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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두 남자 사이 ‘행복한’ 고민?

문재인과 안철수, 복잡한 단일화 고차 함수… 추석 민심과 10월 중순 여론조사가 변곡점, 단일화 이뤄진다면 11월 초순 이후
등록 2012-09-28 14:47 수정 2020-05-03 04:26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9월16일 경기도 고양실내체육관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정권 교체를 강조했다. 한겨레 강창광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지난 9월16일 경기도 고양실내체육관에서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정권 교체를 강조했다. 한겨레 강창광

상품성 있는 후보가 둘이나 된다면? 이들이 함께 다니며 둘 중 더 나은 ‘브랜드 가치’를 뽑아달라고 한다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시민들에겐 행복한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문안 드림 콘서트’(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정책과 리더십을 선보이는 양자 콘서트) 아이디어도 이런 맥락이다. 2002년 단일화한 노무현-정몽준 후보처럼 정책과 가치가 딴판이지 않기에 가능한 제안이다.

조기 단일화 논의, 지지층 확장 막는 ‘블랙홀’

온갖 정치적 상상력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역동성이 발휘되는 한국 대선이지만, ‘문-안 단일화’는 아직까지는 복잡한 고차 함수에 가깝다. 안 후보는 9월19일 출마 선언을 통해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후보로 나섰다.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 그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라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는 단일화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안 후보 지지층은 민주당을 낡은 정당으로 여기고, 문 후보 지지층은 안 후보가 정권 교체의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단일화는 두 지지층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안 후보가 단일화의 문을 닫은 건 아니다. 안 후보 캠프의 금태섭 변호사는 9월20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변화와 쇄신이 있고, 국민들이 판단해서 국민적 동의가 있다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와 민주당 입당의 조건이 충족되면 할 수 있다고 했다. 뒤늦게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 안 후보로서는 지지층을 확장할 시간과 독자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단일화 논의는 이를 가로막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예 단일화 가능성을 배제하면 지지층이 이탈할 수 있다. ‘조건부 단일화’를 말하는 이유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안 후보는 민주당이 불신을 받고 있음을 대중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이 민주당 후보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민주당에 단일화의 공을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가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언급해주길 내심 바랐던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함께 쇄신 대상으로 지목돼 ‘넘겨받은 공’을 안고 가게 됐다.

단일화 논의는 일단 미뤄졌고, 두 후보는 각자의 지지층 확보 경쟁에 주력하고 있다. 각자의 ‘파이’를 키워야 단일화가 가능하고, 자신의 파이가 커야 단일화 협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후보로서 첫 일정인 국립현충원 참배에서부터 두 후보는 달랐다. 문 후보는 9월17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와 사병 묘역을 방문했다. 안 후보는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와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 묘역과 사병 묘역을 두루 찾았다. 문 후보가 진보개혁 유권자의 지지를 확실히 다져 야권 후보로서 입지를 구축하려 했다면, 안 후보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 포섭되지 않는 무당파층을 끌어안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도 인물도 경쟁

쇄신과 정책, 인물 등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문 후보는 9월20일 의원총회에서 “조기 단일화를 촉구할 필요도 없다. 협상을 통한 단일화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경쟁하면 된다. 우리가 제대로 변화하면서 경쟁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사이버 펑크의 선구적 작가 윌리엄 깁슨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라고 끝맺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쇄신의 상징, ‘이미 와 있는 미래’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정치 쇄신 의지를 드러냈다.

두 후보 모두 선거 과정에서부터 쇄신을 강조하다 보니, 선거대책위원회 형식이 비슷하다. 문 후보는 당 조직 중심의 민주캠프, 지지자 중심의 시민캠프, 전문가 네트워크인 미래캠프 등 3개의 수평 구조로 이뤄진 ‘담쟁이 캠프’를 선보일 예정이다. 당 지도부가 전면에 포진하는 여의도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해찬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 후퇴를 관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안 후보도 정치쇄신팀, 경제팀, 미래팀 등 팀 체제로 캠프를 운영할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의 일정은 메시지다. 두 후보의 첫 정책 행보는 모두 ‘일자리’였다. 문 후보는 9월17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자리가 먼저입니다’ 간담회를 했고, 안 후보는 9월21일 경기 안산시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찾았다. 인물 역시 경쟁의 대상이다. 문 후보는 대선기획단에 시인 안도현씨, 청년유니온 첫 위원장을 지낸 김영경씨를 내세우는 등 외부 인사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안 후보는 4월 총선 때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박선숙 전 의원을 선거총괄역으로 임명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특보였던 김경록씨 등 민주당 실무급 인사들의 합류가 이어지자, 민주당 쪽에서는 안 후보가 ‘사람 빼가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지율은 곧 단일화 협상의 주도권이다. 그동안 문 후보는 ‘컨벤션 효과’ 등으로 인해 여론조사에서 급상승 추세를 보여왔다. 안 후보의 출마 선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 지지율이 주춤한 반면 안 후보는 상승 추세가 감지된다. 리얼미터가 9월19~20일 실시한 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는 35.9% 대 19.7% 대 32.6%를 기록했다. 전주(9월10~14일) 조사와 견주면, 박 후보는 5.1%포인트 떨어졌고, 문 후보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0.5%포인트 하락), 안 후보는 5.9%포인트 상승했다. SBS와 TNS 조사에서는 박 후보 35.6%, 문 후보 18.4%, 안 후보 28.5%가 나왔다.

안철수 후보가 9월19일 서울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그는 정치 쇄신을 강조했다. 한겨레 김정효

안철수 후보가 9월19일 서울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그는 정치 쇄신을 강조했다. 한겨레 김정효



안 후보가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언급해주길 내심 바랐던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함께 쇄신 대상으로 지목돼 ‘넘겨받은 공’을 안고 가게 됐다.

2002년 후보 등록 전날 단일 후보 확정

전문가들은 한가위 연휴 직후 여론조사 결과, 두 후보의 경쟁이 한 달 정도 이뤄진 10월 중순 여론조사가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협상 기간을 고려할 때 시기는 11월 초순 이후로 예상된다. 2002년 노-정 단일화 때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20% 초·중반 수준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11월16일 단일화 협상이 타결됐고, 후보 등록 전날인 11월25일 단일 후보가 확정됐다. 윤희웅 실장은 “박근혜 후보가 40% 수준의 지지율을 가져간다고 봤을 때 문 후보와 안 후보가 20~30% 안팎에서 경쟁하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지지율 경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문 후보는 당 쇄신과 함께 ‘비노’ 세력과의 화합, 즉 당의 단결을 이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당내 이탈자’가 생기는 것은 큰 부담이다. 안 후보가 깃발을 꽂은 ‘중원’을 공략할 뾰족수도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 보인다. 집권 경험 세력으로서 안정성, 정당 조직과 정책은 상대적 우위에 있다. 당 이미지에 비해 문 후보 자신이 새로운 정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안 후보의 경우 무당파층을 얼마나 단단히 묶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실제 선거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무당파층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안 후보 캠프는 지지 기반을 “진보 성향의 야당 지지층에 더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시민”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확장성 측면에서 우위라는 주장이다. 아직까지 당위론과 담론 수준에 그쳐 있는 안 후보의 정치 쇄신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이 어떻게 나올지도 변수다. ‘정치인 이전의 안철수’에 대한 혹독한 검증도 넘어야 할 벽이다. 안 후보의 경제 멘토로 등장한 이헌재 전 부총리에 대해 ‘모피아 대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쇄신이라는 화두가 퇴색될 우려도 있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경우의 수’는 크게 세 가지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훨씬 높다면, 민주당의 쇄신이 국민의 인정을 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제3후보인 안 후보가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문 후보로 어렵지 않게 단일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안 후보의 지지율이 훨씬 높다면, 안 후보의 민주당 입당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으로서는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하는 건 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최악의 사태다. 안 후보가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단일화의 명분인 정치 쇄신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선뜻 입당에 응하기도 어렵다. 안 후보의 독자 완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독자 완주 가능성도 배제 못해

두 후보의 지지율이 엇비슷할 경우에도 문제가 복잡해진다. 단일화 방법을 둘러싼 양쪽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구체적 방식으로 여론조사(노무현-정몽준 모델), 경선(박원순-박영선 모델), 담판(안철수-박원순 모델) 등이 진작부터 거론돼왔다. 구체적 방식을 둘러싼 셈법은 각자의 지지율 추이와 연동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 후보 대선기획단의 박영선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어떤 수치에 의해 순위를 정해 단일화를 한다기보다, 국민적 압력에 의해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좋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 또한 문 후보와 안 후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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