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성 있는 후보가 둘이나 된다면? 이들이 함께 다니며 둘 중 더 나은 ‘브랜드 가치’를 뽑아달라고 한다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시민들에겐 행복한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문안 드림 콘서트’(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정책과 리더십을 선보이는 양자 콘서트) 아이디어도 이런 맥락이다. 2002년 단일화한 노무현-정몽준 후보처럼 정책과 가치가 딴판이지 않기에 가능한 제안이다.
조기 단일화 논의, 지지층 확장 막는 ‘블랙홀’
온갖 정치적 상상력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역동성이 발휘되는 한국 대선이지만, ‘문-안 단일화’는 아직까지는 복잡한 고차 함수에 가깝다. 안 후보는 9월19일 출마 선언을 통해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후보로 나섰다.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 그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라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는 단일화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안 후보 지지층은 민주당을 낡은 정당으로 여기고, 문 후보 지지층은 안 후보가 정권 교체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단일화는 두 지지층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안 후보가 단일화의 문을 닫은 건 아니다. 안 후보 캠프의 금태섭 변호사는 9월20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변화와 쇄신이 있고, 국민들이 판단해서 국민적 동의가 있다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와 민주당 입당의 조건이 충족되면 할 수 있다고 했다. 뒤늦게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안 후보로서는 지지층을 확장할 시간과 독자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단일화 논의는 이를 가로막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예 단일화 가능성을 배제하면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다. ‘조건부 단일화’를 말하는 이유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안 후보는 민주당이 불신을 받고 있음을 대중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이 민주당 후보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민주당에 단일화의 공을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가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언급해주길 내심 바랐던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함께 쇄신 대상으로 지목돼 ‘넘겨받은 공’을 안고 가게 됐다.
단일화 논의는 일단 미뤄졌고, 두 후보는 각자의 지지층 확보 경쟁에 주력하고 있다. 각자의 ‘파이’를 키워야 단일화가 가능하고, 자신의 파이가 커야 단일화 협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후보로서 첫 일정인 국립현충원 참배에서부터 두 후보는 달랐다. 문 후보는 9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와 사병 묘역을 방문했다. 안 후보는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와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묘역과 사병 묘역을 두루 찾았다. 문 후보가 진보개혁 유권자의 지지를 확실히 다져 야권 후보로서 입지를 구축하려 했다면, 안 후보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 포섭되지 않는 무당파층을 끌어안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도 인물도 경쟁
쇄신과 정책, 인물 등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문 후보는 9월20일 의원총회에서 “조기 단일화를 촉구할 필요도 없다. 협상을 통한 단일화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경쟁하면 된다. 우리가 제대로 변화하면서 경쟁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사이버 펑크의 선구적 작가 윌리엄 깁슨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라고 끝맺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쇄신의 상징, ‘이미 와 있는 미래’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정치 쇄신 의지를 드러냈다.
두 후보 모두 선거 과정에서부터 쇄신을 강조하다 보니, 선거대책위원회 형식이 비슷하다. 문 후보는 당 조직 중심의 민주캠프, 지지자 중심의 시민캠프, 전문가 네트워크인 미래캠프 등 3개의 수평 구조로 이뤄진 ‘담쟁이 캠프’를 선보일 예정이다. 당 지도부가 전면에 포진하는 여의도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해찬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 후퇴를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안 후보도 정치쇄신팀, 경제팀, 미래팀 등 팀 체제로 캠프를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의 일정은 메시지다. 두 후보의 첫 정책 행보는 모두 ‘일자리’였다. 문 후보는 9월17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자리가 먼저입니다’ 간담회를 했고, 안 후보는 9월21일 경기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찾았다. 인물 역시 경쟁의 대상이다. 문 후보는 대선기획단에 시인 안도현씨, 청년유니온 첫 위원장을 지낸 김영경씨를 내세우는 등 외부 인사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안 후보는 4월 총선 때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박선숙 전 의원을 선거총괄역으로 임명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특보였던 김경록씨 등 민주당 실무급 인사들의 합류가 이어지자, 민주당 쪽에서는 안 후보가 ‘사람 빼가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지율은 곧 단일화 협상의 주도권이다. 그동안 문 후보는 ‘컨벤션 효과’ 등으로 인해 여론조사에서 급상승 추세를 보여왔다. 안 후보의 출마 선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 지지율이 주춤한 반면 안 후보는 상승 추세가 감지된다. 리얼미터가 9월19~20일 실시한 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는 35.9% 대 19.7% 대 32.6%를 기록했다. 전주(9월10~14일) 조사와 견주면, 박 후보는 5.1%포인트 떨어졌고, 문 후보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0.5%포인트 하락), 안 후보는 5.9%포인트 상승했다. SBS와 TNS 조사에서는 박 후보 35.6%, 문 후보 18.4%, 안 후보 28.5%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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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후보 등록 전날 단일 후보 확정
전문가들은 한가위 연휴 직후 여론조사 결과, 두 후보의 경쟁이 한 달 정도 이뤄진 10월 중순 여론조사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협상 기간을 고려할 때 시기는 11월 초순 이후로 예상된다. 2002년 노-정 단일화 때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20% 초·중반 수준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11월16일 단일화 협상이 타결됐고, 후보 등록 전날인 11월25일 단일 후보가 확정됐다. 윤희웅 실장은 “박근혜 후보가 40% 수준의 지지율을 가져간다고 봤을 때 문 후보와 안 후보가 20~30% 안팎에서 경쟁하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지지율 경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문 후보는 당 쇄신과 함께 ‘비노’ 세력과의 화합, 즉 당의 단결을 이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당내 이탈자’가 생기는 것은 큰 부담이다. 안 후보가 깃발을 꽂은 ‘중원’을 공략할 뾰족수도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 보인다. 집권 경험 세력으로서 안정성, 정당 조직과 정책은 상대적 우위에 있다. 당 이미지에 비해 문 후보 자신이 새로운 정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안 후보의 경우 무당파층을 얼마나 단단히 묶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실제 선거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무당파층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안 후보 캠프는 지지 기반을 “진보 성향의 야당 지지층에 더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시민”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확장성 측면에서 우위라는 주장이다. 아직까지 당위론과 담론 수준에 그쳐 있는 안 후보의 정치 쇄신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이 어떻게 나올지도 변수다. ‘정치인 이전의 안철수’에 대한 혹독한 검증도 넘어야 할 벽이다. 안 후보의 경제 멘토로 등장한 이헌재 전 부총리에 대해 ‘모피아 대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쇄신이라는 화두가 퇴색될 우려도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훨씬 높다면, 민주당의 쇄신이 국민의 인정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제3후보인 안 후보가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문 후보로 어렵지 않게 단일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안 후보의 지지율이 훨씬 높다면,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으로서는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하는 건 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최악의 사태다. 안 후보가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단일화의 명분인 정치 쇄신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선뜻 입당에 응하기도 어렵다. 안 후보의 독자 완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독자 완주 가능성도 배제 못해
두 후보의 지지율이 엇비슷할 경우에도 문제가 복잡해진다. 단일화 방법을 둘러싼 양쪽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구체적 방식으로 여론조사(노무현-정몽준 모델), 경선(박원순-박영선 모델), 담판(안철수-박원순 모델) 등이 진작부터 거론돼왔다. 구체적 방식을 둘러싼 셈법은 각자의 지지율 추이와 연동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 후보 대선기획단의 박영선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어떤 수치에 의해 순위를 정해 단일화를 한다기보다, 국민적 압력에 의해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좋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 또한 문 후보와 안 후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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