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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대 부담 당연” VS “떠넘기지 말아야”

등록 2013-02-24 17:08 수정 2020-05-02 04:27
국민연금 개혁론이 들끓고 있다. 기금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분석 결과가 곧 발표되는 까닭이다. 기금 고갈까지의 카운트다운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방법이라며 여기저기서 제시된 방안은 급여 수준 인하부터 완전 폐지까지 다채롭다. 대부분 기금의 재정안정화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의 본질은 간과한 방식이다. 이에 반해 진보 진영 안에서 나오는 대안은 국민연금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의 결은 매우 다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와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그 대척점에 서 있다. 연금제도를 유지하는 주된 책임이 후세대에 있느냐 현세대에 있느냐를 놓고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봤다. _편집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김정효 기자

“주택·도로·건물 등 모든 경제적 성과를 물려받는 후세대가 연금보험료를 조금 더 부담한다고 해서 세대 간에 불공평하다는 것은 짧은 생각이다.” -김연명 교수
“현세대가 2050년에 받을 기초연금·국민연금 급여의 총규모는 GDP의 약 10%다. 그런데 현세대가 지금 내고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와 기초노령연금 몫의 세금은 합해서 총 GDP의 2.5%에 불과하다.” -오건호 실장
1. 국민연금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이하 김) 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향이 연금액을 깎는 개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연금액을 높여 중산층과 서민이 최소한의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개혁이 돼야한다. 현재는 평균적인 직장인도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연금을 받게 돼 있다. 이래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이하 오)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제돼야만 가능하다. 최근 신뢰가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구상한) 기초연금 차등 지급 논란은 신뢰 확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있다. ‘재정소진론’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아직은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 앞으로 연금 수급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5~10년 안에 제도 개선을 위한 체력이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일단 박근혜 정부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며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신뢰를 넓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2. 기금 고갈을 최대한 늦춰야 하나.

기금 고갈 시기는 의미 없는 개념이다. 기금 없이도 연금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에 젊은 세대가 노인들의 연금 지급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와 조세의 크기다. 2050년에 노인 인구가 전체의 40%인 1900만 명이 된다. 이들에게 연금을 주려고 국민연금은 국내총생산(GDP)의 5.5%, 기초노령연금은 GDP의 4.3%를 지출해도 GDP의 10%가 안 된다. 유럽 국가는 대부분 이미 2000년대 초반 노인 인구가 15%일 때 GDP의 10%를 지출하고도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기금 고갈은 걱정할 게 없다.

기본적으로 기금 소진을 늦추기 위한 재정안정화 조처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금 소진 자체가 재정안정화의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세대 간 부담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3. 지금까지의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식의 개혁안에 대해 평가해달라.

원천적으로 잘못된 방식이다. 세대 간 불공평성만 가중했다. 지금의 30~50대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연금을 제대로 못 받는 부모도 부양해야 하고 자신들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이런 이중 부담의 일부를 후세대가 나눠 가져야 세대 간 공평성이 확보된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방식은 불신만 키운다. 그러나 이미 소득대체율이 40%까지 떨어져서 (정부도) 이런 방식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4. 국민연금을 두고 세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존재 자체가 후세대의 부담을 전제로 한다. 후세대는 윗세대가 이룩한 경제적·사회적 성과를 모두 물려받는다. 한국은 해방 이후 계속 경제발전을 해왔고 그 혜택은 미래 세대에 고스란히 전수된다. 주택·도로·건물 등 모든 경제적 성과를 물려받는 후세대가 연금보험료를 조금 더 부담한다고 해서 세대 간에 불공평하다는 것은 짧은 생각이다. 그리고 수백조원의 국민연금기금을 어린이집이나 공공주택 건설에 투자하면 후세대의 혜택을 많이 증진시킬 수 있다.

연금제도는 현세대의 급여 재정을 후세대가 지급하는 ‘세대 간 계약’ 혹은 ‘세대 간 연대’에 의해 유지된다. (계약·연대가) 공평하려면 세대 간 부담 몫이 엇비슷해야 한다. 일부 현세대에서 이중 부담 문제가 발생하는 건 맞다. 그러나 현행 국민연금은 현세대에게 이를 충분히 보상해주고 있다. 물론 고령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세대 간 부담 몫의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도 현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재정에 기여해야 후세대에게 나머지 책임을 요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세대가 2050년에 받을 기초연금·국민연금 급여의 총규모(특수직역연금 제외)는 GDP의 약 10%다. 2060년엔 GDP의 11%로 올라간다. 그런데 현세대가 지금 내고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와 기초노령연금 몫의 세금은 합해서 총 GDP의 2.5%에 불과하다. 엄청난 차이다. 앞으로 현세대의 몫을 3%, 4%, 5%씩 늘려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못 가 후세대의 비판과 저항이 잇따를 것이다.

5. 적절한 기초연금(만 65살 이상에 월 20만원씩 지급하는 방안) 재원은 무엇인가.

기초연금의 재원은 조세로 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맞다. 하지만 한국은 특수하다. 천문학적인 국민연금기금을 그대로 두고 조세로만 기초연금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하면 과도하게 쌓이는 적립금 문제도 해결하고노인들의 빈곤도 완화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내가 낸 돈을 돌려받는 개인연금이 아니라 사회적인 노인부양제도이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을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기초연금 재원은 현세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쉬운 방법으로 국민연금에 손대서 후세대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최대한 불필요한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증세를 해야 한다.

6. 소득대체율(퇴직 전 소득 대비 연금 비율)을 높이는 대안은.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인상하는 방식이다. 일단 40%에서 50%로 인상하는 방법이 있다. 가입 기간을 늘려주는 방법도 있다. 이 중 두 번째 방식이 더 적합하다. 가입 기간은 연금액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육아·노인돌봄·실업·군복무 등으로 휴직한 뒤 소득이 없는 기간을 보험료를 낸 것으로 인정해주는 ‘연금크레딧’ 제도의 내용을 강화하면 실질적으로 연금액이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 결국 이 방식이 노동시장이 불안해지는 후 기산업사회에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기초연금 인상을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박근혜식 차등 지원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즉 기초연금을 늘리면서 그만큼 국민연금 급여를 낮춰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 급여율이 현행법에 2028년 10%로 명시돼 있는데, 이를 15%로 올리면 국민연금 급여율은 2028년 기준 40%에서 30%로 인하해도 된다. 이렇게 되면 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도 커진다. 내부에 절반의 소득비례 요소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보다 계층별 균등액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몫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후세대가 져야 할 부담 몫도 줄어든다.

7. 보험료율 인상은 필요한가.

보험료 인상은 연금의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기금의 급속한 소진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막는 것이다. 지금 시나리오대로라면 기금은 2040년에 정점이 된 뒤 2060년에 0원이 된다. GDP의 절반이 넘는 돈을 20년 안에 모두 소진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들어가 있는 기금을 1년에 GDP의 2.5%씩 팔아 현금화한 뒤 수급자에게 연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지금으로만 봐도 GDP의 2.5%면 30조원이 넘는다. 이 돈을 1년 안에 현금화하는 게 불가능하다. 판다고 해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보험료 인상은 이렇게 급격히 기금이 소진되지 않고 서서히 줄어들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인상할 필요는 없다. 경기만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기금이 정점이 되는 27년 뒤(2040년)부터 서서히 올리면 된다.

기초연금 급여율이 더 올라가지 않는다면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필요하다. 후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이론적으로 현행 40% 급여율에 해당하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약 15%다. 그러나 이렇게 보험료율을 올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국민연금기금 거대화다.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대기업에 투자하다보면 우리의 보험금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들도 연금이 가진 의결권의 힘을 우려해 (자본 유입을) 반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보험료를 적립하는 국민연금의 크기를 줄이되 세금으로 충당하는 기초연금 크기는 늘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보험료율을 현행 수준으로 상당 기간 유지할 수 있다.

8. 국민연금을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적립식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수익을 노후에 지급하는 반면, 부과식은 그해 연금을 그해 가입자의 보험료나 세금으로 충당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부과 방식을 전제로 설계됐다. 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 축적된 연금기금의 크기가 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인 2060년에 완전부과 방식으로 전환해도 큰 문제는 없다. 물론 이보다 앞당겨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부과식으로 가는 게 맞다. 국민연금기금의 거대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골치 아픈 기금 운용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전제가 필요하다. 서구처럼 적립금이 없더라도 앞으로 연금이 지급될 것이라는 가입자들의 믿음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사적 연금을 위한 잔치로 귀결될 수도 있다. 또 사회보장세(혹은 노후연금세) 신설 같은 노력을 통해 현세대부터 연금 재정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런 전제를 만족하고) 부과식으로 전환하려면 오랜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이번 기초연금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 첫 단추에서 부과식의 재정 책임 룰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미래의 어느 순간에 후세대가 부과식 연금을 수용할 것으로 가정하는 건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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