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추진한다는 ‘제2의 새마을운동’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승리 다음날인 지난해 12월20일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만들어 국민 모두가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이 즐겁게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박 대통령의 국정 목표 중 하나인 ‘창조경제’와 관련해 ‘제2의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당시 발제를 맡은 안상훈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은 제2의 새마을운동의 성격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공동체적인 경제주체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포항시 ‘새마을 세계화’, 아프리카 이어 아시아로
관가와 각급 지자체는 앞다퉈 ‘새마을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이미 진행하고 있던 사업을 확대해 ‘제2의 새마을운동’의 지위를 부여한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표적이다. 농림부는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2011년부터 추진해온 ‘함께하는 우리 농어촌운동’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도 3월24일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비전인 ‘창조경제’를 21세기 새마을운동으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경북 지역 지자체도 발빠르게 움직인다. 지난해 새마을세계화재단을 발족하는 등 ‘새마을 세계화’ 사업을 추진해온 경북 포항시는 아프리카 지역에 이어 아시아권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사업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새마을’이라는 상징의 부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경북 성주군은 ‘클린 성주·친환경 농촌 만들기 사업’을 제2의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추진한다. 경북도의회의 한 도의원은 “도가 추진해온 감사운동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수위는 ‘공동체적 경제주체의 활성화’를 언급했지만, 관 주도의 ‘제2의 새마을운동’이 오히려 민간 차원의 협동조합운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3월 7일 인터뷰에서 “제2의 새마을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사회적 경제는 인류 탄생과 함께 늘 존재했다. 서로 돕는 게 사회적 경제다. 예전엔 식량을 공유하고 품앗이·두레 같은 조직이 마을마다 있었다. 해방기 이후는 조합의 천국이었다. 정부를 믿을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이걸 다 없애버렸다. 지난해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면서 요즘 협동조합이 붐이다. 그런데 제2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이를 중앙이 조직하면 이 자주적인 움직임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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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새마을운동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의 ‘의식 개조’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을 관 주도로 뜯어고치겠다는 식의 발상은 박 대통령의 언행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된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북 청도군이 2012년 발간한 에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낸 축간사가 실려 있다. 박 대통령은 축간사에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로 질적 발전을 이루려면, 또 한 번의 정신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는 2월4일 충청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도 “새마을운동을 국민정신운동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외출 영남대 교수는 2011년 발표한 논문 ‘교육계몽운동으로서 새마을운동의 특성과 의의’에서 “근면·자조·협동으로 대변되는 새마을운동은 특정 지역의 주민에게 요구되는 정신이 아니고 국가 발전을 위한 범국민적 정신개조운동이었으며, 새마을운동의 성격도 지역개발을 넘어선 정신개발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썼다. “새마을정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한 정신개조에 목적을 두면서 근대적 인간형인 시민 만들기에 박차를 가한” 운동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동생이자 역시 새마을운동 연구자인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제2의 새마을운동이 단지 농어촌만의 문제가 아니어야 한다고 판단한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농어촌 지역의 빈곤을 탈피하자는 건 오히려 덜 중요하다고 본다. 당면한 모든 문제에 새마을 정신은 적용 가능하다. 전 국민적 차원에서 더불어 함께 잘 살자는, 공동체 복원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 새마을운동이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면, 새로운 새마을운동은 ‘전 국민적 계몽의 기획’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복적으로 ‘새마을운동’을 호명하는 움직임 저변에 깔린 정치적 욕망은 위험해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3년 11월21일 제1차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운동은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위한 실천도장이요, 참다운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실천도장인 동시에, 10월 유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도장”이라고 했다. 앞서 같은 해 연두 기자회견에선 “10월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 유신”이라는 말도 했다.
“10월 유신은 곧 새마을운동”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의 유산을 이어받으려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새마을운동”이라며 “감히 제2의 5·16을 하겠다거나 제2의 유신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울 수 있는 박정희표 정치는 제2의 새마을운동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는 “유신 체제가 박정희 시대에서 우연한 일탈적 국면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의 궁극적 귀결이자 집약적 표현이라고 한다면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열광의 이면에는 유신 체제에 대한 잠재적 욕망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여러 차례 ‘제2의 새마을운동’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입에 올린 박근혜 대통령이다. 어쩌면 ‘제2의 박정희 정부’ 출범의 우회적 선언이었을까.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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