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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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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해고 통보 받은 한진중 노동자 7명 심층면담 논문…

해고에 대한 불안·동료에 대한 배신감·국가에 대한 분노 털어놔
등록 2013-01-05 02:18 수정 2020-05-03 04:27
2012년 11월9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본관 로비에서 해고노동자들이 합의문에 따른 조건 없는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1년9개월 전 정리해고됐던 이들은 이날 전원 재취업됐지만, 무기한 휴업을 통보받았다. 한겨레 박종식

2012년 11월9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본관 로비에서 해고노동자들이 합의문에 따른 조건 없는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1년9개월 전 정리해고됐던 이들은 이날 전원 재취업됐지만, 무기한 휴업을 통보받았다. 한겨레 박종식

정리해고는 한 개인에게 단순한 스트레스를 뛰어넘는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남긴다. 고 최강서씨 등 2011년 해고를 통보받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트라우마’(부정적인 후유증을 유발하는 심리적 장애)를 품고 있었다. 경성대학교 대학원 상담심리 전공 차명정 박사는 2012년 6월부터 두 달간, 해고 통보를 받은 뒤 재입사를 앞두고 있던 근속연수 10년 이상의 한진중공업 노동자 7명과 심층면담을 진행했다. 이를 토대로 박사학위 논문 ‘정리해고 노동자의 외상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한진중공업을 중심으로’를 작성했다. 면담에 응한 이들은 △구조조정 목격으로 인한 불안 △김주익·곽재규 등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 △자기비하와 대인관계 회피 △경제적 어려움 △국가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파업 대오에서 이탈, 새 노조에 가입한 동료에 대한 배신감△해고자 꼬리표를 단 뒤 구직 활동에서 겪은 좌절감 등을 털어놨다.

“차라리 내가 독에서 뛰어내리면”

한진중공업은 2002년 650명 강제 사직 → 2009년 409명 희망퇴직 → 2011년 228명 희망퇴직·172명 정리해고 통보 등 고용 불안이 만성적으로 이어져왔던 사업장이다. 이러한 세월을 겪으며 노동자들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켜켜이 쌓여갔다.

“2003년엔 나이 든 사람들 위주로 구조조정을 했는데, 2009년 이후에는 젊은 사람들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는 거야. 2009년에 우울증을 겪었어요. 갑자기 심장이 떨리고, 술 먹어도 잠이 안 오더라고. 내가 잘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는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독에서 뛰어내리면 가족들이 산재라도 받을 거 아닌가 그런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었어.”(논문 속 면담자 7, 근속 10년·30대 중반)

“30 몇 년 다닌 회사가 맨날 트러블이 있다 보니까, 이 회사 다니는 거 자체가 싫어지기도 하고. 나이도 이제 들다 보니까 옮길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는 건데…. 한 번 겪은 거 두 번 겪고 세 번 겪으면 겹쳐진단 말이야.”(면담자 2, 근속 32년·50대 초반)

해고 통보를 받은 이들은, 자존심을 심하게 다쳤다. 30여 년간 노사 갈등을 견뎌오던 한 면담자는 지난해 해고자가 되고선 삶을 스스로 포기하려 할 만큼 무력감에 휩싸였다고 털어놨다. 생계 고민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2009년까지 흑자를 기록한 회사에 대한 배신감도 컸다.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총파업 등 저항에 나선 이후에는 ‘범죄집단’ 취급하는 사회와 이웃의 눈길에 상처를 입었다.

“가족들, 우리 형제들, 주변 친구들. 돈 아예 안 주는 것도 아닌데 그만하라 그래요. 지금 아파트 주민이나 인근 사람들 ‘시끄럽다’ 그러고. 정리해고 이후로 나도 상처 많이 받았지. 사람들 인식은 당연히 뭔가 잘못했으니까 잘랐을 거다. 자존심 상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 관계도 좁아지고. 정부는 노동자들 존중하거나 이런 게 일절 없어요. 삭막하죠.”(면담자 6, 근속 11년·30대 중반)

“해고당했을 때 충격이나 억울함보다, 파업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이나 용역들로부터 당한 육체적 타격이나 정신적 피해가 지금은 더 클 수 있다. 경찰이 회사나 용역을 보호해주고. 그럴 때는 뒤집어지는 게, 회사 확 뒤엎어버리고 끝내버리고 싶은, 그런 순간순간의 충동을 조금씩 느끼지.”(면담자 3, 근속 30년·50대 초반)

“마음 터놓을 친구가 없어요”

정리해고는 가족을 비롯한 사람 간의 관계마저 위협했다. 이혼 위기를 겪은 사람도, 동료와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

“친구가 복수노조에 갔어. 서로 아래위층에 살고 있지마는, 지금 안 만난 지 2개월 정도 됐어요. 내가 오늘 술을 진짜 한잔 먹고 싶은데,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죠.”(면담자 1, 근속 17년·50대 초반)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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