하고 앙상한 글은 굴뚝에 유폐된 난장이 6명의 하늘 생활을 담은 ‘고공생태보고서’다. _편집자</font></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font size="4"><font color="#991900">#집</font></font>
하늘은 고정돼 있지 않았다. 때론 기울었고, 때론 흔들렸다. 때론 회전했고, 때론 휘청거렸다. 발이 철탑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하늘도 심장 속에서 미끄러졌다.
길은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엔 높이 50m의 철탑이 있다. 2005년 비정규직 노조 파업 뒤 사 쪽은 철탑 하단부 발판 및 손잡이용 못을 빼고 철조망을 둘렀다. 땅에서 4m 지점 철골까진 대못 대신 빈 구멍뿐이었다. 길 없는 길을 따라 지어진 두 남자의 천막이 철탑 위에서 아득했다.
철탑 다리 하나를 붙잡고 기어올랐다. 사선으로 연결된 철골을 끌어안고 몸을 밀어올렸다. 대못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첫 번째 못을 잡기까지 허약한 상체는 앞뒤로 쏠리고 밀렸다. 지난해 10월17일 밤 9시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씨와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국장이 올랐던 길이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육박했다. 플래카드와 만장이 발밑에서 몸을 떨며 울었다. 심장이 뻐근했고, 호흡이 가빴으며, 다리는 후들거렸다. 200일 전 철탑을 탔던 그들은 뒤따라온 용역경비들과 맞서며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렸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오른 하늘이었다. 5월1일 오후, 그들의 농성 천막에 몸을 떨며 닿았을 때 하늘은 한두 방울 비를 뿌렸다.
“바다 똥바람이에요.” 천의봉(32)씨가 세찬 바람의 정체를 설명했다. 철탑 맞은편 연포만이 출처였다. 철판 바닥을 천막과 비닐로 씌운 집을 헤치고 바람은 기어이 침투했다. “세게 불 때는 지진 난 것 같아요. 롤러코스터처럼 들썩입니다.” 200일 동안 한 번도 자르지 않은 최병승(39)씨의 사자머리가 바람에 쓸렸다. 천의봉씨 얼굴은 검게 탔다. 농성 기간에 흰머리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들은 십자로 포갠 두께 2cm 합판에 앉아서 농성 첫 이틀을 버텼다. 몸을 누일 순 있지만 비와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직사각형합판 위에서 다시 8일을 보냈다. 현재 농성장은 세 번째 집이다. 동료들이 만들어준 새 공간으로 옮기면서 두 사람은 “쪽방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는 기분”이었다. “하루 숙박비가 30만원인 철탑 호텔입니다.” 최병승씨가 호쾌하게 웃었다. 한국전력이 1월15일부터 두 사람에게 부과한 퇴거 강제금 액수는 이날까지 6360만원이다.
경기도 평택시에도 비슷한 집이 있다. 칠괴동 쌍용차 공장과 동삭로를 마주한 송전탑 위 30m 지점에는 반년째 파란 천막집이 얹혀 있다. 쌍용차 국정조사와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상균(52) 전 쌍용차노조 지부장과 복기성(36)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이 사는 곳이다. 처음 함께 올랐던 문기주(53) 정비지 회장은 목디스크 등이 심해져 지난 3월15일 송전탑을 내려와 병원으로 향했다.
공장 너머에서 불어온 들바람은 5월답지 않게 매서웠다. 겨울을 견뎌냈지만 송전탑 천막집은 여전히 겨울이다. 고공농성이 보름을 넘긴 지난해 12월 초 천막 공사를 했다. 알루미늄 앵글을 깔고 합판을 덧대 바닥을 넓혔다. 상자를 잘라 선반도 만들었다. 지난겨울 이들은 매서운 바람에 흔들려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다. 5월이지만 밤은 추웠다. 이들은 겨울 외투와 방한화를 벗지 못하고 있다.
더 큰 고통은 그리움이다. 천막에서 내다보면 복기성씨 가족이 사는 평택시 세교동 집이 보인다. “화상전화를 해도 아내는 베란다에 나와서 통화해요. 저는 집을 바라보고요. 노을이 공장 뒤로 저물 때도 힘들어요. 공장 현장 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그는 최근 평택시가 5월15일까지 송전탑 아래 천막농성장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실에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font size="4"><font color="#991900">#시간</font></font>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늘에선 계절의 변화를 겪는 대신 본다. 남산에서 꽃의 만개를 보고, 북한산에서 초록의 진군을 보면서도, 봄바람에선 겨울을 체감하고, 밝아진 옷 색깔에선 쓸쓸함을 느낀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은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더 추운 곳이다. 오수영(39) 재능교육 노조위원장 직무대행과 여민희(40) 조합원은 하얀 눈을 쓸고 얼음을 깨며 종탑에 올랐다. 5월15일이면 고공농성 100일째가 되고, 6월11일이면 복직투쟁 2천 일을 맞는다.
“종탑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이불을 가장자리 끝까지 가서 마구 털어요. 처음엔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했는데요.”
기자는 10cm가 될까 싶은 낮은 턱 때문에 아래를 쳐다볼 때마다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예전엔 아래 지원팀에서 치약을 하나씩 올려줬는데 요즘엔 4개짜리 세트를 한꺼번에 올려보내요. 동료들도 농성이 더 오래가리란 걸 아는 거지요.”
여민희씨가 말했다. 두 사람은 “봄이 오면 내려갈 수 있겠지 하며 꽃놀이 갈 생각으로” 추운 겨울을 버텼다. “종탑 아래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이 빨갛고 노란 원색의 옷을 입고 소풍 가는 걸 보면 저 밑은 정말 봄이구나 싶다”고도 했다. 그런데 봄만 와버렸다. 농성이 언제 끝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오수영씨는 극심한 고립감을 호소했다. 농성 초기엔 언론의 관심이 많았고, 정치인들 방문이 이어졌다. “임기 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여성 대통령의 약속에도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시간은 소득 없이 흐르고 있다. 집회 인원수도 줄면서 “종탑에 유폐되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린다고 했다. 8개월 만에 재개된 사 쪽과의 교섭도 결렬됐다.
“한국전쟁 당시 남과 북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지리산에서 고립돼 사살을 기다리고 있는 빨치산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어왔는데 여기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농성이 끝나도 예전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대한 종소리가 귀를 때렸다. 낮 12시였다. 21회씩 하루 세 차례 치는 종소리에 종탑 땅바닥이 흔들렸다.
재능교육 노조보다 2배 이상 오래 하늘의 삶을 살아온 울산 철탑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천의봉씨는 “우리가 열심히 하면 그만큼 빨리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어리석었다. 우리 2명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벽이다. 분노만 쌓여간다”고 했다. 최병승씨도 말했다.
“초기엔 정치·사회적 이슈화가 되면서 대선주자까지 현장을 방문했잖아요. 그런데 100일이 지나고, 150일이 지나고, 200일이 되면서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판단도 들어요. 우리는 막막함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감정 기복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지난 4월3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생각하는 걸까, 계속 중얼거린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
<font size="4"><font color="#991900">#기도</font></font>“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마음에 새기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아침 8시30분. 오수영씨와 여민희씨가 스피커 음성에 맞춰 절을 올렸다. 종탑 맞은편에선 재능교육 사옥이 그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사옥 앞에선 ‘땅의 동료들’이 동시에 절을 올렸다. 두 사람은 양팔로 하늘을 감싸안듯 원을 그리며 손을 모았다. 여민희씨는 무릎과 팔이 거의 동시에 땅을 짚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랐다. 오수영씨는 다리를 쭉 펴고 손바닥을 땅에 붙인 뒤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내가 더 가지면 남이 그만큼 덜 가진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스물일곱 번째 절을 올립니다.”
‘재능교육지부 투쟁 승리를 위한 100배 발원문’에 따른 염원의 절이었다. 오수영씨가 쓰고 녹음했다. 제주 강정 평화운동가들이 구럼비를 바라보며 몸을 굽혔던 ‘생명평화 100배 서원문’을 참고했다. 여민희씨는 절을 하는 동안 “심란한 마음이 정리된다”고 했다. “스트레칭이 되니까 근육통에도 효과적이에요.” 오수영씨가 땀을 닦았다.
“노동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기원하며, 아흔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
울산 송전탑의 최병승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깊은 호흡을 반복하며 기도를 한다. 대상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하늘에 계신 분들 중에서 가장 친한 분들이거든요.” 생전 두 분은 그의 싸움을 신뢰하고 격려했다. 그는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분들”에게 매일 기원한다. “내가 먼저 싸움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병이 들어 스스로 땅을 밟는 일이 없도록,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이 아픔을 겪지 않도록….”
“기성아! 기성! 밥!”
송전탑 밑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남국씨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송전탑 천막 한켠으로 스티로폼이 걷혔다. 긴 머리에 짙은 남색 점퍼를 껴입은 복기성씨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사이 이씨는 송전탑 위 천막 옆에 달아놓은 도르래에 장바구니 2개를 걸어 올렸다. 평택에 문을 연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치유센터 ‘와락’ 부엌에서 만든 도시락이었다. 배달을 마친 장바구니가 도르래를 타고 다시 묵직하게 땅에 내려앉았다. “나눠먹으라고~! 우리 먹을 건 빼놨어!” 복기성씨가 소리쳤다. 얼마 전 올라갔다던 두유 한 상자가 3분의 1 정도 빈 채 내려왔다. 배고픔은 송전탑 아래 천막도 마찬가지다.
송전탑 위 사람들은 ‘1일 2식’을 한다. 낮 12시, 저녁 6시께 도시락이 올라간다. 아침은 간단히 음료수로 때운다. 운동을 못해서 먹는게 조심스럽다. 한상균씨는 매번 밥을 남기지만, 좀더 젊은 복기성씨는 양껏 먹는 편이다. 천막에 나와 줄넘기하듯 제자리뛰기를 하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게 운동의 전부다. 노동절 저녁인 이날 저녁에는 특별히 옻닭이 올라갔다.
‘100배’를 마친 혜화동성당 종탑 위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침 겸 점심밥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인 윤희찬씨가 종탑 밑으로 음식 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가방 안에서 밥과 육개장과 반찬을 하나씩 꺼냈다. 그는 매일 아침 종탑 밥을 챙기느라 자신은 부인 눈칫밥을 먹는다고 했다.
윤희찬씨가 휴대용 가스버너에 불을 붙여 국을 데웠다. 그는 예전부터 재능교육 노조와 인연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재능교육 사옥 앞 농성장을 지나다가 여성 2명이 종탑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부터 밥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잘 먹어야 건강하잖아요.”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자리를 떴다. 그가 데운 국과 밥을 이날 종탑지킴이인 강경식 조합원이 줄에 매달아 종탑 위로 올렸다. 밥은 사람을 먹이는 식량이자 사람 사이를 잇는 끈이다.
오수영·여민희씨도 ‘불의의 배탈’을 방지하기 위해 음식 조절에 신경 쓴다. 다만 별도의 ‘믿는 구석’이 있다. 과거 천막농성 때부터 진료를 도맡아준 한의사가 매주 들러 처방해주는 소화제다. “소화불량일 때는 물론 잠이 안 올 때도, 화가 날 때도 먹는 만병통치약”이라며 그들은 웃었다.
밥은 늘 생리현상을 동반한다. 울산 철탑에선 소변은 생수 페트병을, 대변은 환자용 변기를 이용한다. 최병승씨는 “처음엔 조준이 잘 안 됐는데 지금은 익숙하다”고 했고, 천의봉씨는 “비가 올 때나 밤엔 그냥 밖으로 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최근 철탑 진압설이 돌자 하루치 대변을 ‘똥폭탄’용으로 모아두기도 했다.
“여기 올라오기 전까진 우리도 문 잠그고 일 보는 게 당연했지요. 여긴 다 노출돼 있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큰일을 치를 때면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현대차 경비와 눈이 마주칩니다. 불편함과 불쾌감이 어느 순간 익숙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약 없는 고공농성자의 실존이다. 울산보다 공간이 좀더 넉넉한 평택 송전탑에선 한켠에 세운 작은 천막을 아예 화장실 겸 창고로 쓴다. 이곳에 대소변을 받는 플라스틱통과 세면용 물통을 둔다.
‘하늘 주민’의 최대 적 중 하나는 날씨다. 오수영씨는 스스로 터득한 ‘핫팩 요법’으로 추위를 견뎠다. 혈액이 순환되는 자리인 뒷목 바로 아래와 허리 바로 위 두 군데에 핫팩을 붙이면 데워진 피가 전신을 돌며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겨울의 극심한 추위를 이긴 뒤 봄이 되자 농성장은 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3월 중순 울산 철탑은 “천막을 칼로 찢어도 처리하기 힘들 만큼” 물세례를 받았다. 세숫대야로 물을 퍼내느라 농성자들은 녹초가 됐다.
농성자들은 겨울보다 다가올 여름을 더 우려하고 있다. 태풍이라도 불면 얼기설기 지은 농성 천막은 당장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철제 바닥과 방수용 비닐이 천막 안 온도를 대책 없이 달굴 게 틀림없다. 천의봉씨는 “자연의 탄압이 걱정”이라고 했다.
<font color="#991900"><font size="4">#손님</font></font>손님이 쌍용차 송전탑을 찾아왔다. 손님들은 매일 한 번 송전탑을 향해 세워진 스피커 앞에 선다. 황현수(42)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송전탑 위 천막에서 한상균씨가 무선 마이크를 잡았다. 건설노동자였던 황씨는 2010년 경기도 군포의 건설현장에서 불법 하도급 폐지를 요구하며 타워크레인에 올랐다가 58일 만에 내려온 경험이 있다. “날도 좋은데 바람이나 쐬러 가지!” 한상균씨가 인사를 건넸다. “주말에도 자주 쐬러 가는데요, 뭘.” 황씨가 3살배기 첫째아들을 마이크까지 안아올렸다.
고공농성이 장기화되면서 농성자들은 뜻밖의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복기성씨는 송전탑 천막 위로 날아온 까치를 기억한다. 고공농성 초기 과수원이던 자리에 고속도로가 뚫리자 까치가 근처 송전탑에 나뭇가지를 물고 둥지를 틀러 날아온 것이다. “까치가 어렵게 철탑 위로 나뭇가지를 하나씩 옮기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둥지를 틀고 살아야 할 과수원에서 내몰린 상황을 생각하니 말이죠.”
현대차 철탑 위엔 현재 까치가 산다. 최병승·천의봉씨가 새 천막을 지을 때 까치도 집을 짓고 있었고, 까치가 집을 완성했을 때 천막도 제 모습을 갖췄다. 천의봉씨가 말했다.
“바람이 불 때면 까치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나뭇가지를 떨어뜨려 안전모를 쓸 뻔했어요. 새도 노력하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게 순리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겠지요?”
<font size="4"><font color="#991900">#분노</font></font>“이런 게 화병이라죠?”
오수영씨는 “요즘 쉽게 분노한다”고 했다.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주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한다. 8년 전 아들을 임신했을 때 극도로 예민했던 증상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여민희씨는 거꾸로 화를 삭인다. 그의 화는 심한 위통으로 배를 쥐어뜯게 하고, 오수영씨가 잘 동안 몰래 밤새도록 울게도 만든다. 두 사람은 틈날 때마다 제자리 토끼뜀을 하며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한의사 선생님은 ‘마음속 변비’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음속 화를 다스리는 게 급하다고요.”
최병승씨는 최승자 시인을 좋아한다.
“세상이 병들어 있다/ 난 세상과 화해할 수 없어 병들어간다.”
그의 트위터 문패 문구다. 시인의 시 ‘어떤 아침에는’에서 시구를 빌려와 조금 바꿨다. 그는 ‘병든 세상’에 분노했다. 최근 목숨을 끊은 촉탁직 노동자의 죽음에 자신이 일조했다고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는 “회사가 촉탁직 전환을 밀어붙일 때 비정규직지회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는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 현실이 너무 부끄럽고 안타깝다”고 했다.
6300048. 지난 1월7일 현대차 사내 통신망에 뜬 그의 사번이다. 현대차가 그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며 부여한 번호다. 하지만 그는 복직을 위해 철탑을 내려가지 않았다.
“저에 대한 대법원의 정규직 인정 판결은 제 것이 아닙니다. 7년간의 소송과 2번의 구속, 3번의 수배 기간 동안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준 조합원들의 것입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천의봉씨는 선물받은 500피스짜리 철탑 퍼즐을 맞추며 스트레스를 다스렸다. “퍼즐이 제대로 안 맞아서 혼자 엄청 욕했어요.”
<font color="#991900"><font size="4">#생일</font></font>오수영·여민희·천의봉씨는 고공에서 생일을 맞았다. 가족이 챙겨주지 못하는 생일상을 함께 농성 중인 동료들이 차렸다. 재능교육 농성자들의 생일엔 마침 사람이 100명 이상 모이는 집회가 열렸다. 그들은 두 사람에게 생일 축하 ‘폭탄 문자’를 보냈고, 케이크에 불을 붙여 촬영한 동영상으로 마음을 나눴다.
천의봉씨의 생일엔 미역국과 갈비찜이 올라왔다. 추운 겨울 새벽부터 생일 음식을 준비한 동료들의 정성에 그는 목이 멨다. 그의 생일엔 사 쪽 용역 500여 명이 철탑 주변에 모였고, 그들을 막기 위한 조합원들이 비슷한 규모로 모였다. 그는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니 축복받은 생일이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아무런 소득 없이 철탑을 내려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하늘을 오르지 않도록 우리가 잘 매듭짓고 싶습니다.”
20여 명 구속, 40여 명 수배, 200여 명 해고, 1천여 명 징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간 싸워온 ‘고난의 흔적’이다. 2004년 노동부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정 뒤 이어져온 ‘정규직화 투쟁’은 험난했다. 정부와 현대차, 정규직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미온적 대처로 이들의 싸움은 점점 벼랑 끝으로 떠밀리고 있다.
2010년 7월과 2012년 2월 대법원이 자동차 생산공정 전체를 불법파견으로 인정했으나, 사 쪽은 최병승씨 한 사람에 대한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3월19일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50개 사내 하청업체 중 32개 278명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했지만, 노동부는 특별한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12월27일 회사의 신규 채용안을 둘러싼 비정규직 노조(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와의 의견 차이로 특별교섭을 중단했다. 지난 4월 30일로 예정돼 있던 교섭 재개 논의 간담회도 연기했다. 5월 임·단협 일정을 감안할 때 사 쪽·현대차지부·비정규직지회 간의 특별교섭 재개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2월15일과 22일 사 쪽에 직접교섭을 요청했으나, 현대차는 “우리는 원청이 아니다”라며 거부했다. 노조의 ‘전원 정규직화’ 요구에 대해 사 쪽은 ‘2016년까지 3500명 신규 채용’을 강행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4월22일부터 해고노동자를 중심으로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한성호 현대차 정책홍보 이사는 “불법파견 판정 부분은 법적으로 계속 따져볼 것”이라며 “행정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한 번의 극한 투쟁을 준비 중이다. 노조는 중노위 결정문을 근거로 노동부엔 32개 불법파견 업체에 대한 행정 조처를, 현대차엔 직접교섭을 요구할 방침이다. 수용되지 않을 경우 해당 업체 ‘폐쇄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상록 비정규직 노조 정책부장의 말이다. “정부가 행정 조처를 취하지 않고 회사도 교섭에 응하지 않을 땐 불법업체를 계속 방치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미 피 흘릴 만큼 흘렸다. 우리에겐 더 물러설 곳이 없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font size="3"><font color="#877015">쌍용차 163일</font></font>
쌍용자동차 사태의 시작은 4년 전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차는 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차가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쌍용차는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2646명을 내보내는 인력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노조는 회사가 제시한 정리해고자 비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노조는 공장 문을 걸어잠근 채 무기한 ‘옥쇄 파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산자’와 ‘죽은 자’가 충돌했고, 경찰까지 강제 진압에 나서면서 공장은 전쟁터가 됐다. 77일 동안 이어진 충돌로 노조원·경찰 등 380여 명이 다쳤다.
최악의 사태를 우려한 노사는 2009년 8월 정리해고자 974명 가운데 파업을 벌인 조합원 640여 명이 자발적으로 무급휴직과 영업전직, 분사, 희망퇴직 등을 선택하도록 합의했다. 2010년 11월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가 쌍용차의 새 주인이 됐다.
회사는 2교대가 가능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무급휴직자의 1년 뒤 순환근무 복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복직이 불투명해지자 생활고와 비관에 시달리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등 2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졌다. 해고노동자들은 경기도 평택 칠괴동 쌍용차 평택공장 앞, 평택역, 그리고 서울 대한문 앞 등에서 ‘쌍용차 사태의 국정조사’와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다.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 등 해고노동자 3명이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 위로 올라갔다. 고공농성자가 됐다.
지난 3월 쌍용차는 무급휴직자 등 489명을 3년7개월 만에 복직시켰다. 그러나 쌍용차 국정조사는 요원하다. 해고노동자의 문제 해결에는 별다른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쌍용차는 “(해고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히 언급할 게 없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font size="3"><font color="#877015">재능교육 89일</font></font>
다시 결렬이다. 지난해 8월 중단된 재능교육 사 쪽과 노조의 첫 공식 교섭이 지난 4월17일과 24일 두 차례 열렸다. 그리고 결렬됐다. 종탑 농성이 이끌어 낸 교섭 테이블은 양쪽의 입장 차이만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날마다 신기록이다. 재능교육 노조는 하루하루 ‘최장기 투쟁 기록’을 새로쓰고 있다. 5월11일에 2천 일을 꽉 채우지만 해고 학습지 교사들은 여전히 하늘과 거리에 있다. ‘문제적 단체협약’ 탓이다. 2007년 단협(회원관리수수료 삭감안) 때문에 시작된 싸움은 여섯 해가 바뀌었어도 ‘단협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사 쪽은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여서 노조를 결성할 수 없다”며 단협을 해지했고, 2008년엔 12명을 해고했다. 조합원 구속과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랐다. 해고 조합원인 고 이지현씨는 암으로 사망했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학습지 교사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판결했으나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이지현 조합원을 포함한 12명의 전원 복직과 ‘복직 전 단협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 쪽은 이씨를 제외한 11명 복직과 ‘복직 뒤 단협 논의’를 고수했다.
노조에 단협 체결 없는 복직은 ‘안전망이 거세된 과거로의 단순 회귀’를 뜻한다. 오수영 재능교육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은 “단협 없이 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동안의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사 쪽은 “복직 뒤 단협 논의가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전철호 재능교육 조직인화팀장은 “단협은 회사 구성원과 체결하는 것이다. 계약이 해지된 사람들과 단협을 체결하는 경우는 없다”고 못박았다. 사 쪽은 지난 4월29일과 5월2일 ‘당사 사유지 내 불법적치물 철거 및 불법행위 중지 요구’ 공문을 노조에 보냈다. 2월6일 오수영·여민희씨의 혜화동성당 종탑 농성에 맞춰 노조가 회사 정문 앞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한 이후 첫 공식 철거 요구다. 단협 결렬에 따른 사 쪽의 압박인 셈이다. 사 쪽은 ‘천막·부착물 철거’와 ‘집회·시위 금지’를 이행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노조의 ‘지난한 대장정’이 계속될 듯하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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